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53
외전 23화
프러포즈 대작전 (23)
“이거 특종이잖아!”
연사로 여러 번 사진을 찍은 조금동은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다.
촬영 현장은 취재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필요한 건 이미 손에 넣었으니까.
“한태주의 품 안에 다른 여자가 있다니. 그것도 같이 작품을 하는 풋내기 아이돌이 말이야! 이거 꽤 화제가 되겠는데?”
그런데 이 기쁨을 마저 즐기기도 전, 그는 현장을 지키던 막내 조연출에게 잡혀버렸다.
“저기, 손에 든 거 뭔가요? 카메라 맞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쪽, 단순히 구경하는 게 아니라 무슨 파파라치처럼 현장을 살피고 있었잖아요. 혹시 어디 소속이세요? 기자시죠?”
막내 조연출은 수상쩍은 눈빛으로 조금동을 훑었다.
그는 선배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다름 아닌 수상한 사람들을 발견하면 무조건 붙잡아 현장 스틸 사진을 찍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촬영했다면 당장 지우는 것.
“그거 제가 좀 보겠습니다.”
“네? 지금 뭐 하는……”
조연출이 조금동의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 들었다.
“맞네, 맞아. 몰카들만 죄 있구만.”
재빨리 카메라 속 사진들을 확인한 그가 눈살을 찡그렸다.
“아니, 뭔 이런 사진들을…….”
옆에서 조금동은 위압적인 목소리를 내며 협박에 나섰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거냐고.”
“인제 보니 아웃패치 기자님이시네요? 저희 현장 규칙을 위반하셨고요. 아, 귀댁 직장에 전화라도 한 통 넣어 드릴까요? 현장에서 부지런하게 돌아다녔다고요.”
“아니, 그것만큼은…. 아씨!”
“그럼 여기 있는 파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삭제하겠습니다.”
조연출은 파일을 일일이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모두 삭제’를 눌러버렸다.
“아아, 안돼….”
조연출은 망연자실한 조금동을 보고 쐐기를 날렸다.
“다음부터 하지 말라는 건 좀 하지 마세요. 이런 헛고생도 하지 마시고요!”
“에이씨….”
씩씩거리던 조금동이 미련이 남은 발걸음을 애써 옮기자.
조연출은 아까 카메라에서 본 장면들을 상기하며 팔짱을 끼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인가? 은예영이 한태주 좋아한다는 거?”
현장에서 드문드문 돌던 소문이 진짜인가, 감히 의심해보았다.
조금 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듯, 소문의 주인공인 예영이 태주의 품에 안겨 있었으니까.
잠시 흔들렸던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닐 거야. 애초에 한태주, 은예영, 윤지호 이렇게 셋이 있었는걸.”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 남자가 찍은 사진들 모두 지우길 잘했네. 이상한 기사 났으면 어쩔 뻔했어?”
조연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저쪽으로 걸어갔다.
방금 자신이 한 건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 * *
한편, 윤지호와 예영을 발견한 태주.
태주는 제 품에 뛰어든 예영을 서둘러 떼어 놓았다.
촬영은 뒷전이고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다길래 화가 났지만, 예영의 눈에 글썽이는 눈물을 보니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죄송해요, 선배님.”
“일단 눈물부터 닦아요.”
예영은 태주가 건넨 손수건을 마다하더니, 이내 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을 세게 문질렀다.
“저 화장 많이 지워졌어요, 선배님? 아이 메이크업 다시 해야 할 정도예요? 스태프 언니들한테 혼날 것 같은데….”
그 말에 태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게 걱정되면 처음부터 울지를 말지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왜 이래요, 다들.”
은예영과 윤지호 사이를 가로막고 선 태주가 엄하게 다그쳤다.
“다들 프로답지 못하네요. 대본 속 캐릭터에 몰입해서 촬영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적인 감정으로 싸우기나 하고.”
“……미안하다.”
태주는 옆에서 쭈구리처럼 서 있던 예영의 어깨를 다독였다.
“일단 예영 씨는 메이크업 팀한테 가서 수정 화장부터 받아요. 그리고 도준이랑 대본 맞춰보고요.”
“네, 선배님.”
태주의 조언에 예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한숨을 내쉰 태주가 이번엔 윤지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와 눈을 마주친 윤지호가 움찔했다.
“형, 둘이 싸우기라도 했어?”
“싸우다니, 우리가 뭘.”
“그런데 예영 씨가 왜 저래?”
“아, 그게…. 미치겠네.”
윤지호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우연히 마주쳤는데, 예영이가 나한테 정중히 인사를 하더라.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세영이 소식을 물어봤어…, 요즘에 잘 지내냐고. 아, 사실 예영이가 세영이 동생이야. 말 못 해서 미안해.”
“아니야. 나도 얼마 전에 우연히 알았어. 감독님하고 나만 알아. 암튼 그래서.”
“세영이는 잘 지낸다고 하더라. 그러다니 갑자기 우는 거야. 자기 언니가 그렇게 못되게 차서 미안하다면서.”
“예영 씨가?”
“응. 해서 내가 그랬지. 세영이가 문자로 이별 통보한 것이 네 잘못은 아니지 않냐. 그러니까 나랑 어색해지지 말고 잘 지내자고. 그 후로는 네가 본 대로야. 대성통곡하더라고.”
윤지호의 해명에도 태주의 얼굴은 냉랭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촬영을 앞둔 상황.
그 누구라 해도 촬영을 방해하는 건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예영 씨도 그렇고, 형도 이런 걸로 촬영에 지장 주면 안 돼. 지금 이 씬이 우리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지는 형도 잘 알잖아.”
“큼큼. 맞아.”
윤지호가 헛기침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누구보다 현장의 소중함을 잘 아는 내가 그러면 안 됐는데 미안하다. 실전에서는 진짜 집중해서 잘할게.”
“고마워, 형. 아까는 내가 너무 날카롭게 쏘아 붙여서 미안해. 사과할게.”
태주가 윤지호를 마주 보며 덧붙였다.
“오늘 형 곡으로 무대하잖아. 도준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원작자인 형 앞에서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
그 말에 윤지호가 감동한 듯 머뭇거리다가, 태주를 와락 껴안았다.
“감동만 주는 녀석…. 이래서 널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 * *
얼마 후.
모두를 불러 모은 복 감독이 배우들에게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오늘 촬영은 백산전자에서 일부 후원해 주셨습니다. 더욱 많은 자본이 들어간 만큼 더 좋은 장면을 찍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다 같이 협조해 주시면 좋겠어요.”
태주가 주변을 힐끗했다.
로봇암으로 촬영하는 건 알았는데, 조명이랑 다른 장비도 더 늘어난 듯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정말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태주가 냉정한 말투로 덧붙였다.
“잘해야 해요. 감독님께서 좋은 씬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시는데, 배우들도 다들 잘합시다.”
평소보다 훨씬 기합이 들어가 있는 태주의 말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 단막극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해했다.
5년 만에 부활한 ABS 단막극, 배우 한태주와 송도준을 주연으로 세워 무게감을 더했고, 백산전자의 협찬으로 제작비까지 늘어난 상황.
단막극임에도 연예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이때.
그들은 마지막 촬영을 시작했다.
* * *
수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대학가요제 씬.
구경꾼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폴라리스의 등장 장면이었다.
기타를 치는 하강웅부터 감미로운 목소리로 관객들을 홀리는 윤지호까지.
장수 아이돌답게 폴라리스는 무척이나 능숙했다.
특별 출연이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존재감을 뽐낸 덕에 복 감독은 복잡한 표정을 삼켰다.
“다음이 태주 씨하고 도준 씨인데…. 폴라리스의 존재감을 지울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무대 위의 송도준과 태주.
극 중에서는 현탁의 눈에만 보이는 지니였지만, 촬영은 무대 위에서 함께 찍는 지금.
신나는 선율 위에서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는 그들의 노래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두려움에 숨어 늘 뒤로 물러나기만 했지.”
태주와 송도준이 서로 마주 보았다.
알고 지낸 세월이 긴 만큼 믿음과 신뢰가 눈빛에 묻어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 네 앞에 당당한 모습만을 보여줄 거야.”
무대를 가득 채우는 송도준의 따뜻한 목소리.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알리는 태주의 시원한 고음.
가요제의 관객들로 분장한 단역들도,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넋이 나갔다.
“와…. 진짜 잘한다.”
“한태주 왜 이렇게 멋있냐, 분위기도 대박이고.”
“원래 노래를 원체 잘하긴 했는데, 오늘 무대 장악력도 대박이야.”
사람들이 다들 핸드폰을 들고 무대를 찍었다.
관객들로 분장한 단역들에게 나눠준 X23 핸드폰에는 태주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먼 곳에서 길게 줌인해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나오는 태주의 얼굴도 놀라웠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한태주, 그 자체였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 버린 그.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는 순간.
“진짜 한태주는 한태주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복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배우야.”
* * *
촬영이 순조롭게 끝난 후.
“다들 정말 잘했습니다!”
복 감독이 방방 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완벽한 피날레였어요. 진짜, 우리 단막극 정말 잘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다 감독님 덕분입니다.”
진중한 태주와는 달리 송도준은 언제 윤지호와 친해졌는지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그럼 감독님, 이제 뒤풀이 가는 건가요? 그동안 저희 촬영하면서 한 번도 회식 못 했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직 촬영이 남아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요?”
복 감독이 태주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태주 씨는 이따가 수안 씨랑 추가 촬영 좀 합시다.”
“추가 촬영이요?”
“램프의 요정이랑 요정계의 여왕이랑 화해하는 씬을 추가할까 해서요. 서울 백화 호수공원에서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무렵에 찍으려고요. 오늘까지만 좀 고생합시다, 태주 씨.”
그 말에 태주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저만 고생하나요. 감독님, 스태프분들도 다들 고생하시는데요. 그리고 뭐….”
태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백화 호수공원이면, 데이트 명소잖아요. 좋은 장소 섭외해 주셨네요, 감독님.”
감독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촬영 다 끝나면 둘만의 시간 가지세요. 저희는 빨리 빠져드릴 테니까요. 흐흐.”
* * *
그날 저녁.
퇴근하던 기자들이 자리에 엎드린 조금동을 지나치며 한 소리씩 던졌다.
“진짜 기자 망신은 다 시킨다니까. 쥐새끼처럼 몰래 현장 들어간 것 좀 봐.”
“제작사 측에서 저희 회사에 경고 전화 왔었답니다. 현장 스틸 사진은 나중에 보도자료로 따로 배포할 거라고 했다는데. 선배는 도대체 왜 그랬어요?”
“이왕 갔으면 카메라나 뺏기지 말지, 거기서 찍은 사진들은 다 지워졌다면서요?”
온갖 수모를 당한 조금동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동료들이 빠져나간 후.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조금동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렇게 준비성 없이 갔을 거 같아? 기자한테는 카메라 말고 다른 무기도 있다, 이거야.”
그는 조심스레 가방 안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요즘에는 참 제품이 잘 나와. 크흐흐.”
안경 모양으로 된 몰래카메라였다.
혹시 몰라서 카메라 말고 이것도 준비해갔었는데, 조연출이 뺏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몰카에 찍힌 사진들을 서둘러 컴퓨터에 옮겨 확인해 보는 그.
예영이 한태주의 품에 안긴 장면이 흐릿하지만 찍혀있었다.
“이 조금동이, 이번에 반드시 특종을 잡는다고 했지!”
그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타자를 치자, 곧이어 모니터 안 가득히 기사가 채워졌다.
몇 번이고 자신이 쓴 기사를 읽던 조금동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야, 이건 분명 연예계를 휩쓸 거라고!”
기사의 상단을 장식한 제목.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