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43
외전 13화
프러포즈 대작전 (13)
* * *
얼마 후.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 단지로 연예인용 밴이 한 대 들어섰다.
곧이어 태주는 윤수안을 따라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이제껏 수없이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뭔가 느낌이 달랐다.
깔끔한 성격대로 정갈하게 정리된 윤수안의 집.
그때 옆에서 꼬르륵, 거리는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배를 부여잡고 있는 윤수안의 빨개진 얼굴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닌 척 입을 쭉 내민 건 덤이었다.
그 모습도 귀여웠던 태주는 피식 웃었다.
“배고프지? 저녁은 내가 할게, 냉장고에 있는 거 대충 털어먹자.”
“아냐, 내가 할게. 오늘 너도 촬영하느라 힘들었잖아.”
몸에 밴 듯 서로를 배려하던 태주와 윤수안.
결국 절충안으로 부엌에 나란히 서서 저녁을 준비하게 됐다.
오늘 할 요리는 된장찌개와 오므라이스.
태주는 도마에 올려진 야채를 썰고, 윤수안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잘게 썬 햄을 볶던 이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손길에 윤수안이 눈을 크게 떴다.
“왜 이래? 나 아직 스킨십까진 허락한 적 없어.”
“머리카락이 옷에 붙어서 떼주려고 그랬지.”
태주가 능청스럽게 손에 든 머리카락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누가 봐도 길이가 짧은 남자 머리카락이라 윤수안은 풉, 하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내뿜었다.
“그거, 네 머리카락 아냐? 지금 나 만지려고 거짓말까지 한 거야?”
“무슨 소리야. 나 그렇게 변태 아니다.”
“맞는 거 같은데, 뭘.”
웃음 덕분인지, 핀잔을 주는 윤수안의 표정이 점점 풀어졌다.
어느새 저녁이 완성되었고, 둘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언제 화가 났냐는 듯 윤수안은 고운 눈을 태주에게 마주치며 웃었다.
“으음, 역시 배고플 때 먹으니까 맛있다.”
“내가 먹여주면 더 맛있을걸?”
태주가 새 숟가락으로 찌개를 퍼 코앞에 대령하자, 윤수안이 새침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입을 벌렸다.
“뭐, 태주 네가 먹여주니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태주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수안이 말을 받아주는 걸 보니, 화가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다.
정말 화가 났을 때는 말하는 것조차 피했던 그녀였으니까.
그의 안도감을 눈치챈 듯 윤수안이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설마 나 화 풀렸다고 안심하는 건 아니지?”
“아냐, 그런 거. 내가 더 잘해야지.”
“그래, 아직 나 완전히 풀린 거 아냐.”
윤수안이 툭, 하고 태주의 엉덩이를 쳤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 * *
식사를 마치고, 태주는 윤수안과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티비를 시청 중이다.
마침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나온다.
“이 노래 신난다. 요즘 역주행하고 있는 곡이라고 했지?”
“맞아. 근데 애들 의상이 너무 파였다. 나이 어려 보이는데.”
윤수안은 태주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대며 꼼지락댔다.
그러던 중, 눈에 익은 사람을 발견한 듯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쟤 예영이 아냐? 저기 가터벨트랑 튜브탑 입고 있는 애.”
윤수안을 보고 있던 태주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 예영이 맞네.”
그러자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과 완전히 딴판인 예영이 보인다.
촬영장에서는 수수하고 청순한 옷차림으로 메이크업도 연했는데, 무대에서는 섹시한 의상에 메이크업도 제법 진했다.
“예영이 몸매 좋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윤수안은 태주를 힐끔거렸다.
마치 그의 반응을 보려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예영이는 연기도 잘하는데, 노래도 잘하네. 하긴, 그러니까 회사에서 팍팍 밀어주는 거겠지?”
“확실히 애가 뭐든 열심히 하더라. 연기 센스랑 몰입감도 좋고.”
예영을 칭찬하는 듯한 뉘앙스에 윤수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준이한테 들었는데, 예영이가 오렌지 손수 갈아서 주스 만들어 왔다며. 너도 마셨어?”
“어, 맛있더라고. 시중에서 파는 주스만큼이나.”
“그래? 내가 토마토 갈아줬을 때는 그런 말 없더니.”
윤수안이 묘한 눈빛을 보내자, 태주는 서둘러 눈치를 챙겼다.
“물론 네가 갈아주는 주스가 제일 맛있지.”
“지금 와서 수습하려고 하지 마.”
“진짜야.”
태주가 쪽, 하고 윤수안의 볼에 자기 입술을 비볐다.
그의 애교에 윤수안이 못 이기는 척 입을 내밀었다.
“아무튼, 예영이한테 너무 친절하게 굴지 마.”
“왜?”
“예영이 아직 10대잖아. 그맘때 애들은 아직 사춘기라서 괜한 것들에도 착각하고, 마음 두근거리는 때가 많단 말이야.”
“수안아, 내가 설마 그런 어린애한테 착각의 여지를 줬을 것 같아?”
“네가 눈치가 없어서 여자애들 마음을 모르는 것 같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여태껏 내가 봐온 게 있는데….”
“뭘 봐왔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주를 보며 윤수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껏 수많은 작품을 하며 태주와 관계를 맺은 여배우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들 중 몇몇은 태주가 윤수안과 사귀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물론 태주는 그들의 관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뭐, 상관없다.
‘지금 태주는 내 남자니까.’
“됐어, 넌 몰라도 돼.”
진지해진 윤수안을 보며 태주는 슬슬 타이밍을 쟀다.
이대로 어영부영 넘어가기보다는, 확실히 사과하고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수안아, 너 민소예랑 만났다면서.”
“아…, 그거?”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듯 윤수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태주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자신의 진심을 어필했다.
“그때 일로 마음 상했던 거, 내가 미안해.”
그 말에 윤수안이 툭, 그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댔다.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그 여자가 이상한 거지. 그런데 한가지… 나하고 약속해.”
윤수안이 고개를 들어 태주와 시선을 맞추었다.
“앞으로는 나한테 비밀 같은 거 만들지 않겠다고. 나, 그 여자가 네 전여친이라고 으스대는 거 너무 꼴 보기 싫었단 말이야.”
“걔하고 사귀었던 일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야. 그래서 너한테 말하지 않았던 건데…, 미안해.”
“나는 다른 남자 사귄 적이 없어서 그런 마음, 솔직히 모르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볼게. 아무튼, 이제 그 문제는 그만 얘기하자. 괜히 우리 둘이 싸우는 거 이제 싫어.”
“수안아….”
왠지 감동한 듯한 태주에게 윤수안이 일격을 날렸다.
“오늘 자고 가.”
윤수안이 그의 손을 간질이며 고양이 같은 눈꼬리를 새침하게 올렸다.
“이대로 너 그냥 보내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그러자 태주의 입꼬리가 미소를 머금은 채 씩 올라갔다.
“그럴까?”
아마도 기나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 *
다음날, 새벽 동이 떠오르는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배달 옷을 입고 지하 주차장을 서성거리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아웃패치 기자, 조금동이었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 텐데….”
이곳이 연예인들과 사업가들이 많이 사는 고급 아파트인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그래서 특종을 위해 배달 라이더로 위장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요즘 스타뉴스에서 굉장한 특종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터라, 라이벌인 아웃패치에서도 특종을 잡아 오라고 기자들을 닦달했기 때문.
그때 지하 주차장을 한참 돌아다니던 조금동의 눈에 낯이 익은 차가 띄었으니.
“이거 윤수안 밴 아니야?”
평소 연예인들이 이용하는 차량을 머릿속에 꿰고 다니는 그였다.
그런데 회사에 있어야 할 밴이 왜 윤수안의 아파트에 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통화하면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영이 단속 좀 잘해, 서 팀장. 애가 드라마 촬영만 갔다 오면 완전히 해이해지잖아. 지금 한창 활동기인데, 신경 써야지.”
조금동은 재빨리 커다란 차 뒤에 숨었다.
“어제도 선배들한테 잘 보인다고 뭔 주스를 직접 갈아갔다며. 그런 허튼짓하지 말고 잠이나 더 자라고 해. 어차피 한태주나 송도준이나 텃세 부리고 그런 스타일 아니잖아. 뭐? 한태주만 보면 헤벌쭉하다고?”
달칵, 남자가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선명하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쪼그려 숨어있던 조금동은 재빨리 핸드폰에 메모를 시작했다.
메모를 마친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기에 예영이 속한 걸그룹 ‘미스틱’의 소속사 대표가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수확을 얻을 줄이야. 단막극 주연을 맡은 예영이 한태주에게 빠지다? 와, 이거 잘하면….”
“거기 누구십니까? 뭐 하세요!”
저 멀리 들려오는 경비원의 커다란 목소리에 조금동은 후다닥 사라졌다.
“하여튼 여기 들어오는 배달원들은 도통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단 말이지.”
“안녕하십니까.”
그때 저 멀리서 오던 태주가 경비원을 발견하고 정중히 인사하자.
경비원은 마치 제 아들을 보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태주 씨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봬서 그런가, 더욱 반갑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죠?”
“저야 뭐, 건강하죠. 수안 씨가 명절에 선물해준 홍삼이랑 태주 씨가 준 약재, 아직도 달여서 쏠쏠히 먹고 있습니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오래 살아서 태주 씨랑 수안 씨, 결혼하는 거 꼭 봐야죠.”
“하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태주가 정중한 인사와 함께 자리를 뜨자.
경비원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은 커플이라니까.”
* * *
“좋은 아침이야.”
“아주 상쾌한 아침이지.”
태주를 데리러 온 장진혁은 백미러로 그를 살폈다.
그러자 평소보다 활짝 편 표정과 혈색이 좋아진 얼굴이 보였다.
“수안 씨하고 화해 잘했나 봐?”
“어떻게 알았어?”
“둘을 오래 봐온 사람이라면 단박에 눈치챌걸?”
장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 그렇게 사이가 좋던 두 사람이 촬영장에서 대화 한 마디 안 나눴잖아. 드라마 관계자들은 너희가 작품에 몰입해서 그런 거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난 아니지.”
“티 안 낸다고 했는데, 다 티가 났나 보네.”
“그래도 다들 잘 모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럼, 샵으로 바로 갈게.”
“응.”
태주는 핸드폰으로 박인우가 보낸 오늘 스케줄을 확인했다.
오늘은 XGV에서 진행하는 ‘한태주 특별전’에 참석하는 날.
정말 고대하던 행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어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며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던 그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