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54
454화
믿고 보는 배우 (6)
이선우와 염수정의 열애설.
전혀 아니라고도, 확실하다고도 할 수 없는 부정확한 정보.
그러나 이 열애설이 가져올 파장은 큰 것임은 분명했다.
데뷔 이래 두 번째 열애설이 난 염수정은 더한 관심을 받을 테고.
무엇보다 이선우와 염수정이 동반 출연하는 드라마 ‘연인’에 엄청난 관심이 쏠릴 거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이중협의 얼굴이 점점 굳어질 무렵.
[대장 귀신님, 태주 씨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데요.]이중협에게 작게 속삭인 피터가 저쪽을 가리켰다.
대본을 확인하던 태주가 문득 서늘한 느낌이 들어 이중협을 돌아보았던 것.
귀신을 보는 능력은 약해져도, 이중협과의 연결고리는 아직 유효했다.
그가 어떤 감정을 내뿜는지, 태주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때가 많았다.
묘한 차가움이 내려앉은 이중협의 지금 이 기분처럼.
‘형, 괜찮아요?’
태주의 물음에 이중협은 씩 웃으며 기분을 끌어올렸다.
촬영 전 태주의 컨디션을 자신이 망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당근이지! 태주야 너는 얼른 촬영 준비에 집중해.]‘알겠어요!’
설채빈과 대본을 연습하던 태주가 안심하며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 번의 리허설을 거친 후 옥장파 감독이 준비되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 슛 들어가 볼까요? 다들 준비됐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자, 레디, 셋…. 액션!”
촬영장 모두가 촬영에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 * *
함께 ‘꿈’을 향해 달리던 젊은 커플.
그러나 각자 달리는 속도가 다른 만큼, 성공 궤도에 안착하는 시기도, 방법도 다르다.
여기,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구성범과 인기 가수의 길에 접어든 한소희가 있다.
그들은 19살 때, 구성범이 한소희에게 고백하며 사귀기 시작한 사이.
같은 동네 친구로 지내며 좋은 감정을 가졌다가 풋풋한 사랑까지 하게 된, 둘만의 시간이 아주 긴 커플이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동지이자 연인인 그들.
그러나 25살 동갑내기가 된 지금, 그들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구성범은 오디션에서 수없이 떨어진 만년 배우 지망생.
한소희는 실력과 인기,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당당한 가수.
처지가 다른 두 사람은 점차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오해가 쌓인 두 사람이 큰 갈등을 빚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어둑한 시각에 만난 두 사람.
마스크와 캡모자로 얼굴을 가린 한소희와 청자켓 차림의 구성범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커플의 행복한 데이트 같아 보이겠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서로 달랐다.
톱스타가 된 여친과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
매우 어렵게 얻어낸 소중한 시간인 만큼, 구성범의 마음은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 상대방에게서 냉랭하기 짝이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헤어지자.”
“뭐…, 뭐?”
“못 들었어? 헤어지자고, 구성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의 여자친구가 내뱉는 말이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에 콕콕 박혔다.
구성범은 충격받은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왜…? 아니야, 소희야. 제발 헤어지자는 말만큼은 하지 마.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 내가 꼭 고칠게.”
한소희가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자, 구성범은 더욱 초조해졌다.
10살 때부터 인연을 쌓아 25살이 된 지금.
그들은 인생의 절반을 알고 지낸 절친한 친구였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인이었다.
“그동안 우리 잘해왔잖아. 그런데 인제 와서 왜 이러는 거야.”
“너, 변했어.”
“내가? 소희야, 무슨 말이야.”
“이젠 더 이상 내가 반했던 구성범이 안 보여.”
말을 잇던 한소희의 눈동자는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바보처럼 돌진하고 들이받던 그 열정이 이제는 안 보인단 말이야. 파이팅 넘치고 도전적이었던 그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달칵.
한소희는 쓴 커피를 마시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네가 못난 것보다도 힘없고 나약함에 축축 처지는 그 모습이 싫어.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성범아.”
정곡을 찌른 듯한 말에 구성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한소희가 자리를 떴음에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소희가 그에게 결별 통보를 했고, 그들이 헤어졌다는 게.
마치 현실이 아닌, 아직 꿈 같았다.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그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변했다고…?”
분명 자신은 똑같았다.
아니, 똑같은 줄 알았다.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오디션에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동안 그를 봐온 소희는 다른 말을 한다.
-바보처럼 돌진하고 들이받던 그 열정이 이제는 안 보인단 말이야.
여자친구가 건넨 결별보다도 성범에게는 그 말이 더욱 충격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연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도, 누구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었기에.
“도전정신 빼면 내게 남는 게 없는데. 이제 내게 그것마저 안 보인다는 건가…?”
그때 생각에 잠긴 구성범의 어깨를 누군가 툭 건드린다.
“야, 소희가 너 데려가라고 해서 와봤다. 너희들 헤어졌다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십년지기 친구인 오영식의 등장.
친형제와도 같은 친구의 말간 얼굴을 본 구성범의 눈동자가 왈칵 흔들렸다.
그제야 차가운 현실이 느껴졌다.
소희와 헤어졌고, 자신은 성공도 못 한 배우 지망생이자 배포와 패기도 없는 패배자일 뿐이었다.
“뭐야, 너 우냐?”
“내가 울기는 뭘 울어.”
구성범은 눈가에 또르륵,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으며 맹세했다.
“여기서 낭비할 시간 따위 없어. 나 얼른 송창룡 감독님 오디션 준비하러 가야 해.”
“송 감독님 오디션? 거기 경쟁률 쟁쟁해서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어? 다른 거 준비한다고.”
“못한다고 포기하면 아무것도 못 해.”
구성범이 주먹을 꽉 쥐었다.
더는 바보처럼 가능성 따지며 오디션을 보지 않을 것이다.
안 되더라도 계속 도전하는 것.
그게 연기에 ‘미친개’였던 그의 방식이다.
* * *
“오호….”
카메라와 현장을 번갈아 보던 옥장파 감독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번졌다.
20대의 청춘을 연기하는 한태주와 설채빈의 연기가 조금은 뻔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설채빈은 그동안 미팅을 하며 어색한 부분을 많이 코치해준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기대했지만.
한태주는 이미 여러 청춘물에서 20대의 방황과 고뇌를 많이 연기했기 때문.
그의 연기력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가 똑같은 연기를 답습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기우였다.
구성범을 연기하는 한태주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었다.
찌질하면서도 야망은 가지고 있는 20대.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에야 각성한 ‘꿈’에 대한 열정과 도전.
마냥 멋있고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구성범’이란 캐릭터.
한태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숨을 불어넣었다.
“정말 좋네요, 한태주 씨 연기. 힘 빼고 담백하게 연기하는 것이 매력 있어요.”
“맞습니다.”
조감독의 대답을 기대하던 옥 감독의 귀에 들려온 낯선 목소리.
황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베일릭스 관계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영화의 첫 촬영은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부담이 된다며 안 온다던 베일릭스 관계자.
궁금증이 가득한 감독의 시선에 관계자가 멋쩍은 듯 미소 지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그런데 태주 씨 연기가 무척 기대돼서 안 올 수가 있어야죠.”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말 만족하십니까?”
“네, 정말 좋네요.”
관계자는 세트장 안 태주와 시진영, 그리고 설채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채빈 씨는 아이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안정적입니다. 게다가 상황을 장악하는 힘까지 있는 것 같아 놀랍네요.”
“과찬이십니다.”
“시진영 씨는 감초 역할에 충실하게 태주 씨 옆에서 무게감을 잡아주는 것이 훌륭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태주 씨.”
관계자가 왔다는 소식에 주변 스태프가 스멀스멀 몰려드는 가운데.
“역시 한태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늘 새롭고, 늘 놀라워요.”
“여러 스케줄로 바빴는데도 연기 준비를 잘해온 것 같습니다.”
“연기 준비를 해 온 게 아니라, 이 정도면 구성범이란 캐릭터를 소환한 수준이죠.”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관계자는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바쁘게 적으며 말했다.
“오늘 첫 촬영 기사 나갈 건데, 이미 이선우, 염수정 열애설로 한창 달궈진 상태라. 타이밍 봐서 저녁쯤 기사 내도록 하겠습니다.”
“오, 둘이 열애설이 났나요?”
옥장파 감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지금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겠는데요. 저희 첫 촬영 기사는 좀 진정되면 내는 게 어떨까요? 그래야 저희 기사, 열애설에 묻히지 않죠.”
“감독님,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열애설을 잠재울 만한 초특급 기사를 저희 쪽에서 내면 되죠.”
‘한 건 촬영밖에 없는데요?’라고 묻는 듯한 옥 감독의 눈동자.
관계자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감독님은 그저 촬영만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판은 이미 저희가 깔아놨습니다.”
* * *
스타뉴스 본국.
열애설이 터진 오늘, 기자들은 어뷰징 기사를 쓰느라 타이핑 치기 바빴다.
그리고 여기,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는 우성림과 홍은지가 있다.
그들 또한 ‘이선우-염수정 열애설’로 열띤 토론을 하는 중이다.
“종일 드라마 ‘연인’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하네.”
“유튜브 영상에도 이선우하고 염수정 이야기뿐이에요. 다들 건수를 잡았다 싶었는가 봐요.”
“다들 잘됐다 싶겠지. 솔직히 이선우랑 염수정, 둘 다 엄청난 대어긴 하잖아.”
“솔직히 둘 사이의 스토리가 구구절절한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걸요?”
우성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둘. 연예계에서도 서로 의지하는 막역한 사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고, 결국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오호라, 문장력 좋다, 너.”
“기사에 나온 그대로 읽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선배님은 진짜 이 둘이 사귄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홍은지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볼 때 이거, 제작사 측에서 낸 어그로성 기사야.”
“현필름에서요?”
“그래. 그쪽에서 지금 처음 론칭하는 드라마를 어떻게든 성공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김옥현, 염수정, 이선우로 최선을 다해 언플을 해도 ‘굿맨’에 밀리고 있으니, 이런 열애설을 터뜨린 거지.”
“그거 배우들도 동의한 걸까요?”
“배우들이 동의하고 말게 뭐가 있어. 소속사 사장하고 현필름 신 대표하고 협의해서 낸 기사일 텐데. 어차피 그들은 작품만 흥행하면 뭐든 할 사람들이니까.”
그때, 홍은지의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네, 홍은지입니다. 네? 뭐라고요?”
홍은지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은 말을 조심히 되뇌었다.
“한태주 씨가 ‘데스 게임’으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됐다고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