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10
510화
엄마의 성불 (6)
* * *
뉴욕에 위치한 AAA.
한태주의 미국 스케줄을 담당하는 이곳은 오전부터 걸려오는 전화로 무척이나 바빴다.
“데이빗 맥팔레인과 한태주 씨의 관계라뇨. 그들은 별다른 친분도 없는 사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식사한 적도 없습니다. 아니, 같은 호텔에 묵게 된 건 우연일 뿐이라니까요.”
“아침 식사를 한 번 같이 했다고 둘의 친분이 깊다는 건 억측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리고 이내 사무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언성이 높아지는 목소리.
“맥팔레인 씨의 성적 취향과 태주 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기서 더 걸고넘어진다면, 법정 소송도 불사할 생각입니다.”
쾅!
그때 문을 열고 회의실로 향한 AAA의 대표 알렉스 링크.
상기된 얼굴의 그가 소파에 털썩 앉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테이블에 올려진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기사.
미국 내 유명한 가십지, ‘썸띵즈’에서 내놓은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할리우드 원로 배우이자 부동의 톱배우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데이빗 맥팔레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한태주와 엮인 채 드러났다.
본지는 얼마 전 그들이 배우조합상에서 갈등하던 겉모습과는 달리. 호텔에서 다정하게 아침 식사를 하는 등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포착했다.
일전부터 데이빗 맥팔레인은 성 소수자로 의심받던바, 그의 전처인 올리비아 러셀은 할리우드 입성을 위한 위장 결혼이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데이빗 맥팔레인이 한태주에게 품은 마음이 과연 호감인지, 아니면 연정인지는.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통해 직접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기사 끝부분에 한태주와 데이빗이 마주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흐릿하게 담긴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마치 몰래 찍은 것처럼.
“썸띵즈 측에 연락은 해 봤어? 하필 한태주가 미국으로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러 오는 이 시점에, 이런 얼토당토않은 기사가 터지다니!”
씩씩거리던 알렉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도 저희가 썸띵즈 측에서 찍었다는 사진의 진위확인을 위해 넥스트 엔터 측에도 교차확인을 했는데요.”
직원이 빠르게 상황을 보고했다.
“한태주 씨가 맥팔레인 씨와 아침 식사를 함께한 건 사실이라 합니다. 다만 사적으로 만난 건 아니고. 배우조합상 시상식이 끝난 이후, 같은 호텔에 우연히 머물던 그들이 아침 식사 자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것뿐이랍니다.”
“묵는 호텔이 같았다? 그렇다고 데이빗 맥팔레인이 굳이 한태주랑 아침 식사를 함께할 친분이 있나?”
“넥스트 엔터 측 설명으로는, 데이빗 맥팔레인 씨가 먼저 같이 식사할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 뻣뻣한 사람이?”
“네. 함께 식사하면서 태주 씨를 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으로 선정한 이유 등등 여러 뜻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흠…. 맥팔레인 씨가 어지간히 한태주가 마음에 들었나 본데.”
머리를 긁적이던 알렉스가 고심에 찬 말을 덧붙였다.
“배우조합상 추후 인터뷰에서도 솔직히 인정하던걸? 한태주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번에 연기를 대하는 태도와 연기력이 훌륭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것보다도 너무 괘씸하네요. 어떻게 한태주 씨를 그런 루머와 엮어서 이런 싸구려 가십지에 오르내리게 할 수 있죠?”
“당장 썸띵즈에 연락해, 허위 보도로 고소하겠다고. 그리고, 한태주는 지금 어디 있지?”
“조만간 LA 공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우리 쪽 직원들이 배웅하러 나가 있지?”
“네. 그런데….”
걱정스러운 표정의 직원이 당황스러운 말을 덧붙였다.
“이미 LA 측 파파라치들이 빽빽하게 접근한 모양이더라고요. 아마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 * *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수많은 파파라치, 언론이 LA 공항에 진을 치고 있다.
오후쯤에 한태주가 도착한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안 사람들이 모여들자, 공항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혼돈의 카오스를 막는 중인 이때.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저 멀리 게이트 너머를 살폈다.
“그런데 그거 진짜예요? 맥팔레인이 한태주와 긴밀한 만남을 가졌다는 말이요.”
“둘이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래요? 하긴, 예전부터 맥팔레인이 그런 취향이라는 소문이 돌았었죠.”
“제가 보기엔 맥팔레인이 일방적으로 한태주한테 플러팅한 것 같던데요? 아침 식사한 것도 그런 일환이 아닌가 싶어요.”
“하긴, 한태주는 한국에 연인이 있다는 말도 있었잖아요. 그런 사람이 굳이 데이빗과 그런 식으로 엮일 일은 없겠죠.”
“그래도 XX 호텔에서 단둘이 찍힌 그 사진은, 확실히 의심스러워 보였어요. 항상 까칠했던 데이빗이 그렇게 다정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잖아요?”
여기저기서 가십거리로 불타오르는 그때, 게이트 문이 열렸다.
“저기 한태주 나온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람 중, 한태주가 우뚝 돋보였다.
* * *
주변에 온통 찰칵거리는 소리밖에 안 들리는 지금.
태주는 검은 선글라스를 위로 치켜올렸다.
“와, 사람들 진짜 많다.”
경호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인파를 뚫고 출구로 나가는 길.
주변에서 카메라를 든 채 바짝 쫓아오던 사람들이 그에게 누가 뭐랄 것 없이 물었다.
“한태주 씨. 데이빗 맥팔레인 씨와의 관계가 사실입니까?”
“뉴스에 난 기사, 인정하시는 건가요?”
일련의 의문스러운 질문들에 태주가 미처 답을 하기도 전.
어느새 공항 밖으로 나온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리무진에 탑승했다.
“안녕하세요, AAA LA 지사에서 근무 중인 에릭 데플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태주입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그들을 맞이한 직원에게 태주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혹시 할리우드에서 이상한 가십이 돌고 있습니까? 아까 공항에서 다들 그걸 묻더라고요.”
“아, 그게….”
그때, 옆에서 핸드폰으로 밀린 연락을 확인하던 박인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태주야, 큰일 났다. 너, 데이빗 맥팔레인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의심받고 있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얼토당토않은 얘기에 어이가 없어진 태주가 박인우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회사 측에서 정리해준 내용을 읽어보니, 그의 말대로 그런 내용의 가십 기사였다.
“같이 아침 식사한 걸로 이런 의심을 하는 거라고? 그때 데이빗과 나는 배우 대 배우로서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고. 진짜 할리우드 가십거리 수준하고는.”
화가 치민 태주와 맞은편에 있던 직원의 눈이 마주치자.
직원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회사 측에서 해결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쓰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일 좋은 방법은 맥팔레인이 선배로서 해명 인터뷰 같은 걸 해주는 건데. 아무래도 어렵겠죠?”
박인우의 질문에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 맥팔레인 씨와 접촉을 시도해 봤는데요. 지금 연락을 안 받으신다고 합니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이냐. 태주 너는 바람 잘 날이 없구나. 역시 톱스타라니까.] [우리 태주가 매력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글로벌적으로 인기가 있었다니!]주변이 정신없는 와중에, 이중협과 엄마가 던지는 유쾌한 말.
덕분에 태주의 표정이 약간은 풀린 가운데.
운전석에 앉은 운전기사가 라디오 소리를 크게 키웠다.
“이것 좀 들어보십시오. 지금 ‘애프터눈 쇼’에서 게스트로 나온 사람이….”
곧이어 라디오에서 나온 커다란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울렸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그동안 저희 쇼에는 로저 싱클레어, 미첼 커티스 등등 수많은 슈퍼스타가 출연해 주셨는데요. 오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러나 너무나도 임팩트가 대단한 분을 모셨습니다. 여러분, 데이빗 맥팔레인 씨를 즐겁게 맞이해 주십시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모두가 놀란 듯 라디오에 집중하는 가운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맥팔레인 씨, 가십지에 나온 것처럼 한태주 씨와 그런 친밀한 관계인가요?”
“그는 좋은 배우라 생각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데이빗의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한태주 씨는 믿음과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저와 관련돼 허무맹랑한 루머에 휩싸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호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저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눈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 그뿐입니다. 그리고….”
데이빗이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콧방귀를 뀌었다.
“이 자리를 빌려 밝힙니다. 한태주 씨는 제 비밀을 지켜준 믿음직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인데, 저랑 이런 식으로 엮여서 가십거리로 떠오르는 건 부당합니다.”
“비밀이라뇨?”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제가 가진 비밀 때문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차별받고, 이용당하고, 비난받아 왔습니다. 그로 인해 스스로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공개하고 앞으로의 제 삶을 나아가려 합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데이빗이 말을 이었다.
“저는 게이가 맞습니다. 이 사실을 전처였던 올리비아, 그리고 아마 한태주 씨도 눈치챘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저를 이해해주고, 또 이때까지 침묵해 줬죠. 그 둘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제 한태주 씨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맥팔레인의 폭탄선언에 모두가 얼이 빠진 가운데.
태주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이걸 이런 식으로 고백할 줄은 몰랐어요. 평생 비밀로 간직할 줄 알았거든요.’
[네가 자기랑 엮여서 괜한 소문에 휩싸이니까, 아마 미안해서 고백한 것 같다.]‘그게 더 미안하네요. 억지로 떠밀어서 하게 한 것 같잖아요.’
[그 고집불통 양반이 떠민다고 이런 고백을 할 인간이냐?]이중협이 어깨를 으쓱하면 태주를 바라보았다.
[고백할 결심은 진작에 섰을 거야. 다만, 타이밍이 지금에서야 온 것뿐이지.]“데이빗 맥팔레인 씨가 인터뷰에서 태주 씨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해명해준 셈이 되었군요. 회사 측에서도 이 사건이 일단락될 것 같다고 합니다. 태주 씨와 커플이라는 유언비어를 자신이 게이라는 걸 밝힘으로써 무마시키다니, 대범하고 대단하네요.”
직원의 말에 이어 박인우가 태주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동안 입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았어? 진짜 대단하다. 나 같으면 실수로라도 말했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입이 원체 무거워야지.”
“이번 일로 한태주 씨를 다시 본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맞은편 직원이 핸드폰을 두드리다 태주를 힐끗했다.
“연기력은 물론, 인성도 좋은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맥팔레인 씨의 이런 비밀까지 지키고 있었다니….”
“저한텐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무튼 태주 씨에 대한 업계의 평은 더욱 올라가겠군요.”
확신으로 반짝이는 직원의 눈이 태주와 마주쳤다.
“앞으로 있을 작품 간담회에도 더욱 많은 관심이 몰릴 겁니다.”
* * *
“이야, 한태주 이 친구. 사람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입이 무거운 줄은 몰랐네.”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를 보던 피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 전 터진 맥팔레인과 한태주 간의 기사가, 맥팔레인의 고백으로 인해 완전히 일단락되었다.
맥팔레인이 게이라는 고백만큼이나, 그것을 끝까지 숨겨준 한태주의 의리도 돋보인 덕분이다.
옆에 있던 직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할리우드 가십지에서 다시 한태주를 메인으로 다루고 있더라고요? 다들 한태주하고 맥팔레인하고 이런 식으로 엮였는지는 몰랐나 봐요.”
“정확히 말하면, 한태주를 비단 ‘연기 잘하는 배우’로만 생각하다가 이제는 ‘인성까지 대박인 배우’로 다시 보게 된 거지. 이런 유의 비밀은 지키기가 영 힘들잖아.”
드라마 ‘웜 데드’의 피디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언론에서의 관심이 우리한테는 이득이야.”
얼마 후면 ATC 방송국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드라마, ‘웜 데드’의 언론시사회가 열린다.
그곳에는 주연배우인 로저 싱클레어를 비롯해, 여러 관계자.
특히 ATC 방송국을 새롭게 인수한 로렌조 가르시아도 참석해서. ‘웜 데드’에 대한 기대감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예정이었다.
“아마 우리뿐 아니라 베일릭스도 열광할걸? 당장 신년 간담회가 내일이잖아.”
피디가 시선을 둔 달력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1월 3일.
바로 내일이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