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79
479화
현실과 이상 사이 (3)
* * *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은 인터넷을 점령한 기사에 한껏 집중하고 있었다.
어젯밤 갑작스레 경진일보 측에서 낸 그 기사는 이중협의 납골묘에 피터 그레인스키, 즉 이중협에게 거짓 사망진단을 내린 의사의 친자 시신이 들어 있었다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이 기사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아 혀를 내둘렀다.
“결국 이중협 살인사건은 부형윤 일당의 철두철미한 계획이었군.”
더욱이 부형윤의 사주를 받아 이중협의 거짓 사망진단서를 끊은 이서관이, 자신의 앞길을 방해할 사생아 아들을 일찍이 부형윤의 도움으로 처리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침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 것을 증명하듯,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진짜 끔찍하다. 어떻게 사람이 돼서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지.
-이중협이 제일 불쌍하지. 억울하게 죽었는데, 죽어서도 제대로 묻히지조차 못하고 이렇게 이용만 당하다니.
-이번 사건, 모든 국민이 주의 깊게 보고 있으니, 법원에서도 공정한 판결을 내리길.
-이제라도 이렇게 밝혀졌다는 게 다행임. 역시 권선징악은 살아 있음.
* * *
얼마 후.
짬을 내 차용석과 점심 식사하던 한유경은 핸드폰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유경 씨 좀 섭섭하네요.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핸드폰만 보고 있다니.”
섭섭함을 토로하는 차용석에게 한유경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중협 씨 사건 기사 좀 보고 있었어요. 태주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일이라 신경이 쓰이네요.”
“아, 그 기사요….”
순식간에 기분이 착 가라앉은 차용석에게 한유경이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미안해요. 누구보다 이 기사에 기분이 착잡한 건 용석 씨일 텐데요.”
“태주가 중협이 형을 배우로서 제일 존경한다면, 저는 인간으로서 제일 존경했죠.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중협이 형. 그래서 저는 이번 일에 정당한 판결이 내려지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어요.”
숙연한 침묵이 흐른 것도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은 한유경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다른 말을 꺼냈다
“아 참, 용석 씨.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누군가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닌가, 우리 집을 주시하는 건가?”
“정말입니까? 유경 씨, 그런 건 진작 말해 줬어야죠!”
잔뜩 놀란 차용석은 사색이 된 얼굴로 한유경의 손을 대뜸 잡았다.
“경찰에 신고했습니까? 유경 씨가 못하겠으면 제가 대신 신고해 줄까요? 제가 이래 봬도 경찰에도 인맥이 있거든요.”
“됐어요. 그냥 추측일 뿐인데다가 증거도 없고, 어쩌면 제가 정말 착각했는지도 모르죠. 가끔 태주 팬들이 집까지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긴 하거든요.”
“이건 심각한 문제예요, 유경 씨. 요즘 태주도 없어서 더욱 불안할 텐데. 제가 그 집에 잠깐 들어가서 살까요?”
“어머, 용석 씨. 은근슬쩍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넘기지 말고요. 남자도 없이 유경 씨랑 태희, 둘이서 집 지키고 있는 게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잠시 생각하던 한유경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뭐… 태주 오기 전까지만 잠시 들어오든지요. 아직 시간은 좀 있으니까.”
“오케이!”
“대신, 주말 식사는 용석 씨 담당이에요. 태주가 있을 때도 우리는 그렇게 했어요.”
“유경 씨, 내가 얼마나 요리 잘하는지 알면서!”
눈을 찡긋하며 기뻐하던 차용석은 잠시 걱정을 뒤로 밀어두기로 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태주의 백부, 강원경이 멀리서 태주와 한유경을 지켜봤었다.
그때의 그는 말할 용기가 없어 그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럼,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경우인 걸까?
하지만 누가?
* * *
동 시각, 고급 한식당에서 식사하는 두 남자.
경진일보 및 JABC 대표인 송서진과 강승민 검사였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그들이 만난 이유는 단 하나.
한태주라는 연결고리 때문이었다.
“밤늦은 시각에 연락드렸음에도 신속하게 기사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보도국장 야근하고 좋았지, 뭐. 느슨하던 보도국에 활력이 돌았다고나 할까. 하하.”
사람 좋은 송서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흐르자.
강승민은 덩달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아직 무방비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송서진, 이 남자의 속내를 감히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
“솔직히 참을 수가 없더군. 국민배우 한태주의 가족을 죽인 게 결국 그 부형윤이라는 게.”
“저희도 조사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당시 태주의 교통사고는 그저 운전미숙으로 인해 벌어진 불온한 사고로 여겨졌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모든 진실이 밝혀졌고, 죄지은 사람들은 죗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차가운 물로 긴장된 속을 달랜 송서진은 강승민을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자네도 그렇고, 자네 가족들도 그렇고. 정말 대단하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 가족들은 태주 앞에 당당히 나섰잖나. 이제는 태주도 자네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 같고.”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강승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오해로 점철되었던 세월의 간극을 메우는 건 쉬운 게 아니죠.”
잠시 고민하던 송서진은 결심한 듯 강승민에게 말했다.
“사실 태주의 어미 되는 송혜진이, 바로 내 동생이야.”
그 말에 강승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몰랐습니다. 두 분에게 그런 접점이 있을 줄은. 그래서 태주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으셨던 거군요.”
“일찍부터 지켜는 보고 있었네. 그런데 그 애 앞에 나설 명분도, 염치도 없더군. 혜진이도 죽고 없는 이 마당에, 고모 밑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태주 앞에 내가 나서는 것도 이상할 것 같고.”
“태주를 만나지 못할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사실, 내가 혜진이와 안 좋게 연을 끊었거든.”
송서진은 후회로 가득한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혜진이가 대학에 진학해 좋은 남자와 결혼하길 바랐지. 그런데 이 녀석은 자기 꿈을 이루겠다면서 집을 나가 버렸어. 그리고는 미국에서 만난 태주 아빠와 결혼을 했지.”
“태주 아버지, 저희 숙부님도 좋은 분이셨습니다. 무역업 회사에 다녔으니, 직업도 괜찮으셨고요.”
“당시에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 그러다 내 뜻에 어긋났다고 혜진이와 연을 끊어, 결국 교통사고로 그 애의 얼굴을 못 보게 된 것이 한이 될 따름이야. 그래서 태주 앞에도 나설 수가 없네.”
“대표님, 뭘 모르시네요.”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든 강승민.
“가족은 말이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강승민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가족이 뭡니까. 세상에서 하나뿐인, 온전한 내 편 아닙니까. 대표님께서 태주의 가족이 되고 싶다는 진심을 전하시고 지난날을 사과하신다면, 분명 태주도 마음을 열 겁니다.”
“그럴까?”
“그럼요. 워낙에 정이 많은 녀석이라서요.”
확신에 찬 강승민의 대답에 송서진이 눈을 깜빡였다.
“정이 많은 녀석이라….”
* * *
화창한 날씨의 뉴욕 시내.
태주는 앤디 피셔와 관계자, 그리고 매니저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오늘 정말 날씨 좋네요. 그런데 이렇게 한가롭게 커피 마시는 게 며칠만인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영화 시사회 때문에 바빴으니, 지금만이라도 좀 마음껏 즐깁시다.”
“잠깐만요! 우리 셀카 찍어요. 커피 인증샷도요.”
타임을 외친 태주는 서둘러 모두를 모아놓고 셀카를 찍은 다음, 라테아트가 올려진 커피를 찍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얼굴을 박인우에게 돌렸다.
“형이 항상 셀카부터 찍으라 했잖아, SNS에 올려야 한다고.”
“역시 태주 너는 학습 능력이 참 뛰어나다니까. 잘했어, 치타.”
훈훈한 분위기 속, 이어지는 티타임.
그런데 태주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화의 흐름은 뚝 끊겼다.
“잠시만요.”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에 태주는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모르는 번호라 눈을 찡그렸다.
“스팸 전화인가 본데. 해외에서도 이렇게 오나?”
옆에 있던 박인우는 전화번호를 확인하더니 태주의 눈치를 보았다.
“너 이 번호 정말 몰라?”
“모르는데. 유명한 스팸 번호야?”
“이거…. 소예 번호잖아. 민소예.”
그 말에 태주는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쿵, 친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이중협이 태주에게 소곤거렸다.
[전 여자친구 번호는 진작에 지우고 잊었나 보지?]‘진작에 지웠죠. 잊으려고 했었고… 거의 잊었었는데, 젠장.’
“받을 거야?”
“아니, 무시할 거야.”
핸드폰 전원을 끈 태주는 뒷주머니에 쑤셔 넣은 다음, 앤디에게 몸을 돌렸다.
“이야기 계속하죠.”
그러나 민소예는 포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옆에 있던 박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주를 힐끔거리던 앤디가 그에게 눈짓했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전화 받고 와요.”
[그래, 소예라는 얘 집착도 굉장한 것 같은데. 일단 전화를 받아서 용건을 들은 다음 냉정하게 결단을 내려.]“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결국 태주는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났다.
손에 핸드폰을 부서져라 꽉, 쥔 채였다.
* * *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태주가 도착한 곳은 카페 인근의 한 공원.
벤치에 자리 잡은 태주는 조금 전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얼마나 울렸을까.
곧이어 흥분한 민소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설마 내 번호 지운 거야?
“본론만 말해.”
짧고 위압적인 태주의 목소리.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태주의 모습에 이중협은 올리비아와 놀란 눈을 마주했다.
[태주가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모습은 처음인데.]“너한테 더는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야, 너 말을 왜 이렇게 섭섭하게 해?
“할 말 없으면 끊는다.”
그때, 민소예가 숨넘어갈 듯 말을 이었다.
-너 에린 웰링턴이 런칭하는 향수 모델 하기로 했다면서. 그럼 에린 설득해서 한국 유통은 우리 GX가 독점하게 해줘.
“그건 내 소관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고. 좀 도와줘. 우리 그대로 친한 사이였잖아. 동기 좋다는 게 뭐야, 응?
“소예야, 솔직히 너하고 내가 이런 통화할 사이는 아니잖아. 그리고 그런 용건은 내가 아니라 회사 측에 문의해.”
태주의 냉정함에 찡찡대던 민소예는 더욱 울먹였다.
-너 왜 이렇게 매정해? 그래도 한때 사귀었던 사이인데, 마지막 정이라도 베풀어 주면 안 돼?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 건 네 탓이잖아.”
그 말에 태주의 시선은 민소예와 헤어졌던, 그날로 향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