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36
외전 6화
프러포즈 대작전 (6)
태주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여자들이 괜한 말을 할 리 없다, 항상 명확한 의도가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왜 수안이가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그의 시선은 윤수안이 힐끗거리는 곳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프러포즈 이벤트를 진행한 단상 위.
그러고 보니 윤수안은 프러포즈 장면을 가장 유심히 보았었다.
응원하는 야구팀에 집중하는 평소와 달리 오늘은 좀 산만했던 것 같기도 했고.
‘설마…. 눈치챈 걸까?’
윤수안에게 고모부의 프로포즈 계획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태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일단은 윤수안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한참을 머리를 굴린 태주가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는 너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었잖아.”
“내가 뭘 숨겼는데?”
“우리 드라마 특별출연. 그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아, 그거….”
태주의 예상대로 윤수안이 당황스러운 듯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너 놀라게 해 주고 싶었어. 우리 둘이 작품같이 하는 거 오랜만이기도 하고…….”
어느새 윤수안이 프러포즈에서 관심을 뗀 것을 알아챈 태주가 일부러 더 강하게 말을 이었다.
“기사로 확인하게 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말해 줄 수 있었던 거 아냐? 나는 기사 나기 전에 다 말해주는데….”
“…….”
“나 솔직히 섭섭했어.”
태주가 윤수안에게 성큼 다가가 눈을 맞춘 순간.
커다란 전광판에 서로만을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그들의 모습이 담겼다.
그걸 본 야구장의 팬들이 우와, 하는 부러움 가득한 탄성을 질렀다.
“이야, 한태주하고 윤수안 애정전선은 여전하네.”
“진짜 예쁜 커플이야.”
그러나 서로에게 집중한 커플은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미안해, 태주야.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윤수안이 축 늘어진 눈을 강아지처럼 태주에게 고정하자.
태주는 씩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미안하면 다야?”
“응?”
“사과를 해야지, 이렇게.”
쪽!
조그마한 앵두와도 같은 입술을 꾹 누르고 간 남자의 향기.
그와 동시에 야구장을 가득 메운 함성에 윤수안은 귀까지 빨개졌고, 결국은 태주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한편, 그녀의 관심을 프러포즈가 아닌 다른 곳으로 순조롭게 돌린 태주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 해.’
프러포즈를 돕기로 한 이상, 차용석이 프러포즈를 하는 그날까지 누구에게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걸 상기했다.
* * *
다음날, 인터넷 연예란을 뒤덮은 기사가 있었으니.
“다들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쓰긴 했지만, 정작 정확한 정보는 없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우성림이 끌끌 웃으며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는.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 마시며 핸드폰 속 파일을 확인했다.
그동안 그가 한태주와 윤수안의 결혼설을 조사한 자료들이었다.
“이걸 언제 터뜨려야 하나….”
혼란스러움에 빠진 그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분일초가 급한 연예계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상대는 한태주다.
지난 10년간 인간적인 정을 물씬 쌓은 연예인이자, 인격적으로도 존경하는 동생이었다.
결혼설을 터뜨리기 전에 태주를 만나 허락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것이 태주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국장실로 오라는 홍은지의 문자였다.
“부르셨어요, 국장님?”
“앉아. 그리고 해명해봐.”
홍은지가 모니터에 가득 뜬 한태주-윤수안 야구장 데이트 관련 기사를 가리켰다.
“태주 씨 야구장 데이트 기사, 왜 우 기자가 안 썼지?”
“그 정도는 이제 유나한테 맡겨도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잘 쓰기도 하고요.”
인턴으로 들어왔던 황유나는 어엿한 연예부 기자가 된 지 오래였다.
예전에는 홍은지와 우성림이 도맡았던 한태주 관련 기사들을 요즘 분담해서 쓰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홍은지는 황유나의 기사가 못내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유나도 기사 잘 쓰지. 그런데 사소한 디테일이 종종 부족하단 말이야. 그래서 이번 한태주 기사는 성림이 네가 담당해서 쓰기를 바랐는데.”
“제가 요즘 특종 잡느라 바쁜 것 아시잖아요, 선배님. 그래서 태주 씨 야구장 데이트 기사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확실하게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그 말에 홍은지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둘 다 ‘특종’이란 단어가 뭘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한태주와 윤수안의 결혼 기사.
초조한 듯 책상 위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켠 홍은지가 선포했다.
“특종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게 우리야. 게다가 태주 씨 관련이라니, 그 역사적인 순간은 당연히 스타뉴스가 독점해야지.”
“선배님의 선전포고를 들으니 더더욱 확신이 듭니다! 이번 특종은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우성림이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정말 큰 거 한 방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나도 결정적인 한 방이 있어. 네 거보다 더 특종일걸? 흐흐.”
서로를 바라보는 홍은지와 우성림의 눈빛은 궁금증과 자신감으로 빛났다.
한때 ‘한태주’ 팀으로 뭉쳤던 기자들이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합심해 대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태주는 대본을 들고 한창 회의실에서 연습 중이었다.
당장 오늘 밤부터 드라마 ‘프러포즈 대작전’ 촬영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참 자신이 맡은, ‘지니’ 역할에 몰입해 대사를 이리저리 연습해 보던 중.
장진혁이 연습실의 문을 똑똑 두드리며 들어왔다.
“루이스 모드 쪽에서 보내온 소포야.”
“루이스 모드?”
“응. 그런데 개인적으로 부탁한 거야?”
“맞아. 나 잠시 대표실 좀 다녀올게.”
태주는 기다렸다는 듯 소포를 받아 들고는 대표실로 향했다.
복도로 나와 태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진혁이 못내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우 1팀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그는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한 번도 태주 형이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는 것을 본 적 없다.
윤수안과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이후에도 늘 투명하게 공개했었다.
그런데 루이스 모드 쪽에서 보낸 소포를 숨긴다는 건….
“혹시 태주 형, 이번에 수안 씨하고 결혼하려나? 드라마 끝나고 프러포즈할 것 같았는데.”
장진혁의 혼잣말에 귀를 쫑긋하던 박인우가 펄쩍 뛰었다.
“에이, 진혁 씨.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나도 결혼을 안 했는데, 태주가 설마 먼저 하겠어?”
가볍게 생각하는 박인우의 말에 장진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실장님, 저 지금 농담하는 것 아닙니다. 지금 진지하다고요.”
“진혁 씨는 언제나 진지해서…. 흠흠. 아무튼, 진짜 무슨 낌새라도 느낀 게 있어서 그래?”
“제가 형이 있는데, 형도 결혼하기 전에 딱 태주 형 같은 모습을 보였거든요.”
장진혁이 그때를 회상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것 같고, 눈은 항상 반짝거리지만, 분위기가 좀 몽롱했어요.”
“흠…. 딱 요즘 태주 상태긴 하네.”
“그러니까요. 그리고 제가 일전에 루이스 모드 측에 문의해 봤는데요.”
장진혁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번에 드라마 관련해서 그쪽에서 반지를 협찬했잖아요. 그런데 태주 형이 협찬한 것 외에 개인적으로 한 쌍을 추가 구매했답니다.”
“잠깐만. 그럼, 작품에 쓰일 반지 외에 자기가 한 세트를 더 샀다는 뜻이야?”
“네. 그래서 말인데요…….”
“쉿.”
유쾌하던 박인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번에 태주가 정말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알아볼 테니까, 일단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 대표실.
태주는 루이스 모드에서 보내온 소포를 차용석에게 건넸다.
“용석이 형. 형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부탁드린 루이스 모드 신상 반지가 왔어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오….”
차용석은 반지를 보며 황홀해했다.
“이 반지로 프러포즈하면 유경이도 한눈에 반할 것 같아, 정말 좋아하겠어.”
“맞아요. 고모가 제일 좋아하는 백합 문양에 가느다란 실반지 스타일이니까요.”
태주가 씩 웃으며 차용석을 격려했다.
“분명히 잘 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환히 웃던 차용석은 태주의 등을 두드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 준비했어야 하는데, 너한테 이런 것까지 부탁해서 정말 미안하다.”
“저도 즐겁게 돕고 있는걸요. 형의 프러포즈가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니까요.”
주섬주섬 짐을 챙기던 태주가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고모 보러 가 볼게요.”
“이따가 밤에 드라마 촬영 있지 않아? 조금 빠듯하지 않겠어?”
“고모가 차려주는 집밥 오랜만에 먹으려고요. 그리고 태희도 볼 겸.”
* * *
몇 시간 후.
“저녁 잘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들른 태주는 고모가 차려주는 진수성찬을 배부르게 먹었다.
태주의 무릎에 자리한 노묘 엘사는 오랜만에 태주를 봤음에도 기분이 좋은지 골골거렸다.
“자취하는 건 좋지만, 집밥은 항상 그립지?”
“물론이죠.”
“에이. 태희 말로는 수안 씨가 종종 너희 집 놀러 와서 요리도 맛있게 잘해준다던데?”
짓궂은 미소를 지은 고모가 태주를 놀렸다.
“벌써부터 수안 씨 입맛에 길든 거 아닌지 몰라. 솔직히 말해봐, 수안 씨랑 나 중에 누구 밥이 더 맛있어?”
그 말에 난감해진 태주는 괜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태희, 얘는 밤 10시가 됐는데도 안 들어오네요? 오랜만에 태희 얼굴 보려고 촬영 전에 짬 내서 온 건데….”
“요즘 태희 여러모로 바쁘다. 밤 11시에 귀가하는 건 일상이야.”
“대학생이 왜 그리 바쁜데요?”
“미팅하느라 그렇지.”
“아직도 미팅해요? 공부는 안 하고?”
“공부하면서 미팅도 하는 거지.”
눈을 찡긋한 고모가 태주에게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태주 너랑 다르게 태희는 이런 쪽으로 과감한 면이 있더라고. 게다가 태희한테 ‘신방과 여신’이라는 별명이 붙었거든. 크크크!”
기분 좋게 웃는 고모와 달리 태주는 반응이 썩 좋지 못했다.
“고모, 그래도 이렇게 늦게까지 안 들어오는 건 좀 아니죠. 게다가 태희는….”
‘그러면 도준이는 뭐가 되는 건데?’
“태희가 왜? 어차피 남자친구도 없는데 미팅 좀 할 수 있지, 뭐.”
태주의 미심쩍은 얼굴을 본 고모가 슬쩍 미끼를 던져 보았다.
“아니면 네가 뭔가 아는 거라도 있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주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요즘 고모부가 좀 늦게 오시죠? 혼자서 밥 먹는 날이 많겠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요즘 용석이가 좀 이상하게 군단 말이지.”
그 말에 태주의 귀가 쫑긋거렸다.
“고모부가요?”
“그래. 집에서 핸드폰을 주구장창 하는 모습을 내가 우연히 봤거든. 그런데 핸드폰으로 꽃다발 알아보고, 이벤트에 눈독 들이고.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이상한데요?”
“아니, 생전 일에 치여 사는 양반이 꽃다발이나 이벤트 같은 데에 관심을 왜 가지냐 이 말이지.”
꿀꺽.
잔뜩 긴장한 태주에게 고모가 결정타를 날렸다.
“용석이가 나한테 이벤트라도 해주려는 건가?”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