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71
471화
아카데미로 향한 여정 (1)
그때 서재 안을 똑똑, 두드린 이가 있었으니.
“왜 이렇게 대답이 없어요, 사람 걱정되게.”
우아한 기품을 풍기는 중년의 여자가 송서진의 서재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등장에 송서진은 허둥대며 티비 리모컨을 찾았다.
그러나 어지럽게 흐트러진 책상에서 리모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들고 온 과일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당신이 웬일로 이 시간에 티비를 봐요? 서류 검토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냥….”
남편의 허둥대는 시선을 아내가 따라갔다.
티비 속에는 에미상 라이브 방송이 틀어져 있었는데, 한태주가 남우주연상을 받고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습이 잡혔다.
아내는 옆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이야, 한태주가 결국 해냈네요. 에미상 수상은 아시아권 배우가 여태껏 해낸 적 없는데.”
“흠흠, 이만 당신은 좀 나가지.”
“나가긴 뭘 나가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여자가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참에 내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볼까요?”
“무슨 자리?”
“자꾸 답답하게 외면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봐요, 당신.”
여자는 남편의 완강한 얼굴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사실은 당신. 조카인 한태주, 보고 싶잖아요. 그렇죠?”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말에 송서진은 당황한 듯 안경을 벗었다.
늘 깔끔하던 안경알에 당황한 그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혔다.
“그 무슨….”
“부인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요. 당신이 죽은 여동생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건, 우리 가족 모두 알아요. 다만, 혼자서 끙끙대는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고 그동안 가만히 내버려 뒀던 거죠. 그런데 이제 더는 안 되겠어요. 당신,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마음고생 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한 아내의 말에 송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먼저 혜진이를 버렸어. 그러니까 태주를 찾을 자격도 없다고.”
여자는 남편을 설득하듯 그의 손을 잡았다.
“죽은 아가씨 볼 낯이 없다면, 조카 앞에서라도 그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얼마나 조카를 보고 싶어 하는지는 잘 알아요. 그만큼 조카한테 미움받기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요. 그렇지만 여보, 당신은 태주 씨의 가족이기도 해요. 끊을 수 없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요.”
아내가 나간 뒤.
잠시 고민하던 송서진은 핸드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김 비서. 혹시 한태주가 에미상에서 상 받은 거 알고 있나?”
-네? 아, 알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했으나, 눈치 빠른 비서는 재빨리 회장의 의중을 파악했다.
-내일 신문 1면에 싣고 JABC 뉴스에서도 메인 기사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전화를 끊은 송서진은 그제야 결심한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만날 때가 된 거 같군. 아집과 후회로 혜진이의 아들을 외면한 건, 역시 어리석었어.”
* * *
한편, 점심 시각인 이때.
회의실에 한데 모인 이들이 있었으니.
“회장님의 지시였다고?”
“비서실에서 직속으로 내려온 거긴 하지만, 실상 회장님 지시라고 봐야죠.”
“그렇지 않아도 한태주가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 탄 건 메인으로 다루려고 했잖아. 그런데 회장님 라인에서 직속으로 명령이 내려오다니.”
JABC 방송국에서는 본사 비서실에서 전달해 온 명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그럼, 보도국에서 이 소식을 다룰까?”
“그러지 말고, 오늘 인터뷰 석에 한태주 씨를 모시는 건 어때요?”
“그런데 지금 한태주 씨, 미국에 있잖아. 방송국에서 인터뷰하는 건 힘들 것 같은데.”
“화상 인터뷰로 하면 되죠. 요즘 기술이 발전해서 화질도 좋아요, 국장님.”
“그렇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국장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럼, 6시 뉴스 메인으로 내보내기로 하지. 한태주 지금 미국에 매니저랑 나가 있을 테니까, 그쪽이랑 회사에 둘 다 연락해.”
“생방송이라고 전달해 놓겠습니다.”
직원이 자신감 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비 방송에서는 저희가 한태주 씨 독점으로 인터뷰하는 최초의 방송사가 될 겁니다.”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배우 1팀은 퇴근할 새도 없이 다들 일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정확히 말하면 한태주가 참석한 에미상 시상식 생방송을 본 직후.
곧이어 기자들이 걸어온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 박인우 실장이 한태주 씨와 미국에 가 있거든요, 그쪽으로 연락하시면 답변이 빠를 겁니다.”
“지금 당장 인터뷰는 좀 어렵지, 싶습니다. 에미상 일정이 시상식 후에도 계속되어서요.”
“저희가 한태주 씨에게 전달해 놓겠습니다. 지금 애프터 파티에 참석 중이거든요.”
쉴 새 없이 울리던 기자들의 전화가 잦아들자, 직원들은 한숨을 돌렸다.
“진짜 힘들었어요.”
“그래도 야근한 보람이 있어요. 한태주 씨가 ‘데스 게임’으로 에미상 남우주연상 탔으니까.”
“한태주 씨 연기가 정말 좋아서 혹시 상을 받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타는 걸 보니 감개무량하네요.”
“그런데 한태주 씨, 지금 뭐 하고 있을까요?”
궁금한 직원들의 시선은 태주가 있을 LA로 향했다.
* * *
한편, 에미상 시상식이 끝나고.
태주는 동료들과 함께 애프터 파티에 참석했다.
시상식에 이어 열리는 파티에는 시상식에서 봤던 배우 대부분이 함께했다.
수상자가 아닌 시상자로 왔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디에고 크루즈가 태주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할리우드에서 오래 활동한 만큼 아는 배우들과 감독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태주를 소개하느라 바빴다.
그들은 디에고가 태주를 애지중지 아끼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 친구가 집에만 처박혀 있던 자네를 밖으로 끌어낸 장본인이군.”
“우리가 그렇게 작품같이 하자고 할 땐 꿈쩍도 안 하더니. 태주 이 친구, 대단하네. 도대체 디에고의 고집을 어떻게 꺾은 건가?”
“태주는 자네들과는 달리 진심으로 소통했지.”
태주의 어깨에 팔을 올린 디에고가 눈을 찡긋했다.
“나랑 같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그 간단한 말이, 그렇게 와닿더라고. 이 친구의 끈질긴 진심이, 연기를 외면하던 나의 두려움을 단번에 깨뜨려줬지.”
“과연, 디에고를 다시 연기의 세계로 끌어들인 장본인답군. 진심으로 부딪히는 배우만큼 매력적인 건 없지.”
“그럼! 태주 이 친구, 이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니까. 자네들도 태주 연기를 봐서 알잖아, ‘나의 미래’에서 얼마나 소름 돋았는지.”
디에고의 말이 이어질수록 태주를 보는 시선들이 점점 호감으로 가득 찼다.
비단 그가 연기만 잘하는 배우가 아닌, 인간적으로 매력이 있음을 알아서 그런 걸까.
태주는 이곳저곳에서 한두 잔씩 술을 받았다.
짠, 술잔을 수없이 부딪치던 태주는 취기가 서서히 올라오는 듯했다.
그때 파티장 안에 신나는 댄스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귀에 익은 익숙한 선율에 태주가 귀를 쫑긋거렸다.
“이거 폴라리스 노래 같은데?”
[하도 들어서 나도 알겠다. 이거, 폴라리스의 ‘유토피아’잖아?]옆에서 채이진이 신이 난 듯 태주에게 쫑알거렸다.
“저 이 노래 진짜 좋아해요! 이거, 한국 팬들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진짜 인기 많아요. 특히 마스크 스타에서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것 같더라고요.”
“아,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무대에서 이 노래 부르면서 춤까지 춰서 유명해졌다면서요.”
태주가 미스터 버터플라이와 자신이 아무 상관 없는 척 뻔뻔하게 연기하자, 채이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근데 태주 씨는 폴라리스 멤버들하고 친하잖아요. 특히 이 노래 발매될 때 뮤직비디오에서 군무까지 같이 추셨다고 들었는데….”
“그건 그렇죠.”
그때, 옆에서 슬쩍 엿듣고 있던 심요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어디 춤 한번 춰 봐. 잘 추는 실력 한번 구경 좀 해보자!”
“흠흠, 그럴까요?”
태주는 술잔을 내려놓고 몸을 살짝 푼 다음, 사람들이 가득한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파티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어느덧 댄스 브레이크로 흘러갔고.
K-pop 음악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다 함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이중협은 재밌다는 듯 태주에게 키득거렸다.
[너 원래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않았어?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거 말이야. 내가 처음 보는 한태주라 제법 당황스럽다.]‘하하, 형은 그냥 보시기나 하시라고요.’
술기운이 오른 태주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추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그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파티장은 태주의 독무대가 되어버렸다.
“이거 SNS에 공유해야겠다. 대박 날 거야, 진짜!”
“선배님은 정면 샷 공유하세요, 저는 측면 샷 공유할게요.”
채이진과 심요연은 사이좋게 태주가 춤추는 영상을 찍고는 SNS에 업로드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던 이중협이 재밌다는 듯 히죽 웃었다.
[크크, 내일 한국에서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지 정말 궁금하군.]그때 그런 그의 시야에 한 여자가 보였다.
짙은 눈썹과 밤색의 눈동자가 매력적인, 고전미 있는 미인이 태주 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태주를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 섞인 그녀는 지긋이 태주를 바라보았다.
이중협이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음…. 태주한테 관심 있는 건가?]이중협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분명 저 여자, 레드카펫에서부터 지금까지 태주를 쭉 따라왔다고.
* * *
다음날.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태주가 서서히 눈을 떴다.
“크으으…. 아, 머리야.”
깨질 듯한 머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뜬 태주.
목을 축이기 위해 손을 뻗어 물을 찾았다.
램프 밑에 놓여있던 물병을 집어 벌컥벌컥 마신 태주는 아직도 시야가 어지러웠다.
기억도 불완전했다.
어제 애프터 파티에서 수상의 즐거움에 취해 술을 마셨고, 댄스 독무대를 평정하며 여러 사람의 환호에 기분이 들떴던 것이 드문드문 기억났다.
그런데 어떻게 호텔로 돌아왔는지는 통 생각이 안 난다.
‘어제 술을 너무 마셨나. 중협이 형. 나 어제 어떻게 들어왔어요?’
항상 그랬듯 이중협을 찾던 태주는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중협이 형?’
재차 불렀음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쓱, 하고 일어났다.
[잘 잤어요?]커다란 밤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의 등장에 태주는 소름이 끼치도록 깜짝 놀랐다.
“당…, 당신 도대체 누구야? 여기는 어떻게….”
[어머, 나를 모르는 척하면 섭섭한데.]여자는 달콤한 눈웃음을 지으며 태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어젯밤을 함께 보낸 사이인데.]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