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39
외전 9화
프러포즈 대작전 (9)
* * *
“오늘 저녁 정말 잘 먹었어요.”
식사가 끝난 후, 태주는 한서경과 함께 식당 밖을 나섰다.
한서경은 기분이 좋은지 태주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주 씨가 사주는 저녁이라 밥맛이 더 좋았던 거 같아요.”
“하하, 그렇다면 제가 몇 번이라도 사드리겠습니다.”
“어른이 돼서 염치없게 그럴 수는 없죠. 다음에는 내가 꼭 살게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한서경과 헤어진 태주는 시간 맞춰 자신을 데리러 온 장진혁을 만나 차에 몸을 실었다.
“그럼 출발한다.”
장진혁의 진중한 목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태주가 빠르게 말했다.
“오늘은 우리 집 말고 고모 집으로 가줘.”
“고모님 댁으로?”
백미러로 피곤한 태주의 낯을 확인한 장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언제나 그랬듯 장진혁은 태주에게 그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태주의 말대로 할 뿐.
고요한 분위기 속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어느새 태주는 고모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럼, 내일 여기로 데리러 올게. 아침 8시면 괜찮지?”
내일은 드라마 촬영이 오전부터 있는 날.
일정을 생각하던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을 것 같아.”
그러고는 장진혁에게 복잡한 시선을 보냈다.
“내 뜻대로 해줘서 고마워, 진혁아. 이유를 묻지 않은 것도.”
“형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은 아니니까.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
“아니, 괜찮아.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알겠어. 그럼, 내일 보자.”
장진혁이 차를 몰고 떠나고.
홀로 남은 태주의 표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하…. 내가 너무 한심한 건가?”
전 여친과 마주치기 싫다고 고모 집으로 도망친 꼴이라니.
그래도 민소예와 마주치는 것보다는 고모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게 나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모하고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태주는 방향을 틀어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 * *
한편, 태주의 집 앞.
그곳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던 고급 자동차 안에서 민소예가 손목시계를 보며 투덜거렸다.
“혹시 나 피해서 오늘 집에 안 들어오는 거 아니야? 괜히 문자 보냈나?”
그때,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아까부터 경비가 저희를 이상하게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뭐 불법침입을 했어요, 불법 행위를 했어요? 고작 그런 일에 쫄지 마요.”
“아니, 저희를 보는 눈빛이 꽤 이상해서 말입니다.”
“돈이나 좀 쥐여 주고 와요. 그럼 조용해지겠죠.”
운전기사는 민소예가 건넨 두툼한 봉투를 가지고 경비실로 향했지만, 곧이어 주눅이 든 채 다시 돌아왔다.
“이러면 경찰에 신고한다는데요?”
“뭐라고요?!”
“아가씨를 직접 봐야겠답니다.”
“그건 안 되죠. 그럼 내가 너무 쪽팔린 게 되잖….”
그때, 밖을 지나가는 한 여자가 민소예의 눈에 띄었으니.
“윤수안?”
검은 차에서 내려 캡모자와 마스크로 스스로를 꽁꽁 싸맸지만, 민소예는 그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민소예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차라리 저 여자하고 얘기하는 게 더 낫겠네. 김 기사,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아가씨, 그게 무슨….”
쾅!
밖으로 나간 민소예는 윤수안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나랑 얘기 좀 해요.”
“누구신데요?”
“내가 누구긴, 나 몰라요? GX 그룹 막내딸 민소예잖아요.”
그 말에 윤수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요?”
심드렁한 반응에 민소예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나, 태주랑 사귀었던 전 여친이라고요.”
그 말에 윤수안의 눈이 커졌다.
여태껏 태주와 사귀면서 서로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얘기였기 때문.
흔들리는 윤수안의 눈동자를 발견한 민소예가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나랑 얘기할 마음이 좀 생겼어요?”
* * *
밤늦은 시각, 민소예는 자신이 다니는 고급 바로 윤수안을 데려갔다.
남들이 볼 수 없는 프라이빗 룸으로 간 두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윤수안은 민소예가 왜 태주 집 앞까지 찾아왔을지 고민 중이었다.
자신은 그저 평소처럼 태주의 집에 놀러 갔을 뿐인데.
태주 대신 그의 전 여친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재벌가의 영스타이자, SNS 스타인 그녀가 한태주의 전 여친이라니.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태주가 이 여자가 마음에 걸려서 나한테 고백을 늦게 한 건가? 왜 나한테 비밀로 했을까? 도대체 뭘 더 숨기고 있는 거지?’
그때 윤수안의 귓가에 민소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언젠가는 그쪽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뭐, 모양새가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한태주라는 공통점으로 엮인 사람들이잖아요?”
“본론부터 말씀하시죠.”
윤수안이 인형처럼 차가운 얼굴을 민소예에게 고정했다.
“태주는 왜 보러 오신 거죠? 그것도 이렇게 야심한 밤에.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각인데요.”
“태주랑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태주가 나타나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당신한테 말해야겠네요.”
민소예가 거만한 얼굴을 들으며 선언했다.
“윤수안 씨, 태주하고 결혼하는 거 최대한 미뤄요. 내년 이후가 괜찮을 것 같네요.”
“……?”
상상도 못 한 황당한 무례함에 윤수안은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뒤늦게 반박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곧 기사로 나겠지만. 저, 올해 가을쯤에 결혼할 거거든요.”
민소예는 왼손 약지에 낀 두툼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하듯 내보였다.
“제 결혼식이 괜히 다른 사람들 소식에 묻히는 건 싫어서요.”
“네?”
“당신들 결혼 소식 때문에 내 결혼식이 빛바래는 게 싫단 뜻이에요. 그러니까 올해 중에 결혼하지 말라고요.”
“그건 안 되겠는데요. 저희가 왜 그쪽을 위해서 양보해야 하죠?”
얼굴이 벌게진 윤수안이 벌떡 일어났다.
이런 말을 들은 게 기가 막혔다.
아직 태주가 제대로 된 프러포즈도 안 했고, 결혼할지조차 미지수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정해졌다.
“저희가 원할 때 결혼할 거니까. 그쪽이 알아서 재주껏 피해서 가든지 말든지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윤수안이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쿵쿵거리며 밖으로 나온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씩씩거렸다.
“도대체 뭔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진짜 어이가 없네. 누구 마음대로 우리더러 결혼하라 마라야.”
분노를 삼키던 윤수안은 문득 민소예가 자신이 한태주의 전 여친이라며 자랑스레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에 갑자기 화가 치솟은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한태주. 너 나랑 결혼 안 하기만 해.”
세상에서 가장 충동적이고 강렬한 청혼이라고, 나중에 태주는 그 일을 회고했다.
* * *
“오, 이거 대박 특종인데.”
한편, 윤수안이 통화로 치기 어린 프러포즈를 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몰래 촬영한 사람이 있었으니.
주차된 자그마한 차 안에서 조용히 잠복해 있던 홍은지가 입을 틀어막으며 환호의 샤우팅을 애써 참았다.
“천하의 윤수안이 한태주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내가 유일하게 목격하다니. 이건 단독 기사로 충분히 낼 수 있겠어!”
잠시 후 그녀는 목을 길게 빼 어둑한 골목길에 서 있던 윤수안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어디론가 떠난 뒤였다.
홀로 남은 홍은지는 아까 찍은 윤수안의 영상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파파라치처럼 이러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태주 씨 관련 특종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그러다 문뜩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입을 비죽거렸다.
“윤수안과 민소예라. 왜 그 둘이 한태주 집 앞에서 만난 거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톱스타 윤수안과 GX 그룹 막내딸 민소예와의 관계를.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정보가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거다.
홍은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동 시각, 집 안에서 전화를 받은 태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재밌다는 듯 입을 씰룩거리던 고모는 그에게 눈짓했다.
“수안 씨가 청혼한 거야, 지금?”
“고모도 들었어요?”
“당연하지. 그렇게 크게 소리치는데 안 들릴 리가 없잖아.”
고모가 재밌다는 듯 손을 모았다.
“그런데 수안 씨 대단하다. 정말 용기 있어. 나도 수안 씨처럼 먼저 프러포즈나 할 걸 그랬다.”
“그것보다 수안이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술 먹고 실수할 사람은 절대로 아닌데.”
태주는 다시 윤수안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호는 가는 걸 보니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나한테 화났나 봐요,”
“화난 사람이 너한테 결혼하자는 소리를 해?”
“글쎄, 그게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목소리가 잔뜩 화나 보였어요.”
“혹시 네가 민소예 피해서 여기 온 걸 안 거 아니니?”
“그건 절대로 모를걸요? 몰라야 하고요.”
태주가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겼다.
화가 잔뜩 난 연인은 그때그때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법칙이었다.
“오늘 이만 가볼게요, 고모.”
“자고 갈 줄 알았는데, 아쉽네.”
태주를 배웅하던 고모가 씩 웃으면서 그를 마주했다.
“사랑싸움은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해!”
* * *
인생은 계획대로만 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간밤에 윤수안을 만나 사정을 들으려고 했던 태주는, 결국 그녀를 보지 못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고.
드라마 ‘프러포즈 대작전’ 촬영이 한강 근처 공원에서 잡혀 있는 이때.
태주는 분장차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그의 피부에 파운데이션을 올리던 스태프가 걱정스러운 듯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제 피곤하셨나 봐요. 다크서클이 많이 올라오셨어요.”
“그래요?”
“파운데이션으로 잘 가려지지 않아서 컨실러로 가려야겠어요.”
그때, 분장차로 들어온 박인우가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주며 말했다.
“이야, 밖에 사람들 엄청 많아. 저번 골목길 촬영하고는 구경꾼들 수가 비교도 안 돼. 그나저나 방금 수안 씨한테 인사하고 왔는데, 오늘 텐션이 좀 낮더라. 네 얘기를 했는데도 표정이 별로 안 좋더라고. 혹시 너희 둘이 싸웠냐?”
그 말에 태주가 뜨끔, 하며 고개를 저었다.
“싸우다니, 우리가 왜 싸워.”
“하긴, 연예계 잉꼬 커플로 소문난 사람들이 싸웠을 리가 없지. 그것도 촬영 전날 말이야.”
태주는 짐짓 불편함을 참고 메이크업을 마쳤다.
분장차에서 나오니 이미 제작진과 여러 배우가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윤수안이 여러 배우와 미리 합을 맞춰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틈에 태주가 슬며시 끼었다.
“안녕하세요.”
그런 태주를 발견한 윤수안이 차가운 시선을 잠시 맞추다, 이내 거두었다.
얼음장 같은 윤수안의 냉랭한 태도.
감독과 제작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이야. 역시 ‘요정의 여왕’이라는 캐릭터 콘셉트에 맞춰 완벽하게 준비해 오셨네요.”
“윤수안 씨 역시 도도한 역할도 잘 어울린다니까요.”
그러나 태주는 알 수 있었다.
윤수안이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걸.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자, 다들 준비하시고….”
그때 촬영장에 호쾌한 감독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