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45
외전 15화
프러포즈 대작전 (15)
* * *
‘한태주 특별전’ 행사가 끝난 후.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기자가 태주를 둘러쌌다.
“오늘 아웃패치에서 난 불화설의 근원지는 어디일까요?”
“두 분 드라마 촬영장에서 분위기가 냉랭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 때문인가요?”
기자들의 몰아치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 유쾌한 한서경의 말이 들려왔다.
“아휴, 기자님들만 태주 씨를 독점하실 거예요? 저도 대화 좀 하고 싶은데요.”
그러자 기자들이 단박에 물러섰다.
XJ 엔터 회장인 한서경과 한태주의 돈독한 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늘 좋은 기삿거리가 됐기 때문.
“태주 씨, 반가워요. 오늘 특별전 잘 봤어요.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태주 씨한테 민폐일까 봐 참았어요.”
애정 가득한 말에 태주가 키득거렸다.
“어쩐지 관객석에서 회장님 얼굴을 본 것 같았어요.”
“그래서 태주 씨 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밝았나? 내 기운을 받아서?”
“회장님, 저도 한태주 씨와 인사하고 싶습니다.”
낯선 남자의 등장에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다부진 몸집에 날카로운 은테 안경을 쓴 남자가 태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여기는 내가 일전에 말했던 우리 5촌 조카. 태주 씨한테 꼭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남자가 태주를 보는 눈빛은 호감과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도윤입니다. 회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태주입니다.”
태주와 악수를 한 원도윤은 흥미로운 시선을 반짝였다.
“사실은 저도 배우 이중협 씨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태주 씨도 그렇다고 해서 신기했습니다.”
그 말에 태주의 눈도 덩달아 반짝였다.
“오, 그럼 이중협 선배님 작품 중 어떤 걸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독립영화 ‘일장춘몽’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때의 연기는 날 것 그대로이면서도 에너지 넘치더라고요.”
태주는 왠지 이중협을 좋아한다는 원도윤에게 호감이 갔다.
그만큼 이중협은 그가 제일 존경하는 배우이자, 가장 좋아하는 형이었으니까.
그때, 원도윤이 뼈 있는 말을 꺼냈다.
“소예한테도 태주 씨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바뀌는 통에 태주가 눈을 가늘게 뜨자.
한서경이 못마땅한 얼굴을 애써 숨겼다.
“걔도 태주 씨 팬이라니? 네 앞에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해?”
“네, 팬이라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미지근하게 반응하는 태주를 바라보던 원도윤이 말을 계속했다.
“게다가 둘이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라면서요.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나,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소예랑은 그렇게 친하진 않은가 봅니다.”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굳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저 대학 동기입니다. 특히나 교제하는 여자친구가 있는 지금은 더욱 만날 일이 없고요.”
“하하. 그렇겠네요.”
원도윤이 멋쩍은 듯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윤수안 씨와 불화설 난 거, 역시 가짜 뉴스죠? 이렇게나 연인을 아끼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원도윤의 의문에 태주가 씩 웃었다.
“전형적인 찌라시죠. 본부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기사들은 하나도 믿을 게 못 된다는 걸요.”
“그건 그렇죠. 그럼, 수안 씨 관련해서 조만간 좋은 소식 들을 수도 있겠군요?”
원도윤의 미소에 태주도 덩달아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하하. 그건 아직 정해진 게 없어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사이는 무척 좋습니다.”
“그럼, 저희 커플끼리 식사라도 한번 하시는 거 어떠십니까? 그냥… 그러고 싶네요.”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태주의 눈동자가 당황스러운 듯 흔들렸다.
“글쎄요, 갑작스럽네요.”
“부담스러우시면 저희 둘만이라도 좋으니, 꼭 연락해주세요.”
원도윤이 태주의 손에 자신의 명함을 쥐여 주었다.
* * *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태주가 떠난 후.
한서경이 흐뭇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괜찮은 애라니까.”
“그러게요. 남자로도, 사람으로서도 요.”
“근데 너, 이중협을 언제부터 좋아했니? 원래 이쪽에는 원체 관심 없었잖아.”
“회장님이 하도 한태주 얘기하니까, 조사 좀 해봤죠. 이중협을 아주 좋아하더군요.”
원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소예에게 하도 ‘한태주’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임에도 그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뭔가 마음속에 드는 이 묘한 느낌은 뭐지…?”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도윤은 쿵쿵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동안 민소예가 태주를 그토록 극찬한 점, 그리고 은근슬쩍 태주랑 친하다고 과장했던 점.
그러나 정작 한태주는 민소예에 대해 그다지 좋은 말을 하지 않은 점.
분명 무언가 그들이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원도윤은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 * *
동 시각, 연서대학교 캠퍼스 안.
도서관 근처의 구석진 곳,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있었으니.
이제는 공식 커플이 된 송도준과 차태희였다.
그들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태주 형, 진짜로 수안이 누나랑 다퉜던 건 아닐까? 기자들이 아예 없는 사실을 쓰지는 않았을 거 아냐.”
“뭐 들은 얘기라도 있어?”
“얼마 전에 한강 부근에서 촬영했을 때, 태주 형이랑 수안이 누나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냉랭했거든.”
“그래? 이상하네.”
그동안 태주를 지켜 봐온 태희로서는 오빠가 누군가를 차갑게 대하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다.
“태주 오빠는 워낙 착해서 안 그랬을 거 같은데.”
“뭐. 연인들 사이의 일이라는 게, 우리는 모르는 거니까.”
도준이 샌드위치를 와앙, 베어 물었다.
태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 기사 덕분에 우리 연애 기사가 싹 묻혔다는 거지.”
“넌 그게 좋아?”
“당연히 좋지!”
태희가 도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태주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우리 둘이 조용히 연애할 수 있게 됐잖아.”
“아, 그렇지. 역시 태희 넌 똑똑하다니까.”
“앞으로도 내 말 잘 들어. 그럼 술술 풀릴 테니까!”
풋풋한 커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하여튼 옛날도 그렇지만, 지금도 아웃패치가 항상 문제라니까.”
차용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자고요, 수안 씨. 원래 연예부 기자들이 없는 소리를 부풀려서 쓰는데 전문이라는 거, 수안 씨가 더 잘 알잖아요.”
그 말에 차용석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윤수안이 새침한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어요. 뭐, 솔직히 저희 둘이 다퉜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둘이 10년간 사귀면서 다투는 거,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도대체 뭐 때문에 싸웠는지 물어봐도 돼요?”
차용석이 슬쩍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혹시 태주가 워낙 일에만 집중하는 것 때문에 그랬어요? 그런 거면 그 녀석, 내가 잘 가르칠게요. 앞으로는 일만 하지 말고 제 여자도 좀 챙기라고….”
“아니요, 태주가 잘못한 건 없어요. 잘못한 건 태주 전 여자친구죠.”
“태주… 전 여자친구요?”
차용석은 서둘러 옆에 있던 박인우를 힐끔거렸다.
재빨리 주고받는 시선 속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설마 수안 씨, 민소예에 대해서 뭐 아는 거라도 있는 거냐?’
‘아, 그게…. 소예가 전 여자친구인 건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 후로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럼 윤수안 씨가 화났었던 게 태주 전 여친 문제 때문이었던 거야?’
이리저리 눈동자가 흔들리는 남자들을 보던 윤수안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태주랑 대화로 잘 풀었거든요. 이제 태주의 전 여친 얘기는 더 이상 저희의 갈등 소지가 되지 않아요.”
마치 자신들의 마음을 읽은 듯한 윤수안의 대답.
박인우가 펄쩍 뛰었다.
“아니, 그게….”
“근데 수안 씨, 태주 전 여친에 대해서 뭘 어떻게 풀었다는 거예요?”
차용석이 윤수안을 향해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다른 게 아니라, 태주가 솔직히 그런 문제로 수안 씨 속 썩일 애는 아니라는 거 알아서 그래요.”
잠깐 고민하던 윤수안은 결국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그동안 혼자서 끙끙대던 이 문제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 상대가 태주의 고모부와 태주의 매니저라면, 안심해도 될 것이었다.
“일전에 제가 태주 집 앞에서 태주 전 여친이라 주장하는 여자를 만났었거든요. 둘이 얘기 좀 하자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요.”
박인우가 이마를 탁, 쳤다.
“소예 걔가 수안 씨한테 결혼은 내년으로 미뤄달라고 했대요. 자기가 올해 결혼식을 올리는데, 연예인들 결혼에 자기 결혼 가려지는 거 싫다고요.”
“잠깐만요. 실장님이 저하고 그 여자하고 나눈 대화를 어떻게 알아요?”
“민소예하고 저, 어릴 적부터 좀 알고 지낸 사이거든요. 같은 대학교 동창이고요.”
깜짝 놀란 윤수안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그래서 태주가 이 일을 알고 나한테 사과했구나. 저는 태주가 전 여친이라는 그 여자한테 들은 줄 알았어요.”
“어휴, 수안 씨. 태주는 소예하고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사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어요.”
박인우가 손을 휘저으며 변명하는 이때.
차용석도 필사적으로 그의 변명을 도왔다.
“태주는 수안 씨한테 일편단심이라는 거, 누구보다 수안 씨가 잘 알잖아요. 그 녀석, 한 여자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라고요.”
“알죠.”
윤수안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
‘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라…. 그래서 자기에게 관심 보이는 수많은 꽃에 눈길조차 주지 않긴 하지.’
“그런데 수안 씨, 정말 태주랑 결혼할 생각 있는 거예요?”
“네, 당연하죠!”
윤수안이 차용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태주가 프러포즈할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전에 야구장 프러포즈하려는 거 같다고 기자한테 연락 와서 혹시나 했는데. 시구한다는 걸 오해한 거였지 뭐예요.”
“큼큼. 왜 꼭 태주한테 프러포즈 받을 생각을 하세요. 그 녀석이 하기 전에 수안 씨가 먼저 해치우면 되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는 차용석의 말을 받아 박인우가 덧붙였다.
“10년간 태주 봐서 아시잖아요, 수안 씨. 그 녀석, 무슨 일을 하면 워낙 완벽하게 하려는 통에 느리다는 거.”
“맞아요….”
“그게 답답하면 차라리 수안 씨가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맞아요. 수안 씨가 먼저 하면 태주도 엄청나게 좋아할 거예요.”
두 남자의 쏟아지는 조언에 윤수안의 귀가 솔깃해지는 순간이었다.
* * *
XGV의 일정을 끝낸 태주가 오후 스케줄을 위해 향한 곳은 바로 백산병원.
그는 이곳에서 10년째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병원의 소아병동을 비롯한 병실에 들러 환자들을 보려고 노력했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침대에서 쌕쌕거리며 숨을 쉬는 아이가 태주의 손을 와락 잡았다.
살이 빠져 메마른 아이의 손을 태주가 포근히 잡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오겠다는 약속은 지켰잖아.”
“아, 맞다. 약속 지켰구나.”
아이가 해맑게 웃자 태주도 씩 웃었다.
“그럼 오늘은 형하고 뭐 하면서 놀까?”
아이들과 다정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태주를 보던 어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태주를 오래 봐온 보호자들은 물론 병원 관계자들도.
태주가 누구보다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
“정말 한결같다니까, 태주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 앞으로 누가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좋은 남편이 될 거야.”
“이미 임자 있는 몸이에요. 윤수안이라고 애인 있잖아요.”
“윤수안? 그이도 기부 많이 하는 연예인 아닌가?”
“기부만 많이 하나요. 봉사활동도 하고 성격도 착하대요.”
“무슨 이야기 하세요?”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태주가 관계자들 사이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을 확인한 그들이 깜짝 놀랐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태주 씨, 이만 애들한테 인사하고 병원장실로 갑시다.”
“애들아, 오늘 재밌게 잘 놀았어. 다음 달에 또 보자.”
태주의 인사에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에 손을 흔들며 보내주었다.
* * *
늘 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태주는 병원장실에서 차를 마셨다.
“바쁠 텐데 매번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아이들도 그렇고 다른 환자분들도 태주 씨를 보면서 얼마나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분들께 힘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하하, 역시 태주 씨 다운 답변입니다. 10년 동안 한결같네요. 사람이 변함이 없어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백산병원을 지키고 있는 병원장은 태주와 이중협 사건으로 엮인 인연이었다.
“아 참, 태주 씨한테 보여줄 게 있어요.”
“저한테요?”
갑작스러운 병원장의 부름에 태주가 관심을 가졌다.
“이거요.”
병원장이 조심스레 태주의 손에 쥐여 준 것은 한 장의 손수건.
정갈하게 개켜진 손수건의 구석에는, ‘이중협’이란 이름이 수 놓여 있었다.
“얼마 전에 우리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할머니가 흘리고 간 물건입니다. 태주 씨한테 꼭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