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13
513화
마지막 인사 (2)
* *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이 한데 모여 있는 회의실.
“웜 데드 반응이 심상치 않네.”
한태주가 주연인 ‘웜 데드’의 시사회 반응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던 그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원래 2~3월에 런칭하기로 한 일정을 1월 말로 앞당긴 건가요? 그럼, 한국 일정도 그렇게 맞춰야겠네요.”
“그렇게 전달해줘, 송 대리.”
차용석은 바쁘게 날짜를 계산했다.
미국에서 ATC 채널과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웜 데드’가 전 세계 베일릭스에는 1시간 후 공개되기로 했다.
“한태주 효과를 톡톡히 보려는 심상이겠지. 골든글로브 직후에 런칭하는 걸 보면. 이제 골든글로브가 3일 정도 남았나?”
그들이 이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골든글로브는 한태주 주연의 영화 ‘나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
‘나의 미래’는 골든글로브 감독상, 남우주연상에 각각 후보로 낙점된 바 있다.
감독상에는 앤디 피셔, 앤드류 피셔 부자의 대결이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남우주연상에는 작년에 ‘블랙 피플’으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아드리엘 샤하와 ‘나의 미래’로 신드롬적 돌풍을 일으킨 한태주의 대결이 예상됐다.
“작년에 칸 영화제에서는 아드리엘 샤하의 압승이었죠. 그런데 골든글로브에서 이렇게 맞붙게 될 줄이야.”
“아마 골든글로브에서의 맞대결이 아카데미까지 이어지겠지.”
차용석은 얼마 전 ‘나의 미래’ 배급사, ‘레디’ 측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회상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은 상을 받는 게 배급사의 역량이 절대적이라 하더라고. 그런데 우리는 ‘레디’로 신생 배급사지만, 아드리엘 샤하 주연의 영화 ‘하프 문’의 배급사는 ‘해럴드 브라더스’니까.”
“거기 대표가 할리우드에서 힘깨나 쓴다는 제작자, 해럴드 블룸이잖아요.”
“그런즉슨, 우리도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지. 하지만 우리한테 히든카드가 있어~.”
차용석이 눈을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나의 미래’ 수상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거물급 인사, 마이크 링크가 우리 편이니까.”
그는 1970년대부터 제작자로 일하며 4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 그 중이 절반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향력 있는 인사다.
할리우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의 조력이 있다면 분명 수상에도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건 그렇고, 저희 영화가 작품상 후보까지 오르지 못한 건 좀 아쉽습니다.”
김 부장이 차용석에게 물었다.
“저희 뒤에 마이크 링크 씨가 있었음에도 영화의 가치가 평가 절하된 건가요?”
그 말에 차용석이 할 말이 많다는 듯 눈썹을 꿈틀댔다.
이미 흥행 면에서는 한국에서 800만을, 미국에선 700만을 넘는 등 인기를 입증한 영화 ‘나의 미래’.
특히나 평론가들 사이에서의 평도 좋았기에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오르지 못한 건 많은 이들의 의구심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다들 너무 실망하지 마. 내가 링크 씨한테 듣기론, 영화 ‘나의 미래’는 아카데미를 노리고 있는 작품이라 했거든.”
“그 말은….”
“골든글로브 측과 아카데미 측에서 딜을 한 거지. ‘나의 미래’는 아웃사이더 영화로 말이 많았잖아. 앤디 피셔라는 풋내기 영화감독, 한태주라는 외국인 주연배우, 그리고 스페인 배우 디에고 크루즈까지. 다들 어떻게 보면 할리우드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든 ‘나의 미래’는 분명 작년 한 해를 휩쓴 대세작이라 할 수 있지만. 골든글로브는 ‘미국 지역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 만큼, 미국 중심적인 영화에 상을 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아카데미는 달라.”
“맞습니다. 아카데미는 아무래도 골든글로브보다는 좀 더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려고 하니까요.”
“아카데미는 아무리 ‘나의 미래’가 할리우드의 비주류라 해도 그 기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겁니다.”
손깍지를 낀 차용석은 직원들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섣불리 실망할 필요 없다, 이 말이야. 그리고 잊지 않았지? 골든글로브에서 태주가 남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됐다는 걸.”
* * *
“링크 씨가 직접 이렇게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둑한 술집 안.
술 한 잔씩을 앞에 둔 중년의 남자들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이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제작자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는 백발의 노인.
“이쪽 업계에서는 진작에 은퇴하시고 지금은 퇴직 생활 즐기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시간이 남아 아들 일을 좀 도와주는 것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네.”
마이크 링크,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제작자이자 현재는 AAA의 고문인 그가 술을 시원스레 들이켰다.
“그리고 좋은 작품이 있는데,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직무 유기 아닌가.”
“그럼 이번 작품에 정말 자신이 있으시다는 거군요?”
자신 있다는 듯 미소 지은 채 술을 홀짝이는 마이크.
아무리 그가 할리우드에서 한때 날렸던 제작자라고 하나, 여기 있는 젊은 제작자 중 몇몇은 그의 자신감을 불신했다.
그러나 그동안 은퇴 후 한직에서 물러나 있던 마이크가 이렇게 앞에 나선 건 무척이나 오랜만.
그렇다 보니 그가 영화 ‘나의 미래’의 아카데미 여정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걸 경계했다.
할리우드에서 상을 타기 위해서는 작품성뿐만이 아니라 마케팅도 중요한 만큼.
마이크 같은 이름값 높은 제작자가 직접 발로 홍보를 뛰는 건 무척이나 효과가 높을 테니까.
아무리 그가 현장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그의 이름값과 명성, 그리고 실행력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이미 영화 ‘나의 미래’는 골든글로브에서 감독상, 그리고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상황.
그리고 골든글로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될 아카데미 후보작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부문에서 후보로 낙점될 것이라 모두가 예견했다.
누구도 ‘나의 미래’의 작품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에 영화 ‘나의 미래’와 붙는 경쟁작 ‘하프 문’이 너무 강력할 뿐.
“그런데 마이크. 이번에 해럴드와 붙어서 이길 자신 있겠어요?”
“해럴드가 이번에 아카데미 회원들한테 돈 엄청나게 썼다는 모양이던데요.”
“게다가 ‘하프 문’은 주연배우가 무려 아드리엘 샤하잖습니까. ‘나의 미래’의 한태주와 비교가 안 되죠.”
“자네들, 뭘 잘못 알고 있군.”
마이크가 담배를 한 대 천천히 꼬나물었다.
휴, 하고 천천히 숨을 내쉬던 그에게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애초에 그런 비교 대상을 신경 쓴 적이 없네. 오직 ‘나의 미래’의 레이스에 온 힘을 다할 뿐이지.”
“총력전… 말씀이십니까?”
여유로운 모습의 마이크가 눈을 찡긋했다.
“자네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늙은 여우’라는 별명만큼이나 영리한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한때 정열적인 제작자로서 할리우드를 휘젓고 다녔던 그.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까지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 * *
한편, 뉴욕에서 LA로 이동한 태주.
“확실히 한국보다 미국에서 이동하는 게 체력적으로 훨씬 힘드네. 나이 들었나 봐.”
“얌마, 네가 나이 들었으면 나는 뭐냐? 나는 노친네야?”
“형도 뭐, 맨날 앓는 소리 하잖아. 내가 어깨 주물러 줄까?”
호텔에 막 도착해 로비에서 투덕거리는 태주와 박인우.
그때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익숙한 인영들이 보였다.
“태주!”
앤디 피셔와 디에고 크루즈가 뛰어오듯 그들에게 안겼다.
골든글로브 일정을 함께할 영화 ‘나의 미래’ 식구들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태주는 LA 곳곳에 붙어있는 여러 영화 포스터들을 감상했다.
“도시가 완전히 축제 분위기네요.”
“아무래도 LA는 할리우드를 빼놓고 논할 수 없으니까. 그중에서도 우리 영화가 중심에 있지!”
태주에게 눈을 찡긋한 디에고가 앤디에게 손짓했다.
“우리 셋 별명도 생긴 거 알아?”
“무슨 별명이요?”
“나는 핸썸 사이코, 앤디는 핸썸 감독, 태주 너는 핸썸 뮤즈. 크크.”
[다들 핸썸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잘생긴 건 너다, 태주야.]좋은 분위기 속, 그들은 앤디가 예약했다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판에서부터 익숙한 한글이 보이자, 태주가 두리번거렸다.
“여기 한식당 아니에요?”
“맞아. 안 그래도 너 타지에서 고생 많잖아. 그래서 우리가 좀 알아봤지. 여기 티비에도 나왔고 평도 좋아.”
자신을 생각하는 그들의 배려에 태주는 마음이 찡해졌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그들을 알아봤다.
몇몇은 쭈뼛거리며 태주에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인해 주세요.”
순식간에 아이들에 둘러싸인 태주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팬서비스하느라 바빴다.
그가 테이블로 온 건, 이미 음식이 나온 뒤였다.
“역시 슈퍼스타.”
앤디가 씩 웃으며 태주와 눈을 마주쳤다.
“가는 곳마다 팬들에게 둘러싸이네요. 근데 주로 어떤 작품으로 알아보나요?”
“아무래도 ‘데스 게임’으로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제일 많죠.”
태주가 디에고 쪽을 보았다.
“디에고와 함께 나온 씬을 인상 깊게 본 팬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나도 ‘데스 게임’으로 한층 더 인지도를 올렸지.”
디에고가 태주의 말을 거들었다.
“한태주랑 나온 그 남자,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리고 이번에 태주랑 ‘나의 미래’ 찍으면서 더욱 인지도가 높아졌고.”
“애들이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예전부터 디에고 씨가 줄곧 좀 어려운 작품들에만 출연했었는데. 이번에 출연한 것들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덕분이죠.”
“앤디, 포인트 잘 짚었어. 사실은 태주랑 출연한 거 우리 애들이 제일 좋아한다니까.”
그들의 대화에 아무런 말 없이 씩 웃는 태주.
그런 태주에게 앤디와 디에고가 시선을 돌렸다.
“왜 그렇게 웃어, 태주?”
“아, 그게요.”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되는 마음을 고백했다.
“당장 내일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인데, 뭔가 감정을 주체 못 하겠어요.”
“긴장돼요? 난 긴장되는 것도 같은데. 이번에 아버지 앞에서 제대로 평가받는 거 같아서요.”
시상식에 앤드류 피셔가 ‘이글맨’ 감독상으로 초청받은 것을 언급한 앤디.
앤디의 말에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떨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 태주, 한 단계 성장했구만.]이중협을 비롯한 앤디, 디에고가 다들 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좋은 분위기 속 식사가 끝나고, 식당을 나서는 그때.
그들은 계산 중인 한 무리와 마주쳤다.
건장한 체구의 점잖은 인상의 남자.
칸 영화제에서 처음 봤었던 흑인 배우, 아드리엘 샤하였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이게 웬 우연입니까.”
“LA에서 제일 맛있는 레스토랑이 여기니까.”
그는 디에고와 반갑다는 듯 와락 껴안더니, 이내 태주를 보고도 정중한 악수를 청했다.
“칸에서 뵈었지만 제대로 인사도 못 했었네요.”
“절 기억 못 하실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당신 같은 분을 기억 못 할 수 있겠습니까.”
아드리엘이 태주에게 눈을 찡긋했다.
“칸에서 좋은 승부였었죠. 우리, 내일도 좋은 대결해 보자고요.”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기억을 언급한 그에게,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승부가 될 겁니다. 그럼, 내일 봅시다.”
이제 정말 곧이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릴 그때가.
* * *
다음날, 저녁 6시 반.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 당일.
LA의 베벌리 힐튼 호텔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레드카펫이 길게 깔린 곳에 속속들이 셀럽들과 배우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플래시를 누르던 기자들은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하며 목이 빠져라 누군가를 기다렸다.
“오, 저기 검은 리무진 온다! 저기 한태주 씨 있는 거 아니에요?”
스타뉴스에서 파견 나온 우성림은 곁에 있던 홍은지를 힐끗거렸다.
그런데 기대에 찬 시선으로 차에서 내린 사람은 한태주가 아닌 아드리엘 샤하, 그리고 제작자 해럴드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우성림은 깜짝 놀랐다.
“관심이 장난 아니네요. 저런 사람들하고 태주 씨가 경쟁해야 한다고요?”
“걱정하지 마. 내가 장담하건대 태주 씨도 저만큼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을 거니까.”
이윽고 한 대의 리무진이 또다시 레드카펫 앞에 도착했다.
그 안에서 내린 세 명의 남자를 발견한 기자들.
하이에나 같은 시선을 그들에게 퍼부었다.
찰칵, 찰칵!
영화 ‘나의 미래’의 감독인 앤디 피셔, 주역인 디에고 크루즈와 한태주.
그중에서도 ‘미스 올리비아’ 향수 광고 모델 등등 여러모로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군 한태주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진 가운데.
본격적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