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30
530화
귀신 보는 배우님(5)
지난 10년간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그러나 계속 그리워했던 그.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이름에 옆에 있던 서동락이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사람들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어.”
“어? 어…. 아무것도 아냐.”
태주가 서둘러 고개를 흔들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이중협을 봤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보다.
하긴, 지난 10년간 이중협은커녕 귀신 한 번 본 적 없는데.
‘중협이 형을 봤을 리가 없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태주가 고개를 흔들며 헛헛한 기분을 떨쳐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수많은 취재진을 마주했다.
오늘은 ‘귀신 보는 배우님’ 언론시사회 당일.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중한 영화가 드디어 세상에 공개되는 날이다.
* * *
엄청난 관심 속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
수많은 시선이 쏠린 가운데 영화가 상영되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시끄러운 침묵만이 흘렀다.
행사 관계자들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준비하면서도 영화의 여운에 젖어 있었고.
영화에 감명받은 기자들은 서둘러 ‘귀신 보는 배우님’ 관련 기사 초안을 작성하기 바빴다.
영화 전반적으로 스토리, 연출, 배우 등등 빠질 게 없었지만.
특히 기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건 한태주의 연기였다.
국민 아역에서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른 한태주의 신작, ‘귀신 보는 배우님’.
촉망받는 충무로 신인 감독 서동락의 작품이라는 점, 흥미진진한 스토리, 이선우의 10년 만에 영화 복귀작이라는 것이 더해져 엄청난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귀신 보는 배우님’이 10년 전부터 떡밥이 돌던 그 작품이라는 것 또한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 영화는 서동락 감독님께서 10년 전부터 각본을 쓰기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이유로 개봉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건지 궁금합니다.”
서동락이 태주를 보며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일단은 각본이 완전해질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각각 배우와 귀신인 두 주인공이 서로를 도우며 서로의 삶을 구원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각본에 구멍이 있을 시 관객분들의 몰입이 어려울 거로 생각했습니다.”
“어쩐지 영화가 재밌더라고요.”
스타뉴스의 우성림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오랫동안 한태주를 봐온 그는 유독 눈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이번 작품은 한태주 씨의 일생이 모티브가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 태주 씨 삶의 궤적이 군데군데 녹아있더군요. 특히 주인공의 명대사 중 하나인 “포기하지 마. 일단 해보면 되는 거야”는 평소 태주 씨가 자주 하신 말씀이죠? 서동락 감독님이 자문을 많이 구하셨나 봅니다.”
“하하, 맞습니다.”
태주가 옆에 있던 서동락과 멋쩍은 시선을 마주쳤다.
“워낙 오랜 세월을 친구로 지내다 보니, 감독님께서 저를 가족만큼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쓰는 단어나 문장을 잘 구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때 기자들의 질문을 듣던 엠씨, 조연호도 한마디 던졌다.
“기자분들의 말씀을 취합해 보면, 이번 영화가 한태주 씨의 삶 그 자체라는 뜻이군요.”
그의 정리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귀신 보는 배우님’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한 설명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이 아니라, 그의 삶의 일부였다.
그리고 다음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귀신과 동행하며 그에게 연기와 인생을 배우는데요. 혹시 이 부분도 한태주 씨의 경험을 반영한 건가요?”
그에 태주가 재밌다는 듯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귀신이라…. 정확히 어떤 의미 시죠?”
“‘귀신 보는 배우님’은 태주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영화 속 주인공은 귀신을 볼 수 있잖습니까. 그런데 한태주 씨가 배우 이중협 씨를 연기적으로 무척이나 존경하시니, 혹시 그분을 귀신으로 마주한 경험이 있으신 건 아닌가 해서요.”
그 말에 태주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그건 기자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흐흐.”
* * *
2달 후, 꽃이 움트는 봄이 시작된 이때.
겨울에 개봉한 ‘귀신 보는 배우님’은 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러 온 태주는 이선우를 마주했다.
“형, 오랜만이에요.”
“그래, 안녕. 그런데 서동락 감독은?”
“아까 긴장된다고 화장실 갔는데, 곧 돌아올 거예요.”
“서 감독은 생긴 건 푸근해선 무슨 긴장을 그렇게 많이 한다니? 반면 태주 너는 예민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긴장을 안 한단 말이야.”
“그야. 나름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으니까요?”
이선우와 태주는 서로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귀신 보는 배우님’에서 주인공과 귀신 역을 맡아 열연했다.
좀비 영화 ‘탈출’에 이어 ‘귀신 보는 배우님’까지 함께 호흡을 맞춘 그들은 선후배, 그 이상의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오늘 ‘귀신 보는 배우님’ 천만 기념 인터뷰인 건 알지?”
“아직 10만 명 정도 남긴 했지만요.”
“그건 2~3일이며 채워질 거야.”
이선우가 태주를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축하한다. 솔직히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못 간 작품들만 몇 개냐, 네가. 천만 영화 만나는 것도 배우로서는 천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야. 게다가….”
이선우가 태주를 묘한 시선으로 힐끗거렸다.
“더욱이 자전적 작품으로 이런 좋은 성과를 내려면 하늘이 도와야 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제 이야기가 정말 영화로 만들어질 줄 몰랐고, 이렇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실 줄은 더더욱 예상 못 했어요.”
“네 이야기가 워낙에 영화 같으니까.”
툭툭, 태주의 어깨를 두드려준 이선우가 씩 미소 지었다.
“이 기세를 타고 칸 영화제도, 아카데미도 쭉쭉 올라가서 상을 휩쓸어 버리자고! 오케이?”
“출품한다고 다 상을 타나요, 흐흐.”
“기세라는 게 있잖아? 그리고 우리 영화, 지금 해외에서도 상당히 주목받고 있어. 해외 언론에서 우리 영화 리뷰하면서 영화제 시상 가능성을 다룬 기사를 종종 봤거든.”
그 말에 태주가 얼마 전 미국 에이전시, AAA에서 보내온 메일을 떠올렸다.
그들은 ‘귀신 보는 배우님’을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에서도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며,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는 중이라고 귀띔해 줬었다.
이쪽 업계를 꽉 쥐고 있던 마이크 링크가 전해준 소식이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귀신 보는 배우님’이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인정받는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때 상상으로 얼굴이 붉어진 태주에게 이선우의 목소리가 날아들어 왔다.
“근데 너,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갑자기 결혼이요?”
“남자가 30살이 넘었으면 이제는 가정의 안락함과 평안함 속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 나 봐라, 결혼 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잖냐.”
“하하, 생각해볼게요.”
태주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일단은 제가 연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성과부터 달성하고요.”
“머릿속이 연기로 가득 찬 게, 천생 배우네. 수안이가 고생 꽤나 했겠어.”
혀를 차던 이선우는 태주를 향해 뭉클한 시선을 보냈다.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크면서 이 녀석, 누군가를 갈수록 닮아간다.
연기에 미쳤던, 연기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중협이를.
* * *
그날 저녁, 넥스트 엔터.
“천만 영화라니. 정말 축하한다, 태주야!”
차용석이 경쾌하게 웃으며 태주를 바라보았다.
“너도 드디어 천만배우 대열에 오른 거야!”
“고마워요, 고모부.”
태주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무척이나 뜻깊었다.
자신과 이중협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 ‘귀신 보는 배우님’으로 관객 수가 천만을 찍은 것이.
즐거운 분위기 속 서로를 마주 보는 가운데.
차용석은 쥐고 있던 대본 한 부를 태주에게 건넸다.
“이거 한번 봐볼래? 이번에 제작 들어가기로 확정된 드라마인데, 기자들 귀에 들어가기 전에 너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뭔데요?”
태주의 눈이 대본 표지에 써진 ‘데자뷰’라는 제목을 훑고는 크게 떠졌다.
“이거, 예전에 이중협 선배님과 이선우 선배님이 공동 주연을 맡았던 그 드라마 아닌가요?”
“맞아. 중협이 형의 죽음 이후 제작자가 찝찝하다면서 손을 놓는 바람에 제작이 무산돼서 방영되진 못했지만. 그런데 사장되기에는 워낙 좋은 작품이라 계속 안타까웠어. 극본, 캐릭터 플레이, 다 너무 괜찮았거든. 그래서 우리 쪽에서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해 보려고 생각 중이야. 주인식 감독은 섭외 완료했고, 이제 배우만 캐스팅하면….”
태주의 귀에는 차용석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대본에 고정된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갈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데자뷰’.
사제와 깡패, 두 사람의 버디(buddy) 플레이가 일품이라던 익스트림 코믹 수사극.
“…와.”
순식간에 대본을 읽고 나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서 다음 편을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
“이거 다음 편은요?”
“지금 작가님께서 각색하고 계셔. 그래서 읽어보니까 어때?”
“재밌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태주가 서둘러 덧붙였다.
“특히 사제 캐릭터가 시니컬하면서도 코믹한 게 진짜 매력적이네요. 정말 탐나는 역할이에요.”
“안 그래도 중협이 형이 사제 캐릭터에 캐스팅됐을 때, 그렇게 극찬하더라. 캐릭터성이 좋다면서.”
“그랬을 거… 같아요.”
그 말에 태주가 살짝 굳었다.
“그 캐릭터 자체가 표정은 다채롭지 않은데 감정선은 풍부해서, 연기가 되는 배우가 맡아야 했거든.”
차용석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그 부분을 신경 써야지 싶다.”
“우리 회사도 투자하기로 했어요?”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냐? 아, 대본을 너무 열심히 보느라 놓쳤나 보네.”
태주는 차용석의 반짝거리는 눈을 마주했다.
“퓨처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데자뷰’ 판권을 샀어. 주인식 감독님은 이미 모셨고, 원작 작가님이 직접 각색 중이셔. 그래서 이제 남은 건 배우 캐스팅뿐인데, 제작진이 다들 그러더라. 사제 역할은 너같이 연기 잘하는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그 말에 태주는 대꾸할 수 없었다.
대본을 정말 재밌게 봤고, 사제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 제안을 받으니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지.
일전에 드라마 ‘데자뷰’에 관한 기사를 본 적 있다.
당시에 촬영 현장에서 이중협의 열연을 직접 본 기자들의 호평 일색이 대부분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임에도 업계에서는 이중협의 연기에 대해 기대감이 자자했었다.
‘과연… 내가 중협이 형보다, 아니, 중협이 형만큼이나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태주를 살피던 차용석은 그의 고민이 당연하다는 듯 등을 두드렸다.
“천천히 생각하고 답 줘. 기다릴게.”
* * *
대표실을 나온 태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타이밍이 참……”
이중협이 맡았었던 역할을 자신이 연기하다니.
그것도 당시의 이중협과 비슷한 나이에.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이런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이중협이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멘토였다.
정신적 지주였고, 연기적으로는 꼭 넘어서고 싶은 목표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데자뷰’의 주연을 꼭 맡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선명해졌다.
마음이 복잡해진 태주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 사람을 마음껏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 * *
태주는 종일 고민하느라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의 추억의 장소다.
덤불에 숨어있던 벤치, 그리고 그 앞에 있는 횡단보도까지.
태주는 벤치에 앉아 눈을 살며시 감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손에는 두툼한 대본이 들려 있었다.
드라마 ‘데자뷰’.
생전 이중협이 첫 주연을 맡았으나 마무리 짓지 못한 작품.
이중협은 성불했지만, 그와 자신은 여러모로 엮여있었다.
둘의 추억을 담은 영화 ‘귀신 보는 배우님’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그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데자뷰’의 리메이크작에 주연 자리를 제안받았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왜 나 때문에 고민해, 그냥 하면 되는 거지.”
갑작스레 들려온 이중협의 목소리.
태주가 놀라서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씩 웃고 있는 이중협이 있었다.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지난 10년간 이중협은 꿈에서조차 나오지 않았었다.
태주는 뺨을 꼬집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이거 꿈이군요. 현실이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해? 너의 고민에 내가 도움이 되고자 나타났다는 게 중요한 거지.”
태주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이중협이 밝게 웃었다.
“뭘 고민하는 거야?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난 네가 나보다 더 나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고 확신해.”
그가 자신을 인정한다는 말에 태주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지금 그 말, 제가 형보다 더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너는 내가 인정한 배우니까.”
이중협이 태주를 보며 진심 어린 눈을 맞췄다.
“그러니 너는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어떻게든 훌륭하게 해내는.”
그 말에 태주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말 오랜만이었고, 너무나도 그리웠다.
자신이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이 느낌.
고양된 태주를 본 이중협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네가 보여줄 연기를 늘 기대하고 있어.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태주야,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너의 넘버원 팬이 이렇게 응원하잖냐.”
태주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시야가 강하게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있던 이중협은 환한 미소와 함께 사라진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에는 츄리닝 차림의 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오빠, 또 여기 있었어? 아직도 여기서 연기 연습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고민 있었구나? 오빠는 항상 여기서 혼자서 끙끙 앓잖아.”
태희가 태주 옆에 앉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고민은 좀 풀렸어?”
태주는 손에 들린 대본을 바라보았다.
‘데자뷰’라는 제목이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이중협의 격려까지 받은 지금,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났다.
“물론이지.”
시간이 흐를수록 결론에 확신이 더해졌다.
중협의 형 말대로, 진정한 배우가 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어떻게든 훌륭하게 해내는.
그러니 망설이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다.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