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92
492화
마지막 속죄 (2)
* * *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는 어느 커다란 홀.
조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열린 비하인드 파티였다.
이곳에서 상을 받은 여러 배우와 관계자들이 파티를 즐기는 가운데.
단연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는 두 남녀가 있었으니.
오늘로 네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여배우 올리비아 러셀과 다섯 번째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제작자 마이크 링크였다.
“수상 축하해요, 올리비아. 오늘 당신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은 이가 없었어요.”
“링크 씨. 제작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끊임없이 상을 받는 그 기세,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던 올리비아와 마이크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일 일이 없었다.
수상의 기쁨으로 가득 찬 파티가 거의 끝으로 흘러갈 무렵.
혼자서 술을 홀짝이던 마이크의 곁으로 다가온 가벼운 발걸음이 있었으니.
“마이크, 오늘 수상 정말 축하해요.”
샴페인이 담긴 술잔을 들고 온 올리비아는 해사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올 줄 몰랐던 마이크는 부리부리한 눈을 놀란 듯 깜빡였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발레단에서 헤어졌을 때다.
올리비아가 여배우의 길을 갈 거라 선언한 걸 마이크가 반대한 이후로 그들은 한 번도 이렇게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놀란 것만큼이나 주변에서도 놀란 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고의 여배우와 존경받는 제작자의 만남은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나, 그들이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자와 여배우임에도. 한 번도 작품을 함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세간 호사가들이 다양한 추측을 하게 했다.
“마이크?”
재차 들려오는 올리비아의 달콤한 목소리에 마이크는 정신을 차렸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는 올리비아의 얼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이 친구로 지냈던 20여 년 전, 그때와.
다만 달라진 건, 그들의 위치.
보는 눈이 많은 것을 눈치챈 마이크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 러셀(Ms Russel), 오늘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그의 사무적인 말투에 올리비아의 짙은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미스터 링크. 저도 당신의 다섯 번째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올리비아는 그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나긋나긋한 목선 사이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가 마이크의 코끝을 스쳤다.
“다음 작품은 당신하고 같이해보고 싶은데. 어때요, 미스터 링크? 나, 이래 봬도 제법 연기 잘하는 배우인데.”
“…당신 같은 톱배우라면 나 말고도 다른 좋은 제작자를 만날 수 있을 텐데요.”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요. 전 당신을 원해요, 마이크.”
바짝 다가선 올리비아는 적극적인 눈을 그에게 고정했다.
“나의 연기력과 너의 제작 능력이라면. 우리, 분명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건….”
“부인할 수 없지 않아? 내 매력, 내 연기에 너도 분명 끌리고 있다는 걸. 마이크, 날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너야. 그러니까 날 누구보다 매력적인 배우로 그려낼 수 있는 것도 너고, 날 이용해서 그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너밖에 없어.”
“나한테 지금 러브콜하는 건가?”
“당연하지.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내 차기작을 함께할 영광을 줄 테니까.”
그녀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올리비아라고 불러도 돼.”
그녀가 새침한 얼굴로 마이크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그렇게 모르는 사람인 척할 거야? 쪼잔한 건 여전하다니까, 마이크.”
그 말을 남긴 올리비아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가 버렸다.
뒤에 남은 마이크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늘하늘한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20여 년 전, 그녀가 보이는 듯했다.
발레리나로 일하며 늘 날아다녔던 그녀의 모습이.
비록 직업은 발레리나에서 배우로 바뀌었지만. 가볍게 춤을 추는 듯한 그녀의 매력적인 몸 선은 여전하다고 생각했던 마이크.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다음 작품을 제안해 볼까.”
저 앞에 가던 올리비아를 부르려던 마이크는, 멈칫하더니 입을 닫았다.
언제라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올리비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측하지 못한 마이크가 평생 후회할 실책이었다.
* * *
새벽에 시작한 뮤직비디오와 광고 촬영은, 다음날 새벽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동이 트는 걸 보면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촬영이 끝나는 지금도 동이 트고 있네요.”
피곤한 눈을 문지른 태주는 촬영장의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태주 씨도 수고하셨어요!”
“아휴, 오늘 촬영은 태주 씨 보느라 넋이 나가서 이렇게 시간이 흐른 줄도 몰랐어요.”
기분 좋은 분위기 속 끝난 촬영.
덩달아 태주도 둥둥 뜨는 기분으로 마이크와 에린에게 향했다.
촬영감독과 함께 오늘 찍은 촬영분을 감상한 그들.
옆에 있던 박인우와 장진혁은 감탄하며 영상을 보기 바빴다.
“이야, 음악에 태주의 춤이 결합 되니 정말 대단하네요.”
“몰입이 확 돼요. 향수 광고치고도 정말 아름답게 잘 찍혔는데요?”
“오늘 촬영장소도 기가 막혔고, 촬영팀도 수고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태주 씨의 열연이 다 했다고 생각해요.”
에린이 눈을 찡긋했다.
“진짜 태주 씨, 백조와 흑조의 모습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게 기가 막혔어요. 얼른 뮤직비디오 편집해서 공개할 날이 기대되네요.”
“광고보다 뮤직비디오가 먼저 나가는 겁니까?”
“아마 둘이 비슷한 시기에 나갈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에린이 설명했다.
“향수 출시가 12월 말로 예정되어 있거든요. 그 전에 ‘미스 올리비아’ 향수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해서 본격적인 프로모션을 돌리는 거죠. 일단은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편집을 끝내서, 이번 주 안으로 뮤직비디오 티저부터 올리려고요. 어때요, 대부님?”
가만히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마이크 링크.
태주를 응시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좋은 작품은 좋은 배우로부터 시작되지. 그런 면에서 이번 광고와 뮤직비디오는 괜찮은 시작을 끊었다고 볼 수 있겠구나.”
“그렇죠!”
“그리고 솔직히 태주, 자네에게 그저 연기만 잘하는 배우의 기교적인 모습을 기대했었네. 그런데 오늘 난….”
마이크가 태주의 눈을 마주쳤다.
“자네한테서 배우가 아닌, 백조와 흑조만을 봤어. 역할에 몰입하는 사람이 아닌, 그 역할만이 보이더군.”
“감사합니다.”
“…자네는 올리비아의 팔색조 같은 면을 정말 많이 닮았네. 살면서 수많은 배우를 봤지만, 그렇게 자신을 내던지면서, 자기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역할에 몰입하는 배우는 그녀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자네는….”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달싹인 마이크.
“올리비아 그 이상일세.”
그러나 태주도, 옆에 있던 이중협도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반짝이는 황금빛을 남기고 성불한 올리비아가, 아마 그에게 자신의 기억을 넘겨준 모양이었다.
과거의 기억으로 눈이 촉촉해진 채 자신을 칭찬한 그에게, 태주는 정중한 인사로 보답했다.
“최고의 극찬이십니다.”
“대부님, 제가 뭐라고 했어요.”
에린이 자랑스러운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한태주 씨, 제가 직접 픽한 뮤즈답게 잘할 거라고 했잖아요.”
* * *
몇 시간 후.
박인우 실장의 보고를 받은 배우 1팀은 회의에 들어갔다.
“미스 올리비아 광고 및 뮤직비디오 촬영이 다 끝났다고 하네요. 저희가 에린 측에 연락해 본 결과 이번 달 안에 뮤직비디오부터 먼저 공개한다고 합니다. 당장 티저가 이번 주말 안에 공개되는 것 같던데요.”
“브리짓 드하트, 미첼 커티스 공동 작곡이라 그런지 다들 기대감이 커요.”
“신구 팝스타들인데, 이보다 더 기대되는 조합이 있을까요? 거기다가 태주 씨의 연기력이라니 말 다 했죠. 그것도 백조와 흑조의 유혹!”
송 대리가 흥분한 듯 눈동자를 반짝였다.
“이거 진짜 올해를 마무리하는 최고의 프로젝트예요!”
핸드폰 속 일정을 보던 김 팀장이 끼어들었다.
“올해 한태주 씨의 마무리는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하게 되겠군요.”
“그래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송 대리가 빠르게 일정을 읊었다.
“일단 영화 ‘나의 미래’ 800만 넘긴 기념으로 GV가 잡혀있습니다. 그리고 ‘미스 올리비아’ 향수가 출시되는 그 순간부터, 태주 씨도 모델로서 홍보 일정에 일부 동행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합니다.”
“아, 안 그래도 웰링턴 쪽에서 부탁한 적극적인 홍보, 기억하고 있었어요.”
김 팀장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다.
“그쪽에서는 태주가 홍보 일정에 동참하면 좀 더 효과적일 거라 판단한 모양이더라고요.”
“일단 태주 씨 팬들이 워낙 화력이 세니까요. 다들 향수 하나씩은 살걸요?”
“출시 당일에 준비된 물량이 매진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태주 씨가 곧 입국하겠네요.”
김 팀장은 그리움이 섞인 목소리로 되뇌었다.
“드디어 오네요, 태주 씨.”
그 말에 팀원들이 누가 뭐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태주가,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많은 프로젝트를 마치고, 한국에서 그 결실을 보기 위해.
* * *
며칠 후.
한유경은 오랜만에 서동락을 만나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요즘 동락이 너 얼굴 보기 힘들다?”
“아, 저 요즘 편집실에서 밤새우면서 일하고 있어서요.”
“편집실? 아, 이번에 편집 담당으로 들어가게 된 거야? 이야, 축하한다 동락아!”
어릴 적부터 태주의 친구였던 서동락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걸 누구보다 축하해주는 한유경.
그런 그녀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던 그는 일연 부끄러운 듯 미소 지었다.
“뭐, 전면에 나서는 일은 아니지만요. 저 이번에 영화 ‘드림랜드’ 연출부에 합류하게 되었거든요.”
“그거 촬영 끝나고 편집만 남았다고 하더니. 네가 하고 있었구나!”
“맞아요, 지금 후반작업 중이에요. 저는 감독님 제안으로 다 끝난 영화 편집하는 거 도와드리는 거지만요.”
서동락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듯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감독님이 제 편집실력 괜찮다면서, 한번 같이해보자고 하셔서요….”
“어머 동락아! 태주가 맨날 그랬어, 날것의 영화는 능력 있는 편집자를 만나 비로소 완성된다고! 네 능력이 인정받은 거잖아, 그럼.”
“하하, 아줌마한테 칭찬받으니까 좋네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인데, 뭘.”
한유경의 얼굴에 그가 자랑스럽다는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나는 태주도 너도, 다들 원하던 꿈을 이뤄서 진심으로 기뻐.”
“하지만 태주는 벌써 저 멀리 올라갔는데, 저만 너무 초라한 것 같아요.”
“무슨 소리. 인생이 긴 만큼, 사람마다 각자 그 길을 가는 속도는 다른 법이야.”
한유경은 환하게 웃으며 서동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드림랜드’ 꼭 보러 가야겠다. 크레딧에 우리 태주하고 동락이 이름이 다 올라갔을 거 아니야.”
“그런데 아줌마, 오늘 이렇게 계셔도 돼요?”
핸드폰을 확인하던 서동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태주하고 통화했는데, 오늘 입국하자마자 화보만 찍고 바로 집으로 온다고 했거든요.”
“안 그래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어.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올래? 태주가 정말 반가워할 거야. 태희도 곧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고.”
한유경의 제안을 서동락은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럴게요, 그럼!”
* * *
한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입국한 태주.
박인우, 장진혁과 함께 그가 곧장 향한 곳은 강남의 한 스튜디오였다.
BS 백화점 모델로 선정된 태주는 관련 화보와 모델 사진을 찍어야 했던 것이다.
관계자들은 모델 사진 교체가 촉박해, ‘방금 막 입국한 걸 알지만 부를 수밖에 없었다’라며 태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행기를 오랜 시간 타고 와 피곤할 태주의 컨디션을 걱정했다.
하지만 카메라 프레임에 담기는 태주를 보면서 그들은 그 걱정을 싹 잊어버렸다.
“정말 좋습니다!”
“이야, 태주 씨 분위기 제대로시네!”
좋은 분위기 속, 촬영은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된 시각.
태주는 양손에 태희와 고모에게 줄 선물을 가득 든 채, 집으로 향했다.
입가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때, 놀이터 정자에서 홀로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태주는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 남자가 자신에게 곧장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한태주 씨, 잠깐만요.”
간혹 팬들이 집까지 찾아오는 걸 경험한 태주가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사인해드릴까요? 아니면 사진?”
“…태주야. 정말… 보고 싶었다.”
태주의 눈앞에 선 우창섭이 그를 향해 절실한 한 마디를 토해냈다.
“어쩜 네 엄마를 그렇게 닮았니.”
그 말에 태주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