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태주와 엄마 (1)
‘…엄마? 정말 엄마예요?’
태주는 멍하니 눈앞의 귀신을 바라보았다.
분명 엄마였다.
자신과 그렇게도 닮은 눈으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립고도 그리웠던 엄마.
다시 만나길 간절히 소망했건만 한 번도 제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엄마의 출현.
그때, 태주의 귓가에 놀란 듯한 목소리들이 날아들었다.
[태주야, 괜찮냐? 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어.]“태주야. 무슨 일이니?”
태주는 눈을 몇 번이고 세게 비볐다.
그러고서 다시 얼굴을 들어 보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봤다고 생각한 엄마의 얼굴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송서진만 있을 뿐.
‘…헛것을 봤나 봐요.’
안심하라는 듯 이중협에게 싱긋 웃어준 태주는 송서진을 마주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저희 어머니께 먼저 사과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송서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 순간.
“저희 어머니와… 왜 연락을 끊으신 거죠? 저희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회장님께 잘못한 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태주야, 그건….”
“엄마와 지냈던 시절, 어린 나이임에도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저희 어머니, 꿈을 이루고 싶다는 야망이 크셨지만. 그전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었습니다.”
태주가 적극적으로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왜 가족이 없을까, 왜 항상 제 앞에서는 가족 이야기를 피하는 걸까, 하고요. 특히 저희 어머니는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지셨죠.”
“…….”
“얼핏 듣기로는 출생부터 축복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우리 집에서 살 때만큼은 학비 걱정은 없게 해줬다.”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건 정서적인 지지겠죠. 저희 어머니는 그런 걸 받지 못하셨고요.”
예전에 얼핏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한 태주가 덧붙였다.
“오빠가 주는 용돈보다도, 오빠가 던져주는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고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미워하는 거냐? 생전 혜진이를 제대로 챙기지도 않고, 죽은 이후에야 널 찾은 나를.”
“글쎄요.”
한번 물꼬가 터진 태주는 그동안 답답했던 것들을 씻어내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왕래하는 저희 아버지 쪽 가족들은 이제야 연락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가 자기들을 미워할까, 그게 두려웠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송서진이 핏발 선 눈을 간절히 마주쳤다.
“나도 두려웠어. 내 뜻을 거스르고 미국에 간 혜진이가 괘씸했던 건 잠깐이었고. 그 후에는 혜진이가 걱정스러워 어쩔 줄 몰랐지. 그래서 그 후에 몇 번이고 연락했었어. 그런데 혜진이가 품은 나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은 이미 정도를 넘은 뒤였다.”
“글쎄요. 진심을 담은 사과를 했다면 어머니가 회장님을 용서 안 했을 리 없잖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구나. 혜진이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내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겠지. 그건 정말 내가 잘못했다.”
태주의 강경한 태도에 송서진은 푹,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알아다오. 이제는 더 이상 가족인 너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구나. 내가 널 챙길 수 있게, 부디 허락해다오. 그게 혜진이에 대한 속죄이자, 가족인 너를 챙기고 싶은 내 진심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 송서진이 고개를 들자.
그동안 차갑게 굳어 있던 태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 *
잠시 후, 한식당 주변.
우성림과 황유나는 근처 주차장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넥스트 엔터 홍보팀장의 부탁으로 한태주와 송서진의 투샷을 찍으러 왔다.
우성림의 곁에서 황유나가 속삭였다.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에요? 제가 아까 직원분한테 여쭤보니까 여기 평균 식사 시간이 2시간 정도 된다고 하던데요.”
“흐억, 무슨 프랑스식 식사법이냐. 왜 그렇게 오래 먹는담?”
“여기가 고위 귀빈들의 식사 겸 대화 자리로 쓰여서 그렇대요. 아무튼, 저희 여기서 적어도 1시간 30분은 죽치고 있어야겠어요.”
그들이 한창 수다를 떠는 그때.
식당 입구에서 두 명의 남자가 나왔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용한 밤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태주의 차분한 목소리.
우성림은 팔짝 뛰었고 황유나는 재빨리 그에게 카메라를 들려주었다.
“왜 벌써 나왔지? 밥도 제대로 안 먹었나?”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일단 빨리 찍으셔야죠!”
“알았어!”
우성림은 빠르게 카메라를 들어 줌인을 당겼다.
프레임 안에 태주와 송서진이 짧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여러 컷 담겼다.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는 순간.
“방금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요? 설마 여기까지 기자분들이 따라오신 건가?”
태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송서진이 그를 말렸다.
“아서라. 어차피 우리 둘 사이 이미 알려졌다. 그보다 태주야….”
머뭇거리던 송서진이 태주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한 만큼, 내가 더 잘하마. 그러니 어려운 일 있으면 뭐든 말하렴, 내가 도울 테니.”
* * *
다음날.
항상 새로운 뉴스로 도배되는 인터넷은 오늘, 한태주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아침 일찍부터 강승민은 핸드폰에 코를 박고 기사들을 읽는 중이다.
그러다 그의 눈에 들어온 한 기사가 있었으니.
“이건 연예계 기사인데 왜 사회면, 정치면 통틀어서 조회 수 1위냐…. 응?”
기사를 클릭한 그의 눈에 띈 건 태주와 송서진이 함께 찍힌 파파라치 샷.
“아, 사진이 포함돼 있으면 인정이지.”
강승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 속 사진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 한 한식당에서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제법 다정해 보였다.
태주의 손을 조심히 잡는 송서진의 애타는 얼굴.
여태껏 냉철하기 짝이 없는 송서진 회장에게서 전혀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뭘 그렇게 자세히 보십니까?”
앞에서 불쑥 나타난 수사관의 인영에 강승민은 재빨리 시선을 들었다.
“흠흠, 정 수사관, 제가 부탁한 건 알아 왔어요?”
“네.”
급하게 말을 돌리는 강승민을 수상쩍게 바라보던 수사관이 말을 이었다.
“부형윤 씨가 입원한 백산병원 측에 연락해서 상태 확인했습니다.”
“지금 어떻다던가요?”
“모든 신체 반응은 정상이지만, 다소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 제대로 말을 못 한다고 합니다. 지금 글로 소통 중이랍니다.”
“실어증에 걸린 겁니까?”
“의사 말로는, 극심한 충격을 받아 나타난 일시적인 증세라고 했습니다. 아, 그리고 검사님….”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부형윤 씨가 말하기를, 그때 귀신을 봤다고 합니다.”
“귀신이요?”
강승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무슨 이유를 댈 게 없어서 귀신 핑계를 댑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뭐, 부형윤 씨 부인의 말로는 그렇게 주장한다고 합니다. 귀신이 자기 목을 졸랐다나, 뭐라나요.”
“하여튼 임기응변은 기가 막히게 능하다니까요.”
“그런데 진술하는 부형윤 씨나 그의 부인 표정이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냉소적인 표정을 한 강승민이 손깍지를 끼었다.
“처음에는 정말 연기인 줄로만 알았어요. 재판에서 쓰러졌을 때 말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재판정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걸요?”
수사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정신을 잃는 척 연기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부형윤 전 검사장도 그런 부류인 줄 알았죠. 진짜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굳은 얼굴의 강승민이 그때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복기했다.
염수정, 백시영 등등의 증인들이 연이어 공통되게 증언했다.
이중협을 죽인 모든 원흉은 그라고.
증거물들도 부형윤과 우창균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
그런데 우창균도, 부형윤도 자기 잘못을 들켜 난감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부인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형윤이 갑자기 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쓰러진 건.
그때 부형윤의 표정은 정말 무언가를 본 듯한 공포에 질려있었다.
이제껏 코웃음 치던 강승민이었지만, 혹시 모르는 호기심에 수사관에게 한 차례 물어보았다.
“그런데 부형윤이 귀신을 봤다고 했잖습니까. 무슨 귀신을 봤답니까?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게… 좀 소름 끼치는데요.”
수사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이중협이랍니다.”
“…이중협 씨요?”
강승민의 입이 쩍 벌어졌다.
* * *
한편, 태주의 집.
태희를 학교에 데려다준 태주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스케줄이 오후에 몰려 있는 날.
BS 백화점에서 드라마 ‘굿맨’ 시청률 20% 돌파 기념 겸 백화점 메인 모델이 된 기념으로 사인회를 한 다음.
넥스트 엔터로 이동해서 영화 ‘드림랜드’ 편집 시사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태주는 옆에 고양이를 낀 채, 티비를 보았다.
그런데 온통 자신 이야기뿐이었다.
‘아주 언론이 난리가 났네요. 저랑 송서진 회장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궁금했나.’
[너 예전에 강원경 대법원장하고 혈연인 거 밝혀졌을 때도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이중협이 태주의 옆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이 많으니까.]‘넵. 저라도 관심 있게 달려들었을 것 같긴 해요.’
태주는 커피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각, 지금은 다소 한가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 즐겨 찾는 장소인 놀이터도 비어 있었다.
그걸 확인한 태주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롱 패딩을 걸친 뒤,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너 슬슬 나갈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아직 여유 있어요.’
밖으로 나간 태주는 놀이터 근처 정자에 걸터앉았다.
아침이 지난, 그렇다고 점심은 아닌 애매한 시각.
태주는 온전한 휴식을 가지는 이 시간이 좋았다.
비록 그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지만.
그런 그의 머릿속에 이중협이 또다시 침투했다.
[근데 너 어제 송 회장하고 식사 도중에, 왜 그랬냐? 갑자기 허공 보면서 멍하니 있길래,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그 말에 태주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한가로웠던 마음이 이중협으로 인해 뒤흔들었다.
‘그럼 형한테는 정말 안 보였어요?’
[도대체 뭐가 보였다는 건데?]이중협이 걱정스러운 듯 태주를 신경 썼다.
[요즘 몸이 너무 허한 것 아니냐? 보약이라도 먹여야 하나… 애가 헛것을 보네.]‘분명히 형 눈에도 보였을 텐데요. 맞은편에 있던 우리….’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익숙하고도 정겨운 분위기.
태주가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엄마가 있었다.
어제 식당에서 보았던 그립고도 그리웠던 그의 엄마.
[태주야. 놀라지 마, 엄마야.]그의 옆자리에 살짝 걸터앉는 가벼운 몸짓.
늘 다정하게 말을 걸었던 목소리며, 따뜻하게 자신을 바라봐 주었던 시선까지 전부 다 엄마였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