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70
470화
에미상 (8)
* * *
에미상.
미국에서 진행되는 시상식으로, 주로 TV에서 방영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이 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레드카펫에 참석한 배우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할리우드 스타, 유럽권 배우 등등 수많은 유명인이 레드카펫을 한껏 달군 가운데.
그런 그들 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끈 이가 있었으니.
“오 마이 갓, 한태주야! 데스 게임의 한태주!”
“실제로 보니까 진짜 멋있다.”
“키도 엄청나게 커! 완전 남자인걸?”
“‘나의 미래’에서 디에고 크루즈한테 잡혔던 그 유약한 모습은 정말 연기였던 거구나. 어쩜 이미지가 저리 다채로울까?”
태주가 동료들과 함께 레드카펫 위를 걷자.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사인과 사진을 요구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내민 종이에 싸인을 해 주고, 함께 셀카를 찍어주던 태주.
서서히 동료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확실히 데스 게임의 인기가 대단하네! 올해 초에 느꼈던 그 열기를 다시 느끼니까 너무 좋아~”
“태주 선배님의 인기가 특히 대단해요!”
심요연 곁에 꼭 붙어있던 채이진이 흘끗 태주 쪽을 바라보았다.
팬서비스하던 태주는 허겁지겁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같이 가요!”
“기다리고 있어, 걱정하지 마셔.”
태주는 서둘러 동료들의 곁으로 합류했다.
레드카펫 양옆으로 쭉 늘어선 팬들이 연호하는 그들의 드라마 제목이 귓가를 세게 울렸다.
“아이 러브 ‘데스 게임’!”
[이야, 이거 진짜 도취된다. 태주야, 너 지금 느낌이 어때? 해외에 나왔는데, 팬들이 네가 출연한 작품에 이렇게 열광하는 기분이 어떠냐고!]살짝 흥분한 듯한 이중협의 말에 태주가 씩 웃었다.
‘미쳐버리겠어요! 너무 좋아서!’
[으이그, 이럴 때는 애 같다니까. 뭐, 사실 나도 좋아서 날아다닐 것 같지만.]흐뭇한 표정으로 태주를 보던 이중협의 시선이 관중으로 향하자.
그의 시선은 무심하게 번뜩였다.
[태주는 정말 모르나 보네.]관중들 사이, 태주를 유심히 쳐다보는 귀신 하나가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듯했다.
* * *
팬들이 양쪽으로 늘어져 있던 대열을 지난 태주 일행은 포토월로 향했다.
‘데스 게임’ 배우들과 제작진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대단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가 그것을 증명했다.
이윽고 포토월에서 내려오니 수많은 미디어가 그들에게 몰려들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조연호가 진행하는 연예 프로그램 팀이었다.
“안녕하세요, ABS에서 ‘연예 1번가’를 진행하는 조연호입니다. 우선, 에미상 TV 부문에서 다수의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신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말씀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데스 게임’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실 수 있으셨나요? 감독님?”
점잖게 있던 모황국 감독이 모두를 대표해 대답했다.
“조연호 씨도 아까 레드카펫에서 엄청난 함성 들으셨죠? 그게 다 우리 ‘데스 게임’을 응원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럼 감독님께 묻겠습니다. ‘데스 게임’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역시 감독님께서 재밌게 쓰신 각본 덕분일까요?”
그 말에 모황국은 주변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우리 배우들 덕분이죠. 평범한 클리셰일 뻔한 각본을 생생하게 잘 살린 우리 배우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어머, 감독님도 참. 저한테 말씀하신 것처럼 솔직하게 얘기하시죠.”
심요연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태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항상 우리 태주 씨 덕분에 ‘데스 게임’ 잘 됐다고 하셨으면서. 태주 씨가 메인 캐릭터로서 중심을 잘 잡아줘서, 이 드라마 흥할 수 있었다고 늘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건… 맞죠!”
모황국은 태주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덧붙였다.
“솔직히 태주 씨가 주요 배역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주었고,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처절한 연기를 뛰어나게 펼쳤기에.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전 세계의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은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럼 태주 씨에게 묻겠습니다. 그런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현장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발악한 것이 그대로 연기에 반영된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태주가 너스레를 떨었다.
“감독님께서 워낙에 눈이 높으셔서요. 좋은 연기로 만족시켜드리려면 저의 모든 것을 쥐어 짜내야 했습니다. 그런 점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에 모두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큰 시상식을 앞두고 긴장을 풀어주는, 태주의 센스있는 답변이었다.
* * *
얼마 후, 에미상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태주는 ‘데스 게임’ 동료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옆에 있던 심요연은 재밌다는 듯 태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근데 태주 너, 진짜로 인기 많더라. 아까 쉬는 시간에 너한테 사진 찍자고 온 스타들만 몇 명이야. 나 그거 수안이한테 말해줘도 되지?”
“그러는 선배님도 관심 있다고 찾아온 남자 배우들이 꽤 있었죠?”
“흠흠, 얘가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해? 너, 어디 가서 이상한 얘기 하면 안 된다.”
정곡을 찌르는 태주의 말에 심요연은 즉각 조용해졌다.
태주는 옆에 있던 이중협과 의미심장한 눈을 마주쳤다.
‘진짜 선우 선배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맞나 봐요.’
[그러게, 말이야. 나 요연이 누님이 저렇게 몸 사리는 건 처음 봤다.]그때, 무대 위로 두 명의 시상자가 팔짱을 끼고 걸어 나왔다.
“작품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남자는 미국에서 제법 유명한 배우인 테리 윌셔였고, 여자는….
“에린 웰링턴이에요! 저 예전에 미국에서 모델 했을 때 본 적 있어요.”
채이진의 감탄에 태주의 시선이 무대 위 여자에게로 흘러갔다.
에미상 시상자로 온다는 말마따나 그녀는 지금,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긴 백금발을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이곳의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다른 배우랑 비교해도 미모가 상당하네. 태도가 당당해서 더욱 그런가?]‘셀러브리티(celebrity) 그 자체네요.’
그때 무대에 설치된 커다란 화면에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개의 작품이 소개됐다.
‘데스 게임’을 제외한 4개의 작품은 모두 미국 내 티비 방영작.
옆에서 모황국 감독이 이덕량과 웃음을 나누는 게 보였다.
“우리만 베일릭스 출신이네. 이렇게 되면 인기 감안해서 초대했다고 볼 수밖에 없겠어.”
“감독님, 욕심을 비우고 에미상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영예로 생각하기로 했잖아요.”
[다들 욕심을 버린 눈치야.]‘저희만 유일한 OTT 출신인데다가 역대 시상식 중에 OTT 작품이 상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요.’
무대를 보던 태주의 귀에 ‘데스 게임’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축하드립니다! 작품상의 영예는 ‘데스 게임’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말에 태주가 앉아 있던 테이블이 발칵 뒤집혔다.
“우리가 수상했다고?”
“진짜로?”
정신이 하나도 없던 이덕량 프로듀서와 배우들, 그리고 모황국 감독까지 무대로 이끈 것은 바로 태주.
작품상 트로피를 건네받은 이덕량 프로듀서의 입가에는 미소만이 흘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황국 감독님께서 쓰신 재밌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데스 게임’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영예로운 상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상의 영광을 감독님과 스태프, 그리고 우리 배우들에게 돌립니다.”
깔끔한 소감을 마친 이덕량에게 진심 어린 박수가 쏟아졌다.
수상한 후 무대를 내려가던 태주에게 에린이 윙크를 날리며 속삭였다.
“오늘 정말 멋있네요!”
태주는 아무 말 없이 어깨만 으쓱하곤 테이블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사뭇 긴장감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작품상은 베일릭스 론칭 작품인 ‘데스 게임’이 에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치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태주는 긴장을 조금 풀고 시상식을 감상했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여우조연상을 심요연이 수상하자,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기도 했다.
이윽고 순서는 남우주연상으로 흘렀다.
[아, 긴장된다 긴장돼.]‘형이 그러니까 저도 덩달아서 긴장되잖아요.’
옆에서 동동거리는 이중협을 달래던 태주의 눈에 무대 위로 나온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선 건 디에고 크루즈.
그에게서 어떤 언질도 듣지 못한 태주였기에, 턱시도를 말끔하게 입은 그가 시상자로 나선 이 상황이 그저 놀라웠다.
요즘 미국에서 ‘나의 미래’ 인기가 많은 것을 감안한 시상자 선정인 모양이다.
디에고의 눈이 태주에게 잠시 머무르다, 진행이 이어졌다.
“올해는 유독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만큼, 그 안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친 배우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남우주연상을 추리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수 차례의 회의를 통해 결국 만장일치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을 배우가 정해졌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한태주입니다!”
호명과 동시에 축포가 터진 이때.
“뭐해, 태주 씨! 어서 가서 상 받아야지!”
“축하해, 태주야.”
동료들의 격려에 태주는 얼떨떨한 얼굴로 겨우 일어났다.
천천히 무대로 올라간 그는 디에고의 따뜻한 포옹과 함께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정말 축하해, 태주.”
아직도 상을 받은 게 실감이 나지 않아 태주는 마이크 앞에 서고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그것도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자신이 ‘데스 게임’이라는 오락성이 짙은 드라마의 주연으로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그의 의심을 확신으로 변하게 해 준 건 역시, 이중협이었다.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 한태주 씨! 아무리 얼떨떨해도 수상소감은 하셔야지! 궁금하다고~]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이중협이 바닥에 앉아 크게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흐릿했던 태주의 시야가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이 상은 저희 작품을 대표해서 제가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작품이었고, 무척이나 매력적인 캐릭터라, 제가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했는데요. 이렇게 좋은 결과로 인정받게 돼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트로피를 만지작댄 태주는 관중을 둘러보았다.
제아무리 태주가 ‘데스 게임’, ‘나의 미래’ 등으로 유명해진 배우라 하나 서양권에서는 그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더러 있었다.
“‘데스 게임’에서 제가 연기했던 역할은 험난하고 고된 현실을 그저 열심히 견뎌내는, 저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앞에 놓인 인생을 살아가는 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때로는 평지도 있습니다. 이렇듯 인생이란 어떠한 순간이 와도 그저 열심히 견디는 것, 그거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주는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지금의 삶을 열심히 견뎌내는 분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이야, 대단하네.”
동 시각, 에미상 시상식을 라이브로 보고 있던 한 남자가 감탄을 토해냈다.
그가 들고 있던 핸드폰에는 미국 현지에서 작성된 기사들이 속보로 올라오고 있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방송을 보던 이는 바로 송서진.
JABC의 모기업인 경진일보의 수장이자 한태주의 어머니인 송혜진의 오빠였다.
그는 책상에 올려져 있던 송혜진의 사진을 보며 되뇌었다.
“혜진아, 보고 있니? 미국에서 인정받고 싶다던 네 꿈을, 네 아들이 대신 이뤄줬어.”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