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09
509화
엄마의 성불 (5)
“서프라이즈!”
차용석, 한유경, 그리고 케이크를 들고 나타난 태희까지 한데 어우러진 합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태주는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불이 환하게 켜졌다.
“오빠, 여기 촛불 꺼야 해!”
핑크색으로 화려하게 장식이 된 케이크를 들고 나타난 태희가 야무진 목소리를 냈다.
케이크에는 커다란 초가 두 개 꽂혀 있었다.
“오빠의 만수무강과 앞으로의 성공을 기원하는 우리 가족의 바람을 담은 케이크야. 꼭 한 번에 다 불어야 해, 알았지?”
여러 소망을 가득 담아 태주가 후, 하고 힘찬 바람을 불었다.
그리고 촛불이 단번에 꺼진 순간.
“와!”
모두가 기뻐하는 목소리로 집이 쩌렁쩌렁 울렸다.
태주는 은근한 감정으로 눈이 젖어 들었다.
역시 가족이 반겨주는 집이 그립고 좋았던 걸까.
약간은 씁쓸했던 태주의 마음이 서서히 따뜻함으로 물들던 그때.
차용석이 자랑스럽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태주야, 올해 한국에서 가족끼리 이렇게 오붓하게 보내는 것도 마지막 아니냐. 이제 곧 미국 스케줄 때문에 출국해야 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한번 마련해 봤다. 어때요, 유경 씨. 나 잘했죠?”
“이번에는 인정해 주죠.”
한유경이 새초롬한 눈을 장난스럽게 깜빡였다.
“태희랑 나도 이런 깜짝 이벤트는 해준 적 없거든요. 태주야, 여기 용석 씨가 해놓은 장식들도 좀 봐봐.”
상기된 표정의 한유경이 태주의 손을 잡아끌었다.
벽에 가득 붙은 풍선에 써진 글씨.
아까는 어두워서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우리 태주, 정말 사랑해!
“용석 씨랑 우리가 고심해서 고른 문구야. 뭔가 연말을 기념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태주 네가 고생한 게 생각나더라고.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가족이 너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사랑한다는 거, 말해주고 싶었어.”
답을 할 수 없었다.
태주는 먹먹해진 기분에 입술만 달싹였다.
좋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미처 나오지 않았다.
가족의 사랑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뭉클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태주의 곁에 있던 태희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오빠…….”
한참을 망설이던 태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 이제 케이크 먹으면 안 돼? 저거 엄청 맛있어 보이던데.”
천진난만한 그 말에 태주도, 다른 사람들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본격적인 가족 파티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 *
자정이 넘어 시작된 파티.
태희는 케이크를 한 조각 먹고는 이내 졸린 지 곯아떨어졌다.
“아직 태희 성장기인가 봐요. 이 시간만 되면 꼭 저렇게 졸려 하네.”
태희를 재우고 나온 태주의 말에 한유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는 10시면 곯아떨어지는 애잖아. 근데 오늘은 너 파티 해준다고 지금까지 버틴 거야.”
“감동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다들.”
태주가 차용석과 한유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솔직히 좀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파티해 줘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아직 애구만, 우리 태주.”
차용석인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쫙 폈다.
“내가 매번 말하지만. 태주야, 혼자서 끙끙 앓지 마. 언제든 나의 이 드넓은 어깨에 기대. 알았지?”
“그럴까요?”
태주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냅다 차용석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형, 그런데 우리 집에서 오늘 자고 갈 거예요?”
“물론이지. 가족이 한집에서 자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냐?”
“뭐죠? 은근슬쩍 우리 가족에 끼려고 하는 건?”
“얌마, 섭섭하게 왜 그러냐. 나는 진즉에 가족 울타리에 들어간 줄 알았는데? 안 그래요, 유경 씨?”
한유경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마지막 관문인 태주까지 통과해야 진정한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리고 먼발치에서 이들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송혜진.
차용석과 한유경의 사랑을 듬뿍 받는 태주를 바라보던 그녀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많은 감정을 느끼는 듯한 송혜진에게 이중협이 슬며시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태주가 지금 정말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준 아가씨와 용석 씨한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요.]송혜진이 복잡한 눈가를 쓱 훔쳤다.
[아들 곁을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태주를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우리 태주 어디서 눈칫밥 얻어먹진 않을까, 부모도 없는데 어디서 속앓이하지는 않을까, 하고요. 의지할 데도 없는 아이라 매 순간 전전긍긍했죠.]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중협에게, 송혜진이 덧붙였다.
[그런데 그건 제 착각이었네요.] [착각이요?]끄덕.
송혜진이 차용석과 한유경의 품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태주를 보곤, 확신에 찬 고개를 끄덕였다.
[저 모습은 마치……. 예전의 우리 가족 보는 것 같아요.]복잡미묘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이윽고 흡족한 듯 눈가를 휘었다.
태주가 자신과 함께했던 과거처럼, 지금도 여러 사람에게서 그에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 * *
다음 날 오전.
태주는 후다닥 일어나 어딘가 갈 채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태주를 본 차용석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
“오늘 저녁 비행기잖아. 그런데 벌써 준비했어?”
“그전에 갈 곳이 있어서요.”
“갈 곳?”
그 말에 차용석이 태주에게 가까이 다가와 수상하다는 듯 위아래로 훑었다.
“너, 혹시 수안 씨 만나러 가는 거냐? 안 그래도 홍은지 기자한테 내가 들은 게 있는데….”
“아, 무슨 소리예요, 형. 저 오늘 이중협 선배님 납골묘 방문하러 가는 거라고요.”
“아…, 그래?”
한껏 긴장했던 차용석의 얼굴이 안도감으로 무너져내린 순간.
그는 씩 웃으며 태주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난 또. 아무튼 태주야,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 알지? 어떤 일이 터지든 내가 먼저 알고 있어야 대처가 빠르게 되는 법이야.”
“넵, 넵. 이제 저 다녀올게요. 이따가 회사에 잠깐 들릴 거니까 그때 봬요.”
코트에 목도리, 마스크로 중무장한 태주는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밤새 눈이 쌓였네.”
소복이 쌓인 함박눈을 밟으며 태주가 차에 타자.
그동안 잠자코 있던 이중협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내 납골묘는 왜 간다는 거냐? 너 저녁 비행기잖아, 오전에 편히 쉬어도 될 텐데.]‘어차피 우리 집이랑 거리도 가깝잖아요. 그리고 거기 간지 좀 되기도 했고요.’
태주는 이중협과 엄마를 힐끗거리며 애써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
이중협에게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
왠지 이번이 이중협과 함께 그의 납골묘에 가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는 그와 헤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그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모른 척 그 시기를 놓쳐 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그동안 이승에서 대장 귀신으로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이제는 편하게 성불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 지금, 그가 확신한 것은 단 하나.
이중협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낼 거라는 것.
[태주가 아무 이유 없이 뭘 하는 애는 아닌데.] [저도 압니다. 그래서 더욱….]의아한 표정을 짓던 이중협이 태주를 바라보았다.
그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승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시간의 모래시계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이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지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부르릉.
힘차게 시동이 걸린 차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 * *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이중협의 납골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태주는 캡모자를 쓴 채 차에서 내렸다.
품에는 꽃집에서 사 온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노란 장미꽃다발, 생전 이중협이 제일 좋아하던 것이다.
태주를 알아본 경비원이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안녕하셨어요.”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요? 조금 전에 어떤 연예인 분도 이중협 씨 납골묘 방문한다고 가시던데.”
그때, 이중협의 코끝에 누군가의 익숙한 체취가 스쳤다.
태주도 궁금해하며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이윽고 그들은 예상하며 기대했던 누군가를 발견했다.
이중협의 납골묘 앞에 놓여있던 노란 장미꽃다발.
그 앞에서 조용히 손을 모으고 서 있던 이는 염수정이었다.
“어?”
태주의 기척을 눈치챈 염수정이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친 둘은 반가우면서도 의아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어쩐 일로 왔니? 바쁠 텐데.”
“잠깐 짬 내서 왔어요. 미국에 중요한 일 때문에 가는 거라, 좋은 기운 좀 받아 가려고요.”
“그래, 이번에 중요한 일정 있다고 들었어.”
염수정은 새삼 놀랍다는 듯 태주를 보며 감탄했다.
“태주 너, 정말 진심이구나. 부모님 납골당도 아니고 중협이 오빠한테 오는 걸 보면.”
“뭔가 이곳에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직감이 맞았네요. 이렇게 선배님을 뵌 걸 보면요.”
어쩌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필연적으로 염수정과 이중협을 마주보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염수정을 보는 이중협의 눈빛은 더없이 열렬하게 빛났다.
“그런데 선배님께선 이곳에 자주 오세요?”
“나야 중협이 오빠 보러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게 일상이지. 그런데 오늘은 유독 오빠가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한번 와봤어.”
염수정은 묘 앞에 놓인 노란 꽃다발을 한 번 쓸었다.
“얼마 전에 오빠와 관련된 재판에 다녀왔었잖아. 그 후로 오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 항상 그리웠지만, 요즘은 정말 너무 보고 싶어.”
그녀의 얼굴에는 후회, 미안함을 포함해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미련은 놓아버려도 되는데.]걱정스러움이 가득한 이중협의 시선에 태주가 염수정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혹시 이중협 선배님한테 하고 싶으셨던 말씀 같은 거 없으세요?”
“…갑자기?”
“뭐, 이 자리에서 선배님이 듣고 계신다 생각하고, 한번 말씀해 보시죠. 저 이래 봬도 입 무겁습니다.”
태주의 제안에 염수정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걸 후배 앞에서 어떻게 얘기하니. 그것도 중협이 오빠 왕팬인 너 앞에서. 부끄럽게.”
염수정이 태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면 진심이 나올지도? 그러니까 나중에 술이나 한잔 마시자.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해.”
* * *
그날 저녁.
수많은 인파가 몰린 인천공항에 도착한 태주.
평소보다 몇 배는 복잡한 상황에 박인우가 태주에게 속삭였다.
“이게 다, 네가 오늘 오전에 염수정 씨랑 사진 찍혀서인 거 알지? 그러게 왜 단둘이 사진을 찍히냐?”
“내가 뭐 일부러 그랬나?”
태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카메라 앞에 하트 포즈를 취해 보였다.
“이중협 선배님한테 인사드리려 갔다가 염수정 선배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우리 둘 다 이중협 선배님을 좋아하니까,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야.”
“그럼 나도 데려가지. 그럼 이상한 오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지.”
“이선우랑 심요연도 사귀는 마당에 너랑 염수정 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썰도 있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구만.]이중협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밀자, 태주는 큽, 웃음을 터뜨렸다.
겨울의 싸늘한 날씨에 환하게 웃는 태주의 햇살 같은 미소에 또다시 플래시가 터졌고.
박인우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놔, 나만 답답하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날 테니까 걱정하지 마셔. 자, 길 건너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태주의 표정은 유난히도 밝았다.
결국 옆에서 박인우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별일도 아닌데 너무 오버한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미국에 가면 이 모든 루머에서 벗어나 평온한 스케줄을 이행할 수 있겠지.”
얼마 후, 미국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
그러나 태주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미국 LA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할리우드 소문의 중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