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2
502화
태주와 엄마 (3)
“베일릭스 간담회에서 내년에 공개한다고요?”
“우리 영화, 베일릭스에서 공개하는 건 알았는데. 간담회에서 공개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근데 내년에 열리는 신년 간담회 그거. 한국 작품만이 아니라, 전 세계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흥분된 소리.
옥장파 감독은 옆에 있던 차용석 대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차용석은 태주를 마주 보며 입을 뗐다.
“맞습니다. 내년 LA에서 열리는 베일릭스 간담회는 비단 한국 작품들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런칭할 기대작들을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희 작품이 그중 하나로 선정된 거고요.”
“태주 씨, 작년에 ‘데스 게임’으로 거기 가봐서 분위기 알죠?”
옆에서 시진영이 슬쩍 물어왔다.
“거기 어때요? 전 세계 작품이 모이는 만큼 분위기는 제법 좋을 것 같은데요.”
“분위기 장난 아니죠. 베일릭스에서 기대받는 신작들로만 간담회를 구성하니까요. 그러니 이번에 저희 작품, 여러모로 기대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거 같아요.”
“자자, 서론은 이만하고. 얼른 출연 배우분들께 저희 편집본을 보여드리죠.”
한껏 흥분한 옥장파 감독의 손짓에, 대회의실의 불이 꺼졌다.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것도 잠시.
눈앞의 스크린에 팟, 하고 영상이 켜졌다.
[우리 아들이 출연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다.]태주가 엄마를 힐끗 쳐다보니, 그녀는 자신을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우리 태주, 장해.]괜히 멋쩍어진 태주가 툴툴거렸다.
‘아직 영화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일단 다 보시고 말씀하세요.’
[호호, 우리 아들 부끄러워하네.]송혜진은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활기찬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 ‘드림랜드’였다.
* * *
베일릭스 한국 지부.
여러 명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이곳에서 박숭원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퓨처 스튜디오 측에서 보내준 ‘드림랜드’ 편집본.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 직원들이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제가 옥장파 감독이었다면, 스크린에서 한번 붙어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재밌더라고요. 플롯과 연출, 연기력 모두 합이 딱딱 들어맞아 스킵할 구간이 없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 오락성 영화로 치부되기에는 아깝습니다. 정말 완성도도 높고, 일단 재밌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우리 쪽으로 영입한 겁니다.”
본부장이 턱을 높이 치켜들며 말했다.
“언제까지 ‘베일릭스 영화’하면 시간 때우기용이라고만 생각하게 둘 겁니까?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줘야죠.”
“그럼….”
기대에 찬 직원들을 둘러본 본부장이 선언했다.
“내년 초 LA 베일릭스 본사에서 열리는 신년 간담회 말입니다. 한국 공개 대표작으로 ‘드림랜드’가 선정됐습니다.”
“그럼 옥장파 감독과 배우들을 데려가는 겁니까?”
“네, 주연 배우들 모두 함께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한태주 씨가 그중 제일 임팩트 있겠지만요.”
“작년에 ‘데스 게임’으로 베일릭스 온라인 간담회 참석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잘할 겁니다.”
“어쩌면 옥장파 감독보다도 태주 씨가 더 잘 이끌지도 모르죠. 하하!”
본부장은 그때가 기다려진다는 듯 크게 웃어댔다.
“솔직히 본사에서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는데,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 * *
한편, 타자 치는 소리로 가득한 이곳, 스타뉴스 본국.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던 홍은지와 우성림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주 화요일에 한태주 씨 영화 제작보고회 일정 알지? 너는 카메라 들고 나 따라와라.”
“이번에는 저 혼자서 가는 줄 알았는데요?”
“국장님이 내가 한태주 전담 기자라는 걸 아신 거지. 성림이 너 이번만큼은 내 보조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홍은지가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그럼 내년 초에 태주 씨 영화가 베일릭스에서 개봉하는 건가요?”
“그렇지. 그런데 하나 변수가 있기는 하더라. 내년에 김결 주연 영화도 개봉하는 거 알아?”
“아, 그거 제목이 ‘18번가 살인사건’이었던 가요? 스릴러 영화였죠, 아마?”
우성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어차피 그건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영화잖아요. 태주 씨 영화는 베일릭스에서 단독 오픈하는 영화고요.”
“그래도 둘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면, 분명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
“하나는 스크린 영화, 하나는 OTT 영화인데도요?”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 건, ‘드림랜드’의 장르야.”
홍은지가 집중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뮤지컬 영화가 좀 생소하잖아. 미국하고는 다르게 그동안 퀄리티가 좀… 허접하기도 했고.”
“그럼 의도적으로 태주 씨 영화가 공개되는 시기에 맞춰 ‘18번가 살인사건’을 공개한다는 뜻인가요? 전략적으로 한태주 주연 영화랑 붙어보려고요? 굳이 그러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네요.”
우성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무리 이번에 한태주가 뮤지컬 영화를 택했다고 해도, 이미 보증된 흥행 배우잖아요. ‘광대’, ‘탈출’, ‘나의 미래’ 등등. 찍는 영화마다 다 성공한.”
“역사 영화, 스릴러로 다들 한국에서 선호하는 장르였잖아. 게다가 그것들은 한태주 단독 주연이라기보다는, 옆에서 같이 출연한 배우들이 좋았지.”
홍은지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탈출’에서는 이선우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었고. ‘나의 미래’에서는 디에고 크루즈라는 임팩트 강한 할리우드 대배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태주 씨도 연기 잘했잖아요. 주연으로서 중심도 잘 잡았고.”
“물론 한태주 씨가 연기를 잘한 건 모두가 인정해. 그런데 저번 영화들에서는 같이 출연한 배우들이 무게감 있고 연기력 방면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던 반면. 이번 영화는 제일 큰 최대어가 한태주란 말이지.”
“하긴, 이번에 한태주가 같이 연기한 배우들이 한 명은 아이돌, 한 명은 개그맨이니. 그닥 출연진이 강력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네요.”
“그래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실력파라고 하니, 연기력은 믿을 수 있겠지.”
“그건 이번 제작발표회에서 알 수 있겠군요.”
우성림이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기대되긴 해요. ‘드림랜드’, 한태주 씨가 처음 하는 뮤지컬 영화잖아요.”
“그런데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취재해야 할 게 있지.”
씩 웃던 홍은지가 우성림을 마주 보았다.
“오늘 저녁에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말 파티 열리거든? 홍보팀에서 우리한테 취재 부탁했으니까, 가보자고. 태주 씨도 볼 겸.”
* *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말 파티가 열리는 날.
오늘은 한유경도 차용석의 초대로 그곳에 참석하기로 했다.
소속 연예인들과 그들이 초대한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파티.
하지만 정작 태주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직접 운전대를 잡은 태주가 도착한 곳은 연희동 인근의 주택가.
장미 덩굴로 둘러싸인 담벼락 앞에서 태주가 숨을 골랐다.
함께 따라온 엄마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나도 변한 데가 없어…. 똑같아.] [담벼락에 장미꽃이 있던 것도 똑같습니까?] [똑같아요. 그런데 태주야, 오늘은 여기 왜 온 거니?]‘외삼촌의 초대를 받아서요.’
태주가 꾹, 초인종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송서진이 뛰쳐나왔다.
편안한 일상복을 입은 그는 서둘러 태주를 안으로 들였다.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했구나.”
“아닙니다. 저도 엄마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집이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그래, 네 엄마가 쓰던 방은 그대로 보존해 두었단다.”
집으로 들어간 태주는 엄마를 힐끗거렸다.
엄마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태주야, 너 외삼촌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니?]‘얼마 전부터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어요. 엄마의 과거가.’
태주는 미처 말하지 못했다.
엄마의 과거를 알아야, 엄마가 이승을 떠도는 한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어머, 태주 씨구나!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안녕하세요, 저….”
동글동글한 얼굴에 순한 인상인 송서진의 부인이 태주를 반갑게 맞이했다.
“외숙모라고 불러주세요. 아니면 아랑 씨라고 불러주면 더 좋고요! 호호.”
“여보. 우선 혜진이 방부터 보여줍시다.”
송서진은 태주를 2층의 한 자그마한 방으로 안내했다.
핑크색 벽지로 도배된 방은 제법 아기자기했다.
“예전에 네 엄마가 쓰던 방이란다. 천천히 둘러보고 나오너라. 갖고 싶은 게 있다면 가지고 나와도 좋고.”
태주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 책장, 침대 모두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재질인 것이 눈에 띄었다.
책장 군데군데 놓여 있는 도자기 인형은 눈동자에 별이 박힌 듯 반짝거렸다.
어느덧 태주 옆에서 함께 구경하던 엄마가 추억에 젖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거 진짜 자수정을 눈에 박은 거란다.] [말도 안 돼. 인형에 보석을?]‘정말요?’
[오빠 말로는 그렇대.]태주가 인형에 관심을 보이자 엄마가 피식 웃었다.
[오빠가 나한테 잘해주기는 했어. 항상 저런 비싼 물건들을 사 주었지.]‘물질적으로 부족한 삶은 아니셨나 보네요.’
[맞아.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 모든 게 다 갖춰줬는데, 오빠는 날 위해서 모든 것 마련했다고 하는데. 정작 난 행복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미국으로 도피한 걸지도 몰라.]엄마는 태주를 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너희 아빠를 만나서, 우리 태주를 만나서 엄마 너무나도 행복했어.]‘엄마.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태주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성불하는 게 목표죠?’
그 말에 엄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왜 그걸….]‘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서요. 제가 지금까지 중협이 형이랑 다니면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귀신들은 다들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한이 있고, 그 한을 이루기 위해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거였어요. 그런데 엄마는….’
태주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엄마를 마주했다.
‘저랑 있으면서도 항상 행복해 보여요. 뭘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게 정상인가 해서요.’
[태주야. 엄마는 널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래서 여태껏 숨어지내며 널 지켜만 봤던 거야. 그런데 이제야 나타난 건….]그때 쾅, 하고 머리가 울리는 우렁찬 굉음이 들리고.
그러고는 눈앞에 뭉게뭉게 피어난 검은 구름으로 시야가 가려졌다
[태주야, 내 옆에 꼭 붙어있어!]이중협이 태주의 곁에서 굳건한 목소리를 내던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차려입은 남자가 태주의 엄마를 낚아챘다.
[12년 전 저승으로 왔어야 할 귀신인 네가, 겨우 도망친 곳이 자신의 체취가 가득 묻은 이곳이더냐.]엄마를 낚아챈 젊은 남자에게서 붉은색 귀기가 흘러나오는 이때.
그의 손에 잡힌 엄마가 축, 늘어지자 태주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곧장 남자에게 돌진해 엄마를 되찾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중협이 기겁하며 자신의 힘을 사용해 태주를 막았다.
‘형, 놔줘요! 저 남자가 엄마를 데려가려고 하잖아요!’
[저 남자가 누군지는 알고 이러는 거야?]남자의 붉은 눈이 태주에게 내려앉자, 이중협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태주를 감싸 안았다.
[저 남자, 염라대왕이라고!]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