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59
459화
연극이 끝난 후 (4)
그동안 수많은 일을 겪은 강승민이었지만, 생각보다 심한 충격에 이를 바득 갈았다.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한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미친 새끼.”
평생 강 검사에게서 험한 말을 들어본 적 없던 수사관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기 아들을 죽여놓고, 그 시체를 숨기려고 생각해낸 방안이 고작 이거였던 건가? 죽은 이중협이 정말 불쌍하다 못해 비참하게 됐군. 그동안 납골묘를 찾아 추모해 온 이중협의 팬들은 뭐가 되는 거냐고.”
“정말 충격적입니다.”
강승민의 눈치를 살피던 수사관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미 시체가 화장돼 골분이 되어 버린 상태라 언제 죽었는지를 추측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뼛조각이 발견됐다면서요? 거기서 어떻게든 죽은 시기를 추정할 수 없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국과수 측에서 확답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렵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우리가 실종 시기를 기점으로 추측해 볼 수밖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들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에 머리가 짓눌렸기 때문.
그동안 이중협의 납골묘에 들어있던 시체가 피터 그레인스키라니.
이중협의 거짓 사망 선고를 내린 의사의 친아들이잖은가.
심각한 표정의 강승민이 얼굴을 들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네?”
“이중협의 납골묘에서 이서관 친자의 시체가 백골로 발견됐어요. 제가 보기에 이거, 분명 그쪽 일당하고 관련 있을 것 같습니다.”
“우창균, 부형윤 일당이요?”
“네, 그렇죠.”
강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창균과 관련이 있겠죠. 그 인간이 부형윤의 뒤처리 담당이었으니까. 분명 누군가 뒤를 봐주지 않고서는, 이렇게 뻔뻔하게 이중협의 납골묘에 남의 시체를 유기했을 수는 없어요.”
“이서관이 자기 아들을 죽이고, 우창균에게 도움을 요청한 걸까요.”
“둘이 긴밀한 관계라는 건 부인할 수 없죠. 그 인간, 저번 조사에서 우창균을 모른다고 부인하더니만.”
“강력하게 부인하길래, 오히려 아는 것 같았는데, 역시나였네요.”
“이서관, 우창균 지난 통화 내역 조사하고 있죠? 샅샅이 뒤져요. 분명 둘 사이 확실한 통화 내역이 있을 겁니다. 그 정보로 그들의 목을 죄어야 해요.”
강승민이 이를 갈았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 이런 자식들은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해요. 죽어서까지 이용당한 불쌍한 청년을 위해서라도.”
* * *
토요일 아침.
활기찬 주말을 시작하는 오전, 인터넷에는 지난밤 시작한 드라마 기사들로 북적였다.
“이야, 다들 우리랑 비슷한 생각이었나 봐요.”
밤새 올라온 기사들을 체크하던 넥스트 엔터 홍보팀 직원들.
어젯밤 ‘굿맨’을 본 사람들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생각보다 드라마가 잘 빠진 ‘굿맨’은 1화부터 임팩트가 상당했다.
주인식 감독의 세련된 연출은 물론.
악역 추석대의 존재감도 상당했고, 윤수안의 안정감 있는 연기도 좋았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한태주.
선과 악을 넘나드는 그의 연기는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정의로운 형사에서 살인범을 처단하는 연쇄살인범까지.
천의 얼굴을 연기하는 한태주의 잔상이 아직도 눈앞에 남아 있었다.
“‘굿맨’ 진짜 재밌더라고요. 저 초반부만 보고 빠지려고 했는데, 끝까지 다 봤잖아요.”
“솔직히 저는 염수정 팬이라 ‘연인’부터 먼저 봤거든요. 그런데 뭔가 전개가 답답해서 ‘굿맨’으로 확 틀었죠.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연인’은 이선우랑 염수정 때문에 본 거지, 솔직히 스토리는 ‘굿맨’이 훨씬 재밌었어. 한태주 씨 연기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진짜 한태주 씨 연기가 대박이던데요. 쿠세 같은 게 있을 만도 한데, 매 작품마다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게 대단해요.”
“한태주 장점이 그거잖아. 각 캐릭터를 자기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워서 그 캐릭터에 몰입하는 거.”
박연수 홍보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우리 드라마 비판한 기사가 그런 어조로 썼더라고. 인포트리 기사였는데.”
“안 그래도 그거 봤어요. 한태주, 무색무취한 연기로 시청자들 마음 흔들 수 있을까? 기사 제목이 이거였죠?”
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현필름에서 매수한 기자가 틀림없어요. 아니, 아무리 이선우 이름값이 높아도 그렇지. 이번 드라마만 놓고 볼 때 한태주 연기가 압승이었는데.”
“‘연인’에서 이선우 연기는 안정적이고 좋았지. 그런데 ‘굿맨’에서 반전의 연기를 보여준 한태주의 임팩트보다는 확실히 약했어.”
박 팀장이 직원들을 다독였다.
“뭐, 다들 동요하지 말자고. 기사들 대부분이 ‘굿맨’의 재미와 배우들의 연기력을 칭찬하고 있으니까. 일단 ‘굿맨’은 대세 드라마에 올랐어.”
* * *
다음날, 일요일.
차용석은 한유경, 태희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누가 보면 한 식구인 것처럼 그들의 모습은 더없이 화목하고 단란했다.
무엇보다 한유경과 태희를 보는 차용석의 얼굴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일주일의 마무리를 유경 씨와 함께하니 좋네요. 우리 태희도 봐서 정말 좋고.”
“일요일에는 원래 가족 식사하는 날인데. 태주가 없어서 아쉬울 뿐이죠.”
아쉬움이 섞인 한유경의 말에 태희도 동조했다.
“엄마, 오빠는 왜 오늘 같이 못 왔어? 원래 한국에 있는 동안 일요일 가족 식사는 꼭 왔잖아.”
“으음, 오빠는 오늘 스케줄 있어서 일하러 갔어. 그래서 태주 오빠 대신 용석이 삼촌이 왔잖아.”
엄마의 회유에도 태희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히잉. 태주 오빠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잔뜩 삐진 태희를 달랠 수 있는 건 달콤한 브라우니.
태희가 디저트에 빠진 사이 한유경은 차용석과 밀렸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요즘 태주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집에서 통 태주를 못 봐요. 어제, 그제는 새벽 촬영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왔고.”
“요즘 태주가 영화 촬영 때문에 좀 바빠요. 연말에 미국 스케줄로 출국해야 해서, 그 전에 다 찍어놓느라고 그런가 봐요.”
“한국에서 번쩍, 미국에서 번쩍. 태주 진짜 체력 관리 잘해야 하는데, 용석 씨가 잘 케어해 주는 거 맞죠?”
“그럼요. 오늘 점심때도 잠깐 시간 났다고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가던데요.”
“그래요? 다행이다.”
차용석의 말에 한유경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태주 드라마가 이선우 드라마보다 인기인 거 알아요?”
“솔직히 ‘굿맨’이 스릴러물이라 여자 시청자들은 ‘연인’을 좀 더 많이 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다행이네요.”
“태희 친구 엄마들하고 이야기 나눠보면, 다들 그런 생각으로 1화는 일단 ‘연인’을 틀었대요. 그런데 생각보다 전개가 느리고 상황이 꼬이는 게 답답해서 ‘굿맨’으로 돌렸다더라고요. 다들 태주가 지킬 앤 하이드급 연기 펼친 것과 뛰어난 액션씬에 감탄하던데요.”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 포인트가 분수령이었죠.”
차용석이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1화에서 주요 포인트가 태주의 이중적인 모습이었죠. 낮에는 정의로운 형사로, 밤에는 살인범들을 잡는 연쇄살인마로 활동하는 모습을 완벽히 다르게 표현한 게 정말 소름 끼쳤어요.”
“연기를 잘해서 더 멋있었던 것 같아요.”
고기를 한 점 먹던 한유경이 새침하게 덧붙였다.
“솔직히 저,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동안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태주 연기 보는 순간, 그냥 전율이 일더라고요.”
“좋은 연기를 보면 원래 소름 끼치고 그런 법이에요.”
차용석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한유경의 반응이 대부분 시청자의 반응일 것이다.
제아무리 이선우, 염수정을 내세운다 한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도적인 연기력에 끌리기 마련이다.
금토 드라마의 승부수는 이미 한 축으로 기울어진 듯했다.
더욱이, ‘굿맨’이 금, 토요일에 이어 오늘, 일요일도 방송하는 드라마라면 더더욱.
3연속 방영으로 ‘굿맨’이 시청률의 왕좌에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 * *
그날 저녁, ABS 방송국.
태주는 장진혁과 함께 교양국으로 향했다.
평소 드라마국만 오갔기에 교양국의 차분한 분위기를 흥미로운 듯 보는 중이었다.
긴박하게 돌아갔던 드라마국과는 달리 이곳 교양국은 제법 조용했다.
[방송국은 원래 이렇게 조용한가요?]피터의 말에 태주도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알던 방송국은 이렇게 차분한 이미지가 아니었는데요. 아마 각 파트 별로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교양국이 좀 차분한 편이라고 들었어.]장진혁과 함께 한 사무실로 들어간 태주.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PD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번 다큐의 감독을 맡은 강재민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중년의 남자는 태주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머리카락이 이래서 나이가 많이 보이는데, 실제론 태주 씨하고 별로 차이 안 납니다. 편하게 대해 주세요, 하하!”
“감독님께서 절 특별히 내레이션으로 지목하셨다고 들었는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태주 씨는 목소리 출연을 따내기도 어려운 대스타인데, 제가 더 영광이죠.”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
감독은 노트북으로 태주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일단 본격적으로 내레이션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작업한 영상을 한번 보는 게 좋겠어요. 영상의 분위기, 내레이션 들어갈 부분들을 전체적으로 체크하면 더욱 수월할 것 같아서요.”
“네.”
진지한 얼굴로 태주는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ABS 창사 50주년 다큐멘터리, ‘뿌리를 찾아서’.
해외 입양아가 핏줄에 끌려 한국에서 친부모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영상 안에는 총 3명의 인물이 나왔다.
두 명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입양아 출신.
다른 한 명은 태주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화장을 짙게 한 50대의 여자.
“이분도 입양아신가요? 이 여자분이요.”
“아, 저분.”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저분은 자기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어머니예요. 아이를 다시 찾고 싶다는 일념으로 우리 다큐에 출연했는데. 사연이 구구절절하고 어머니 입장도 담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젊었을 적 미인이었을 여자는 카메라를 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저는 아들이 한 명 있었어요. 그런데 형편이 안 좋아서 어렸을 적, 미국으로 입양 보낸 게 그렇게 한이 됐어요.”
[엄마.]갑작스레 터져 나온 피터의 목소리.
그 여자를 보는 눈길이 한껏 떨렸다.
[엄마가 왜 여깄어.]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