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8
508화
엄마의 성불 (4)
* * *
약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다.
‘그것이 궁금하다’ 제작진은 정성스럽게 인터뷰에 응해준 태주에게 감사를 전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옆에서 함께했던 박인우는 태주를 신경 썼다.
프로그램 인터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10여 년 전의 아픈 기억을 꺼내는 건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태주는 아무런 내색도 안 하고, 침착하게 그 사건을 묘사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제작진이 오히려 안 됐다는 듯 훌쩍일 정도였다.
“그럼, 저희는 열심히 방송 만들겠습니다. 가편집본 나오면 제일 먼저 태주 씨한테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좋죠.”
태주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방송,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제작진이 떠난 후.
박인우는 담배를 피우러 잠시 떠나고, 태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게실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태주 너, 제법 의젓하다.]‘의젓하다고요?’
그를 대견하다는 듯 보던 이중협이 눈을 찡긋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그런데 너는… 어쩜 이렇게 담담하고 자신감 있게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냐?]그 말에 태주가 헛웃음을 지었다.
만약 자신이 떳떳하게 보였다면 그건 아마 옆에 있던 엄마 때문일 것이다.
엄마를 봐서라도 자신은 누구보다 당당해야 했다.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의 행복을 원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은 과거의 슬픔에 젖은 사람이 아닌, 행복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뭐, 실제로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많이 치유되기도 했고.
‘제가 과거 이야기에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지금 저는 누구보다 단단해요. 부모님을 잃었던 그 슬픔에서 벗어났다고요.’
태주가 옆에 있던 엄마를 힐끗했다.
그러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보이지 않아요, 엄마?’
그 말에 엄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때.
휴게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차용석이 보였다.
“여기 있었구나, 태주야. 한참 찾았네.”
“용석이 형.”
차용석은 태주의 곁에 냉큼 앉았다.
“‘그것이 궁금하다’ 측 인터뷰는 잘했어? 자극적인 질문은 최대한 피하라고 박 실장 붙여놓긴 했는데.”
“네. 안 그래도 인우 형이 그 부분을 걱정해서 곁에 꼭 붙어있었는데요. 제작진 분들이 하시는 질문에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들은 없었어요.”
그 말에 차용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것이 궁금하다’ 제작진 분들이 그런 부분에서는 안심이었지. 저번에 중협이 형 사건 제작할 때도 제법 매너 있더라고.”
“그런데 형, 무슨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어? 아, 맞다.”
차용석이 그제야 허벅지를 치며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내년 1월에 베일릭스 간담회를 시작으로 미국 스케줄 시작되는 건 알지? 베일릭스 측에서 해당 스케줄에 동행하면서 카메라로 찍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정확히 말하면 네 미국 여정을 취재하고 싶대.”
“저를요? 왜죠?”
“이번에 널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내놓으려나 보더라고. 솔직히 네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하긴 하잖아. 그리고 이번에 골든글로브랑 아카데미까지 도전하는 여정이 너무나도 기대되고.”
“흠…. 다들 기대가 많으시네요. 저는 도전하는 것에 이의를 두고, 수상하는 것까지는 아직 기대하지 않고 있는데.”
“맞지, 후보까지 올라간 게 어디냐! 그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한국 배우로서 이정표를 세운 셈이라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열변을 토하던 차용석.
이중협은 그런 차용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태주 아빠인 줄 알겠다니까요. 저만큼 태주를 아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진짜.]그 말에 태주의 엄마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태주 매니저였는데 회사 사장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우리 태주 이용해 먹는 사람은 아닌가 걱정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닌가 봐요. 정말 누구보다 우리 태주를 아껴주는 거 같아요.]“베일릭스 측에서 너를 특별히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냥 관찰카메라라고 생각하면 돼.”
그 말에 태주가 능글맞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요? 저는 인터뷰해드릴 의향도 다분히 있었는데. 이왕 다큐멘터리 찍는 거, 제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오, 승낙이야? 오케이, 그럼 그렇게 전한다?”
신이 난 차용석이 휴게실을 빠져나가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태주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늘 스케줄 어떻게 돼? 내가 모르는 일정 있는 건 아니지?”
“XJ 엔터테인먼트 연말 파티 참석하러 가요. 거기 형도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아, 맞다.”
이마를 탁, 친 차용석이 태주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내 정신 좀 봐. 아무튼, 그럼 그때 보자.”
차용석이 휴게실을 나가자, 태주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서경 부회장님이 직접 주최하시는 XJ 엔터 연말 파티라면서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저렇게 갑자기 까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던 거 아니야?]이중협이 의견을 냈다.
[원래 용석이가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 녀석이잖아.]‘아무리 그래도 저런 모습은 처음 봐요.’
어깨를 으쓱한 태주가 아무렇지 않은 듯 기지개를 켰다.
‘뭐, 별일 아니겠죠.’
* * *
그날 저녁. 1년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는 지금.
서울의 한 그랜드 호텔에서는 여러 셀럽으로 북적이는 파티가 열렸다.
XJ 엔터테인먼트에서 주최한 연말 파티다.
한서경 부회장이 직접 호스트로 나선 이번 파티는 더욱 활기가 넘쳤다.
게스트들 중에는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한서경 부회장과 연이 닿은 이들도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요연, 이선우, 윤지호 등등의 톱 연예인들은 물론.
경진일보 송서진 부부 등의 걸출한 인사들도 파티에 참석해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런데도 음식과 술이 곁들어진 분위기 좋은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시선은 곧 한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태주 씨는 왜 안 오지?”
“아까 샵에서 잠깐 봤었는데. 동료 연예인들 다 태워서 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혼자 오는 게 아니에요?”
그때, 파티장의 문이 벌컥 열리고 네 남자가 들어섰다.
훤칠한 외모를 뽐내는 임강현, 카리스마 있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추석대, 살짝 긴장한 듯한 시진영.
그리고 한태주가 중심에서 그들을 한 데 아우른 채 앞으로 걸어왔다.
늦은 등장이었지만 그들을 향한 관심만큼은 폭발적이었다.
“이야, 다들 멋있는데? 태주 씨 옆에 강현 씨 말고, 두 분도 유명한 사람 아니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한 명은 굿맨에 나왔던 추석대 씨, 또 다른 한 명은 개그맨 시진영 씨잖아. 이번에 태주 씨랑 같이 영화 ‘드림랜드’에 나온다는.”
“아, 맞다. 다들 넥스트 엔터 소속이었지?”
모두의 쏟아지는 관심 속에 태주가 동료들과 향한 곳은 한서경 부회장이 있는 곳.
태주는 호스트인 그녀와 반가운 악수를 나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말 파티여서, 최대한 멋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거든요.”
“어머,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나 보지?”
“하하,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야, 태주 넉살 많이 늘었네. 이제 그런 꿀 발린 말도 쉽게 하고.]이중협의 말에 한서경과 능글맞은 대화를 나누던 태주의 입에 멋쩍은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이쪽은 누구죠? 임강현 씨는 알아보겠는데,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네.”
“같은 회사 동료들이자, 저와 함께 작품을 한 배우분들입니다.”
태주가 차례로 추석대와 시진영을 소개하자, 그들은 긴장한 듯 고개를 바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회장님.”
“오늘 너무 멋있어서 못 알아봤네요. 추석대 씨는 태주 씨랑 드라마에서 대립한 악역이었고. 시진영 씨는 한때 날렸던 개그맨인데, 태주 씨랑 같이 영화 찍었죠? 안 그래도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차 대표가 칭찬을 많이 했거든요.”
그들에게 흥미로운 시선을 보낸 한서경이 태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 태주 씨 재밌는 사람이네. 다른 인재들을 나한테 소개해 주면, 태주 씨에 대한 내 관심이 줄어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
“보석은 어디서든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미 발굴된 보석이지만, 앞으로 더 빛을 낼 겁니다. 그러니 그 빛을 알아보는 건 부회장님의 몫 아니겠습니까.”
재치 있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태주의 말에 다른 이들은 감탄을, 한서경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내가 태주 씨를 싫어할 수가 없다니까!”
[우리 태주가 말발이 좋은 건 다 저 덕분이라니까요!]태주를 보던 송혜진도 재밌다는 듯 박수를 짝짝, 쳤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파티가 이어졌다.
모두가 기분 좋게 어울리는 이때.
어느덧 태주의 곁에는 송서진 부부가 자리했다.
“우리 조카가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직접 보니 그 위상이 더욱 대단하다는 걸 알았어.”
송서진이 못내 자랑스러운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더욱이 주변 배우들이 우리 태주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더군. 연기를 잘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사람이 좋다고.”
“과찬이십니다.”
“이런 겸손함까지. 역시 우리 혜진이를 많이 닮았어, 정말로….”
그리움에 젖은 송서진의 눈이 점점 촉촉해지는 이때.
송서진의 부인이 재밌다는 듯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어머, 저 둘이 사귀는 사이 맞나 봐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저런 대담한 스킨쉽을 할 리 없잖아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선 이선우와 심요연이 팔짱을 낀 채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중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선우는 원래 예전부터 연애할 때 숨기는 스타일이 아니었어. 그 점이 나랑은 좀 달랐지.]‘이곳에 연예부 기자들을 초대하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안 그럼 오늘 저 장면 파파라치 샷으로 찍혀서 열애설로 보도됐을 테니까요.’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혹시 윤수안이 뒤늦게라도 이곳에 왔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수정이도 오지 않았어. 이게 과연 우연인 걸까?]“누굴 그렇게 찾는 건가?”
“어머, 우리가 태주 씨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나 보네요. 태주 씨도 ‘님’을 만나러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눈치 빠른 부부의 시선을 태주가 어색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 태주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송서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
“뭐, 연애는 얼마든지 해. 근데 나중에 결혼 소식은 꼭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줘야 하네!”
* * *
자정이 다 되어서야 파티가 성황리에 끝났다.
많은 사람과 반갑게 작별 인사를 나눈 태주는 곧이어 차에 올라탔다.
차용석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먼저 돌아간 지 오래.
태주는 박인우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얼마 후, 아파트에 도착하자 박인우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오늘 밤은 푹 쉬어라. 내일 LA행 저녁 비행기니까 짐은 내일 싸고.”
“오케이. 조심히 가.”
“그럼, 내일 보자.”
박인우에게 인사한 태주가 천천히 집으로 올라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을 확인하곤 태주가 기겁했다.
“으악, 고모한테 혼나겠다. 연락도 없이 너무 늦게 들어왔다고.”
[에이, 네가 그럴 군번은 아니잖아. 그리곤 오늘처럼 XJ 연말 파티 있는 날에는 고모도 이해해 줄 거야.]집에 들어가니 너무나도 조용했다.
어두컴컴한 집안.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태주는 고요한 주변을 살폈다.
“혹시 용석이 형 집에 다들 놀러 간 건가?”
송혜진까지 걱정스러운 듯 한마디를 하자 태주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연말이라 다들 용석이 형 집에 갔나 봐요. 이제 태희랑 고모랑 용석이 형이랑, 원래 식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더라고요.’
물론 그 안에 내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약간은 섭섭했다.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단추를 끄르는 그때.
불이 번쩍, 켜졌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