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40
외전 10화
프러포즈 대작전 (10)
* * *
초가을에 돌입한 한강공원.
많은 사람이 휴일을 맞아 이곳에 나와 있는 지금, 현탁은 램프의 요정 진과 함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현탁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왜 이렇게 긴장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도 이런 모습 보여줄 거야?”
“긴장되는 걸 어떻게 해요.”
현탁이 힘줄이 불거진 손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수빈이가 데이트 신청을 단박에 들어줄 줄 몰랐다고요.”
“내가 그랬잖아, 수빈이는 네가 그동안 자신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진은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이제 십년지기 친구는 집어치워! 이제부터는 남자로 다가서는 거야.”
“그 전에 고백부터 해야겠지만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현탁이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진은 그런 현탁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힘내, 용기 있는 자만이 아름다운 여인을 쟁취할 수 있는 거라고! 오, 저기 수빈이 온다!”
서둘러 물러서 커다란 나무 뒤에 숨은 진은 수빈을 맞이하는 현탁을 지켜보았다.
현탁의 제안에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게 된 둘.
하얀 스커트에 분홍 블라우스를 입고 나온 수빈은 현탁과의 데이트에 나름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은근슬쩍 현탁에게 팔짱을 끼는 모습도 제법 애교스러워 보인다.
수빈의 적극적인 대시에 현탁이 오히려 뚝딱거리며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진은 눈을 크게 뜨며 안타까워했다.
“현탁아, 남자는 적극성이야! 수빈이가 저렇게 대시하는데 좀 받아주는 척이라도 해!”
그때, 그의 등을 똑똑 두드리는 차가운 손길이 있었으니.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서 인간들 연애나 도와주고 있었어?”
“저 지금 바쁜 거 안 보여요? 도대체 무슨….”
한창 집중하던 차에 누군가에게 방해받은 것이 못마땅한 진이 짜증을 내자.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울려 퍼졌다.
“다른 사람 연애 챙기기 전에 본인 연애부터 좀 신경 쓰지, 그래?”
“란…, 란희?”
그제야 연인을 알아본 진이 서둘러 뒤를 돌았다.
램프의 요정 지니의 첫사랑이자 현재 1년간 연애 중인 요정계의 여왕, 란희.
그녀가 얼음장 같은 차가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 * *
“컷! 오케이.”
호쾌한 감독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남과 동시.
태주는 윤수안이 서둘러 자신에게서 몸을 돌려 감독에게 가는 것을 보았다.
느낌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눈길도 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때 방금 전 찍은 씬을 모니터링을 하던 감독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수안 씨, 오늘따라 유독 연기가 날이 서 있네요. 아주 좋아요! 요정 여왕의 날카로운 우아함을 기대했거든요.”
“감사합니다.”
“수안 씨 평소에 유한 성격이라 이런 거 못 할 줄 알고 좀 걱정했는데. 제 상상 이상으로 너무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안 그래요, 태주 씨?”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태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소 윤수안이 짜증은커녕 화내는 모습도 본 적 없던 태주로서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작품 속에서라지만, 윤수안이 이렇게 냉랭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잠깐 쉬었다가 촬영 재개합시다!”
촬영이 잠시 예열 상태에 들어가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태주에게 아는 척을 했다.
“한태주 씨 오늘 진짜 멋져요!”
“오늘 연기도 정말 판타스틱!”
손을 흔들며 그가 화답하던 그때.
태주는 혼자서 대본을 보는 윤수안을 발견했다.
“수안아.”
“촬영 중에는 아는 척하지 마.”
“나한테 화난 거지?”
그 말에 윤수안은 되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서슬 퍼런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내가 너한테 화가 났다고?”
“그런 거 아냐? 지금 하는 것만 봐도….”
“그래, 화났다고 쳐. 그럼 왜 화났는지도 알겠네?”
“그건, 네가 말해줘야 알지.”
“모르면 됐어. 내가 왜 화났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대화를 해.”
그녀는 차가운 기색을 유지하며 태주의 손을 뿌리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태주는 괴로움에 머리를 세게 헝클었다.
연인과 함께하는 드라마 촬영이라 즐겁고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윤수안이 툭툭대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말을 해주던가!”
…아니지. 차라리 잘 된 건가?
이어서 촬영할 장면이 서로 싸우는 씬이었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배우의 시각이었다.
이에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헛웃음을 지었다.
“나도 참, 이런 와중에 연기 생각이라니….”
* * *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일전보다 훨씬 많은 구경꾼이 몰려든 가운데.
사람들은 단순히 연예인을 구경하는 것 이상으로 촬영에 몰입해 있었다.
“연락이 안 돼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미안해, 정말.”
“도대체 뭐가 미안한지 알기는 해?”
“아까 말했잖아, 연락이 안 돼서 미안하다고.”
“단순히 내가 그거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해?”
요정의 여왕을 연기하던 윤수안이 태주에게 핏기 어린 시선을 쏘아댔다.
“넌 항상 이런 식이었어. 말없이 사라지고, 자꾸 비밀을 만들지. 내가 그때마다 혼자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윤수안과 한태주의 연기에 내심 감탄한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둘이 진짜로 싸우는 거 같은데?”
“실제 커플이라 그런가 싸우는 씬도 정말 리얼하다. 둘이 실제로는 한 번도 싸운 적 없을 것 같은데.”
“쉿, 조용히 좀 해주세요.”
구경꾼들을 단속하던 조연출이 입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녀 또한 촬영에 한껏 몰입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네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건 미안해. 근데 란희야.”
태주가 윤수안을 보며 절실한 눈빛을 보냈다.
“내가 여태껏 이유 없이 행동한 적 있어? 널 이유 없이 불안하게 만든 적 있어?”
“그건….”
“이거 하나는 네 앞에서 맹세할 수 있어.”
태주가 윤수안의 손을 꼭 쥐며 덧붙였다.
“나, 널 사랑하는 만큼 네 믿음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거.”
그 말에 윤수안의 커다란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것이 극 중 캐릭터에 몰입해서인지, 아니면 실제 마음 때문인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었다.
* * *
동 시각, 스타뉴스.
우성림은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인터넷 뉴스를 보며 바쁘게 눈을 굴리고 있다.
황유나가 현장에서 취재해 바로 송부한 기사를 열심히 읽던 우성림이 흡족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유나가 기사 쓰는 스킬이 늘었네. 그리고… 한태주 씨와 윤수안 씨는 실제 연인이라 그런지 합이 잘 맞나 봐. 기사에 호평일색이네.”
그때, 누군가 활기차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 복귀했습니다!”
이제 막 한강공원에서의 취재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온 황유나였다.
“그래, 수고했다.”
“제가 아까 보내드린 기사는 반응 어때요?”
“지금 실검 1위다. 한태주와 윤수안이 공개 연애하면서 같이 연기하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다들 반응이 뜨겁더라고. 근데, 직접 본 둘의 연기 호흡은 어땠냐?”
황유나가 한껏 달아오른 모습으로 대답했다.
“오늘 둘이 다투는 씬이었거든요? 그런데 와, 진짜로 싸우는 줄 알았어요, 완전 리얼.”
“둘 다 연기 잘하는데, 그건 당연하겠지.”
“아뇨,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니까요!”
드라마 현장 상황을 상기하던 황유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태주 선배는 그렇게 절절할 수가 없었고, 윤수안 씨도 그렇게 냉랭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무튼, 드라마 보시면 그 진가를 아실 거예요.”
“그래, 그래.”
“그런데 선배님.”
황유나가 사수인 우성림에게 기대감에 찬 얼굴로 다가갔다.
“제가 일전에 보내드린 기사 초안은 좀 보셨어요?”
그 말에 우성림은 황유나가 어떤 기사를 이야기하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송도준과 차태희의 열애설이었다.
“기사? 메일로 보낸 거 말이야? 흠, 그게….”
“제가 초특급 기사의 초안을 무려 선배님께 최초 공개한 거라고요. 좀 봐주세요, 선배님.”
“이미 봤어, 봤는데. 네 기사가 특종이 될 수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더라고.”
우성림이 황유나에게 진지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송도준 씨랑 차태희 씨랑 확실히 사귄다는 증거가 없잖아. 사진도 없고, 음성 자료 같은 것도 없고.”
“송도준 씨가 차태희 씨에게 전화로 고백하는 걸 제가 똑똑히 들었어요. 일부 녹음도 했는데요.”
“그건 불법 도청 아니냐?”
“어쨌든 송도준 씨의 열애설은 특종 아닌가요? 그리고 그 상대가 무려 태주 선배의 사촌 동생이라니, 얼마나 로맨틱해요! 제2의 한태주라 불리며 태주 선배의 이쁨을 듬뿍 받는 송도준 씨가 선배랑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기회라니!”
“암튼, 이건 아직 기사로 낼 수 없어. 특종을 내고 싶으면 둘이 사귄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와”
우성림이 이렇게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지금 한창 홍은지와 함께 준비 중인 한태주 결혼설 기사에 영향이 갈까 봐서였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괜히 차태희를 잘못 건드렸다가 한태주의 심기를 거슬러 역풍을 맞을까 봐 걱정돼서다.
“알겠습니다. 좀 더 보완해서 다시 올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와라.”
우성림의 불호령을 뒤로 한 황유나가 터덜터덜 휴게실로 향하던 그때.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홍은지가 어느새 쓱, 나타났다.
“유나야, 잠깐만.”
홍은지는 군침이 싹 도는 눈빛으로 황유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성림이한테 말했던 거, 송도준 씨 열애설 말이야. 그거 나도 보여줄래?”
* * *
한편, 회사로 돌아온 태주.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루이스 모드’ 쥬얼리 광고 건으로 미팅하기 위해서다.
태주는 회의실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데 회의 진행 물품들만 있고 사람들이 없었다.
“아직 안 오셨나 보네.”
태주는 발걸음을 돌려 배우 1팀 사무실로 향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빛나는 눈길을 보냈다.
“오늘 윤수안 씨하고 피 튀기는 촬영 하셨다면서요? 드라마에서 진짜 기대되는 씬이에요.”
“한태주 씨의 연기 정말 기대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저도 연기가 아니라 현실로 싸우는 줄 알았으니까요.’
태주는 기가 쪽 빨린 채 박인우의 사무실로 향했다.
살짝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인우가 문을 등진 채 누군가와 격렬하게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야, 너 미쳤냐? 내가 네 결혼식을 왜 가. 그리고 무슨 그런 얘기를 하냐. 너 진짜 제대로….”
박인우가 인기척에 태주를 발견하고는.
“야, 끊어.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로 연락하지 마. 안 그럼 너희 아버지한테 일러바친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형, 무슨 일이야?”
통화를 끊은 박인우는 태주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은 그게…. 소예가 올해는 자기 결혼식이 가장 주목받아야 하니까, 너랑 수안 씨는 눈치껏 내년에 결혼하라는데?”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정신 나간 거 아냐?”
태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제 민소예 때문에 일부러 집에 안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인우 형을 들들 볶은 모양이다.
“형, 그것보다 오늘 드라마 촬영 내내 수안이가 나한테 화가 났더라고.”
“그래? 너 수안 씨한테 뭐 잘못했어?”
“글세. 나도 잘 모르겠어.”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배우 1팀의 송 대리가 헐레벌떡 태주에게 다가와 헉헉거렸다.
“태주 씨, 빅 뉴스, 빅 뉴스. 지금 ….”
성질 급한 박인우가 끼어들었다.
“왜 그래요? 태주하고 GX 관련해서 뭐가 터졌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 인터넷 좀 확인해 보세요. 태주 씨 사촌 여동생 열애설 났어요!”
“뭔 소리예요? 제 동생은 일반인인데.”
“상대가 연예인이에요.”
“예?”
그 말에 태주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기사를 확인했다.
연예란 맨 위에 뜬 기사 제목에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