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22
522화
이중협, 성불하다 (4)
* * *
다음 날 아침.
태주는 일찍부터 일어나 호텔 근처 공원에서 조깅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이중협이 함께 했다.
그가 성불하는 것이 시한부라는 걸 알게 되자.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조깅하다가 우연히 만난 팬들에게 사인해 주고, 사진을 찍어주자.
옆에서 이중협이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이야, 너 괜찮겠냐? 인우가 운동한 직후 셀카는 좀 자제해달라고 하지 않았어? 땀나고 그러니까 이미지 관리해야 한다고.]‘제가 한 시간 동안 조깅하는 거 기다려주신 분들인걸요. 그리고 뭐, 나름 화장실에서 머리 다듬고 와서 셀카 찍은 거잖아요. 괜찮지 않아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린 태주가 씩 미소를 지어 보이자.
이중협이 큰 웃음으로 되돌려 주었다.
[귀여운 녀석. 그래, 얼굴이 잘생겼는데 뭔들 괜찮겠지. 뭐, 그래도 나의 핸썸한 얼굴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지만.]태주와 이중협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매 순간 태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이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자신을 아껴준 이중협.
같이 지내는 것이 당연했기에, 이런 소소한 기쁨을 그가 성불한 후에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고도 슬펐다.
그렇기에 미국에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그와 함께 행복하게 지낼 예정이었다.
“다녀왔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와 씻고 나오니, 박인우가 양복을 쫙 차려입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형?”
“아니, 그게…. 긴장돼서 어젯밤을 꼴딱 새버렸다. 그나저나, 태주 넌 오늘도 조깅하고 온 거야? 오늘 스케줄도 빡센데 좀 쉬지.”
“원래 루틴이잖아.”
“하여간 태주, 네 성실함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데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네.”
박인우의 말에 태주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냥, 기분 좋아서.”
그리고 얼마 후.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박인우는 큽,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에게 뛰어왔다.
장진혁이 공유한 메시지에는 SNS에 야금야금 퍼지고 있는 ‘#한태주셀카’가 담겨 있었다.
운동 후 상기된 표정으로 팬들과 웃으며 찍어준.
어마무시한 속도로 셀카 사진들이 퍼지는 것에 이중협이 피식거렸다.
[내 말대로 화장실에서 머리 다듬은 다음에 찍길 잘했지? 운동 직후에 까치집 머리로 찍은 것보다 이게 훨씬 낫잖아.]‘그러네요.’
태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야, 운동한 직후에 팬들하고 셀카 찍어준 거야? 내가 이미지 관리 좀 하자고, 이런 정돈되지 않은 얼굴로는 웬만하면 찍지 말아 달라고 했을 텐데 아아!”
“뭐 어때. 이래 봬도 화장실에서 머리 다듬고 와서 찍어준 거야. 그리고…….”
태주는 턱을 쓰다듬으며 댓글의 여론을 살펴보았다.
“운동 직후에 찍은 셀카… 야성미 있다고 그러는데? 댓글 반응만 좋구만, 뭐.”
“누가 댓글 반응 때문에 그래? SNS가 난리 났으니, 이걸로 기자들이 기사 쓸 테니까 그렇지.”
“지금 한국은 밤일 텐데?”
“기자들이 그런 걸 신경 쓰는 거 봤어? 더군다나 태주 너와 관련된 기사인데.”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탐나는 기삿거리를 던져줬으니, 내가 장담하건대 분명 30분 안으로 한국에서도 기사 난다. 기사 제목은… 아카데미 앞둔 한태주, 긴장감 풀려고 조깅으로 심신 달래?”
* * *
동 시각, 한국.
태희를 재워놓고 늦은 시각에 산책을 나온 한유경과 차용석.
근처 공원 벤치에 앉은 한유경이 그 자리가 그리운 듯 손으로 쓸었다.
“이곳이 태주가 혼자서 연기 연습했던 자리예요. 집에서는 가족 눈치 보느라 하지도 못하고, 밖에 나와서 몰래 했더라고요.”
“배려심이 깊은 건지, 애가 착한 건지…….”
고개를 흔들던 차용석의 눈동자엔 태주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이 자리에 앉으니까 태주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네요.”
“에이, 용석 씨. 그건 너무 오버다.”
“태주를 못 본 지 좀 돼서, 그리움이 쌓여서 그래요. 이 녀석, 미국 도착했다는 전화가 끝이야, 도대체 연락이 없어요.”
“어머, 그래요? 태주가 나하고 태희한테는 오늘 두 번이나 연락했었는데. 무려 영상통화였답니다?”
내심 자랑스러운 듯 말하는 한유경.
차용석은 그녀에게 마냥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 녀석, 사람 차별하는 건가?”
그때, 차용석의 핸드폰이 띠링, 울렸다.
홍보팀장 박연수에게 온 문자였는데, 기사 링크가 담겨 있었다.
“누구예요?”
“홍보팀장인데, 이 늦은 시각에 연락한 걸 보니 급한 일인가 봐요. 잠시만요.”
차용석이 박 팀장이 첨부한 링크를 누르자, 실시간 1위를 차지한 태주의 기사가 보였다.
옆에서 함께 기사를 보던 한유경이 재밌다는 듯 큭큭 웃었다.
“이야, 태주 거기 가서도 아침에 조깅했나 보네요. 태주는 긴장되면 아침에 이렇게 운동하는 게 습관이더라고요.”
“그것보다도 셀카를… 이렇게 생으로 찍어도 되나?”
“뭐 어때요. 막 운동 마친 건강한 모습도 멋있고 잘생겼는데. 역시 우리 태주 인물 훤칠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흐뭇함이 가득 담긴 한유경의 말에 차용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태주 잘생긴 건 모두가 인정하죠. 그보다 이거… 실검 1위에 올라갔네?”
입가가 씰룩거린 차용석이 덧붙였다.
“우리 태주는 아카데미 전부터 이렇게 관심을 몰고 다니네요!”
* * *
몇 시간 후, LA.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메이크업까지 마친 태주.
땀투성이였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멋진 배우의 모습으로 베일릭스 다큐 팀과 인터뷰를 하는 중이다.
“아, 저희가 태주 씨 조깅하는 모습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쉽네요. 지금 SNS에 돌아다니는 가장 핫한 토픽이 ‘태주 씨 조깅 후 셀카’인데, ‘운동 후 가장 섹시한 남자?’라는 별칭이 붙었네요. 호호.”
인터뷰하던 여자 PD가 미소 짓자 태주는 괜히 턱을 간질였다.
“아, 너무 민망합니다.”
“지금 SNS는 물론, 온갖 매체들에서 기사 내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곁에서 봐온 태주 씨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다소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는데요. 오늘만큼은 좀 긴장되고 초조해 보이시네요. 그건 역시, 아카데미라는 큰 시상식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 말에 태주가 잠시 망설였다.
이중협을 찾으니, 그는 옅어진 모습으로 자신의 곁에 있었다.
사실 지금, 자신이 초조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아카데미 상을 꼭 타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도, 큰 상을 마주해 긴장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시상식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중협이 성불하기 때문.
이 영광의 순간이 끝나도 자신은 삶을 계속 이어가겠지만, 이중협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애타서, 이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큐 팀에게 이런 것들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네, 긴장한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라는 대단한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여러 부문에 후보로까지 올라서요.”
“오호, 태주 씨가 이런 걸로 긴장하는 타입인 줄은 몰랐는데요.”
피디가 유쾌하게 답했다.
“만약에 수상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이번에도 이중협 선배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건가요? 언제나처럼?”
“네, 당연합니다.”
“한태주 씨에게 이중협 씨는 존경하는 선배 배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거 같군요. 도대체 어떤 의미입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태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이중협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언제나처럼, 약간의 장난기를 띈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뭘 고민하고 있어. 그냥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그 말에 태주가 씩 웃으며 피디에게 답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배우이자, 인간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분입니다.”
* * *
LA에서 저녁 5시부터 시작된 시상식.
한국에선 오전 9시에 맞춰 JABC 독점으로 생중계가 진행되는 중이다.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 앞에 깔린 레드카펫을 이미 수많은 배우들이 밟았다.
레드카펫 주변에는 그들을 취재하는 수많은 취재진과 중계진, 그리고 팬들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레드카펫에 도착한 검은 리무진 한 대.
그곳에서 내리는 세 명의 남자에게 모든 이의 시선이 쏠린 순간.
곧이어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태주다! 말이 필요 없는 스타 배우!”
“나의 영원한 스타, 디에고 크루즈와 신예 스타 감독, 앤디 피셔!”
그들이 수많은 플래시와 관심 속에서 레드카펫을 걸어가니 취재진의 관심이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미국 CBC 채널 리포터입니다.”
미국 유수의 뉴스 채널 리포터가 앤디 피셔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이번이 감독님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영화제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요. 특히 골든글로브에서 좋은 결실을 거둔 만큼, 이곳 아카데미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계시겠죠?”
“하하, 머리는 진정하라고 하는데, 가슴은 기대하라고 하는군요.”
“영화 ‘나의 미래’로 감독상 지명받으셨는데요. 만약 이번에 수상하신다면 최연소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앤드류 피셔 감독의 기록을 깨게 됩니다. 아들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앤디는 잠시 망설였지만, 옆에 있던 태주와 디에고를 힐끗하더니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자신 있게 답했다.
“누굴 견제하거나 신경 쓰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닙니다. 그저, 여러 사람이 함께 노력해서 만든 저희 영화의 가치를 많은 분이 알아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 후로도 태주 일행은 현지와 외국을 가리지 않고 여러 매체의 질문 폭탄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JABC 리포터 이가영입니다. 지금 한국으로 동시 송출되고 있거든요. 시청자분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태주는 앤디와 디에고를 양옆에 끼고는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영화 ‘나의 미래’의 배우 한태주입니다. 이쪽은 제가 사랑하는 앤디 피셔 감독님,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디에고 크루즈 배우님입니다.”
“하하, 세 분 정말 사이가 좋아 보이시는데요.”
살짝 상기된 듯 리포터가 태주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골든글로브에서 좋은 결과를 낸 영화라 아카데미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심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주요 부문에 수상 후보로 지명된 만큼, 기대감이 더욱 커졌는데요. 특히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디에고 크루즈 씨와 한태주 씨, 두 분 모두 이름을 올렸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태주가 상 탔으면 좋겠지. 솔직히 이번 영화에서 좀 더 인상이 강렬했던 건 태주였잖아.]이중협의 솔직한 말에 태주는 긴장이 탁, 풀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왜 그래? 질문이 뭔데?”
태주를 통해 질문을 통역 받은 디에고는 재밌다는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태주의 어깨에 툭, 제 팔을 올리더니 리포터에게 답했다.
“상을 타기 위해 연기하는 배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을 타고 싶지 않은 배우도 없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리포터분?”
“네…, 네?”
“모든 배우는 자기 연기에 자부심이 있고, 승부욕이 있어요. 자기 연기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모든 배우가 똑같을 겁니다. 그러니까…….”
디에고가 태주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이 젊은 친구와 제가 연기로 경쟁할 수 있다면,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