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60
460화
연극이 끝난 후 (5)
태주는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영상 속 중년의 여자와 피터를 번갈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눈을 깜빡였다.
‘어머니세요?’
[우리 엄마 맞아요. 이름은 강춘자예요. 혈액형은 A형이고요. 이게 제가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유일한 단서예요.]술술 털어놓는 피터의 말처럼 영상 속 여자도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강춘자. 1970년도 5월 15일생, 혈액형은 A형이에요. 우리 아들한테 제일 미안한 건, 어렸을 때 혼자 집에 내버려 둔 거예요.
순하게 내려간 여자의 눈꼬리가 살짝 떨렸다.
-저는 일 나가야 하니까 애를 집에 혼자 내버려 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미안해요.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을까 싶고. 애한테 몹쓸 짓을 했어요…….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술집에 다녔어요. 주변에는 공장에 다닌다고 말하고요.
영상 속 여자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말하기 부끄러운 과거네요. 그래도 민우 낳고 나서는 미용 기술을 배우러 학원에도 다녔어요. 그래서 밤늦게까지 술집이랑 학원에 가느라 애를 혼자 방에 놔둘 수밖에 없었죠.
-그럼 혹시 짙은 화장법에 대해서도 한 말씀 여쭐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이내 여자의 얼굴을 가깝게 줌인했다.
얇은 갈매기 눈썹, 빨갛게 칠한 두툼한 입술, 하얗게 분칠한 피부가 되려 미모를 죽이는 것 같았다.
-나이 먹어서 이렇게 화장 짙게 한 걸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민우가 기억하는 엄마는 이런 모습일 테니까요. 진하게 화장하고 향수 냄새 짙게 풍기는.
태주가 피터를 힐끔거렸다.
그는 여자의 말이 다 맞는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기억 속 엄마는 항상 저랬어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얼굴은 하얗게 분칠한 채였죠.]이중협도 유심히 피터와 영상 속 여자를 쳐다보며 닮은 점을 찾았다.
[어머니랑 많이 닮았네, 이렇게 보니까. 특히 눈매.]태주는 확신을 두고 피터에게 되물었다.
‘피터 씨가 기억하는 어머니가 확실해요?’
[네, 분명해요. 솔직히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람이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제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피터의 말에 이중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감이라는 것은 정말 무시할 수 없다는 걸 태주 네가 더 잘 알잖아.]거듭되는 긴장감을 품은 채 태주는 영상을 계속해서 시청했다.
카메라는 여자의 여정을 함께했다.
여자가 해외 입양기관을 방문해서 미국으로 입양 간 아들의 서류를 발견하는 것부터.
제작진이 미국에서 아들의 행방을 찾는 과정까지.
그러나 아들의 양부모는 죽은 지 오래였고, 아들의 행방은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어렵게 찾은 피터의 친구들에게서 들은 소식은, 피터가 한국에 갔다는 것뿐.
영상은 제작진도 피터의 행방을 찾는 건 실패했다는 내용으로 끝났다.
[아…. 엄마는 아직 제가 죽은 것도 모르실 텐데.]피터의 한스러운 말에 태주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진 가운데.
“그럼, 이분은 지금까지 아드님을 못 찾으셨나요?”
“네, 못 찾았어요. 사실은 희망이 좀 있었는데, 제작진과 함께 아들을 찾으면서 점점 가능성이 작음을 확인하셨죠. 아니, 못 찾을 거라는 걸 확신하게 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이 다큐에는 왜 나오신 겁니까?”
감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 자리를 빌려 아들한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잠시 망설이던 감독은 태주에게 제안했다.
“혹시 태주 씨. 이왕 온 김에 추가 촬영 가능한가요?”
“추가 촬영이요?”
“사실은 여기 강춘자 씨, 지금 방송국에 와 계시거든요. 태주 씨가 그분 아들뻘이니까, 내레이션 겸 그분하고 인터뷰하는 그림 넣으면 감동적일 것 같아서요….”
“지금이요? 가능합니다.”
태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났다.
“어차피 오늘 남은 일정은 이것밖에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피터에게 어머니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거구나.]피터는 그런 태주에게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 * *
감독을 따라 한층 내려간 곳.
그린스크린이 쳐진 그곳에는 한 여자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춘자 씨. 촬영 준비되셨나요?”
강 감독의 부름에 여자가 몸을 돌렸다.
영상 속에서 봤던 숏컷은 살짝 길어 목덜미를 스치고 있었지만, 진한 화장은 여전했다.
황급히 고개를 든 강춘자의 눈에 태주가 담긴 순간, 피터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엄마.]이제까지 했던 한국말 중, 제일 또렷했다.
첫눈에 알아본 어머니의 모습에 피터가 굳어 있을 때.
강춘자는 홀린 듯한 눈빛으로 태주에게 다가왔다.
“우리 아들도 지금쯤 이렇게 컸을 텐데….”
“오늘은 저를 아들로 생각해 주세요.”
태주가 그녀를 인터뷰 자리로 이끌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오늘은 강춘자 씨를 제 어머니로 생각할게요.”
그 말에 강춘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오늘 하루만큼은 저도 태주 씨를 우리 민우처럼 생각할게요.”
곧이어 진행된 다큐 추가 촬영.
태주는 감독의 지령대로 강춘자의 손을 꼭 잡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처 하지 못한 말씀이 있다고 들었어요. 아드님한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이세요?”
“갑작스레 아이를 입양 보낸 것이 늘 미안했어요. 물론 아이 아빠가 제가 없을 때, 갑자기 아이를 그렇게 보내버린 거긴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게 많은 것에 관한 아쉬움이 참 많았어요. 미안함도 너무나 크고요.”
태주를 보는 강춘자의 시선은 마치 옆에 있는 피터를 바라보는 듯했다.
“아이와 둘이 살 적에, 삶에 치이느라 한 번도 아이를 제대로 보듬어 준 적이 없어요.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그때 말해줄 걸 그랬어요. 엄마는 세상에서 널 제일 사랑한다고.”
그 말에 피터가 큼큼거렸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만약 우리 민우, 다시 만나게 된다면 와락 안아주고 싶은데. 우리 민우, 엄마 품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지금 날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이 못난 엄마를 만나서….”
[태주 씨, 우리 엄마, 한 번만 안아주실 수 있으세요?]태주를 보던 피터의 눈빛이 왈칵 흔들렸다.
[한 번만…. 한 번만 우리 엄마 안아 보면 원이 없을 것 같아요.]그동안 정처 없이 자신의 곁을 맴돌던 피터의 눈빛이 이제껏 보지 못한 또렷한 의지로 빛나는 순간.
태주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강춘자를 꼭 안아주었다.
“어머니. 제가 민우 씨였다면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피터가 옆에서 말하는 말을 진심 어리게 전하면서.
[나한테 엄마는 최고의 엄마였어요.]“저한테 어머니는 최고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꼭 안아주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았어요.]“어머니가 저를 꼭 안아주던 추억이 평생을 버틸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요. 나는 엄마를….]“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니까요.”
그 말에 태주의 품에서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꼭 제 아들이 말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강춘자의 눈에서 그리움의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렀다.
“나도 사랑해, 우리 민우.”
태주의 품에서 아이처럼 목 놓아 우는 중년의 여자를 카메라가 크게 잡는 순간.
큰 결심을 한 듯 피터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어머니를 꼭 안는 그의 몸에서 황금빛 물결이 흐르자, 당황한 듯 태주가 중얼거렸다.
‘피터 씨의 한은 친부를 찾는 것이 아니었던 거야? 그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그것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또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네.]이중협은 황금빛으로 흩어지는 피터를 아련한 듯 바라보았다.
[때로는 분노와 원망보다 사랑에 더 끌릴 때가 있거든.]환한 빛이 태주의 주변을 감쌌다.
* * *
“아, 힘들다.”
차 정비소에서 열심히 일하던 두 청년.
차가운 콜라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금발의 남자가 동양인 청년에게 다가왔다.
“너도 콜라 한잔할래? 좀 쉬면서 하자.”
“내가 저번에 사다 놓은 식혜는 없어?”
“미안, 그거 맛있어서 어제 내가 다 마셔버렸는데. 나중에 내가 사다 놓을게, 피터. 오늘은 이걸로 대신해줘.”
“그 약속 지켜라.”
이내 피터와 동료는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땀을 식히는 피터를 보던 동료가 이내 물었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 목걸이에 달린 그 사진은 누구야? 애인?”
“…우리 엄마. 언젠가 만날 거야, 꼭.”
“너희 엄마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어?”
“그분은 내 양부모. 내가 만날 사람은 친모야.”
피터의 말에 동료는 일연 숙연해졌다.
“아, 네 친모. 그럼 너는 원래 어느 나라 사람인데?”
“한국인이야. 워낙 어렸을 때 떠나왔지만, 내 혈통을 잊은 적 없어.”
“그런데 네 어머니가 기억나? 너 4살 때 입양됐다면서.”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나. 그냥 어렴풋한 그림만 그리는 거지.”
펜던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피터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어. 사람은 한순간의 추억으로 평생을 버틸 수 있다고.”
“그래?”
“나도 엄마와의 추억으로 지금 내 인생을 버티는 게 아닌가 싶어.”
이제껏 힘들 때마다 인생을 버티게 한 원동력.
그렇기에 자신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에게 마냥 힘을 주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 * *
성불한 피터의 기억에서 헤어난 태주의 눈가가 촉촉해진 이때.
옆에서 피디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태주 씨?”
태주의 젖은 눈가에 피디가 조심스러워지자.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태주가 피디와 강춘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도 어머니가 오래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아까 강춘자 씨가 한 말이 성큼 다가와서….”
태주의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그런 그를 향해 미소를 짓는 강춘자.
그리고 그녀를 마주 보며 마찬가지로 화사하게 웃는 태주를 카메라가 가득 잡았다.
* * *
동 시각, 홍은지는 맥주 한 캔을 가지고 우성림 곁에 앉았다.
그들이 사무실에 남은 이유는 드라마 ‘굿맨’의 3화 리뷰 기사를 쓰기 위해서다.
정확히 말하면 리뷰 기사를 쓸 우성림을 홍은지가 기다리는 거였지만.
“먼저 가셔도 된다니까요.”
“네 리뷰 기사 내가 봐주려고 그러지.”
홍은지는 아직 광고가 뜨는 티비를 보며 말을 이었다.
“3연속 방영하는 걸 사람들이 오히려 좋아하지 않아?”
“네,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는 것 같았는데. 드라마 자체가 재밌으니까. 일주일에 3번 방영,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더라고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훑던 우성림이 댓글을 빠르게 읽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번이 아니라 3번 방영한다고 해서 이게 뭔가 했는데. 전개도 빠른데 일주일에 3번이나 볼 수 있어서 겁나 좋음.
-그럼 한 달 만에 드라마 끝나는 거 아님? 그건 좀 아쉬운데.
-그래도 시원시원하게 전개 되는 건 좋음. 스토리 자체도 신인 작가급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움.
-역시 한태주는 한태주였어. 그동안 외국 작품만 주구장창 찍어서 겉멋 든 줄 알았는데, 역시 연기는 본좌급.
-한태주 연기를 감히 의심한 자가 있었다고?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연기를 보여줄까, 다들 기대했던 거 같은뎅.
‘굿맨’과 ‘연인’의 대결 구도에서 신이 난 건 네티즌들, 그리고 기자들이었다.
두 작품 간에 비교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까.
드라마 강국 QVN과 신생 방송국 KTS의 대결.
스타 작가 김옥현과 신인 작가 심은설의 대결.
그리고 이선우와 한태주의 대결.
정말 흥미로운 것투성이였다.
이내 티비에서 광고가 끝나고, ‘굿맨’ 로고가 크게 떴다.
“자, 이제 리뷰할 준비를 해볼까?”
노트북을 앞에 둔 우성림이 기사 초안을 쓰기 시작한 이때.
“어라? 이 시각에 뭐지?”
홍은지가 놀란 듯 핸드폰으로 온 연락을 확인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고려스포츠에서 부형윤 관련해서 독점 기사 터뜨렸다고 해서. 강승민 검사가 다른 기자한테 컨택했나? 아닌데, 우리하고 독점인데.”
“거긴 정치부 신문이잖아요. 강 검사가 거기랑 컨택했대요?”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는데.”
서둘러 기사를 확인한 홍은지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이거 뭐야, 진짜야?”
단독으로 올라온 고려스포츠의 기사.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