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52
452화
믿고 보는 배우 (4)
피터의 입에서 나온 단어.
‘부자 관계’.
그에 이서관은 눈 깜짝할 사이 얼어 버렸다.
그토록 부인하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 사살당한 느낌.
“너 이 새끼. 어디서 그딴 말을 지껄여?”
험악해진 얼굴의 이서관은 피터의 멱살을 잡고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끌고 갔다.
이서관은 불안감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피터와 맞췄다.
“어디서 그딴 거짓말을 지껄이냐고, 어!”
“그쪽이 그리 당당하다면, 당장 나하고 같이 경찰서로 가시죠. 해외 입양된 서류도 같이 가지고 왔으니, DNA 검사를 통해 아버지를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야.”
“제 이름은 ‘야’가 아닙니다, 아버지.”
피터는 복잡한 표정으로 이서관을 응시했다.
“제 이름은 민우입니다. 이민우.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제 이름을 당신이 지었다던데요.”
“개소리. 그리고 네 엄마가 나하고 무슨 상관….”
“당신이 대학 시절 만났던 강춘자, 술집 여자였죠. 기억이 안 나시나요, 정녕?”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서관은 대학 시절 함께 동거했던 여자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부인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춘자, 이민우.
젊은 날의 자신의 과오였고, 자신을 조여오던 족쇄.
분명 둘을 처리함으로써 그들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또다시 자신의 앞길을 막아설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자기 목을 조여오는 이 짜증 나는 족쇄를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그가 가까스로 생각해낸 방법은 돈을 줘서 입막음하는 거였다.
“너, 나한테 원하는 게 돈이야? 계좌번호 적어두고 가, 당장 입금할 테니까.”
그 말에 피터는 어이가 없음과 슬픈 표정이 뒤섞였다.
“제가 그깟 이유로 당신을 찾았을 것 같습니까? 나는 단지….”
그때, 이서관의 핸드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화들짝 놀란 이서관은 피터에게 그 자리에 있으라 손짓한 후, 뒤돌아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일 마치면 자네도 여기 술자리에 초대하려고. 언제쯤 올 수 있나?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능글거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우창균이었다.
일전에 우창균이 낸 사고의 환자를 잘 처리해준 대가로 돈을 받은 이서관은 그걸 계기로 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로 그의 모임에 불려 다니며 때때로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오늘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사실은 회장님…. 혹시 돈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이서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창균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젊은 날에 입양 보낸 아이가 지금 절 찾아와서 친자 검사를 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지금 혼담이 오가는 여자와 파투 날 것은 뻔합니다.”
-그래, 자네 XX회사 막내딸과 혼담 오간다고 했었지.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곰곰이 생각하던 우창균은 이내 명쾌한 답을 내렸다.
-명색이 의사라면서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냐고.
“네…, 네?”
-죽여버리면 다 끝나는걸.
그는 이서관이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은 그 애 부탁 들어주는 척하면서 이쪽으로 데려와. 그럼 내가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까.
* * *
아침을 여는 햇빛이 환하게 들어차는 이곳.
넥스트 엔터의 대표실에선 차용석이 간밤에 올라온 소식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치, 연예 쪽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확인한 그.
그의 눈길이 멈춘 곳은 간밤에 스타뉴스에서 올린 소식이었다.
차용석의 얼굴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한 듯 보였다.
“흐음…….”
그때,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김 팀장이 들어왔다.
결재할 서류를 들고 들어온 그가 차용석의 표정을 살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안녕하지. 간밤에 좋은 소식들이 많이 떴더라고.”
차용석이 핸드폰으로 태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제 태주가 드라마 추가 촬영한 거에 관한 목격담들이 이렇게 떴더라고. 태주가 무슨 드리프트인가? 뭔가를 아주 멋지게 했다던데.”
“진혁 씨가 현장에 동행해서 저도 들었습니다.”
김 팀장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태주 씨가 협찬받은 필즈 차로 엄청난 액션을 선보였다고 하더라고요. 드리프트를 원테이크로 갔답니다.”
“원테이크! 그 엄청난 씬을?!”
흥분한 차용석이 눈을 빛냈다.
“이야, 남자라면 드리프트는 원샷이지. 역시 태주가 낭만을 아네.”
“진혁 씨도 그렇고 현장 스태프들도 태주 씨가 설마 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몇 번 연습해 보더니, 결국 해내는 걸 보고 다들 기립박수를 쳤답니다.”
“정말 대단하네. 얼른 드라마 ‘굿맨’ 본방송 보고 싶다.”
10월을 가리킨 달력을 확인한 차용석이 참을성 없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굿맨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 만큼. 자꾸만 본방송 나오길 기다리는 이 마음이 매우 조급해지네.”
“이제 정말 곧입니다, 대표님.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오늘 영화 ‘드림랜드’ 고사식 참석하실 겁니까?”
“당연히 가야지. 제 시각에 도착하려면 지금 출발해야겠네.”
차용석은 겉옷을 챙겨입고 손짓했다.
“서두르자고.”
* * *
경기도에 마련된 너른 촬영장.
촬영 A팀, B팀이 나뉘어 촬영했던 이곳에 전 인원이 오랜만에 다 모였다.
주연배우 한태주, 설채빈, 시진영을 비롯한 배우들과 옥장파 감독, 그리고 다양한 스태프들.
거기에 제작사인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들을 비롯해 투자자인 마용길 회장과 베일릭스 관계자도 참석했다.
제사상이 한가득 차려지고 그 중앙에 돼지머리가 있는 이때.
엄숙한 분위기 속 영화 ‘드림랜드’ 고사식이 진행됐다.
이 작품이 첫 입봉작인 옥장파 감독은 무척이나 긴장한 듯 매 손길에 힘을 주었다.
그 옆에서 능숙하게 보조하는 태주는 그를 격려하듯 미소 지어 보였다.
“감독님, 저랑 같이 돼지머리 만지실래요? 저 ‘탈출’에서 돼지머리 만지니까, 그 작품 떡상했거든요.”
“그래요, 그럼 같이 만집시다.”
태주와 옥 감독이 돼지머리를 만지작거리자.
긴장감이 가득했던 분위기를 뚫고 순식간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모두가 웃음 가득한 이곳에서 엄숙한 얼굴을 한 두 명이 있었으니.
피터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이중협에게 물었다.
그는 자꾸만 옆을 스치는 투명한 귀신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 귀신들이 제법 많은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도 공동묘지 부근에 귀신들이 제법 있는 건 보았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귀신이 몰린 건 처음 봐요.] [원래 귀신들이 제삿밥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잖아. 아, 너는 모르나?]이중협은 입맛을 다시며 제사상 위 올려진 고기를 바라보았다.
[한국처럼 이렇게 귀신을 위해 차려지는 밥상이 흔한 게 아니야. 너도 가서 먹을래?] [아니요. 별로 배고프지도 않고요. 대장 귀신님은요?] [나도 별로.]이중협의 시선을 따라간 피터는 그 끝에 태주가 있음을 알았다.
옥장파 감독 옆에 있던 태주는 여러 관계자와 이번 영화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상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한 다음, 제사상 위에 올려졌던 술을 한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영화의 성공에 진심인 태주의 얼굴은 너무나도 밝았다.
그런 그를 보던 피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주 씨는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아니면 진짜로 모르는 거예요?] [뭘 모르는데?] [주변에 귀신이 이렇게 많잖아요. 그런데 태주 씨는 전혀 느끼지를 못하는 것 같아서요.] […무뎌져서 그래.]이중협은 동료들과 함께 있는 태주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태주는 그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종종 중협이 형, 하고 부르며 애타게 찾고는 했다.
자신이 대답해 줌으로써 옆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중협이 형! 여기 맛있는 거 많아요. 한번 와서 드셔 보세요.’
지금, 그를 제사상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부름에 이중협은 피식 웃었다.
[그래, 아직은 내가 태주를 떠날 때가 아닌 거지.]아직은 안심해도 됐다.
태주가 그를 필요로 하는 지금은.
* *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홍보실은 오늘따라 유독 붐볐다.
직원 중 몇몇은 능숙한 영어로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나둘씩 전화를 끊은 직원들은 홍보팀장에게 방금 나눈 통화의 내용을 보고했다.
“‘웜 데드’ 트레일러, 이번 주에 완성해서 공유한다고 합니다.”
“드라마 전체적으로 내부 평가는 어떻대요?”
“내부적으로 평가가 아주 좋다고 합니다. 다들 이 드라마, 공개되기만 하면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라고. 어서 공개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네요.”
“이번이 첫 런칭인데 그렇게 들떴다고요?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박연수 홍보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차오르는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일단 드라마 홍보 일정은 태주 씨도 최대한 참여하는 것으로 해 보죠. 영화 촬영이랑 병행해서라도요.”
“아, 영화 하니까 생각났는데, ‘나의 미래’ 제작사 측에서 이야기한 게 있습니다.”
직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작사 측에서는 태주 씨가 얼른 미국에 들어왔으면 하는 눈치예요. 거기 토크쇼나 여러 티비 프로그램에서 태주 씨 초청하고 싶다고 줄을 섰다더라고요.”
“디에고 크루즈 씨는 벌써 출국했죠?”
“네, 예능 ‘꼬리잡기’ 찍고 벌써 출국했죠. 그래서 지금 ‘나의 미래’ 미국 홍보를 디에고 씨 혼자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작사 측에서는 태주 씨도 가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도 알고는 있죠. 미국에서 태주 씨 인기가 얼마나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지. 그런데 태주 씨가 지금 찍고 있는 영화가 있어서, 당분간 갈 수가 없어서 그렇지.”
홍보팀장이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들어 올렸다.
“이야, 이거 제가 기분이 다 으쓱해지는데요? 할리우드에서 한태주한테 애걸복걸할 때가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냐 했겠어요.”
“저쪽에서 아무튼 내년 1월~2월 스케줄은 무조건 빼달라고 합니다. 그쪽 심사위원들과 긴밀하게 접촉한 결과, 수상 가능성이 크다며 무조건 참석하라고 했다는군요.”
“왜요? 그때 무슨 일 있나?”
“무슨 일이 있긴요.”
박 팀장의 눈을 마주친 직원이 씩 웃었다.
“골든글로브 일정,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오스카 일정이 있잖아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