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내가 배우가 된 이유 (7)
* * *
“검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한 서울중앙지검 사람들.
정 수사관의 시선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강승민에게 향했다.
“검사님?”
“아, 정 수사관 오셨네요.”
바로 앞까지 다가온 정 수사관의 그림자에 강승민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핸드폰 속 문자를 읽던 그의 얼굴은 제법 묘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가 내뱉은 한마디.
“태주가 증인으로 출석한답니다.”
“그 말씀은… 부형윤 측이 요청한 증인 신청을 정말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겁니까?”
“네. 저도 놀라서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어깨를 으쓱인 강승민은 피곤한 듯 눈을 문질렀다.
“차용석 대표도, 염수정 씨도 이중협 살인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겠다더니, 이제는 태주까지….”
“세 분 다 이름이 꽤 알려진 연예계 사람들이라, 재판에 이렇게 증인으로 참석한다고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살아서는 이중협 씨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인 줄 몰랐거든요.”
“솔직히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배우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죽어서야 실감이 나네요. 이중협 씨가 참…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게요.”
강승민이 충혈된 눈을 문질렀다.
“그런데 염수정 씨는 그렇다고 칩시다. 이중협 씨의 연인이었으니 그가 억울하게 죽은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고. 그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은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크겠죠. 그런데 태주는요?”
초조한 듯 손을 비비던 강승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태주는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서 무슨 득이 되는 게 있겠습니까. 10여 년 전, 부모를 잃었던 그날의 사고를 다시 복기하는 것밖에 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검사님이 사촌 동생을 아끼는 마음은 알겠지만. 태주 씨는 검사님의 생각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사관이 초조한 눈빛의 강승민과 눈을 마주쳤다.
“그저 용기를 내는 것뿐입니다.”
“용기를 낸다고요? 뭘 위해서?”
“지금까지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한 부모님을 위해서요.”
말을 잇던 수사관이 어깨를 으쓱했다.
“차용석 대표는 그때 지키지 못한 자신의 연예인을 위해서, 염수정 씨는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위해서, 그리고 한태주 씨는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자기 부모님을 위해서. 모두가 저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뺏어간 부형윤을 단죄하고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 중인 겁니다.”
“……노력이라.”
강승민은 주먹을 꼭 쥐었다.
“제가 태주를 너무 지켜줘야 할 어린아이처럼 생각했나 봅니다. 그 녀석도 다 생각이 있을 텐데….”
“어쩌면 태주 씨의 뜻은 이왕 톱스타인 자신이 이 재판에 등판했으니, 여론을 제 편으로 만들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국민 아역에서 국민 배우로 성장한 한태주 씨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는 매우 높습니다. 그 점을 이용하는 거죠, 이번 재판에서.”
“오케이. 그럼 이렇게 합시다.”
생각을 정리한 강승민이 벌떡 일어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한테 유리하게 여론전을 펼치는 게 좋겠죠. 정 수사관, 경진일보 측에 연락해 주세요.”
“보도국에요?”
“네.”
강승민이 씩 미소를 지었다.
“한태주가 부형윤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거,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 부탁한다고요.”
* * *
한편, 경기도의 한 교도소.
수감된 우창균을 면회하러 온 우창섭은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에 맞은편에 있던 우창균은 못마땅한 듯 입을 비틀거렸다.
“너는 동생이라는 작자가 도대체 왜 이렇게 면회를 찔끔찔끔 오냐. 아무리 회사 일이 바쁘다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냐?”
“앞으로 제가 형님을 뵈러 이곳에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뭔 말이야? 갑자기 왜 이래?”
“다음에 형님을 뵈는 곳은 아마 법정이겠죠.”
그 말뜻을 알아챈 우창균은 제 앞을 가로막고 있던 유리를 쾅, 쳤다.
“너, 이러려고 내 변호사 자리도 거절한 거냐? 회사 일 수습하기 바빠서 전담 변호사 자리를 못 맡겠다고 한 것도 다 거짓말이었지?”
“형님.”
우창섭이 우창균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이제껏 동생으로, 변호사로 일하면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눈빛을 한 채.
형이 아닌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했다.
“이제 내일이면 세상이 뒤집힐 겁니다.”
“뭐야?”
“한태주가 공판의 증인으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우창균의 목에 핏발이 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부형윤 그 새끼가 한태주를 소환한 건, 멘탈에 금이 가게 하려는 거였다고. 그런데 진짜로 출석….”
“악수를 둔 셈이죠. 한태주 같은 톱스타가 이 재판에 등판하면 전국민의 시선을 모으게 될 겁니다.”
형을 보던 우창섭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니 형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숨을 수 없는 쥐구멍도 없는 곳에서 낱낱이 죄가 드러나게 될 운명이라는 겁니다.”
“너 이 새끼야. 동생이라는 새끼가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우창균 씨. 날 동생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짓거리는 하지 말았어야지.”
차가운 분노를 가득 담은 목소리가 우창섭에게서 흘러나왔다.
“내가 송혜진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면서, 그녀를 감히 교통사고로 살해하는 계획에 동참해?”
“뭐야, 너 그년 때문에 그런 거였어?”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고. 당신을 사랑하는 형수님에게 엄청난 상처를 줬어. 넌 구제 받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야.”
빠르게 쏘아붙인 동생의 고백을 들은 우창균.
그는 그제야 우창섭의 배신이 오래전부터 계획됐음을 알아챘다.
“한심한 새끼를 꼴에 내 동생이라고 거둬 줬더니, 이렇게 배신해? 네놈의 검은 속내를 진작에 눈치 챘어야 하는 건데.”
“형님이 늘 그러셨죠. 형님은 부형윤의 사냥개였지만, 그의 약점을 언제든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지난 세월 형님의 사냥개로 살아왔으니까요.”
“이 새끼야,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 치사하게 배신이라니. 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절 먼저 배신한 건 형님이셨죠.”
우창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 *
한편, 수도원에 도착한 태주 일행.
칠흑같이 어두운 시각에 극비리의 보안 속에서 진행되는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이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수도원 안에 있는 작은 호수 앞에는 곧 여러 촬영 장비가 놓였다.
동이 트는 시각은 새벽 6시 40분.
약 한 시간 정도 남은 이때.
태주는 백조로 변신하기 위해 분장팀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얼마 후, 거대하고 하얀 날개를 붙이고 나온 태주에게 온 시선이 쏠렸다.
“우리의 백조 등장하십니다!”
박인우의 유쾌한 말과 함께 태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날개뼈에는 거대한 날개를 붙이고, 얼굴에는 투명한 보석과 펄로 메이크업을 한 모양새가 제법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의 탈의한 태주의 몸에 시선이 간 스텝들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순결한 백조 컨셉을 위해 태주는 윗옷을 벗고, 하얀 바지만을 입은 것이다.
[오 마이 갓, 몸 좋네.]올리비아도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한편.
“이 와중에도 태주 씨 몸 좋은 거에 눈이 가는 나란 인간은 참…. 이런 백조라면 당장에라도 사랑에 빠지겠어요.”
오늘 찍는 광고 및 뮤직비디오를 감독하러 온 에린 웰링턴은 대놓고 태주에게 손 키스를 보냈다.
촬영장이 뜨거운 열기로 달궈진 이때.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하늘이 새벽의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호수를 등지고 선 태주가 양팔을 벌렸다.
순결하면서도 신비로운 백조의 유혹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 * *
오후 9시, 한국.
우성림은 옆자리의 홍은지에게 흥미로운 소식을 공유 중이었다.
그들이 보는 건 따끈따끈한 할리우드 기사.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한태주의 향수 광고 촬영을 먼 거리에서 찍은 파파라치들의 사진이었다.
“이야,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어떻게 이렇게 가깝게 찍었대? 인우 씨 말로는 거기 경비도 삼엄하다던데.”
“드론 띄운 것 같은데요. 풀샷 찍은 거 보니까.”
“그런데 그게 이렇게 화질이 좋아?”
“요즘에는 드론들도 성능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도촬을 많이 당하잖아요. 먼 거리에서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찍혀서요.”
“이거 실시간으로 찍히는 거야?”
“그럴걸요?”
우성림이 사이트 이곳저곳을 클릭해 보았다.
“제가 태주 씨한테 연락해 보니까, 촬영이 밤까지 이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앞으로 한 8~9시간 정도 더 찍는다는 소리예요.”
“야외 세트장에서 동도 트지 않은 새벽부터 밤까지 찍는다고? 뭘 찍길래 그렇게 강행군이야?”
“아직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 사진 찍힌 것 좀 봐보세요. 무슨 날개 같은 게 보이지 않아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에 집중한 홍은지와 우성림.
“날개 같기도 하네. 그런데 왜 향수 광고에 날개가?”
“새 분장 했으려나요?”
“향수 광고에 새 분장? 뭔 기괴한 컨셉이야.”
“뭐, 광고주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게 한태주 씨 입장이니까요.”
“아무튼 뭐가 됐든 멋있게만 나오면 돼.”
그때 한창 수다를 떨던 그들의 눈에 걸린 한 기사.
“최근에 경진일보에서 온라인 기사를 자주 올리네? 역시 요즘은 종이 신문이 아닌 인터넷 뉴스가 대세라 이건가.”
“선배님, 여기 한태주 씨 얘기 나온 것 같은데요? 그것도 단독이에요.”
한태주에 관련된 내용이 실렸다는 말에 홍은지가 기사에 집중했다.
“어, 한태주 씨가 검찰한테 진술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직접 증인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무슨 의도지?”
“무슨 의도긴요, 선배님. 부형윤이 증인 신청한 것에 빡쳐서 ‘그래, 내가 직접 나선다.’ 이런 생각 아닐까요?”
“한태주 씨가 바보냐?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재판에 참여하게.”
댓글을 자세히 살피던 홍은지는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여론을 자기 쪽으로 돌리려는 거네.”
“이미 사람들은 부형윤에 대한 반감이 심한 상태인데요? 이중협을 죽인 것도 모자라서 10여 년 전 자기 전처를 죽이기 위한 계략을 세웠고, 그로 인해 한태주의 부모까지 희생됐잖아요.”
“그렇지. 부모가 희생된 사건인 만큼 부형윤은 이번에 한태주가 증인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비공개 재판을 요구할 거로 생각했겠지. 그런데 지금 한태주가 공개 재판에 얼굴을 까고 나오겠다는 거잖아.”
홍은지가 흥분한 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한태주가 일부러 판을 키워서 국민들의 관심을 쏠리게 만든 거야.”
“뭐를 위해서요?”
“솔직히 부형윤같이 법조계에 인맥이 짱짱한 사람은 재판부에서 함부로 하기 곤란했을 거야.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면, 재판부도 국민의 관심을 외면한 채로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겠지.”
“아하, 대국민 관심을 재판부가 무시할 수 없게 된다는 거군요.”
“응. 분명히 의식할 거야.”
홍은지가 확신에 차서 덧붙였다.
“그러니 내가 볼 때, 이건 한태주 씨가 완벽히 노린 수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