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74
474화
아카데미로 향한 여정 (4)
* * *
이곳은 XJ 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본부 해외 배급팀.
정신없이 회의를 진행하던 그들의 귀에 들려온 소식 하나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부회장님도 이번에 미국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네요. 이번에 ‘나의 미래’ 시사회 하는 곳에 다 참석하신답니다. 아무래도 한태주 씨에게 좀 더 힘을 실어주시려는 계획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부회장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저의를 저는 잘 모르겠네요.”
본부장 앞에서 한 직원이 용감하게 자기 의견을 꺼냈다.
“막말로 저희는 ‘나의 미래’ 한국 담당 배급사였지, 제작사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물론 부회장님이 한태주 씨를 아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이 사람아,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좀 봐.”
본부장이 손깍지를 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했다.
“우리가 한태주하고 엮인 게 ‘나의 미래’ 뿐이야? 지금 옥장파 감독의 ‘드림랜드’를 진행하고 있잖아.”
“네, 거기에는 제작사로 이름을 올렸죠.”
“부회장님은 ‘드림랜드’가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먹힐 거로 생각하고 계셔. 그래서 이번에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한태주’라는 보물을 각인시키기 위해 가시려는 거라고. 이번에 한태주를 알리면 나중에 ‘드림랜드’로 도전할 때도 훨씬 수월할 테니까.”
“아, 그렇군요!”
직원들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한서경 부회장이 굳이 ‘나의 미래’ 미국 시사회까지 따라가려는지, 왜 그곳 시사회 비용까지 일부 지원하는지.
“다 내년을 위한 물밑작업이었군요.”
“그렇지. 특히나 올해는 선플라워 프로덕션에서 ‘나의 미래’ 아카데미 캠페인 전략을 수립하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드림랜드’로 똑같은 길을 밟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광고, 이벤트 같은 현지 프로모션도 배워올 수 있다고 하셨어.”
열혈 답변을 토해내던 본부장이 한 마디를 더했다.
“무엇보다 아카데미는 투표로 상을 결정하는 만큼, 회원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해.”
“에이,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품 퀄리티 아닌가요? 막말로, 회원들의 눈에 들어서 표를 받는다면 그게 무슨 정당한 투표예요.”
“작품 퀄리티는 애초에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거고. 그다음에는 우리 작품을 널리 알리는 홍보 작전이 중요하다는 거지.”
본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불과 5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 생각 안 나? 그때도 ‘불과 피’와 ‘로렌의 여정’, 이 두 개의 영화가 작품상 수상을 두고 얼마나 각축을 벌였는지. 그런데 결국 수상한 건 ‘불과 피’였잖아.”
“그때도 사실 찬반 논란이 있었죠. 다들 작품성은 ‘로렌의 여정’이 조금은 더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국 수상한 건 ‘불과 피’였어. 즉 더욱 열렬한 홍보 활동으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각인됐다는 뜻이지.”
“그렇군요. 저는 작품만 좋으면 다 상을 타는 줄 알았는데.”
“원래 이 세계가 이런 건, 너도 잘 알았잖아.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건 죽은 작품이지. 결국 중요한 건, 작품이 얼마나 재밌고 훌륭한지를 여러 사람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리냐는 거야. 그게 특히 크게 작용하는 게 아카데미 시상식이고.”
모두를 바라보던 본부장이 핵심을 정리했다.
“그래서 이번 시사회가 중요하다는 거야. 이번에 시사회를 여는 대상인 배우 조합, 프로듀서 조합, 감독 조합 모두가 아카데미 회원들이거든.”
한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전 왜 헛돈 들여가며 이미 개봉한 영화 시사회를 하나 했어요.”
“한국과는 다른 미국의 지역 특수성을 반영한 거지. 땅덩어리가 넓고 회원이 많다 보니까, 이렇게 직접 시사회를 열어서 홍보해야 작품을 알릴 수 있더라고.”
“이미 ‘나의 미래’ 같이 충분히 알려진 영화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거군요. 그런데 만약에 그 과정에서 밉보이면요? 아카데미 회원 중에 우리 영화를 견제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떻게든 극복해야겠지. 그런데, 솔직히….”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디에고 크루즈와 한태주 조합의 이 재밌는 영화를, 누가 견제하겠어?”
* * *
한편, 스타뉴스 본사.
미국의 에미상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우성림은 많은 동료의 환대를 받은 후 홍은지에게 브리핑하는 중이다.
“사진 잘 찍었더라. 기사도 잘 쓰고.”
“그런가요?”
“그런데 너무 감정적으로 과잉돼서 오버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어. 앞으로 그런 것만 주의하면 될 거 같아.”
선배의 애정 어린 잔소리에 우성림은 씩 웃었다.
“그것보다 선배, 제가 미국에 있다가 들은 소스가 있는데요. 확실치는 않아서 아직 기사화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워낙 흥미로운지라 취재할지 선배한테 물어보려고요.”
“뭔데?”
“이번에 한태주 씨가 에린 웰링턴이라는 미국 미디어 재벌 막내딸과 같이 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거든요.”
“아, 안 그래도 이거 유나랑 얘기한 적 있어.”
“아시잖아요. 우리나라에 민소예가 있다면 미국에는 에린 웰링턴이 있다는 거. SNS로 자기 자랑하고 패션쇼에 VIP로 불려 다니면서도 머리는 똑똑하죠.”
대화에 집중한 홍은지가 열이 오른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 여자 SNS에 태주 씨랑 패션쇼에서 나란히 앉은 사진이랑 에미상 애프터 파티 등등에서 단둘이 얘기한 사진이 막 올라오더라?”
“진짜 둘이 무슨 관계인 건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흥분한 듯 점점 목소리에 열이 오른 홍은지가 덧붙였다.
“내 생각엔, 이 여자가 태주 씨한테 접근한 건 분명 목적이 있어. 그게 무엇인지는 우리가 밝혀야지.”
“선배님, 저는 이런 생각도 드는데요. 이 여자가 한태주 씨한테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접근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은 안 해 보셨어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한태주 씨가 그 관심을 받아줬을 것 같진 않은데. 어딜 감히 한태주를 넘봐.”
“한태주 씨 취향이 외국 여자일 수도 있죠. 에린 웰링턴 같은 글래머에 똑똑한 재벌 집 딸.”
“네 취향이 그런 글래머 여자인 건 아니고?”
홍은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우성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도 민소예가 미국에 간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아요.”
“뭔데?”
“이번에 대학 조기 졸업한 다음에, GX 그룹에 입사했잖아요. 이번 일로 유통 관련해서 업적을 세우려나 봐요. 미국 제품을 한국에 독점으로 들여와서 대박 터트리려는 것 같던데요.”
“그게 말처럼 쉬우면, 남들도 다 하지.”
“그저 그런 제품이 아닌가 보더라고요. 아무튼 대단한 거라고 하던데…. SNS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요.”
“성림아. 내가 늘 말하잖니. SNS만 보고 기사를 쓰는 게으름쟁이가 되지 말자고. 행동하는 기자답게 현장에 나가서 취재하고 정확한 정보를 모아야지.”
홍은지가 씩 웃으며 제안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GX 그룹으로 취재 나가는 건 어때?”
* * *
한편, LA.
오늘은 미국 감독 조합(Directors Guild of America, DGA)을 대상으로 영화 ‘나의 미래’ 시사회를 진행하는 날.
태주는 아침부터 양복을 차려입은 다음, 손에 든 대본을 열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거기에는 오늘 연설할 영어 대본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도 오시고, 디에고 씨도 오시는데. 나까지 연설을 하면 너무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을까? 영화에 대한 간략한 것들은 감독님이랑 배급사 Readie 측에서 해주실 텐데.”
“중요한 날인만큼, 주연배우가 딱 임팩트 있게 영화를 설명해야 한다고 그러더라.”
박인우가 입가에 침을 튀기며 흥분한 채 말했다.
“오늘 제작사인 선플라워 프로덕션 대표, 배급사인 Readie 대표, 그리고 한서경 부회장님도 오신단 말이야.”
“진짜로?”
“아버지한테서 직접 들은 이야기야. 사실은 우리 아버지도 오신다더라고, 한서경 부회장님하고 같이.”
거물급의 인사가 온다는 말에 태주는 당황스러워 눈을 깜빡거렸다.
옆에서 태주의 넥타이를 봐주던 장진혁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굳이 미국까지 오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특히 XJ 엔터는 한국 한정 배급사잖습니까.”
점점 긴장감으로 굳어지는 태주를 보던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서경 부회장은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잖아. 즉 아카데미 회원들이 작품상, 감독상 등등에 투표할 때. 한서경 부회장도 한 표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지.”
[부회장이 노골적으로 이 영화에, 그리고 너한테 힘을 실어 주려고 오는 거였네. 힘내라, 태주야. 이런 든든한 스폰서 잘 없는데.]이중협의 말에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 사격을 오는 한서경 부회장이 약간은 부담스러우면서도, 든든한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중협이 옆에서 물어왔다.
[부담스럽냐?]‘저희 영화가 아카데미를 노리기에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시는 건 알지만. 뭔가… 많은 기대를 받은 만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에요.’
[사내자식이 뭐 그리 겁이 많은가?]이중협과 팔짱을 끼고 있던 올리비아가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 같은 배우가 왜 다른 이들을 신경 써야 하지? 어차피 자네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배우인데.]‘어…, 감사합니다?’
[감사하라고 한 말은 아니야.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그러니 태주 자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제껏 많은 배우를 봐왔지만, 자네만큼 특별한 배우는 흔치 않았으니.]올리비아의 다소 투박한 칭찬에 태주는 피식거렸다.
굳은 몸에 깃들었던 긴장감이 풀리는 듯했다.
* * *
얼마 후, 태주는 행사가 진행되는 컨벤션 센터 내 커다란 방으로 향했다.
감독 조합을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가 개최되는 오늘.
태주는 이곳에 미리 온 앤디 피셔 감독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악수를 하는 앤디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설마, 긴장하신 건 아니죠?”
“긴장을 안 할 수 있겠어요?”
앤디가 주변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하더니, 태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실은 감독 조합 회장이…….”
“흠흠.”
그때, 곁에서 들려온 묵직한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검은 턱시도를 입은 앤드류 피셔가 위압적인 태도로 태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국 이렇게 또 만나게 되는군.”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여기 계신 걸 보니 감독님도….”
“맞아. 감독 조합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네.”
앤드류 피셔는 앤디를 보고 쓱, 입꼬리를 비틀었다.
“즉 내 말 한마디면 네 영화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지.”
마치 표심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듯, 그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내비쳤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