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4
504화
태주와 엄마 (5)
* * *
제작발표회가 얼마 안 남은 시각.
대기실에서 가장 긴장하는 사람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아, 떨려 미쳐버리겠네.”
설채빈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맞잡으며 중얼거렸다.
뜻밖의 모습에 그녀의 매니저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데뷔 쇼케이스 때도 이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았잖아, 채빈아.”
“그때는 그냥 ‘세상아 덤벼라!’ 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세상아 날 좀 봐줄래?’ 이런 느낌이라고요.”
발을 동동 구르던 설채빈이 덧붙였다.
“아, 예전에 드라마도 했는데 왜 이렇게 긴장되지? 확실히 영화라 느낌이 달라서 그런가?”
“채빈아, 이제 막 배우 경력 쌓기 시작한 나도 지금 긴장을 안 하잖냐. 맘을 편히 먹어.”
한때는 유명한 개그맨, 지금은 배우로서 시진영이 첫선을 보이는 지금.
그런 그를 본 장진혁이 풉, 웃음을 삼켰다.
“지금 누구보다 긴장한 게 누구인데.”
“뭐라고?”
“형이 채빈 씨한테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 않아? 차라리 태주 씨가 그런 말 했으면 몰라.”
“태주 씨도 지금 긴장 엄청나게 한 것 같던데?”
그때, 화장실을 다녀온 태주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런 그에게 장진혁이 걱정스러운 듯 다가갔다.
“속이 안 좋으십니까? 소화제라도 드릴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마치 속이 안 좋아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차용석을 보는 장진혁의 눈빛.
태주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괜찮습니다. 아까 청심환도 먹었고, 이제 속이 진정된 것 같습니다.”
[뭘 그렇게 긴장하냐. 너 상 받을 때도 이렇게까지 긴장한 적 없었잖아?]궁금한 듯 물어오는 이중협의 질문에 태주가 옆에 있던 엄마를 힐끗했다.
‘엄마 앞에서 제 작품 발표회 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이왕이면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단 말이에요.’
[으이그, 귀여운 녀석. 네 어머니는 네가 뭘 하든 좋아하실걸. 안 그렇습니까, 어머님?]송혜진은 태주를 보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렇지만. 솔직히 이번 영화, 내심 기대하고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거든요, 이런 청춘물.]설렘과 긴장감 속 태주가 다른 배우들과 함께 대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베일릭스 선독점 작품인 만큼, 오늘 제작발표회는 베일릭스 측이 담당했다.
오늘 사회자는 베일릭스 코리아 본부장, 박숭원.
몸집이 큰 그가 직접 ‘드림랜드’의 발표회 사회를 맡는다는 게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베일릭스 본사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다는 건가?”
예리한 눈치를 지닌 기자들은 벌써부터 기사의 초안을 잡기 시작했다.
* * *
모두의 기대 속 시작된 영화 ‘드림랜드’ 제작발표회.
단상에 옥장파 감독, 태주, 설채빈, 시진영 순으로 앉아있는 가운데.
영화 속 몇몇 장면들을 편집한 짧은 영상을 다 함께 감상했다.
기대와 의심이 뒤섞여 있던 기자들의 눈에 영화가 가득 담긴 이때.
그들은 초안으로 잡아둔 기사의 내용을 채우기 바빴다.
[야, 기자들도 이 영화 괜찮게 봤나 봐.]기자들 자리를 한 바퀴 돌고 온 이중협이 신이 나서 말했다.
[기사 키워드를 보니까 청춘의 부활, 추억 자극, 재미만땅, 뭐 이런 게 있더라.] [나도 재밌더라, 태주야.]송혜진이 태주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예전에 너희 아빠랑 연애하던 때가 생각도 나고.]나쁘지 않은 반응에 태주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 멀리 서 있던 차용석도 긴장감이 풀린 듯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저희 베일릭스에서 퓨처 스튜디오가 제작한 첫 번째 영화를 배급하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박숭원 본부장도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 영화는 비단 베일릭스 한국 지사뿐만이 아니라, 본사에서도 제법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숭원의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가 대강당을 울렸다.
“그 일례로 이번 영화, 내년 1월 미국 본사에서 열리는 베일릭스 신년 간담회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될 겁니다. 기대되는 신작 10 작품 중 하나로 당당하게 뽑혔거든요.”
“전 세계를 통틀어 내년에 런칭 예정인 작품 중 고른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국, 미국, 유럽, 등을 통틀어 총 드라마 5편, 영화 5편을 골랐는데. 그중 하나로 저희 ‘드림랜드’가 선정되었습니다. 내년 1월 3일, LA에서 열릴 베일릭스 신년 간담회도 많은 관심 가져 주십시오.”
“그럼 ‘드림랜드’의 베일릭스 공개 예정일은 언제인가요?”
“아마 내년 간담회 반응을 보고 좀 더 확실하게 픽스될 것 같지만. 내년 2~3월경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유튜브에 영화 예고편이 뜰 텐데, 참고 바랍니다.”
기자들은 재빨리 박숭원의 말을 옮겨 적기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주연배우 한태주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열렬했다.
“솔직히 한태주 씨가 영화 ‘탈출’로 대성공을 거두고 차기작을 드라마 ‘굿맨’과 영화 ‘드림랜드’로 선택했을 때. 다들 모험하는 거라며 걱정스러운 시선이 다분했던 것 아시죠?”
“압니다.”
“지금은 드라마 ‘굿맨’이 파격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영화 ‘드림랜드’도 여러모로 기대됩니다만. 이 작품들을 고를 당시에는 한태주 씨만 납득되는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기준에 의한 거였습니까?”
마이크를 쥔 태주가 눈을 반짝거렸다.
“늘 말했듯이, 저는 내용이 재밌다고 확신하면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다른 이들보다도 본인의 선구안을 믿는 거군요?”
“여태껏 그래왔습니다. 제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 작품은 몰입하기가 힘들어서, 가능한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을 하려는 편입니다. 그리고….”
태주가 기자들을 쭉 훑으며 능글맞게 덧붙였다.
“제 선구안, 그렇게 나쁘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 말에 기자들이 부인할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 * *
얼마 후.
ATC 방송국의 테이블에 모여있는 여러 직원.
그중 한 명은 핸드폰으로 여러 기사를 보는 중이었다.
“한태주는 한국에서도 바쁘네요. 이번에 베일릭스 영화 찍은 거 제작발표회 했다는데요.”
“지금 한국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보는 거야? 정성 대단하네.”
“한태주는 저희 드라마 주연배우인걸요.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죠.”
국장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가 모인 이곳은 드라마 ‘웜 데드’의 홍보를 논하는 자리.
“1월 즈음에 태주 씨가 LA에 오면, 또 한 번 볼 수 있겠군요.”
“태주 씨, 베일릭스 행사 때문에 오는 거지?”
“아마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도 참석할 거예요. 영화 ‘나의 미래’가 수상작 후보에 포함돼 있거든요.”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겠어.”
국장이 기대되는 듯 두 손을 맞잡았다.
“한태주가 미국에 오는 타이밍에 맞춰, 우리도 드라마를 공개하자고.”
“그렇게 시기가 겹쳐도 괜찮을까요?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모두 굵직한 시상식이라서 시선이 분산될 텐데요.”
“안 괜찮을 이유가 없지 않나? 오히려 한태주한테 쏠린 엄청난 관심이 그가 출연한 드라마 ‘웜 데드’에도 이어질 수 있게 우리가 길을 터 줘야지.”
“그럼 내년 1월경에 마련된 제작발표회는 베일릭스 신년 간담회 바로 다음 날로 예정할까요?”
“그게 좋겠어.”
국장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안 그래도 베일릭스 신년 간담회 참석으로 미국이 들썩이고 있는 그때가 적기야.”
* * *
동 시각, 스타뉴스.
사무실에서 자기가 쓴 기사를 흐뭇하게 보던 홍은지가 씩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한태주 이름만 들어갔다 하면 이렇게 조회수가 높아지냐.”
“확실히 톱스타는 영향력이 다르다니까요.”
“진짜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홍은지가 고개를 흔들며 덧붙였다.
“한태주 씨랑 이곳 스타뉴스 건물에서 만났을 때 말이야. 그날 나는 내 인생을 바꿔줄 귀인을 만난 셈이야.”
“저도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우성림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소리를 죽였다.
“그런데 한태주 씨 작품적으로도 이렇게 호재가 많은데. 굳이 재판에 참석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 이번 주 금요일에 열리는 그 공판?”
홍은지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이중협 살인사건에도 방청객으로 참석했었는데, 자기가 당한 교통사고 사건에 참석 안 하겠어?”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태주 씨가 이번 재판에서 정의가 구현되는 걸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안달 난 것 같더라고.”
“하긴, 저 같아도 10여 년 전 당했던 교통사고가 사실은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정말 눈이 확 뒤집힐 것 같아요.”
우성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이걸 누가 일부러 낸 사건이라고 생각했겠어요? 그냥 비극적인 교통사고라고만 여겼죠.”
“그때 부모님도 모두 잃었으니, 한태주 씨 정말 분할 거야.”
“제가 한태주 씨였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몰라요. 솔직히 부형윤한테 돌 던져도 인정.”
“근데 이번에도 이중협 씨 사건 때만큼이나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릴 것 같지 않아요?”
“당연히 그렇겠지. 이번에도 부형윤이 계략을 꾸민 일이고, 특히나 톱스타 한태주 씨까지 엮인 사건이니까. 그리고….”
목소리를 한껏 낮춘 홍은지가 눈을 번쩍였다.
“이번에 경진일보 송서진 회장이 증인으로 나선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송서진이라면, 한태주 외삼촌이었다는 그분이요?”
“그래.”
홍은지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조카를 위해서 뭔가 해주려는 것 같아.”
“아니, 이 사건에 자기가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요?”
“어쨌든 한태주가 증인으로 출석하면서까지 이 재판에 임하는 건. 부형윤이 합당한 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잖아. 그런 의미에서 송서진은 한태주의 마지막 패가 될 거야.”
“마지막 패요?”
“재판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주 치명적이고도 강력한 패 말이야.”
* * *
그 주 금요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기자가 몰렸다.
일전에 이중협 살인사건을 다룬 그때처럼 오늘도 사회부, 연예부 가릴 것 없이 뒤섞여 있었다.
“근데 진짜 한태주가 증인으로 참석한대? 공인인데 정말 진술하러 법정에 온다고?”
“솔직히 직접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확신할 수는 없지. 연예인들이 정신과 감정서 제출하고 안 오는 게 한두 번인가.”
“맞아요, 요즘 작품도 잘 되고 있는데 굳이 재판까지 감행할 이유는 없죠.”
법원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참석하는 이들을 취재했다.
부형윤의 변호사 오대인, 검찰 측 강승민 검사 등등.
많은 이들이 지나쳐갔지만, 그들이 목놓아 기다리던 이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역시 한태주는 안 오는 모양이야.”
“요즘 베일릭스 영화도 그렇고, 광고도 주야장천 잘 찍고 있는데 굳이 증인으로 나설 이유가 없긴 하죠.”
“난 한태주가 오늘 아프다는 경위서 내고 안 온다는 것에 한 표.”
그때 저 멀리서 차량이 끼익, 서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곳에서 두 명의 남자가 내렸다.
기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이내 터지는 수많은 플래시.
기자들이 서로 경쟁하듯 들어 올린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담긴 이들은 태주와 송서진 회장이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