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88
488화
내가 배우가 된 이유 (5)
차용석의 눈이 왈칵 커졌다.
10여 년 전, 태주가 부모를 잃었던 사건에 함께 있었던 장본인이라니.
그날 부형윤의 전처인 천경실이 사고를 낸 건, 어린이집 차량을 피해 급히 핸들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면 속 이 여자는 당시에 자신이 어린이집 차량에 탔던 교사라고 주장한다.
“…그때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다들 간단히만 알지, 자세히는 모르죠? 여러분들은 복 받은 거야, 저는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이니까.”
화면 속 여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 턱을 괴었다.
“그때는 제가 신을 모시기 전이었죠. 신기는 있었는데,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그런 상태. 나는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있었고, 사고가 난 그날도 아이들을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이었죠.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애들이 많이 칭얼댔어요. 날은 춥지, 차 안에 히터는 몇 개가 고장 나서 공기는 얼음장같이 차갑지. 진짜 고생했어요, 그날.”
말을 잇던 여자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기사님도 장갑을 안 가져오셔서, 손이 차갑게 굳었어요. 다들 알죠? 추우면 반사신경도 둔해지는 거. 순간 기사님이 핸들을 잘못 틀어서 라인을 벗어났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그 여자가 갑자기 홱 핸들을 틀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그 차가 그대로 한태주 가족이 탄 차를 들이받은 거예요.”
점점 커지는 여자의 목소리만큼이나 차용석도 점차 영상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사고가 나서 우리 어린이집 차도 그 자리에 멈췄죠.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들이받은 게 부형윤 전처고 죽은 사람들이 한태주 부모라는 거. 그런데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그때 막 죽은 듯한 귀신이 한태주 차에서 나오더라고. 그게 한태주 부모님이었다는 건, 3년 전에 한태주 인터뷰를 보고 알았어요.”
여자가 붉은 입꼬리를 올리며 킬킬거렸다.
“그런데 당시에 그 귀신들이 한태주 곁을 떠날 줄 모르더라고요. 홀로 남은 아들이 얼마나 걱정됐으면 그럴까, 저도 정말 마음이 아팠다니까요.”
그때 홍보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대표님, 이분 말 진짜로 믿으시는 건 아니죠?”
“아니, 뭐… 일단 무당이라니까.”
“에이, 순진하게 진짜 이 말을 다 믿으시는 거예요?”
박 팀장이 차용석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분, 사실은 진짜 귀신이 보이는 게 아니라 연기하는 거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럼, 가짜라는 거야? 무당인 척하는 사기꾼? 그런데 박 팀장은 이런 걸 왜 봐?”
“제가 말했잖아요, 이분 점사는 그냥 재미로 본다고.”
어깨를 으쓱하던 박 팀장이 차용석의 진지한 얼굴을 보았다.
“왜요, 설마 이분이 진짜 그런 영능력 같은 게 있을 거로 생각하셨어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는 종교도, 영능력도 안 믿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지.”
차용석이 핸드폰을 들어 강승민의 번호를 찾았다.
“이런 건 강승민 검사한테 알려 줘야 한다는 거.”
* * *
얼마 후, 조사실.
차용석의 연락을 받은 강승민은 무당이라는 그 여자를 검찰에 소환했다.
-검사님, 유튜브에서 ‘옆집무당’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튜버 말입니다. 한번 조사해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태주 교통사고 목격자라고 유튜브에서 그렇게 광고하고 다니더라고요.
정말 이보다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수 없다.
마침 권혁중 형사와도 이 여자 이야기를 하고 왔던 참이다.
강승민이 마주한 여자는 억세 보이는 인상에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강인한 외모와 달리 제 앞에서 잔뜩 겁먹은 거 같은 모습도 눈에 띄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왜 부른지는 아시죠?”
“검사님, 죄송합니다.”
손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던 여자는 강승민 앞에서 냅다 머리를 숙였다.
“한태주 씨 영상은 정말 죄송합니다. 고인을 모독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지금 모독죄로 여기 오신 것 아닙니다.”
강승민이 살짝 짜증 난 듯 언성을 높였다.
“신성옥 씨. 제가 궁금한 건, 그쪽이 약 10년 전, 한태주 일가가 당했던 교통사고의 목격자로서 무엇을 봤는지, 그것이 궁금한 겁니다.”
“벌써 10년 남짓 흘렀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기억합니까. 그리고 검사님…. 저는 진짜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요.”
중년의 여자가 겁먹은 눈을 깜빡거렸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서 찍은 영상, 모두 내릴게요. 그러니까 저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신성옥 씨는 경우가 다르죠. 당신은 이 사건의 목격자입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빠져나갔을지 몰라도. 이제는 안 됩니다.”
“검사님이 아무리 절 추궁한다 해도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저는 그때 몸이 아파서 먼저 집으로 돌아갔었다고요.”
“신병 때문에 경찰 조사에 제대로 임하지 못한 건 압니다. 그런데, 당시 아파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람치고는 너무 현장을 잘 기억하고 있던데요. 마치 당시 상황을 사진 찍은 것처럼요.”
그녀를 진지하게 상대하는 강승민의 눈이 번쩍이더니, 최후 통첩하듯 목소리에 무게를 싣는다.
“신성옥 씨, 잘 기억해 보세요.”
신성옥은 겁먹은 주먹을 꼭 쥐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거, 제가 말했다고 하시면 안 돼요.”
“일단 말씀해 보십시오.”
“그때, 사고 현장에 부형윤 씨가 있었어요.”
“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부형윤이었어요. 신문에서 얼굴 봐서 정확히 알아요. 네, 그 사람이에요.”
그 말에 강승민이 화난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신성옥 씨, 지금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더욱 상황이 악화될 뿐입니다.”
“검사님한테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리고 이건 유튜브에서도 밝히지 않은 사실이라고요.”
“정확히 부형윤 씨가 현장에 어떤 의상을 입고, 어디에 있었는지 묘사해 보십시오.”
“차에서 애들 빼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자세하게는 못 봤지만. 그래도 근처 카페에서 이쪽을 유심히 보던 두 남자를 봤어요. 부형윤과 우창균이었죠. 다들 사고가 나서 정신없는데, 그 둘만 웃고 있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진술에 강승민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 * *
얼마 후.
조사를 끝낸 강승민의 곁으로 수사관이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습니까?”
그 말에 강승민은 고민되는 듯 되물었다.
“수사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밖에서 다 보고 계셨잖아요.”
“물론 10여 년 전 기억이라 불완전하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하지만. 그래도 저분의 순간 포착 능력이 굉장하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사관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 신성옥 씨 증언 들으면서 그때 사건 현장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10년 전 사거리 사진하고 교차 검증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사거리 맞은편에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된 카페가 있었던 거, 브랜드 이름이 ‘메리언’이라는 것, 모두 일치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확증할 수 없죠. 그때 주변 건물 CCTV를 모두 확보했을 텐데, 왜 부형윤과 우창균이 영상에 안 담겼는지는 어떻게 설명하죠?”
“안 그래도 권혁중 형사한테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수사관은 한껏 눈썹이 올라간 강승민을 마주했다.
“사고 당시 카페 ‘메리언’의 CCTV가 고장 나 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의도적인 건지 의심하긴 했으나, 확증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신성옥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 그냥 썰일 수밖에 없는데요.”
“…검사님.”
기록을 넘기던 수사관이 강승민을 톡톡 건드렸다.
“저번에 KTS의 ‘그것이 궁금하다’ 1편에서 이 사건을 다뤘었잖아요. 그때 카페에 있던 손님들도 몇 명 취재했던데, 거기 협조를 구해 볼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부형윤이 사건 현장을 확인하러 왔다는 증거까지 우리가 쥐면, 태주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죠.”
강승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떻게든 이 사건, 태주가 증인으로 나서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 * *
“하암.”
LA를 떠난 비행기가 뉴욕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태주에게 장진혁이 검은 선글라스를 건넸다.
“플래시에 대비하세요”
“고마워요, 진혁 씨.”
“태주야, 너 비비크림 좀 줄까?”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고 있던 박인우의 하얘진 얼굴에 태주는 피식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근데 형, 너무 많이 바른 것 같지 않아?”
“야, 요즘엔 매니저들도 관리하는 시대야!”
그들이 킬킬거리며 비행기에서 내린 그때.
공항을 에워싼 수많은 팬과 취재진이 태주를 에워쌌다.
“한태주 씨!”
“여기 좀 봐주시죠!”
눈부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은 태주에게 꼭 붙어 이런저런 질문을 건넸다.
“배우조합상 시상식도 끝났는데 뉴욕으로 오신 이유가 뭔가요?”
“저희가 모르는 다른 스케줄이 있는 겁니까?”
“웰링턴 향수 광고 촬영을 위한 스케줄인가요?”
쏟아지는 질문에 태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까이서 태주를 엄호하던 장진혁과 박인우도, 곁에서 따라오던 이중협과 올리비아 러셀도 정신이 없는 건 매한가지.
[50년이 지났어도 스타를 쫓는 수많은 관심은 똑같군.]그때, 태주의 귓가에 들려오는 한 사람의 이름이 있었으니.
“데이빗 맥팔레인 씨와 호텔에서 식사하셨던데요. 두 분, 어떤 관계이십니까?”
“맥팔레인 씨는 공개적으로 ‘나의 미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최근 배우조합상에서 ‘나의 미래’가 앙상블상의 영예를 안았는데요.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두 분이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닌데, 꽤 긴 이야기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냥 아침 식사 먹은 것 가지고 저렇게 확대 망상을 하기는.]올리비아는 오만하게 태주에게 조언했다.
[수많은 억측에 제일 좋은 대응은 유쾌한 농담이지. 그걸로 얼른 타개해 버리게.]그 말에 태주가 씩 웃었다.
공항을 거의 다 빠져나와 저 멀리 기다리고 있던 리무진이 보이는 이때.
태주는 자신을 쫓아온 수많은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와 데이빗 맥팔레인 씨의 아침 식사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실 줄 몰랐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십니까?”
“네.”
“저희가 이제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정중히 인사한 태주가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공항을 떠난 순간.
뒤에 남은 기자들은 먹잇감을 잡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럼, 그 제보가 사실이라는 건가? 데이빗 맥팔레인이 한태주를 좋게 봤다는?”
* * *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태주가 도착한 곳은 AAA.
향수 광고 및 뮤직비디오 촬영을 논하기 위해 에린 웰링턴 및 마이크 링크, 그리고 촬영 스태프와 만났다.
“오늘은 회사에서 간단히 브리핑해 드릴 거고요. 본격적인 촬영은 내일부터입니다. 동틀 무렵에 맞춰 촬영을 시작할 거라, 새벽 5시에 호텔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인근의 수도원이라고 하셨죠? 그곳에 수도자들이 계시는 건 아니죠?”
“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었고. 저희가 촬영할 동안에는 당분간 관광객들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거기 주인은 저희가 촬영하는 걸 흔쾌히 허락하던가요?”
“아주 좋아하던데요. 아마 한태주 효과로 관광객이 더 늘면 입이 찢어질 거예요. 예전에 돈 소문 때문에 관광객들이 조금 꺼리는 부분이 있거든요.”
에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가 지금은 정리해서 봐줄 만한 거지, 예전에는 폐가였어요. 지금도 귀신들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거든요.”
“귀신이요?”
“네, 귀신이요. 과거에는 뉴욕의 10대 흉가로도 선정될 만큼 좀 흉흉한 곳이었죠.”
눈을 반짝이는 태주를 본 에린이 씩 웃었다.
“왜요, 무서우세요?”
“그럴 리가요.”
태주는 옆에 있던 이중협과 올리비아를 보며 씩 웃었다.
“귀신이 무서울 리가 없잖아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