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25
525화
이중협, 성불하다 (7)
* * *
달칵.
전화를 끊은 베일릭스 박숭원 본부장.
그의 입은 귀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태주 씨 다큐멘터리 제작하기를 정말 잘했어요. 한태주 씨 아카데미 일정 등등 다 담아 왔겠죠?”
“네, 그렇다고 합니다.”
“특히 그 장면.”
박숭원이 당시를 회상하는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한태주 씨가 트로피 받으면서 수상소감 할 때, 감격의 눈물을 마구 흘렸었잖아요. 특히 그 부분을 잘 살리면 좋겠어요.”
“그 장면은 정말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대화하던 직원도 회상에 젖었다.
“한태주의 인간 승리 같더군요. 촉망받는 아역배우에서 부모님을 잃고 10년간 잠적, 그러다 다시 시작한 연기로 결국 아카데미까지 정복하다.”
“이야,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도 욕먹어요. 비현실적이라고.”
흡족한 미소를 짓던 박숭원은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손가락을 튕겼다.
“이야, 이거 우리 쪽에서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뜰 거 같은데요?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그 말에 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럼, 추진해 볼까요?”
“오오, 가능하겠어요?”
“물론이죠. 이미 업계에서 한태주 씨의 자전적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들었습니다. 어차피 제작될 거라면 저희 쪽에서 얼른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일단 나는 이쪽 관계자들한테 전화 좀 돌려 볼게요.”
박숭원이 패기롭게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곧이어 여러 통화가 이어지더니, 이윽고 놀란 듯 입을 벌렸다.
“그래요? 이미 이 아이디어로 디벨롭해서 구상하고 있단 말이죠? 우선 알겠습니다.”
“뭐랍니까?”
전화를 끊은 그에게 직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이미 한태주 씨 이야기를 작품으로 디벨롭한 곳이 있다고 합니까?”
“네, 그렇다고 하네요. 그것도 퓨처 스튜디오 쪽에서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그 말에 직원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퓨처 스튜디오는 넥스트 엔터의 자회사이자 제작사.
이번에 영화 ‘드림랜드’의 제작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많은 작품을 제작할 요량이었다.
“솔직히 좀 아쉽네요. 한태주 씨 스토리는 업계에서도 많은 사람이 탐내던, 그런 거였는데.”
“워낙에 한태주 씨 인생이 영화 같으니까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제 생각에 한태주 인생에는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게 있는 것도 같아요.”
“예를 들면요?”
“한태주와 이중협의 관계요.”
“하지만 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걸요. 한태주 씨가 이중협 씨를 연기와 관련해 존경할 수는 있어도, 과연 그 이상의 의미일까요?”
“그런 게 아니라면 왜 여러 수상소감에서 이중협을 언급했겠어요? 그것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처럼 국제적인 시상식에서 말이죠. 이건 한태주가 이중협을 존경하는 선배,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박숭원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세요. 이중협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낸 것도, 한태주의 사촌 형인 강승민 검사의 주도로 이뤄낸 성과잖아요.”
“아, 저도 어디서 강승민 검사의 인터뷰를 읽은 것 같습니다. 원래는 약간의 호기심만 가지던 사건이었는데, 태주 씨가 유독 관심을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그 사건을 해결하려 애를 쓰게 되었다고요.”
“모든 것이 한태주와 이중협으로 귀결되는군요.”
흥미로운 표정의 박숭원이 말을 이었다.
“둘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였어요, 처음부터. 분명 한태주에게 이중협은 운명이었을 겁니다.”
“운명이라…. 그래도 궁금하네요. 왜 한태주 씨가 이중협 씨를 그렇게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글쎄요. 여러 기자가 인터뷰에서 그걸 알아내고자 했지만, 한 번도 한태주 씨가 명쾌하게 답한 적은 없죠. 아마 한태주 씨가 원할 때, 밝힐 것 같네요.”
* * *
한편, 통화를 마친 차용석은 환한 얼굴로 일어났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추운 바깥을 쳐다보던 그.
“역시 태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차기작에도 관심이 무수히 쏟아지는군. 뭐, 사실 ‘한태주 차기작’이라는 그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주기에는 충분하지만.”
그는 여러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연예계의 바닥에서 이 자리까지 온 데는, 두 사람의 공이 컸다.
로드 매니저인 자신을 누구 보다 아끼며 이쪽 업계를 잘 알려주었던 이중협 배우.
처음에는 자신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이끌어주고 있는 한태주 배우.
“인생에서 한 명의 귀인을 만나기도 힘들다는데, 나는 두 명을 만났네. 참으로 운이 좋은 인생이야.”
태주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그는 촉망받는 아역에서 다시 연기를 시작하는 중고 신인 느낌이었고.
자신은 그런 실력파 배우를 맡아 안정적으로 잘 이끄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어느새 태주는 실력과 스타성으로, 닿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진짜 아카데미까지 정복할 줄은 몰랐는데. 격이 달라진 것 같네, 우리 태주.”
연예란은 물론, 사회부 쪽 기사도 태주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넷을 확인해 보니 태주의 프로필에 두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그리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공동 수상.
차용석의 머릿속에 당당하게 상을 받은 후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태주의 모습이 지나갔다.
“그런 걸 보면 애 같기도 하고….”
한창 생각에 빠진 그때.
달칵, 문이 열리며 태주가 들어왔다.
“용석이 형!”
“태주야!”
차용석은 태주를 얼싸안으며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게 얼마 만이냐. 장대한 골격은 여전하구나, 근육도 여전하고! 미국물이 좋았나 보네?”
“한국물만 하겠어요, 형.”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조만간 영화 홍보 때문에 여기저기 나가야 할 거 같아. 미안하다, 쉬지도 못하고.”
“미안하긴 뭘요. 컨디션 괜찮은데. 그리고 제가 이번 영화 ‘드림랜드’ 개봉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형이 더 잘 알잖아요?”
씩 웃던 태주가 덧붙였다.
“요즘 나 기운 좋은 것 같은데, 이번 영화도 잘 됐으면 좋겠다.”
“잘될 거야.”
잠시 태주와 차용석은 묘한 시선을 나눴다.
먼저 입을 연 건 차용석이었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물어봐요.”
“너…, 왜 그렇게 중협이 형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거야?”
잠시 망설이던 차용석은 태주의 진솔한 눈빛에 속마음을 내비쳤다.
“솔직히 궁금했어. 나야 중협이 형 로드 매니저로 일하면서 돈독한 정을 쌓았다지만. 너는 솔직히 중협이 형이랑 같이 연기 한 번 한 적 없잖아.”
“맞아, 접점이 없었지.”
“그래, 바로 그거야.”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긴 차용석이 궁금하다는 듯 태주에게 몸을 내밀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중협이 형을 존경스러워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심지어 애틋해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될 때도 많았어. 이번에 아카데미 수상소감에서도 얘기했더라. 나는 쏙 빼고.”
그 말에 태주가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러고 보니….”
[용석이가 삐질 만했네. 크크.]갑자기 들려오는 이중협의 목소리에 태주는 홱,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아니야…….”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살짝 코가 시큰해진 태주는 먹먹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중에 술 한잔하면서 얘기하자.”
“응? 그렇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야?”
태주의 눈치를 살피던 차용석이 그를 일으켰다.
“그래,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이제 집에 가자. 가족이 기다리고 있잖아.”
* * *
차용석과 함께 서둘러 집에 들어간 태주.
그곳에는 거대한 빨간 부직포로 마련된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빰빠라~빰!”
옆에서 장난감 트럼펫을 부는 태희가 그를 맞이했다.
“환영해, 오빠!”
“이게 다 뭐야, 하하.”
그리고 부엌에서 슬며시 나오는 한유경까지.
그녀는 특별 제작한 게 분명한 삼단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우리 태주, 자랑스러운 아카데미 수상자 배우님! 축하합니다~!”
“이게 다 뭐야?”
“일단 후 불어!”
고모의 닦달에 태주는 케이크에 꽂혀있던 촛불을 후, 불었다.
그제야 촛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뒤로 가족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자신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 이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고마워요, 다들.”
“고맙긴, 우리가 더 고맙지.”
한유경이 태주의 볼을 슬쩍 꼬집었다.
“이렇게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 * *
가족과의 다정한 상봉 후.
차용석을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태주는 잠시 걷었다.
발걸음 닿는 대로 돌아다닌 그가 다다른 곳은 집 주변의 동네 공원.
“여기도 오랜만이다.”
그곳 구석 벤치에 태주가 털썩 앉았다.
맞은편에 보이는 인도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벤치에 앉으니,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모와 태희 몰래 밖으로 나와 연기를 연습했던 기억.
혼자서 여러 연기 영상을 찾아보며 감탄했던 기억.
연기를 다시 하고 싶은 욕망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며 몸부림치던 기억.
그리고…….
“여기서 중협이 형을 만났었지.”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이중협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 났다.
트렌치코트를 멋스럽게 입고 키가 훤칠했던 그.
그때는 귀신일 거라곤 꿈에도 모르고, 차에 치일뻔한 그를 구하려 했었다.
그가 대장 귀신인 것도, 이렇게 긴 시간 자신의 곁을 지켜 주리라고도 생각 못 했다.
그리고 그의 존재감이 자신에게 이렇게나 커질 줄도 몰랐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왠지 아파 오는 것 같은 가슴을 태주가 움켜쥐었다.
때로는 친형처럼, 때로는 아빠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자신의 곁을 지켜준 이중협.
이렇게나 자신에게 소중했던 존재였다니.
“중협이 형이 성불한 건 좋은 일이잖아. 괜히 붙잡고 있어봤자 미련일 뿐이야.”
수 없이 혼자서 다짐하며 속을 달래려 했지만, 태주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다.
그리고 그때.
성불한 줄 알았던 이중협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늘 입던 칙칙한 트렌치 코트가 아닌, 가벼운 하얀 셔츠와 하늘색 바지를 입은 모습이 사뭇 새로웠다.
‘형…? 정말 형이에요?’
[정식으로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서. 마지막 인사하려고 왔어.]이중협이 태주의 곁에 앉아 싱긋 웃었다.
[태주야, 안녕.]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