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에미상 (3)
* * *
“미국 쪽에서 연락이 온 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은 XJ 엔터테인먼트.
영화 ‘나의 미래’의 미국 제작사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 중이다.
“본격적으로 아카데미를 노리는 일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레디’와 협력하여 영화 여론 형성에 적극 기여할 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사안은 한서경 부회장님이 특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계시는 만큼,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백산그룹의 혈통이자 XJ 엔터테인먼트를 여기까지 키운 일등 공신인 한서경 부회장.
XJ 엔터테인먼트를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 기업으로 키운 그녀가 영화는 물론 주연배우 ‘한태주’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부회장님이 신경 쓰시는 사안이니, 특별히 더 세심하게 챙기자고.”
입가에 미소가 잔잔한 본부장이 수첩 달력을 뒤적였다.
11월, 12월을 넘어 내년 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정이 빼곡했다.
“올해 11월부터 정말 긴박하게 움직이겠네. 일단 ‘나의 미래’ 홍보는 미국 감독 조합, 미국 배우 조합, 그리고 미국 프로듀서 조합. 이 세 조합을 대상으로 시사회가 확정된 거지?”
“제작사 측에서 전해오길, 날짜, 장소 모두 확정됐답니다.”
영화 ‘나의 미래’에 추가 투자 지분이 큰 XJ 엔터테인먼트는 시사회 준비도 적극적으로 돕는 중이었다.
“시사회 전후에는 꼭 리셉션하고 파티를 끼워 넣어야 해. 원래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기에 파티만큼 좋은 게 없거든. 어쩌면 작품을 보여주는 것보다 출연한 배우들이 직접 심사위원들과 작품에 대해 소통하는 게 수상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그래서 이번에 배우들의 역할이 특히 더 중요할 것 같은데,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디에고 크루즈는 예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며 여러 관계자와 친분을 쌓았고. 한태주 씨는 할리우드에서 활발히 활동한 바 있으니까요.”
“이번에 찍은 좀비 드라마 있잖아. 내가 미국에 있는 지인 통해서 알아봤는데, 방영 전인데도 평이 좋더라고.”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아시아인을 넘어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고 있더라. 이런 점들을 볼 때, 아카데미까지 가는 여정이 그렇게까지 험난하지는 않을 것 같아.”
“미국에서도 ‘나의 미래’ 여론이 좋은 건, 주연배우인 한태주 씨의 연기에 호평이 자자하기 때문이니까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에, 다들 고개를 흡족하게 끄덕였다.
* * *
동 시각. 환한 미소를 띤 채 회의실에 모여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각자 노트북으로 기사를 확인하는 드라마국 직원들이다.
기사를 확인하던 이충호 CP의 입은 이미 귀에 걸렸다.
“이야, 우리가 QVN을 이겼어! 그쪽 시청률보다 3배 이상 높은 건 신드롬급 아닌가?”
“신생 방송국치고 시청률이 좋은 수준이 아닙니다. 이건 전체 방송국을 통틀어서도 제법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한태주는 미국으로 출국하는 거야?”
“미국으로요? 왜요?”
“디에고 크루즈랑 같이 찍은 영화 홍보 일정 때문에. 그리고 ‘데스 게임’이 미국에서 수상권에 들었잖아. 에미상인가? 거기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 같더라고.”
“이야, 한태주 씨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요. 그래도 에미상 일정 소화한 다음에는 한국에 들어오겠죠? 그때 한태주 씨 불러서 토크쇼 같은 거라도 녹화 따면 어때요?”
“맞습니다. 솔직히 우리 드라마의 흥행 돌풍의 주역을 안 모신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럼 한태주 씨 소속사에 문의해봐야겠다, 언제 한국 돌아오냐고. 그때를 노려서 드라마 종영 기념 토크쇼 한번 하자고.”
다들 싱글벙글한 가운데.
이충호 CP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긴 하네. ‘연인’은 이선우, 염수정 열애설까지 퍼뜨렸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확 식을 수가 있지? 박 대리, 이런 거 분석 잘하잖아. 어떻게 생각해?”
본부장의 지명을 받은 남자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두 가지 이유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랑또랑한 눈빛의 직원이 말을 이었다.
“첫 번째로, 드라마 자체의 재미가 저희 ‘굿맨’보다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김옥현 작가의 장기인 섬세한 감정선을 잘 살리긴 했지만, 스토리의 호흡이 너무 느려요. 6화나 방영됐는데, 아직 둘의 로맨스가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너무 느리긴 하더라. 첫 화만 봐도 그래, 둘이 한 씬에 등장하는 게 한 번도 없었잖아.”
“그리고 두 번째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이선우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누구한테 물어봐도 한태주의 시대죠.”
“그건 그래.”
이충호는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알았겠어, 국민 아역 한태주가 국민배우가 돼서 이렇게 돌풍을 일으킬 줄.”
* * *
그 주, 금요일.
이중협의 납골묘를 방문한 태주는 천천히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장 내일 에미상 일정 소화를 위해 ‘데스 게임’ 출연진과 함께 출국한다.
그 전에 태주는 꼭 이곳을 들러야 했다.
[왜 여길 온 거야? 여기에는 내 시체도 없잖아.]‘그래도 한 번쯤은 와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형 팬클럽에서 이곳을 추모 공간으로 계속 남겨둘 거라고 하던데요.’
주변을 둘러본 태주는 캡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발걸음을 재빨리 옮겼다.
이내 수많은 꽃다발이 헌화 되어 있는 자리에 도착한 태주.
그는 들고 온 붉은 장미 꽃다발을 놓은 다음, 손을 모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앞으로 배우로서 누릴 행복한 영광의 순간에, 중협이 형과 함께하길.
태주가 눈을 뜨자 이중협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뭐라고 소원 빌었냐?]‘비밀이에요.’
[형한테 비밀이 어딨어!]섭섭한 듯 이중협이 꿍얼거리던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선우 선배님?’
인사드려야 하나, 태주가 망설이던 그때.
[숨어!]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나무 뒤에 숨었다.
이중협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따른 것도 잠시.
왜 자신이 이선우를 피해 숨어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가서 이선우 선배님한테 인사드리고 싶은데요.’
[아니, 일단은 가만히 있어 봐.]‘네?’
[선우가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래. 누구랑 같이 왔는지, 그것만 확인할게.]다소 당황스러운 이중협의 말.
어이가 없던 태주는 입을 열려다가,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 드라마 ‘연인’과 관련해서 난 이선우와 염수정의 열애설.
사람들 사이에선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몇몇은 이선우와 염수정이 10여 년 전부터 친한 사이였다며, 이제는 여사친과 남사친에서 진정한 연인으로 발전한 거라고 했고.
몇몇은 그저 드라마 홍보를 위한 거짓 열애설이라고 일단락했다.
태주는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이중협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염수정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팅되어서 잘 보이지도 않네.]멀리 날아가서 이선우가 타고 온 차 안을 들여다보고 온 이중협이 투덜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차에서 누가 내릴 수도 있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에서 염수정이 내렸다.
검은 원피스에 차분한 그레이 코트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사뭇 밝았다.
이중협의 시선은 그가 염수정과 사귀던 당시로 흘렀다.
염수정과 비밀 연애를 하던 그때.
분명 톱스타인 염수정을 배려해서 그가 먼저 제안한 비밀 연애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둘의 입장에 차이가 생겼고, 굳건하던 관계에도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이선우뿐.
이중협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이자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피만 맺어지지 않은 형제였다.
여러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마다 그는 늘 이중협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둘이 여기를 왜 온 거지?]이중협의 눈가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번뜩였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에 괜히 숨었나, 후회됐다.
그때, 또다시 차 문이 벌컥 열렸다.
“수정아, 같이 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목소리.
태주는 이중협과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저분이 여기에?]‘그러게요? 아, 갑자기 코가 간지러워.’
[좀 참아봐, 더 지켜보게.]‘저도 참고 싶은데…’
“에…, 에취!”
태주의 재채기에 이선우, 염수정, 그리고 심요연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태주? 네가 여긴 왜?”
“그…,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선우의 다급한 목소리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다.
세 쌍의 시선에 왠지 큰 비밀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
* * *
다음날.
수많은 사람이 몰린 인천공항에 한 대의 차가 들어섰다.
거기서 태주가 내리자 끝없는 플래시가 그를 에워쌌다.
에미상에 수상 후보작으로 오른 ‘데스 게임’과 관련해서 출국하는 태주는 여러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잘 다녀오세요!”
기자들을 비롯한 팬들의 인사에 태주가 씩 웃으며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이미 ‘데스 게임’ 연출진과 배우진들이 몇몇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을 태주는 반갑게 맞이했다.
그중 모황국 감독은 그 누구보다 태주를 반겼다.
“이야, 태주 씨 때깔이 더 좋아졌네. 역시 위에서 노는 물이 다르긴 다른 모양이야, 그렇지? 선글라스 쓰니까 완전 톱스타 포스 나네.”
“에이, 감독님도 참.”
태주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제가 선글라스 쓴 건 다크서클 감추려고 그런 겁니다.”
그가 쓱, 선글라스를 내리자 모황국 감독이 껄껄 웃었다.
“다크서클 내려와도 잘생겼기만 하구먼, 뭐!”
그때, 저 멀리서 심요연이 걸어왔다.
언제나처럼 세련된 모습의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한테 활기차게 인사하던 그녀는 태주를 보더니 돌연 얼굴이 굳었다.
그때 주변 눈치를 보는 듯하던 그녀가 갑자기 태주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끌었다.
“태주야, 잠깐 대화 좀 하자.”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더니, 그녀가 하는 말.
“너, 어제 나하고 선우하고 같이 있었던 거 어디에 말하진 않았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거니까, 말하지 말아줘. 부탁할게.”
성격 급한 그녀는 태주의 대답을 미처 듣지도 않은 채,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 나하고 선우, 서로 알아가는 관계란 말이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