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1
501화
태주와 엄마 (2)
‘엄마?’
[그래, 엄마야.]태주는 기쁜 것과 동시에,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바라봐도 눈앞에 엄마가 있었다.
목덜미에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가 늘 소녀 같았던 엄마는 제 앞에서 그리웠던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 항상 태주 보고 싶었어.]‘왜…. 도대체 왜….’
볼멘소리하는 듯한 태주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온 거예요?’
엄마를 보고 싶었다는 말 대신, 원망하는 말부터 나온 자신은 무척이나 속이 좁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아빠를 진작 만난 터라 엄마는 왜 제 앞에 나타나지 않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했으니까.
엄마가 이미 성불해서 이 세상에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때로는 엄마가 귀신이 되어 자신의 곁에 있는 상상도 했다.
그리고 만약 엄마가 귀신이 됐다면, 왜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태주는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과 달리 엄마는 저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뿐.
그러나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았던 원망은 막상 엄마의 미소를 보니 저 멀리, 사라졌다.
[미안해, 태주야. 엄마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괜찮아요.’
엄마 앞에서 태주는, 다시 10살짜리 아들로 돌아간 듯했다.
‘그래도… 엄마 보니까 좋아요.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내비친 태주를 향해 엄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할 말이 많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느낌.
결국 그녀는 그냥 웃어버렸다.
속사정이 있는 듯한 그녀였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선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는 듯했다.
[엄마도 우리 태주, 보니까 좋아.]옆에서 그런 둘을 보던 이중협.
여태껏 대장 귀신으로 활동했던 그는 송혜진을 보고 여러모로 놀라는 중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귀신을 만났고, 다양하고도 특이한 유형들도 많이 봤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태주 엄마처럼 이렇게나 특별한 귀신은 처음이었다.
[너희 엄마, 기운이 거의 안 느껴져.]이중협이 신기함 반, 의아함 반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진작에 성불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상태야.]그런데 왜 여태껏 성불하지 않고, 태주 곁에 남아 있었지?
자식을 홀로 이 세상에 남겨뒀다는 걱정과 미련 때문에?
아니면 아직 이루지 못한 한이 있어서?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중협은 알 수 없었다.
태주를 저렇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송혜진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귀신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남았는지.
* * *
한편, 넥스트 엔터.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회의실 안, 차용석과 배우 1팀 직원들이 있었다.
“태주는 아직이지?”
“아마 오늘 오후 1시 즈음에 회사에 올 것 같습니다. 진혁 씨가 데리고 올 거예요.”
시계를 확인하던 차용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는 계속 바쁠 거야. 일단 화요일에 영화 ‘드림랜드’ 제작보고회가 잡혀 있고, 금요일에는 태주가 증인으로 참석하는 재판이 있어.”
“잠깐만요.”
김 팀장이 주름진 미간을 꾹 누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런데 태주 씨가 다시 미국에 가기 전에 재판에 참석하는 거, 정말 괜찮을까요? 미국에 좋은 결과 얻으러 가는 건데, 한국에서 괜히 그런 재판이랑 엮여서 심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건 아닐까 염려되네요.”
옆에서 송 대리도 끼어들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태주 씨, 방청석이 아니라 증인석에 앉아야 하잖아요.”
송 대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차용석의 눈과 마주쳤다.
“저번에 방청석에 나타났을 때도 관심이 엄청나게 몰렸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증인석에 선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폭발하겠어요.”
“태주가 등판한 순간 이상 이미 관심은 예고된 것이지.”
차용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태주가 이미 증인으로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어. 다들 알잖아. 태주는 한번 마음먹은 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그 뜻을 꺾지 않아.”
“그렇지만….”
“10여 년 전 부모님을 잃은 사건의 범인이 특정되고, 마침내 그 죄를 단죄할 기회야. 태주가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그래야 앞으로의 스케줄도 후련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겠지.”
차용석의 말에서 태주가 고집을 꺾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한 직원들.
김 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겠습니다. 태주 씨 고집은 다 이유가 있겠죠. 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럼 미국 일정으로 넘어갈게.”
차용석이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년 초 즈음에 태주가 미국으로 출국할 건데. 제일 먼저 참석하는 건 1월 3일경 LA에서 개최되는 베일릭스 신년 간담회. 거기서 태주는 영화 ‘드림랜드’를 본격 소개하게 될 거야.”
“해당 스케줄에는 옥장파 감독, 설채빈 씨, 시진영 씨도 함께하는 거죠?”
“그렇지.”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는 LA에 계속 체류하면서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할 거고. 중간에 뉴욕에서 ‘웜데드’ 드라마 시사회 일정도 있어.”
“특히 골든글로브 측 결과가 기대됩니다. 거기서 수상한다면 아카데미에서 승산 있는 건 확실하니까요.”
“뭐, 섣부른 추측은 하지 말자고.”
기대에 가득 찬 직원들을 보던 차용석이 눈을 찡긋했다.
“물론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 * *
차갑지만 화창한 12월의 어느 오후.
BS 백화점 앞에선 드라마 ‘굿맨’ 출연진들이 앉아 사인회 중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바글거리며 모인 이유.
드라마 ‘굿맨’이 완결을 하루 남긴 이때, 시청률이 20%를 넘겼다.
최근 높다는 시청률들이 10%를 기준으로 하는 이때, 시청률 20%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생 방송국인 KTS에서 방송된, 그것도 작가의 입봉작인 드라마 ‘굿맨’은 대성공이었다.
BS 백화점이 마련한 드라마 ‘굿맨’의 공약 실천 자리도 대성했다.
백화점과 드라마를 둘 다 홍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라고나 할까.
사인회에 임하는 배우들도 팬들의 환호에 그 어느 때보다도 표정이 밝았다.
한국에서 오랜만에 사인회 스케줄에 임하는 태주는 여러 팬이 건네는 선물로 뒤덮였다.
“오빠, 이번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할 정말 인상 깊었어요. 이렇게 다정한 얼굴에서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연기가 나와요?”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사인을 마친 태주에게 팬이 수줍게 선물을 건넸다.
코팅된 단풍잎이었다.
“오빠 책 읽는 거 좋아하신다고 해서 준비했어요. 이거 책갈피로 쓰세요.”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팬을 보낸 태주가 빨간 단풍잎을 살피는 그때.
그의 뒤에서 윤수안이 톡톡, 두드렸다.
“태주 씨, 이거.”
윤수안이 슬쩍 쥐여준 건 코팅된 네잎클로버.
멋쩍은 듯 그녀가 웃자 양 볼에 깊게 보조개가 패었다.
“예전에 보던 책에서 발견한 건데, 태주 씨 생각나서 주려고요.”
“수안 씨 가지시죠. 저는 뭐, 이미 행운의 토템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행운의 토템? 뭔데요 그게?”
주변을 살피던 태주가 슬쩍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수안 씨, 라고 하면 너무 속보이겠죠?”
“…네?”
“그림자 무사에서 윤수안 씨 만난 이후에, 일이 다 술술 잘 풀렸잖아요. 흐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태주는 윤수안의 얼빠진 얼굴을 보더니, 그녀의 손에서 코팅된 네 잎 클로버를 가져와 주머니에 넣었다.
“행운의 여신이 제게 준 행운의 네잎클로버니까, 잘 간직할게요. 정말 고마워요.”
그런 모습을 보던 태주의 엄마는 옆에서 이중협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저 여자애가?] [눈빛을 보시면 아시잖아요.]이중협은 슬쩍 중년의 여인에게 물어보았다.
[저번에 태주가 아버님과 만났을 때, 이런 사실들을 다 밝혔었는데. 혹시… 태주 아버님과는 만나지 않으셨나요?] [만나지 못해서 들은 바가 없어요.]그 말에 이중협은 의심스러운 눈을 치켜떴다.
[송혜진 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여태껏 대장 귀신을 하면서 수많은 귀신을 보았지만. 송혜진 씨처럼 기척이 없는 귀신은 처음 봅니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맞아요.]송혜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 갑자기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염라대왕 앞에까지 갔다가 아들을 보고 싶다는 소원 하나로 다시 이 세상에 숨어들어온 거거든요.] [그래서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건가요?] [그저 아들이 커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태주를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가까이서 보고 싶더라고요.]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이중협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대장 귀신으로서 그동안 수많은 귀신을 성불시키며, 알게 된 것 중 하나.
모든 귀신은 귀기를 흘리기 때문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머지않아 발각돼 잡혀갈 것이다.
게다가 이승을 떠나야 하는 순리를 거스르고 이곳에 있는 거라면, 언젠가는 그 업보를 받기 마련이다.
이중협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듯 송혜진에게 말했다.
[분명 들킬 겁니다. 염라대왕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만약 잡히면, 저승에서 무단 이탈한 그 죄는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모르겠어요, 거기까지는. 다만, 엄마로서 태주 곁을 좀 더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에요.]송혜진이 간절하게 간청했다.
[그러니까 대장 귀신님, 제발 제가 태주 곁에서 성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그 말에 이중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에게 절실하게 매달리는 송혜진은, 그 어떤 귀신보다도 애절하고 간절하게 보였기 때문.
* * *
그날 오후.
사인회를 마친 태주는 회사로 돌아와 1층 대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영화 ‘드림랜드’ 편집 시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온 태주에게 옥장파 감독이 반가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태주 씨, 어서 와요. 드디어 오늘 우리 영화를 배우들에게 공개한다고 생각하니 떨리네요.”
“제가 더 떨립니다.”
태주는 자리에 앉아 쿵쿵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재밌게 촬영했었던 만큼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했다.
“스태프들은 이미 영화 편집본 봤는데, 다들 반응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시진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태주에게 말했다.
“그래서 더 기대 중이에요. 스태프들 반응이 진짜일 때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일단 감독님 반응이 저렇게 좋으니,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전 너무 긴장되는데.”
설채빈의 말에 태주가 피식 웃었다.
영화 편집본을 보기 전 긴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꼭 데뷔 초 자신의 모습 같아서였다.
“긴장된다는 건 네가 이 작품에 기대감이 있다는 거지. 그런데 걱정하지 마. 우리 작품 분명 좋게 나왔을 테니까.”
그때, 옥장파 감독이 무대 위로 올랐다.
“오늘 시사회 전,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희 작품, 베일릭스에서 내년 2월 즈음 공개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옥장파는 태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1월 3일에 열릴 베일릭스 신년 간담회. 그때 저희 영화가 전 세계에 첫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