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56
456화
연극이 끝난 후 (1)
* * *
한적한 카페에 마주 앉은 두 사람.
드라마 ‘낭만 고양이’의 작가, 김유경과 그녀의 보조작가 출신, 심은설이다.
“이제 곧 드라마 방영이라 바쁜데 내가 괜히 보자고 했나?”
“아뇨, 선생님. 어차피 저도 선생님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무슨.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그냥 언니라고 하라니까.”
서글서글한 눈빛의 김유경은 심은설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라마 ‘낭만 고양이’로 좋은 경력을 쌓았던 두 사람.
김유경은 한때 자신의 보조였던 심은설이 어느덧 성장해서 성공적인 첫걸음을 뗀다는 것이 그저 자랑스러웠다.
“솔직히 은설이 너한테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어. 너 혼자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아니에요, 선생님. 과찬이세요.”
“과찬은 무슨. 은설이 너는 칭찬을 칭찬으로 못 받아들이고 항상 이렇게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더라?”
김유경의 거듭되는 칭찬에 심은설의 얼굴은 부끄러워서 발개졌다.
칭찬과 격려.
드라마 ‘굿맨’을 집필하며 어쩌면 그녀가 가장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 스스로 의심이 들어서요.”
그동안 원고를 쓰며 수많은 탈고를 거치고, 수많은 충고를 받아들이며 수정을 거치는 동안.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건 다름 아닌 의심과 걱정이었다.
어쩌면 첫 작품인 ‘굿맨’의 성공에 온 신경이 쏠려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주인식 감독, 배우 한태주와 윤수안 등 업계 탑인 사람들이 엮여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값에 신인 작가인 자신이 먹칠하면 안 된다는 중압감도 상당했다.
이러한 점을 그녀의 선배인 김유경 작가는 당연하게도 잘 알고 있었다.
“의심과 걱정, 그건 작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야. 아니, 비단 작가가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일걸?”
“하하 그런 거면 위안이 되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진운이 좀 안 좋아서 더 걱정이에요.”
“왜? 김옥현 작가님하고 붙어서 그래?”
“네. 김옥현 작가님과 붙게 돼서 조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심은설이 커피를 마시며 눈동자를 굴렸다.
“스타 작가는 티켓 파워가 엄청나게 세잖아요. 게다가 이선우 배우님이랑 염수정 배우님까지 붙었으니, 사람들이 그쪽으로 얼마나 관심이 가겠어요.”
“너 요즘 기사 잘 읽고 있는 거 맞아? 기자들이 드라마 판세에 관해 쓰는 기사 말이야.”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유경이 되물었다.
“아무리 김옥현 작가님이 유명하다지만, 요즘 대세는 한태주가 주연인 ‘굿맨’이던데. 네가 집필하는 드라마!”
그 말을 심은설도 부인하지 않았다.
“태주 덕분에 드라마가 유명세를 탔죠. 함께 출연하는 윤수안 씨, 추석대 씨의 명연기에 다들 칭찬이 자자하고요.”
“그들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탄탄한 대본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야. 은설아, 드라마가 그런 대단한 화제를 몰고 올 수 있던 건, 네 공이 대단하다는 거라고.”
“칭찬 감사드려요. 그런데도… 드라마의 성공이 이렇게 걱정되는 건 멈출 수가 없네요.”
선배의 칭찬에도 멋쩍은 듯 심은설이 머리를 긁적이자, 김유경이 덧붙였다.
“은설아, 우리 ‘낭만 고양이’ 작업할 때 여실히 느꼈잖아. 우리가 재밌게 작업한 만큼 결과가 좋았어.”
“맞아요. 선생님과 함께 작업한 그때가 정말 좋았어요.”
“홀로서기 한 지금은 더 좋을 거야.”
흐뭇한 표정의 김유경이 후배 심은설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업계에서 도는 소문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드라마 ‘굿맨’의 대본을 본 관계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고.
그래서 감히 ‘연인’과의 대결에서 ‘굿맨’이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한다고.
그러나 이 소식을 지금 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결과는 다음 주 중으로 나올 테니까.
제작발표회가 열리고, 드라마가 방영되는 다음 주에.
* * *
“다음 주 스케줄이 정말 바쁘네.”
회사에서 박인우가 건넨 스케줄을 확인한 태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굿맨’ 제작발표회는 화요일.
일요일에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일정이 적혀 있었다.
박인우가 태주에게 다가왔다.
“바쁘지만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수락하길 잘한 거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해외 아동 입양아 편. 취지가 좋잖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 뿌리를 찾는, 그런 이야기를 담았다니.”
그 말에 태주는 옆에 있던 피터를 힐끗거렸다.
아직도 자신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
이번 다큐멘터리에 딱 맞는 적임자였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아마 이 다큐의 주인공으로 섭외되어 일이 잘 풀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마치 태주의 마음을 읽은 듯 이중협이 혀를 찼다.
[아서라, 얘 같은 경우는 부모가 버린 경우잖아. 해피엔딩도 아니고.]그 말에 동의한 태주가 비장한 눈빛을 반짝였다.
‘그래도 제가 내레에션하는 게, 피터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 시기에 내레이션하게 된 게 운명 같잖아요.’
* * *
방송국 KTS 드라마국.
다음 주 열릴 ‘굿맨’ 제작발표회 준비로 여념이 없다.
“네, 서울 건대입구 XGV 시네마입니다. 그곳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님.”
“이번에 XJ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협조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경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주연 배우는 한태주 씨, 윤수안 씨, 그리고 추석대 씨가 참석할 예정이고요.”
여러 기자와 통화를 마친 직원들은 드라마 국장의 소집으로 회의실에 모였다.
국장은 더없이 상기된 표정으로 직원들을 응시했다.
“다들 고생이 많아. 그래도 지금이 제일 행복한 줄 알아야 해. 기대감만 가득한 이때가.”
국장의 말뜻을 알아챈 직원이 피식 웃었다.
“국장님, 저희는 드라마가 방영된 후에 더욱 행복할 겁니다. 지금 ‘굿맨’이 얼마나 많은 기대를 받는 줄 아시잖습니까.”
“내가 그걸 모르겠어? 그런데 경쟁작이 ‘연인’이니까 좀 자중하자는 거지.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잖아.”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한태주 씨의 작품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어서, 김옥현 작가님의 작품과 충분히 붙어볼 만합니다.”
직원 중 한 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굿맨’은 금, 토, 일 편성이잖습니까. 저희 드라마에 집중되는 시청자들이 많을 겁니다.”
신중한 표정의 국장이 옆의 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주 3회 방영 때문에 기자들이 이를 드러내고 있더라고. 한국에서 주 3회 방영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어찌나 걱정해주던지.”
“저희의 걱정까지 기자들이 대신 가져가 줬다고 생각하세요.”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주인식 감독님이 그러시던데요. 저희 작품, 정말 재밌어서 주 3회더라도 시청자들이 잘 따라올 거라고요.”
“그건 그래.”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주인식 감독의 주재로 함께 본 ‘굿맨’ 편집본.
그는 그날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어서 다음 편을 보고 싶었던 그 갈증을.
침이 꿀꺽 넘어가는 배우들의 호연을.
그리고 무엇보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던 한태주의 연기.
“아니…. 그게 연기였던가?”
“네?”
“한태주 말이야, 이번 작품에서 일낼 것 같아.”
확신에 찬 목소리로 국장이 덧붙였다.
“그동안 봐왔던 한태주가 아니라니까. 낮에는 경찰, 밤에는 정의의 살인마.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그 모습에 어떤 평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다들 눈을 뗄 수 없을 거라는 건 분명해.”
* * *
스튜디오 S.
주인식 감독과 마범수 대표는 커피 한잔을 손에 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야, 진짜 이날이 오기는 오네.”
“아직 발표회 당일도 아니거든.”
“이제 3일 정도밖에 안 남았잖아.”
마 대표가 주 감독을 바라보았다.
느긋한 태도의 그와 달리 주 감독은 약간 긴장한 듯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작품 하는 게 한두 번이야? 스타 감독이 왜 그리 굳어 있어, 어울리지 않게.”
“성인이 된 한태주와의 첫 작품이잖아.”
창밖에 드리워진 붉은 노을이 주인식의 얼굴에 물들었다.
어릴 적,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태주와의 추억을 회상하듯 주 감독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어릴 때도 분명 연기를 똘똘하게 잘했었지. 그때도 자기 연기에 대한 고집이 있었고.”
“자네가 조연출일 때 그렇게 말 안 듣는 아역은 처음이었다며.”
“생각해보면 자기 소신이 있었던 거지. 대배우가 될 싹수가 보인 것일지도. 흐흐.”
주 감독이 씩 웃었다.
“하여튼 감회가 새롭네. 그때 연기하던 아이가 어른이 돼서 나랑 다시 작품을 하게 되다니.”
“이런 인연도 드물잖아?”
“드물지. 더욱이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그동안 몰랐던 한태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말이야.”
“그런데 이번 작품 느낌은 어때? 흥행할 거 같아?”
“그건 자네 전문 아니야?”
커피를 한입 마신 주 감독이, 마 대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애초에 자네가 김옥현 작가 작품 제작 맡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신인 작가 작품에 손을 댔다는 건. 분명 이게 더 나았다는 뜻이지 않아?”
“흐흐, 그런 비하인드는 또 어떻게 알았담.”
“그래서 이번에 김옥현이 기를 쓰고 우리를 이기려고 하는 거잖아. 자네한테 밀린 ‘굿맨’, 그것도 신인 작가 작품에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서.”
주 감독은 굳건한 의지를 다시 한번 다졌다.
“하지만 나도 지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야. 최정예 배우들과 각본을 가진 지금은, 더더욱.”
* * *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이 되었다.
건대입구 XGV 시네마에는 KTS에서 방영하는 11월의 신작 ‘굿맨’을 취재하러 온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단상에 올라온 주인식 감독, 한태주, 윤수안, 추석대 등등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쁜 가운데.
어제 ‘연인’ 제작보고회를 다녀온 기자들은 할 말이 많은 듯 눈을 반짝였다.
“한태주 씨에게 묻겠습니다.”
태주가 마이크를 집어 든 순간.
불순한 의도가 가득한 기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동 시각 경쟁작인 ‘연인’은 스타 군단으로 가득한데요. 그에 비해 ‘굿맨’은 다소 이름값이 부족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입니다. 특히 어제 김옥현 작가가 ‘신인 작가의 패기’보다는 ‘관록의 힘’이 더 세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답변이 궁금합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