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5
505화
엄마의 성불 (1)
한태주와 송서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두 사람은 사실, 외삼촌과 조카 사이로 밝혀졌다.
그것도 송서진이 자진한 언론 인터뷰 때문에.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몰랐다.
둘이 어떤 이유로 여태껏 이 중대한 사실을 숨겼는지.
궁금한 것투성이인 기자들은, 나란히 걸어오는 한태주와 송서진을 에워쌌다.
“이렇게 함께 오신다는 건, 그동안 두 분 사이에 친분이 생겼다는 것을 방증하는 겁니까?”
“그런데 송서진 회장님께서 오늘 이곳 재판에는 웬일이십니까?”
“오늘 재판이 한태주 씨가 겪은 10여 년 전 교통사고를 다루기 때문에 회장님께서 외삼촌 자격으로 직접 나와주신 겁니까?”
여러 가지 질문이 물밀듯 쏟아지는 지금.
송서진이 모두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자리에 단순히 태주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제 아내는, 이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아내’라는 말에 기자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뒤에서 우창섭 변호사와 함께 나란히 걸어오는 송서진의 부인이 보였다.
누군가는 예상했을 수도, 또 누군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조합일 수도 있다.
한태주와 송서진 내외, 그리고 우창섭 변호사.
접점이 없을 거 같은 이들을 한데 모은 건 다름 아닌 ‘송혜진’이란 존재였다.
송혜진의 아들인 한태주, 송혜진의 오빠인 송서진, 그리고 송혜진의 돈독한 친구였던 우창섭.
이러한 기류를 눈치챈 기자 중 하나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반짝였다.
“세 분의 인연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재판에서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해야 할까요?”
“저희 부모님의 죽음으로 재판정에서 만나게 된 것을 필연이라고 한다면, 너무 잔인하네요.”
결의를 한껏 다진 태주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면. 저는 오늘 이분들의 도움을, 할 수 있는 한 전부 받을 생각입니다.”
* * *
동 시각, 스타뉴스 본국.
방금 취재기자를 통해 들어온 사진들을 보던 국장과 홍은지.
“아침 일찍부터 우 기자가 수고했네. 오늘 한태주 찍는다고 8시부터 재판정 앞에서 죽치고 있었던 거지?”
“9시까지 가도 되는데, 제일 맨 앞에서 태주 씨 찍을 거라면서 자진해서 가더라고요.”
“확실히 우 기자가 열정적이야. 특히 사진에 대해서는 이렇게 잘 찍는 사람도 없어. 무슨 영화 스틸샷 보는 것 같다니까.”
법정에 출석한 여러 사람의 사진을 보던 중,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단연 한태주.
오늘 증인으로 출석하는 그였지만 무대의 주인공 같았다.
탐이 난다는 듯 홍은지가 혀를 할짝거렸다.
“오늘 한태주 씨 직찍 죽인다. 살이 좀 빠진 것도 너무 매력적이야.”
“홍 기자, 자네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나?”
“아니, 말도 못 해요? 솔직히 검은 양복이 이렇게 예술적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이선우 이후로 처음이라고요.”
홍은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인터넷 보시면 한태주 씨가 입은 양복 어떤 브랜드냐고 묻는 사람들로 난리예요.”
“한태주가 입어서 멋있어 보이는 거겠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태주 홍보 효과는 법정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다고요.”
턱을 간질거리던 국장이 말을 이었다.
“근데 이번에 넥스트 엔터 홍보팀에서 좀 걱정하는 것 같더라. 그쪽하고 밥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 한태주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하니까. 배우 이미지에 괜히 다른 색이 입혀지는 거 아닌지 좀 염려하더라고. 아무래도 이번에 골든글로브, 베일릭스 신작 등등 호재만 가득하니까.”
“제 생각에는 오히려 이번 재판으로 인해 한태주 씨의 개인사가 더욱 주목받으면서, 앞으로 나올 작품들의 홍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낸 홍은지가 덧붙였다.
“얼마나 근사해요. 역경을 이겨낸 국민 아역, 국민 배우로 거듭나다!”
“오, 그거 어디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 가제랑 좀 비슷하네.”
“아, KTS ‘그것이 궁금하다’에서 한태주 취재하는 거요?”
“아니. 이번에 베일릭스 박숭원 본부장한테 들었는데. 그쪽에서도 한태주의 이번 재판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는 거야. 글쎄 한태주의 인생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지 뭔가.”
국장이 재밌다는 듯 손을 비볐다.
“솔직히 한태주 인생 자체가 한 편의 영화잖아. 아역으로 빛났던 유년 시절,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침체기,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낸 청소년기. 그리고 마음속 늘 사랑했던 연기로 부활한 청년기. 이거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어?”
* * *
그 시각 평소보다 한껏 뜨거워진 분위기의 법정.
공개 재판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오늘 증인으로 한태주가 출석한다고 해서 그런 걸까.
오늘따라 유독 다들 흥분한 것 같았다.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이 앞줄에서 강승민 검사와 이야기하던 태주를 힐끗거렸다.
“진짜로 왔네, 한태주. 오늘 정말 증언하려나 봐.”
“멘탈이 대단하긴 해. 아무리 10여 년 전 일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사건에 대해서 증언하다니.”
“그만큼 한태주가 강인한 사람이라는 거지. 어떻게든 부모님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한다고 했어.”
“하긴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운전하는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에요. 심지어 잘하잖아요. 듣기론 엄청나게 노력했다더라고요.”
모두가 가득 들어찬 재판정.
방청석에 앉은 기자들은 맨 앞줄에 앉은 태주를 눈여겨보면서도,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부형윤, 나올 수는 있대요? 솔직히 오늘 한태주 씨가 증인으로 참석한 것도 부형윤하고 진실 배틀 뜨기 위해서가 아니었나요?”
“솔직히 어렵지 않을까요? 저번에 이중협 관련 공판할 때, 갑자기 뒤로 넘어가더니 실어증에 걸렸다잖아요.”
“맞아요. 말도 못 하는 사람을 어떻게 법정에 세워요.”
“어머, 그거 예전에 한태주 씨가 사고 이후에 겪었던 증세랑 너무 비슷한데? 이거 기사로 쓸 걸 그랬어요.”
“에이, 인포트리 쪽에서 오전에 그런 뉘앙스로 기사 썼다가 한태주 소속사한테 인격모독으로 고소 먹은 거 몰라요? 지금 웬만해서는 한태주 섣불리 안 건드리는 게 좋아요.”
어느덧 기자들의 시선은 태주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부부에게 향했다.
“그런데 오늘 송서진 회장은 부인하고 왜 온 거래요?”
“이제 본격적으로 한태주 외삼촌으로 나설 모양인가 보죠.”
“경진일보 대표씩이나 되는 양반이 굳이요?”
“자, 정숙하세요.”
어느덧 판사들이 입장하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증인석에 앉아있던 태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옆에 있던 엄마가 유독 신경 쓰여서였다.
함께 이 사고를 겪었던 엄마, 그리고 이 사고로 죽은 엄마.
‘내가 꼭 엄마 억울함, 풀어줄게요.’
그런 태주의 마음을 아는 듯, 송혜진은 눈을 마주 깜빡였다.
* * *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치열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부형윤의 사주로 우창균이 천경실 차의 엑셀을 고장 냈고. 그로 인해 태주 가족이 타고 있던 차와 교통사고가 났다는 모두가 아는 이 사건에 대해서.
강승민 검사는 부인하기 바쁜 부형윤 측 인물들을 증거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가 제일 먼저 소환한 증인은 당시 교통사고를 수사한 형사였다.
“당시 부형윤 씨를 경찰서에 소환해 조사하신 이유가 뭡니까?”
“원래 살인사건의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배우자입니다. 그 논리에 입각해 저희는 천경실 씨의 남편인 부형윤 씨를 조사했지만. 그에게 알리바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연초선 씨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형사의 입에서 나온 ‘연초선’이란 이름.
곧이어 연초선이 증인석에 소환됐다.
그녀는 천경실이 살아있을 당시 부형윤과 바람을 피웠던, 당시 술집 마담이었던 사람이다.
“증인은 10여 년 전, 천경실 씨의 교통사고와 관련해 증인으로 소환되어 부형윤 씨의 행적을 증언한 바 있었죠. 맞습니까?”
“네? 제가 증언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겁먹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연초선의 모습에 강승민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증인은 부형윤 씨가 본인 명의 술집에 있었다고, 함께 밀실에서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정신을 찾은 듯 연초선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때 저랑 같이 술 마시고 있었어요. 술도 정확히 기억나요, 우리 검사장님은 위스키를 두 병째 마셨죠.”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증인과 술을 마셨다는 분이 동 시각, 사고 현장 근처에서 이렇게 우창균 씨랑 함께 있는 거죠?”
강승민은 재판정 앞에 커다란 사진을 띄웠다.
젊은 여자가 찍은 셀카 안, 부형윤과 우창균의 얼굴이 생생하게 보였다.
카페 밖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보며 기분 좋은 듯 웃는 모습이었다.
“이 사진은 10여 년 전, 교통사고가 났던 근처 카페 ‘메리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민형 씨가 제보한 사진입니다. 여기 위치를 보면 아시겠지만, 카페 메리언은 당시 교통사고가 난 사거리가 환히 보이는 장소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부형윤 씨와 우창균 씨가 교통사고가 난 시각에 이렇게 관람하듯 웃고 있다는 것은. 그들은 천경실 씨가 사고를 낼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동안 초조한 듯 가만히 있던 오대인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사진으로만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사진 속 인물이 부형윤, 우창균 씨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또 다른 증인들을 준비했습니다. 이혜미 씨, 송서진 씨, 증인석으로 나오세요.”
송서진 부부가 증인석에 나타나자, 모두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그들이 이 사건에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있을지, 감히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나와주신 건, 이혜미 씨가 10여 년 전 당시 천경실 씨가 교통사고를 낸 현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카페 메리언에 있었죠.”
송서진이 아내를 곁눈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는 당시 패닉 상태인 아내의 전화를 받았었고요. 그때 아내가 얼마나 흥분했던지, 몇 분이고 진정시켜줘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이혜미 씨께서 당시 카페 메리언에서 부형윤 씨와 우창균 씨를 봤다고 하셨을 때, 그 말을 믿으셨습니까?”
“솔직히 믿기지 않았죠. 그 둘이 카페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때, 이혜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본 건 부형윤 씨와 우창균 씨가 맞았어요. 제가 녹음한 통화 내용 가지고 있으시죠, 검사님?”
때마침 강승민은 판사의 허락을 얻어 해당 통화 녹음본을 틀었다.
-근데 여보, 아까 이 카페에서 부형윤 씨를 본 거 같아요. 응? 내가 잘못 봤을 거라고요? 그런데 분명히 그 남자였는걸요. 카페 바로 앞에서 난 교통사고를 보고 활짝 웃는 게 꼭 사이코 같았어서, 기억에 남아요.
-당신이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 설마 그 사람들이 카페에 왜 있겠어.
-자그마한 키에 볼에 있는 검은색 사마귀도 봤다고요. 게다가 옆에 우창균을 끼고 있었다니까요.
재판정을 쩌렁쩌렁 울리는 통화 녹음본에 분위기가 술렁였다.
방청석은 충격과 공포로, 태주는 기가 막혀서 팔짱을 끼었고. 우창균과 이야기를 나누던 오대인 변호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얼마 후, 오대인이 태주를 소환했다.
“한태주 씨는 증인석으로 나오세요.”
각오가 된 태주가 증인석에 앉자, 오대인의 날 선 질문이 날아왔다.
“당시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한태주 씨가 유일합니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지 않으십니까?”
“네. 맞은편에서 갑자기 들이받은 천경실 씨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분은 놀라기보다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거든요.”
“하지만 어린아이의 기억은 왜곡되기 쉬워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말에 오대인이 비열한 입꼬리를 올렸다.
“당시 한태주 씨는 어렸고, 사고 후유증도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부형윤 씨가 사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렇습니다. 만약 실제로 부형윤 씨가 일부러 살인을 사주했다면, 이렇게 엉성하게 끝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 인간이 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이중협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태주에게 돌린 순간.
그는 태주의 눈동자가 분노로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오대인은 태주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증인의 부모님만 돌아가시고 증인은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우발적인 사고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정하고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면, 이렇게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살려뒀겠습니까?”
투툭.
그 말에 간신히 붙들고 있던 태주의 인내심이 끊어졌고.
주변이 어쩔 새도 없이,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