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이중협, 원수를 마주하다 (1)
* * *
“재판을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여러 공방이 오가며 뜨겁게 달아오르던 재판이 잠시 중단됐다.
방청객들은 한숨을 돌렸고, 피고와 검찰 측도 각각 앞으로의 전략을 세우는 가운데.
“뭐야, 이거.”
핸드폰을 확인하던 박인우가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래, 형?”
“인포트리에서 뭣 같은 기사를 터뜨려서. 아무래도 부형윤 측에서 자기네한테 쏠린 관심을 네 기사로 묻으려고 수작 부린 거 같아.”
[정치 기사는 연예 기사로 묻는다. 전형적인 레퍼토리라 할 말도 없네.]이중협과 어이가 없는 시선을 주고받은 태주가 박인우의 핸드폰으로 눈길을 옮겼다.
“어디 좀 보자, 형.”
“그게….”
머뭇거리는 박인우를 뒤로하고 핸드폰을 가져온 태주가 메인으로 올라와 있는 기사를 확인했다.
한때는 국민 아역이었고, 지금은 국민 배우로 자리 잡은 한태주에게 가슴 아픈 가정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본지가 단독 보도한다.
배우 한태주의 모친인 송 모 씨는 CK 건설 우창섭 변호사와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으며, 그 후로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다고 당시 지인들은 전했다.
송 모 씨의 고등학교 시절 지인이었다는 김 모 씨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있나요. 저는 그 둘 분명 무언가가 더 있을 거로 생각해요.”라며 그 둘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확신했다. 또한 송 모 씨가 결혼한 뒤에도 관계를 이어 나갔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배우 한태주가 이러한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고 있었을지, 아니면 모르는 척 묻어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본지는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이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위경배 기자-
“이런 미친놈!”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태주가 벌떡 일어났다.
핸드폰을 집어 던질 듯 화가 난 그.
그러나 간신히 화를 삼키고는 핸드폰을 박인우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인포트리 쪽에 연락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로 쓴 기사 당장 내리지 않으면, 내 쪽에서 고소 들어간다고.”
“태주야….”
“말도 안 되는 내용이잖아! 우리 엄마가, 부정을 저지르다니…. 그분은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점점 목소리가 커지던 태주는 주변을 살폈다.
다들 핸드폰을 보더니, 자신을 힐끗거렸다.
그 기사를 본 것 같았다.
그가 속에서 욕지거리하는 그때, 차용석이 급하게 태주 쪽으로 걸어왔다.
그 또한 인터넷에서 퍼진 인포트리발 기사를 읽은 듯했다.
“태주야, 걱정하지 마. 지금 우리 홍보팀에서 힘쓰고 있으니까, 그 기사는 곧 내려갈 거야.”
“비열하고 졸렬해요.”
“그래.”
차용석이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한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변호사 측과 무언가를 상의하는 우창균이 보였다.
“이건 우창균 측에서 일부러 터뜨린 기사인 게 분명해. 온 국민의 시선이 이번 살인사건에 몰려 있으니까, 연예 기사로 물타기를 해 보려는 거라고.”
[그게 맞지.]“그래도 인포트리가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거라는 건 변함없지만. 아무튼, 회사 측에서도 엄중하게 대응할 거니까. 태주야….”
차용석이 태주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그의 표정은 마치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처럼, 순수한 염려로 가득했다.
“넌 이만 집에 가 있는 게 어때?”
“하지만 중협 선배님 재판은 끝까지 보고 가야….”
“지금 네가 여기 있으면, 나중에 기자들의 질문 폭탄만 더 쏟아질 거야. 솔직히 너도 알잖냐. 기자들은 지루한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거짓에 좀 더 관심을 보인다는 거.”
“그래도 싫어요. 끝까지 보고 갈 겁니다.”
“태주야, 형 말대로 해.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냐.”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가 왜 피해야 하죠? 오히려 당당하다면, 더욱 얼굴을 높게 들고 기자들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게 나아요.”
“네가 아는 진실이 뭔데. 네가 일전에 그랬잖아. 엄마에 대해서 아는 거 별로 없다고.”
“엄마와 우창섭 씨 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됐어요. 그게….”
그때, 헐레벌떡 법정에 도착한 사람이 있었으니.
옆에 우창균의 부인, 즉 자기 형수를 데리고 온 우창섭이었다.
재개될 재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하러 온 그들이었다.
우창섭을 발견한 태주의 눈이 반짝였다.
“차라리 잘됐어요. 나중에 재판이 끝난 후에, 우창섭 변호사와 같이 반박 인터뷰해도 좋을 듯해요. 다만….”
“다만?”
“지금은 중협 선배 사건에 집중하는 걸로.”
[태주야.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어.]‘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태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를 하는 것뿐이죠.’
* * *
동 시각, 경진일보 본사.
대표실에서 비서를 닦달하던 송서진 대표는 한참 열받아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회장님, 그게….”
“말해봐, 어서! 이깟 쓰레기 매체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쓸 동안 우리는 뭘 한 거지!”
“송 회장, 진정해요. 몇십 년간 알고 지냈는데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네.”
맞은편에 있던 한서경 부회장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송서진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으로 실시간 조회수가 높은 여러 기사를 훑었다.
그러다 그녀의 눈에 띈 기사가 있었다.
기사를 읽던 한서경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방청객들 사이에도 기자들이 숨어 있었나, 법정 진술 중 밝혀진 사실을 지금 이렇게 기사로 쓰네요. 그런데 송 회장.”
그녀는 얼굴이 벌게진 송서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염수정 열애설 때문에 화난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송서진이 간신히 화를 참으며 다른 기사를 가리켰다.
“이 기사 때문입니다.”
“이건…. 한태주 모친에 관한 기사네요?”
한서경이 유심히 기사를 읽어보았다.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송 회장이 연예계 뉴스에 이렇게까지 흥분할 이유가 없잖아요. 평소 연예계에 그렇게 관심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다른 이유요?”
“그렇잖아요. 인포트리에서 한태주도 아니고 한태주 어머니에 관한 기사를 내놓은 건데. 송 대표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게 이해가 안 돼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송서진이 피곤한 듯 은테 안경을 벗었다.
“사실은 한태주 모친이 내 여동생입니다.”
“…말도 안 돼.”
한서경 부회장은 놀라움 반, 흥미진진함 반의 표정으로 송서진을 응시했다.
“그럼 어렸을 적 소식이 끊겼다는 그 여동생이, 한태주 씨 모친이었어요? 그동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 아니, 생각해 보니까 둘이 이름이 같네요!”
“독립하겠다는 여동생을 속 좁은 마음으로 대한 건 저였죠. 그리고 여동생이 그 사고로 죽고 나서, 그 애를 외면한 저 자신이 염치가 없더군요.”
“한태주 씨를 은근슬쩍 뒤에서 도와줄 염치는 남아 있었고요?”
한서경이 재밌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예전부터 JABC에서 한태주 9시 뉴스에 단독으로 밀어주고, 보도국에서도 한태주 집중적으로 다뤄주고. 솔직히 왜 그렇게까지 하나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네요.”
“늦었지만, 그렇게라도 도움이 돼주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여전히 한태주 모른 척할 생각이에요? 아님. 뭐라도 해 볼 건가요?”
“제가 직접 나서야겠습니다.”
송서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인포트리 같은 쓰잘머리 없는 언론, 제 선에서 다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의 시선은 옆에 있던 비서에게 향했다.
“봉 비서. JABC 측 보도국에 연락해서 이쪽으로 오라고 해.”
“인터뷰 준비하라고 할까요?”
“어. 지금 당장.”
송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오후 중에, 기사 배포할 수 있도록 해.”
* * *
한편, 휴정되었던 재판이 재개되었다.
증인석에서는 우창균의 부인이 검찰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고 있었다.
“본인이 제출한 증거물 중 피가 묻은 셔츠가 있었습니다. 해당 셔츠를 어느 경로로 얻은 건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백화점에서 직접 산 남편 셔츠입니다. 남편이 약 7년 전, 부형윤 검사장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며 입고 나갔다가, 그 셔츠가 아닌 다른 옷으로 입고 들어왔어요. 그 셔츠는 더러워져서 버렸다고 했는데, 집에서 일하시는 도우미 아줌마가 용케 지금까지 보관해 주셨더라고요.”
“이의 있습니다.”
오대인 변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당시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도우미가 그 셔츠를 준 거죠? 증인이 돈을 주고 도우미를 매수한 건 아닐지 의심됩니다. 혹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이중협 살인사건과 엮이게 해서 처벌을 받게 하려는 복수극을 꾸민 건 아닙니까?”
그 말에 우창섭이 어이가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재판장님, 무가치한 항변입니다. 또한 제출한 우창균 씨의 셔츠에는 약 7년 전, 이중협 씨가 흘린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국과수에서 제출한 자료로 이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창균 씨가 7년 전, 부형윤 씨의 원주 별장에서 일어난 이중협 사망사건에 개입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살인사건의 공범이라는 뜻입니다.”
“증인 측 주장을 일부 인정합니다.”
말문이 막힌 오대인은 순간 머리를 굴렸다.
“사건의 공범이 아니죠. 부형윤 씨가 해당 일과 관련 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오직 우창균 씨로 인해 벌어진 겁니다.”
그 말에 방청석이 크게 술렁였다.
“뭐야, 동귀어진이야?”
“같은 편 아니었어?”
태주는 옆에 있던 이중협을 힐끗했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분노하는 게 느껴졌지만, 혹시 악귀로 변할까 봐 최대한 자신의 분노를 자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판사는 자리에서 일어난 강승민을 바라보았다.
“검사 측 할 말 있습니까?”
“네.”
강승민이 오대인 변호사에게 향했다.
“부형윤 씨가 사건과 관련이 없다니, 이 증거를 보고도 그러실 수 있을까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거물 1030호를 지금 이 자리에서 재생하길 요청드립니다.”
“요청 받아들이겠습니다.”
판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이어 영상이 재생됐다.
화면 속 보이는 광경에 방청석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두컴컴한 별장 안 거실, 그곳에서 이중협을 무자비로 패는 부형윤과 우창균의 모습이었다.
“어머, 어떡해….”
“난 못 보겠어.”
뚝.
강승민이 영상을 끊은 지점은, 부형윤과 우창균이 씩 웃으며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우창균 씨와 더불어 부형윤 씨도 해당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장희재 대표를 시켜 이중협 씨를 별장으로 부른 것, 드라마 촬영 중 일부러 사고를 내서 죽이려 한 것, 병원에서 거짓 사망선고를 내린 점, 그 후에 별장으로 데려와 이렇게 잔인한 구타를 가한 점. 그리고 이중협 씨의 사지를 잘라 전국 각지에 흩어놓은 점. 우창균 씨와 더불어 부형윤 씨의 이러한 잔인한 행각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입니다.”
그 말에 부형윤이 잠깐 고개를 흔들다, 이윽고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다.
“난 인정 못 합니다.”
그 말에 강승민이 날카로운 눈매를 마주쳤다.
“분명 영상 속 저 사람은 부형윤 씨 당신이 맞습니다.”
“아뇨, 내가 아닙니다. 나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습니다.”
태주는 옆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옴을 느꼈다.
온몸이 얼어붙듯 차가워지는 이 냉기, 분명히 예전에 느껴보았던 그 기운이었다.
‘악귀!’
그는 재빨리 이중협을 찾았다.
하지만 옆에 있어야 할 이중협이 보이지 않았다.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새끼.]그가 향한 곳은 부형윤이 있던 곳.
검은 기운이 넘실대던 이중협은 부형윤의 목을 꽉 조르고 있었다.
[죽어.]이중협의 귀기가 부형윤을 덮치는 순간이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