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58
458화
연극이 끝난 후 (3)
* * *
KTS 방송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잔뜩 긴장한 분위기였다.
불금임에도 직원들은 퇴근하기는커녕 야근을 자처했다.
오늘은 ‘굿맨’이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날.
이미 제작보고회를 통해 수많은 기대감과 함께 관심을 끈 바 있다.
특히 동 시각 경쟁작인 ‘연인’과의 대결이 여러 사람의 기대를 받는 가운데.
‘연인’은 톱스타 이선우, 염수정을 앞세워 여성층을 노리겠다는 전략을 확실히 한바.
드라마의 주 소비층이 여성들인 것을 알기에 주인식 피디는 입술을 깨물었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30분째.
주조정실에는 오직 침묵만이 흘렀다.
티비 속 방영되는 한태주와 윤수안, 추석대의 연기를 넋을 잃고 보는 직원들.
혹은 시청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 직원들.
그리고 핸드폰으로 실시간 기사를 보던 직원들은 한마디 말도 없었다.
“흠흠.”
그때 밖에서 들어온 남자의 기척에 주인식 감독은 고개를 돌렸다.
드라마 ‘굿맨’의 이충호 CP는 주 감독과 눈을 마주치며 속삭였다.
“국장님도 아직 퇴근 안 하셨다.”
“아직도?”
“국장실에서 드라마 보고 계시더라. 아무래도 끝까지 보고 가시려나 봐.”
그 말에 주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신생 방송국인 KTS로서는 이번 드라마의 성공이 절실했다.
200억에 가까운 거액의 투자비와 QVN 공모전에서 떨어진 신인 작가의 원고는 분명 도박이었다.
그러나 주연인 한태주와 윤수안의 호연, 그리고 주인식 감독의 존재는 호재였다.
이충호 CP가 주인식 감독과 함께 주조정실에서 초조하게 앉아 있는 이때.
지독한 침묵을 깬 건 조연출의 외침이었다.
“미…, 미쳤다!”
“뭐가?”
주 감독이 재빨리 일어나 조연출에게 다가간 순간.
떨리는 조연출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모니터에 띄워진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가 급격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 7%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야,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수치잖아? 심지어 더 올라갈 것 같은데?”
주 감독은 신이 나서 목소리가 잔뜩 커졌다.
“이야. 처음에는 아슬아슬해서 ‘연인’한테 시청자들 다 뺏긴 줄 알고 걱정했는데, 이거 웬일이냐.”
“역시 1화에서 한태주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소스를 흘린 게 시청자들의 유입에 도움이 된 모양이네.”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던 CP가 주 감독과 눈을 맞췄다.
“지금 기자들도 우리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했나 본데. ‘굿맨’ 실시간 기사 올라오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야.”
“‘연인’하고 붙어서 깨질 거라는 어그로성 기사들은 다 어디 간 거지?”
그때. 쾅, 하고 주조정실 문이 열렸다.
국장실에서 홀로 전전긍긍하던 국장이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진격한 것이다.
“지금 실시간 시청률, 잘 나오고 있는 것 맞지? 얼마나 나왔어, 정확한 수치로 얘기해 줘봐!”
* * *
“KTS ‘굿맨’은 분당 최고 시청률 8.1% 기록, QVN ‘연인’은 5.3%를 기록했습니다.”
“그렇게나 차이가 났단 말이야?”
홍은지는 방금 우성림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는 팔짱을 끼었다.
“그럼, 얼마나 차이가 났을 거로 생각하셨는데요?”
“아니, 나는 많이 나 봤자 한 1% 내외 정도? 둘 다 5~6% 언저리에서 첫 스타트 끊을 거로 생각했지.”
실시간 방송을 보던 홍은지는 옆에 있던 우성림에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두 드라마 모두 시청률을 노리고 1화에 공을 많이 들였으니까. 김옥현 작가도 초반부부터 달리는 스타일이고, 이번에 ‘굿맨’도 첫 에피소드부터 액기스 팍팍 부었다고 들었거든.”
“그렇지만 김옥현 작가가 제작보고회에서 1화부터 재밌을 거라고 자신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전개인데요.”
“이래서 김옥현 작가가 그런 밑밥을 깔았던 건가? 멜로 드라마는 캐릭터 서사에 감정이 쌓여야 해서 슬로우 스타트를 한다고 했잖아.”
홍은지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 내가 볼 때 다 핑계일 뿐이지만. 재밌는 작품은 초반부터 캐릭터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살아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고. 김옥현 작가가 작년에 말하지 않았었나?”
아직도 김옥현이 자신만만해했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한태주가 이선우의 아역으로 출연했던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
당시 김옥현 작가는 드라마 초반부 분량에 아역이 너무 많지 않냐는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렇게 답했었다.
멜로 드라마는 배우들의 합이 잘 맞아떨어지면, 누구보다 빨리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그것이 자기 장기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김옥현 작가의 이런 워딩은….
“확실히 핑계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것보다, 지금 사람들 반응이 대단해요.”
우성림은 노트북으로 평소 예의 주시하던 인터넷 커뮤니티를 훑었다.
동 시각 경잭작 ‘굿맨’과 ‘연인’을 비교분석을 하는 댓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굿맨은 기대 이상이고 연인은 기대 이하라는 말이 제일 많아요.”
“어떤 면에서?”
“굿맨은 신인 작가치고 치밀한 각본과 한태주의 연기가 기대 이상이라고 호평이 자자하네요. 특히 한태주 씨 연기가 ‘지킬 앤 하이드’ 뺨친다고요.”
“하긴, 저 표정을 봐.”
티비에 방영되고 있는 ‘굿맨’ 속 태주의 모습.
평소의 차분하고도 쿨한 모습과 달리, 지금은 격정적인 감정에 가득 찬 게 사뭇 달랐다.
하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입술을 꽉 깨물어 핏기가 가신 모습이 제법 무서운 구석도 있었다.
“꼭 무슨 일낼 표정이잖아. 이야, 나는 한태주 씨가 저런 표정 지을 수 있는지도 몰랐어.”
“좀 소름 끼치네요. 뭐랄까, 한태주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에요.”
“한태주 씨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 매 작품마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니까.”
그래서 감탄할 수밖에 없어.
홍은지는 흐뭇한 감정을 가득 안은 채, 드라마 ‘굿맨’ 1화 리뷰 기사의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자정이 한참 넘은 새벽.
영화 ‘드림랜드’ 야간 촬영에 매진하던 태주.
굳이 어둑한 밤에 찍는 오늘의 촬영은 설채빈과 달밤에 커플 댄스를 추는 장면을 위해서다.
아무것도 없는 배우 지망생인 태주와 이미 가수로 성공한 설채빈이 비밀 데이트를 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을 담기 위해서.
아무도 없는 남산 근처에서 진행하던 촬영.
태주가 설채빈과 연기하는 건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 ‘데스 게임’ 이후 오랜만에 맞춰보는 호흡이다.
그러나 평소 여동생처럼 여기며 친분 있게 지내서 그런지, 둘의 케미는 통통 튀고 발랄했다.
그러나 옥장파 감독은 이 발랄한 케미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촬영을 끊으며 그가 지적했다.
“태주 씨가 좀 더 텐션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더요?”
“네. 태주 씨가 좀 점잖은 구석이 있어서 채빈 씨를 배려하면서 찍는 게 눈에 보여서요. 지금은 좋아하는 연인 앞에서 좋아함을 주체 못 하는, 그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좀 있으면 좋겠는데.”
감독의 지적에 태주가 고민에 빠진 사이.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가능했을 거 같은데. 설채빈 앞이라서 그런 텐션이 안 나오는 거야?]갑자기 불쑥 들어온 이중협의 극딜.
마침 옥장파 감독이 방금 찍은 촬영본을 보여주자, 태주는 더욱 이해가 갔다.
자신이 설채빈과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지은 표정은, 마치 태희를 귀여워하는 느낌이었다.
동생이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표정.
“여기서 더 기뻐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천진난만함. 그런 표정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옥장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설채빈을 힐끔거렸다.
가슴 가까지 찰랑이는 생머리를 풀고 코끝이 살짝 빨개진 모습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듯 무척이나 청순했다.
“누구라도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장진혁이 슬쩍 다가왔다.
“배우님, 방금 대표님한테서 문자 받았는데요. 저희 드라마, 1화 최고 시청률 8.3%까지 찍었답니다. 동시각 최고랍니다.”
“진짜요?”
그 말에 태주의 얼굴에 환하게 빛났다.
드라마의 주연배우로서 그 또한, 가지고 있던 시청률에 대한 중압감.
그렇기에 이선우 선배한테는 미안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드라마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그저 기뻤다.
곱게 휜 눈매와 환히 웃는 입매를 본 옥장파 감독은 손가락을 탁, 튕겼다.
“태주 씨, 그 표정이에요!”
“네?”
“지금 다시 촬영 진행합시다.”
그렇게 다시 진행된 촬영.
대사가 없는 씬이라 귓가에는 이 장면의 bgm으로 쓰일 옛 팝송이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태주는 설채빈과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해진 형식 없이 그저 은은한 음악의 리듬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는 둘.
태주는 설채빈의 손을 잡고 그녀를 빙그르르, 돌렸다.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방금 접한 드라마 ‘굿맨’의 시청률 1위 소식에 그저 기뻤다.
방긋 웃는 태주의 눈이 곱게 접히는 장면이 카메라 화면에 가득 담기는 이때.
옥장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 표정이지. 아이처럼 기뻐하는 이 천진난만한 표정.”
옆에서 조연출이 조심스레 속삭였다.
“그런데 아까는 왜 이 표정이 안 나왔을까요? 저 같으면 설채빈 씨하고 손잡고 춤추면 진작에 저 표정 나왔을 것 같은데.”
“그러게. 설채빈을 앞에 두고도 어려워하더니, 드라마 시청률 1위 했다니까 저런 표정이 나오는 것 봐.”
옥 감독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역시 작품밖에 모르는 천상 배우라니까.”
* * *
동 시각, 서울중앙지검.
야근하는 사무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가운데.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강승민은 서류를 이리저리 넘겼다.
“한국에서 실종됐는데, 어떻게 된 게 이렇게 단서가 없을 수 있어.”
그가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조사하는 건, 이중협에게 거짓 사망 선고를 내린 이서관의 아들, 피터 그레인스키의 생존 현황.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이서관을 만난 이후, 그의 생존 여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최악의 경우, 그의 죽음까지 가정해야 하는 상황.
만약 그렇다면 그의 시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서관을 어떻게든 추궁해 정보를 캐내야 했지만, 그는 이미 입을 꾹 다문 상황.
“검사님, 검사님!”
머릿속이 복잡한 강승민의 귓가에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때.
수사관이 급하게 한 장의 종이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중협 씨 납골묘에 들어있던 골분의 DNA 분석 재의뢰했었잖아요. 결과 나왔습니다.”
“DNA 분석하기 어렵다고 했었잖아요. 화장한 유해는 애초에 분석이 어렵다고.”
“다행히 항아리 속에 뼛조각이 하나 남아 있었던 모양이에요. 거기서 DNA를 추출할 수 있었는데…….”
수사관은 종이 속 한 이름을 가리켰다.
“이중협 대신 납골묘에 안치됐던 시체가 이 사람이었답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간 강승민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어졌다.
“피터…, 피터 그레인스키?”
그동안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이서관이 입양 보낸 남자였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