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38
외전 8화
프러포즈 대작전 (8)
* * *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기 전.
황유나는 아까 몰래 들었던 송도준의 대화를 서둘러 핸드폰에 정리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숨어서 조심스레 듣느라 놓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알짜배기 정보는 다 잡았다고 자부한다.
“그럼 송도준은 한태주 씨 아역배우 했을 때부터 차태희 씨랑 인연이 있었다는 건가? 하긴, 둘이 같은 초‧중‧고 나와서 대학교까지 같이 간 걸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니지.”
혼자서 중얼대던 황유나의 머릿속은 무지갯빛 미래로 가득했다.
홍은지와 우성림이 특종을 보도하고 연예부 톱을 찍은 것을 보며, 늘 그들을 선망하던 그녀였다.
비록 한태주 선배 같은 톱스타의 특종은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송도준의 특종을 잡지 않았는가.
그것도 한태주 씨의 사촌 동생과의 열애설 말이다.
당당하게 정기자가 된 이후, 그동안 특종을 잡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던가.
지난날을 회상하던 황유나는 순간 망설였다.
그동안 한태주 선배와 쌓아온 우정과 인연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찔렸기 때문.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거 내가 보도해도 되나? 한태주 선배, 가족 이야기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잠시 고민한 황유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초안부터 쓰고 보자. 기사를 낼지, 말지는 그 후에 생각해 보자고.”
* * *
드라마 촬영으로 밤을 새운 태주는 집에서 한숨 푹 잔 후, 오후 느지막이 회사에 출근했다.
배우 1팀 사무실에서 박인우가 여러 우편물을 확인하다가 태주를 발견했다.
“태주야! 피곤할 텐데 오늘은 쉬지.”
“대본 연습하려고. 매일 했는데, 오늘이라고 쉴 수는 없지.”
“안 그래도 네 드라마 촬영 기사 엄청나게 올라왔더라. 홍보팀에서도 그러던데, 단막극 관련 기사가 이렇게 많이 뜬 건 처음이라고.”
“그래?”
태주는 소파에 털썩 앉아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연예란 최상단에 뜬 기사 모두 그의 이름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태주의 시선은 조회 수 상단에 있던 스타뉴스 기사에 꽂혔다.
기사의 내용을 읽던 태주가 만족스러운 듯 피식 웃었다.
“유나가 기사를 잘 써줬네.”
태주가 보고 있던 기사를 확인한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황 기자가 현장 분위기를 잘 순화해서 써주긴 했지?”
“맞아. 사실 촬영장 분위기가 처음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었거든. 도준이가 계속 실수해서.”
“안 그래도 진혁 씨한테 들었어. 늦게까지 촬영하는데, 도준이가 NG를 10번 넘게 내서 분위기 좀 안 좋았다며. 그런데 네가 도준이 밴으로 데려가서 뭐라고 했더니, 갑자기 애가 연기에 확 집중했다지?”
다음 우편물을 집어 든 박인우가 태주를 보며 낄낄거렸다.
“혹시 후배 데려가서 잔소리라도 한 거야? 이야, 한태주 효과 좋네!”
“잔소리는 무슨. 사랑하는 후배가 연기 더 잘하도록 격려 좀 해준 거지.”
“근데 도준이 너랑 작품 한 이후로 NG 웬만해서는 안 내는 걸로 유명해지지 않았어? 얼마나 대사를 잘 외우고 NG를 안 내면 별명이 제2의 한태주였겠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대?”
“무슨 일이 있기는. 지나친 억측은 안 해줬으면 좋겠어, 형.”
태주는 박인우의 궁금증을 딱 잘라버렸다.
도준이가 태희와 썸씽이 있다는 것을 아직은 밝히고 싶지 않았다.
둘의 관계가 확실해지면, 그때 밝혀도 늦지 않을 일이다.
그때, 박인우가 하얀 봉투를 급히 숨기는 모습에 태주는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대체 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걸 그렇게 숨긴다고? 이리 줘봐.”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낚아챈 봉투에 적힌 눈에 띄는 이름 석 자, 민소예.
“결혼식 초대장이네?”
그리고 수신인으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에, 태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타이밍이 참 묘했다.
민소예 이야기를 도준이에게 털어놓은 것이 불과 하루 전이었는데, 오늘 이런 우편이 오다니.
태주는 탁, 하고 우편물을 책상에 던져 버렸다.
“형은 갈 거야?”
“내가 왜 가냐, 안 가.”
“내 눈치 보지 말고 가. 민소예랑 친하잖아.”
“집안끼리 아는 사이라 예전에나 친했지, 요즘은 연락도 거의 안 해. 아…, 민소예 얘 진짜 짜증 나네.”
박인우는 가지런히 정리한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회사로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말 한번 더럽게 안 듣지.”
“형한테 보낼 걸 나한테 잘못 보낸 거 아냐?”
“아니, 내 건 집으로 왔었어.”
태주의 눈치를 보던 박인우가 말을 이었다.
“지난주인가, 우리 집으로 초대장이 와서 한번 통화했었거든. 근데 네 집 주소를 물어보는 거야, 그쪽으로도 보내고 싶다면서.”
“그래서 설마, 알려준 건 아니지?”
“미쳤냐? 내가 그걸 왜 알려줘! 회사로도 보낼 생각 말라고 경고했는데, 그게 오히려 걜 자극했나 봐. 미안하다, 태주야.”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태주의 차분한 말투에 박인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내가 괜히 오바했나 보다. 아무튼,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서. 다음 달 있을 진천 팔콘스 시구자 제의가 왔어. 할 거야?”
“당연히 해야지! 응원팀 유니폼 입고 시구하는 기회가 얼마나 있다고. 게다가 판콘스가 무려 10년 만에 가을야구 올라간 거잖아.”
무심했던 태주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지자 박인우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그 전에 참석해야 할 행사 있는 건 알지? XGV에서 하는 한태주 특별전.”
“응. 무척 기대하고 있어.”
태주가 손을 모으며 눈을 반짝거렸다.
“배우 평생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잖아.”
“그 행사에 한서경 회장님도 엄청 신경을 쓰고 계시더라고. 내일 저녁같이 먹자고 하셨는데, 괜찮아?”
“좋아.”
태주는 왠지 기대되는 마음을 애써 숨겼다.
XJ의 회장인 한서경과의 만남은 늘 좋은 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 *
다음 날 저녁, 한 고급 한식당.
태주와 한서경은 식사하며 진솔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태주 씨 20대 초반에 본 것 같은데 어쩜 지금도 그때의 청량함이 여전한지. 지금 나이가 몇이죠?”
“서른다섯입니다.”
“나이도 딱 좋네. 어쩐지 더 멋있어졌더라. 흐흐.”
한서경은 마치 아들을 보듯 태주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 XGV에서 한태주 특별전 하는 거 축하해요. 데뷔 28년 만이죠? 오래 걸렸네요.”
“배우 인생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선우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선배보다 5년 정도 기회를 빨리 받았다고.”
“그만큼 한태주 씨가 연기적으로 독보적인 반열에 올랐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쪽에서는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한창 이야기를 계속하던 그때 한서경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는지 지잉, 진동 소리가 울렸다.
“미안해요. 우리 조카가 자꾸 눈치 없이 문자를 보내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핸드폰을 보던 한서경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사실은 이번에 우리 조카하고 GX 막내딸하고 결혼한다고 해서요. 걔 엄마가 일찍 죽어서 날 엄마처럼 생각하거든요.”
“오, 조카분이요?”
“그 아이 엄마가 내 사촌 언니라, 정확히는 5촌 조카예요. 지금 백산 계열사에서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40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워커홀릭이라 영 결혼 생각이 없는 애였거든요. 근데 갑자기 GX 막내딸인 민소예랑 결혼한다지 뭐예요.”
익숙한 이름의 등장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얼굴이 굳어졌다.
“아! 그러고 보니 태주 씨랑 동문이네요. 혹시 뭐 아는 거 있어요?”
“글쎄요….”
말을 흐리며 태주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지만, 한서경은 자기 말에 심취해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제가 언니 대신해서 상견례 자리에 나갔다가 봤는데, 완전 여우 같은 게 영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GX 패션 계열을 담당하는 패기는 알겠는데, 뭔가 허영심 넘치고 야망이 지나치게 큰 게. 우리 조카를 진짜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이용하려는 거 같아요. 하긴, 우리 집안이나 그쪽 집안이나 다들 정략혼 하는데, 결혼에 무슨 사랑이 있겠냐 싶긴 하지만요.”
정신없이 말하던 한서경은 태주의 굳어진 얼굴을 그제야 발견하더니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미안해요. 답답한 마음을 괜히 태주 씨한테 풀었네요. 이런 걸 어딜 말할 사람이 있어야죠.”
“괜찮습니다.”
태주의 잘생긴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띠자, 한서경이 그에게 진지한 시선을 맞췄다.
“그나저나, 나는 우리 조카보다 태주 씨가 먼저 장가갈 줄 알고 준비 다 해놨는데. 도대체 언제 가요?”
“그게 무슨….”
“내가 늘 말하잖아요. 태주 씨 결혼식에 주례로 좀 불러 달라고. 누구보다 끝내주게 할 자신 있다니까요!”
한서경이 태주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래서 말인데 태주 씨는 결혼 언제 해요?”
“하하,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말 좀 해줘요. 나 입 무거운 거 알죠?”
“정말로 계획조차 없습니다.”
태주가 신중하게 대답을 골랐다.
“저도 수안 씨도 아직은 좀 더 배우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둘 다 톱스타인데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남았나 봐요?”
“하하, 저희가 일 욕심이 많아서요.”
“뭐, 대중이야 태주 씨가 계속해서 일하고 그러면 좋죠. 그런데 태주 씨, 그거 알아요? 인생에는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타이밍이 있다는 거.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요.”
한서경의 그 말은 태주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은 늘 타이밍을 잘 잡았기에 많은 걸 이룰 수 있었다.
이중협을 만나 연기를 다시 시작한 것도.
여러 좋은 작품들에 참여한 것도.
그리고… 윤수안에게 고백해 지금까지 사귀게 된 것도.
그때, 태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을 무시하려 했지만, 이제는 메시지 테러가 날아왔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연락받아요. 아까는 내 핸드폰이 바쁘더니 이제는 태주 씨 핸드폰이 바쁘네.”
“아닙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며 확인한 메시지 발신인의 정체에 태주가 눈살을 찡그렸다.
‘민소예 얘는 왜 또 연락한 거야?’
-너 지금 XX 한식당에서 한서경 회장님하고 저녁 식사하고 있다면서? 너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얼른 튀어와. 할 말 있으니까.
‘아니 우리 집 주소는 또 어떻게 알아낸 거지? 어이가 없어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에 태주가 콧방귀를 뀌자, 한서경이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태주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한서경에게 눈을 돌렸다.
“스팸 문자가 와서요.”
오늘은 고모 집으로 피신해 있어야겠다고, 태주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