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9
49화
판을 키우는 방법 (4)
태주는 자신을 향해 번쩍이는 플래시들이 조금 어색했다.
그래서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손우현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었다.
“왜 그래, 더워.”
“너무 눈이 부셔서요.”
“저런 관심은 그냥 즐겨!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하니까 저렇게 플래시도 터뜨리고 하는 거지.”
손우현은 여유로운 몸짓으로 태주를 격려했다.
포토월에 손우현과 태주가 나란히 서자, 사회자가 태주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한태주 씨, ‘그림자 무사’에 이어 독립영화 ‘자유 선언’으로 돌아오셨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객 여러분께 좋은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자유 선언’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두 사람의 연대를 그린 영화입니다.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우현 씨는 이번 영화의 흥행, 어떻게 보시는지요?”
사회자의 질문에 손우현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만 명은 충분히 넘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화가 워낙에 잘 만들어지기도 했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거든요.”
만 명이란 숫자는 독립영화의 흥행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에 기자들이 입을 씰룩거렸다.
“대중분들은 특히 이번 작품이 한태주 씨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에 주목하실 것 같은데요. 최근 한태주 씨가 ‘이선우의 후계자’ 등 천재 아역으로 관심을 끌고 있잖아요. 손우현 씨는 한태주 씨가 어느 정도 레벨이 된다고 보십니까?”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회자.
태주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손우현은 여유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관객분들께서 직접 저희 영화를 보시고 판단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는 이번 영화에서 태주의 연기가 백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포토월을 나가는 사이.
태주가 손우현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 사실 좀 당황스러웠거든요. 저렇게 기자분들 많이 올 줄 몰라서요.”
“저럴 땐 뻔뻔하게 나가면 돼.”
손우현이 태주를 물끄러미 훑어보았다.
“넌 좀 그래도 돼.”
그 말에 태주가 멋쩍은 미소를 짓자, 손우현이 씩 웃었다.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좋은 후배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러나 곁에 두고 싶은 후배는 태주가 처음이었다.
열정적이었고, 성실했으며 무엇보다 재능이 빛났다.
그렇기에 그가 기자들의 한낱 먹잇감이 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 * *
포토월 행사가 끝난 후.
태주는 대기실에서 여러 배우와 감독을 만났다.
기자들 앞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 잠시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이었다.
김윤혜 제작 피디도 긴장한 모습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제일 긴장한 건 양군보 감독이었다.
평소의 털털한 모습 대신 깔끔한 모습으로 대변신을 한 그.
연신 땀이 가득한 손바닥을 바지춤에 닦고 있다.
김윤혜 제작 피디가 걱정했다.
“감독님, 이렇게 긴장하셔서 어떡해요.”
“기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왔더라고요.”
“감독님, 이거 쓰세요.”
태주가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자 그는 황급히 손을 닦았다.
현장에서는 차분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긴장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태주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옆에서는 블랙 드레스로 화려한 멋을 낸 김선정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 기자들 말야, 우현 오빠나 나 때문에 모인 건 아닌 것 같고. 태주 때문이지?”
김선정이 태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태주야, 너 QVN 드라마에 이선우 아역으로 들어간다며. 나도 거기 타진 중이거든, 오강준 엄마 역할로.”
“네가 엄마 역할 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냐? 이렇게 예쁜 엄마가 어딨어.”
손우현의 말에 김선정이 펄쩍 뛰었다.
“오빠도 진짜, 주책이야. 그리고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거든.”
태주는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내비쳤다.
“저는 너무 좋아요. 꼭 같이하면 좋겠어요, 선배님.”
“그러니까. 그런데 태주, 요즘 핫하더라? 기사에서 제작자가 너 엄청나게 칭찬했던데? 뭐? 이선우 후계자? ”
“그래서 밖에 기자들이 많이 왔군요. 이선우 후계자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나 보려고요.”
“태주야, 너 긴장되겠다. 기자들이 너한테 눈길을 빡하고 줄 거 아냐.”
김선정과 양군보의 합공에도 태주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옆에서 조언해준 손우현과 이중협 덕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관심을 즐겨. 네가 실력 없는 배우가 아니라면, 네 실력에 관심을 주는 대중들의 시선을 받아낼 줄도 알아야 해. 그게 배우의 숙명이고.]‘그래, 이건 배우의 숙명일 뿐이야.’
제작사의 노이즈 마케팅도, 연기를 잘한다면 당연히 감당해 낼 수 있는 논란일 뿐이고.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직원이 들어왔다.
“상영 시작한답니다. 배우님들, 감독님 들어가시겠습니다!”
양군보 감독이 선두로 다들 시사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태주는 주먹을 곧게 쥐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부담감, 위압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손우현과 김선정을 향하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분명 그중에는 태주를 뚫어져라 보는 눈들도 많았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양 감독의 인사말을 끝으로 배우들이 자리로 가 앉았다.
곧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자, 태주는 긴장된 마음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 * *
몇 시간 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회장 안이 환해졌다.
그리고 영화 OST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현바하 음악감독의 추천으로 태주가 직접 부른 발라드였다.
입을 달싹이던 기자들은 가만히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를 듣던 태주의 머릿속에 영화 속 장면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정말 열심히 찍은 영화였다.
술집에서 손우현과 격투를 벌이고, 길거리에서 몇 시간 동안 촬영을 기다리며.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추억도 많았다.
특히 100명의 엑스트라들을 빼고 김선정과 단둘이 찍은 스케이트장 씬은 눈부셨다.
태주를 힐끔거리던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노래를 가만히 듣던 김선정이 그에게 속삭였다.
“오, 노래 좋다. 예전에 홍대에서 버스킹할 때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어디 프로에 나오는 가수급이다. 따로 트레이닝 받았니?”
태주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강성광한테 트레이닝 받은 데다가 노래 실력까지 능력으로 얻었으니, 당연하지.]‘그래도 노래 연습 열심히 했어요.’
태주의 항변에 이중협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그래. 열심히 하니까 노래가 더 늘었지.]영화 상영이 끝나고, 본격적인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양군보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 위에 나란히 앉았다.
사회자의 안내로 곧 기자들이 질문을 시작했다.
“스타뉴스의 홍은지입니다. ‘자유선언’이라는 제목답게 영화가 자유를 찾아 나서는 죽정과 미스 봉의 도전기로도 느껴졌는데요. 죽정과 미스 봉의 미묘한 케미스트리는 감독님이 의도하신 건가요?”
“거친 깡패들의 세계에서 순하게만 살아왔던 죽정에게, 미스 봉은 어머니이자 자신에게 순수한 애정을 주는 유일한 구원자였습니다. 그리고 두목에게 착취당하는 미스 봉을 위해 죽정이 구원자로 나서면서, 그 둘의 관계는 굳건한 믿음으로 엮이게 되죠.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며 의지하는 그런 관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홍은지가 고개를 끄덕인 후 앉자 다른 기자가 손을 든다.
“저는 손우현 씨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내에서 김선정 씨와 한태주 씨의 케미도 두드러졌지만, 손우현 씨와 한태주 씨 간의 긴장감과 알력. 그리고 두 분이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도 정말 케미가 남다르다고 느꼈거든요. 촬영하실 때, 두 분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손우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태주를 보고 씩 웃으며 그가 대답했다.
“호흡은 아주 끝내줬습니다. 사실 오디션 때부터 함께 연기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 자기 역할이 초밥 요리사라면서 오디션장에 진짜 회칼을 들고 와서 연기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연기가 죽정, 그 자체였거든요.”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허세 아니냐, 양념을 너무 친 거 같다, 등등 의심하는 목소리였다.
옆에서 양군보와 김선정이 진짜라고 거들고, 손우현이 마무리를 지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죠. 초밥 요리사 역할이라고 진짜 회칼을 들고 오다니. 그런데 그 노력이 가상하더라고요. 오디션에서 저랑 호흡을 맞췄을 때도 대단했는데, 실제 촬영할 때는 더 굉장했어요. 선정 씨를 데리고 도망치는 장면이나 스케이트 타는 장면에서는, 씬을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어찌나 좋은지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옆에서 김선정이 덧붙였다.
“어린 친구지만. 연기할 때는 배우 한태주가 아닌 죽정으로 보여서 그런지, 오히려 제가 더 의지하고 연기했습니다.”
거듭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태주는 점점 고개를 숙였다.
그때, 한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들렸다.
“아웃패치의 조삼식입니다. 저는 한태주 배우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최근 QVN 드라마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에서 이선우 아역을 맡을 천재 배우로 불리고 계시는데요. 혹시 본인의 연기력을 조명하기 위한 전략입니까? 그리고 이번 독립영화를 드라마 촬영 전, 연기력을 증명받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해 참여하신 건 아니신가요?”
“잠깐만요, 기자님, 질문이 너무…….”
사회자는 당황했지만, 태주는 차분히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아웃패치의 조삼식은 조성복이 주장한 거짓 진술을 그대로 기사화한 기자였다.
태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명 이번에 질문을 하는 것도 어떻게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일 거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고 논란이 가라앉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실력으로 오디션을 통과했으니까. 떳떳하게 행동하자.’
“기사에 나온 저에 대한 수식어들은 제가 의도한 게 아닙니다. 하나 그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태주의 곧은 눈빛이 조삼식에게 향했다.
“그리고 작품을 선택하며, 제 연기력을 증명받기 위한 발판이라고 여겼던 적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매 순간 작품을 위해 열심히 연기하고,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을 뿐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태주가 말을 이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이 너무나도 좋았고, 제가 죽정 역을 맡아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 만큼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요.”
조삼식을 보던 태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훌륭하신 선배님들과 스태프분들이 참여해 만든,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니 많이 봐주십시오.”
태주를 보는 기자들의 시선은 점차 감탄과 신뢰로 가득 찼다.
겸손하지만 자신을 너무 낮추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과 작품의 선택에 확신이 있었으니까.
태주의 말을 받아적던 기자들의 손이 한층 바빠졌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 곳곳에 뜬 공통의 문구.
– 보기 드문 대형 중고 신인의 탄생.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