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55
외전 25화
프러포즈 대작전 (25)
“이리 내봐.”
태주의 핸드폰을 낚아챈 윤수안이 재빨리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평소 느긋하던 그녀의 행동이 이렇게 빨라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단막극 촬영장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친분을 쌓은 후, 이제는 서로 스스럼없이 스킨십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는 저열한 내용의 기사.
윤수안의 얼굴이 화를 참는 듯 더없이 붉어지자 태주가 나섰다.
“수안아, 내가 다 설명할게. 애초에 이때 둘만 있었던 거 아니야. 옆에 지호 형도 있었다고.”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윤수안이 태주를 보며 단언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진을 찍혀서 아웃패치한테 꼬투리를 잡혔는지, 내가 왜 이런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지.”
태주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난감한 기색을 숨겼다.
“오늘 연서대 촬영 때 일이었어. 리허설해야 하는데 예영 씨랑 지호 형이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찾으러 갔다가 화장실 앞에서 말다툼하고 있는 둘을 발견했어. 그런데 예영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안아준 거야? 불쌍해서?”
“절대 아니야.”
태주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예영 씨가 날 보더니 갑자기 안기더라고, 펑펑 울면서. 지호 형이랑 좀 예민한 문제로 이야기하다가 내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나 봐.”
“지호 씨의 그 민감한 문제가 도대체 뭔데?”
그 말에 태주가 입을 다물었다.
윤지호의 사생활에 관한 거라, 이걸 말해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그게 사실은….”
그러나 결국 다시 천천히 말을 잇자, 유심히 듣던 윤수안의 눈이 커졌다.
“그게 그렇게 된 거였어? 그렇다면….”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거짓에는 확실한 진실로 대응하는 게 정석이지.”
확실한 해결책이 있는 듯,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 * *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연예계 기사를 확인하던 태희 곁에 한유경이 쓱, 다가왔다.
“뭐해? 연애 문자?”
“깜짝이야!”
“도준이하고 통화할 거면 편하게 해, 엄마 신경 쓰지 말고.”
“지금 기사 읽는 거거든.”
엄마의 은근한 눈빛에 태희는 소파 옆 칸으로 슬쩍 이동했다.
“그런데 엄마, 12시 넘었는데 안 자?”
“잠이 안 와서.”
“내일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지. 아니면,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태희의 말에 한유경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너희 아빠, 요즘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는 것 같지 않니?”
“응? 아빠가 엄마한테 뭐 숨길 이유가 없잖아. 애초에 뭐 숨길 성격도 아니고.”
태희가 어깨를 으쓱하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기억 안 나, 엄마? 예전에 아빠가 엄마 몰래 생일파티 준비했는데 다 들킨 거.”
“아, 너 막 대학교 들어갔을 때였었나?”
한유경이 그때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내 생일파티를 네 대학교 입학 축하 파티라고 속여서 준비했었지. 그런데 변명이 너무 궁색했어. 누가 대학교 입학 파티를 6월에 하냐고. 안 그래?”
“아빠가 원래 그런 거에 좀 약하잖아. 비밀 숨기는 것도 못 하고, 연기도 못 하고.”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이번에 태주 도움을 받는 게 아닌가 싶어.”
“오빠 도움을?”
태희가 궁금하다는 듯 엄마 쪽으로 다가갔다.
“오빠랑 아빠랑 작당 모의해서 뭘 준비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 안 그래도 태주가 요즘 집에 자주 오더라고. 너희 아빠랑 틈만 나면 속닥거리는 게, 나 몰래 뭘 준비하는 게 확실해.”
“도대체 그게 뭘까? 엄마 생일은 한참 전에 지났고. 결혼기념일도 이미 지났고. 축하할 건 다 했는데?”
“글쎄다. 그걸 모르니까 내가 너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거 아니겠니.”
한유경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깜빡였다.
“지금도 봐. 자정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도 집에 안 오는 거. 분명 회사에서 준비하는 게 확실하다니까.”
“그럼, 한번 아빠한테 전화해 봐.”
“그럴까?”
딸의 조언에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건 한유경.
그러나 수화음만 뚜르르르, 울릴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뭔가 하느라 바쁜 거야.”
“그럼 그냥 놔둬.”
태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뭔가 집중하고 있겠지. 아빠가 딴짓할 사람은 아니잖아?”
그때, 띠링, 하며 전화벨이 울렸다.
한유경과 태희가 동시에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전화가 온 건 태희였다.
“어머, 도준이네. 어, 도준아.”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엄마의 놀림을 뒤로한 채 태희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거실로 튀어나왔다.
“뭐라고? 지금 그런 기사가 떴다고?”
-형이랑 연락 안 돼서 너한테 전화한 거야. 혹시 형, 집에 있어?
“아니, 촬영장에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인데?”
옆에서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는 엄마에게 태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오빠 큰일났어. 웬 여자애랑 뜬금포 열애설이 났대!”
“태주는 수안 씨랑 잘 사귀고 있는데 무슨 열애설이 났다는 거야?”
“드라마 촬영장에서 오빠가 미스틱 예영이랑 안고 있었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 이게 뭐야지? 일단 내가 유나한테 한번 연락해 볼게.”
한유경은 기사를 확인하더니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태주의 대학 후배인 황유나는 종종 한유경과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수화음이 얼마나 울렸을까.
수화기 너머에서 황유나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태주 선배 일 때문에 전화하셨죠?
“그래. 늦은 시간인데 미안하다, 유나야. 방금 아웃패치에서 태주 기사 낸 거, 정말 사실이니?”
-저희 쪽에서도 지금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요. 다들 퇴근했을 시각이라 여러모로 좀 어렵네요.
“유나야, 우리 태주가 수안 씨하고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 결코 바람피울 애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지?”
-아줌마, 일단 진정하세요.
황유나가 난감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물론 저도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태주 선배만큼 충실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그런데 문제는 기사에 사진이 포함돼 있다는 거예요. 태주 선배가 예영 씨를 품에 안은 장면이요.
전화 통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태희가 엄마한테 크게 속삭였다.
“이거 자세히 보니까 오빠가 안은 게 아니네. 손이 어색하게 공중에 떠 있잖아. 보니까 이 여자애가 안긴 것 같은데?”
한유경은 딸이 말한 그대로 황유나에게 전했다.
“기사에 난 사진 자세히 봐봐, 유나야. 태주 손도 어색하고, 표정도 놀란 게, 태주가 안은 게 아닌 거 같지 않아? 분명 그 여자애가 뛰어든 걸 거야.”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일단 태주랑 예영인가 하는 아이, 인터뷰해 봐.”
-지금 태주 선배는 연락이 안 되고요. 매니저분들도 통화 중이라고 해요, 아마 회사랑 논의 중인 것 같아요.
황유나가 한유경을 안심시키듯 말을 이었다.
-일단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한테 연락해 볼게요. 아웃패치는 분명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골라서 썼을 테니까, 그 이면의 진실을 알아내야 해요.
* * *
한편, 예영의 소속사에서도 난리가 났다.
회사 대표실 안.
연습실에서 연습하다 소환된 예영은 더없이 두려운 표정으로 대표 앞에 앉아 있었다.
물끄러미 아웃패치 기사를 읽고, 또 읽던 대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다들 잘 시간에 보도되었음에도 아웃패치의 기사는 조회수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 기사의 당사자인 예영은 대표와 실장 앞에 푹, 고개를 수그린 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죄송해요, 제가 다 잘못한 거예요. 화장실 앞에서 윤지호 선배님을 만났는데, 저희 언니 잘 있냐고 물어봤어요. 저희 언니가 일방적으로 찼는데 윤지호 선배님이 걱정해 주니까 제가 너무 죄송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울음이 터졌는데 갑자기 한태주 선배님이 와서 그만….”
“기사 사진에는 너랑 한태주만 있던데. 원래는 윤지호도 같이 있었던 거야? 너랑 한태주 둘만 있던 건 아니라는 거지?”
“네.”
“나 참, 셋이 있는 사진을 둘만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거야? 그것보다 한태주 품에는 왜 안겼는데?”
실장의 닦달에 예영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모르겠어요, 그때는 그냥….”
예영이 잔뜩 발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난감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태주 선배가 그냥 구세주 같아 보여서….”
“하, 너도 참….”
예영이가 평소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실장이 혀를 차며 대표에게 눈을 돌렸다.
“대표님, 기자들 출근하는 대로 연락 돌려서 해명 기사 내죠. 아니, 지금 깨어있는 기자들도 있을 테니 일단 연락할까요?”
“아니야, 됐어.”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어.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는 잘된 일이야, 이런 기사가 터진 게.”
“잘된 일이라고요?”
이게 어떻게 잘된 일이에요. 지금 예영이를 혼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태주를 건드린 건 선을 많이 넘은 거라고요.
김 실장은 그런 본심을 숨긴 채 말했다.
“그동안 예영이 이미지 관리해야 한다면서 이런 루머 안 나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셨잖습니까.”
“생각이 바뀌었어. 김 실장.”
대표가 실장을 설득하려는 듯 말에 힘을 실었다.
“우리 같은 중소기획사는 한 번이라도 더 이름이 노출되는 게 중요해. 더욱이 ‘미스틱’에선 예영이가 제일 유명하잖아. 뽕 뽑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뽑아먹어야지.”
김 실장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던 예영의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이번에 예영이가 그동안 수없이 오디션 봤다가 처음으로 합격한 작품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괜히 이런 일로 이미지를 소모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연기는 연기고, 그룹도 알려야지. 개인 인지도는 높아도 그룹 인지도는 부족하잖아.”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한태주 씨와의 열애설을 해명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짓….”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어!”
대표가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였다.
“애들 홍보로는 노이즈 마케팅이 제일인 거 몰라서 이래? 돈 쳐들어서 홍보하는 것보다 이런 게 훨씬 대중들한테는 잘 각인된다고, 알겠어?”
“하지만….”
“그렇게 불만이면 김 실장 자네 돈으로 애들 홍보 때려 보든가. 그게 아니면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꾹 참고 기다려! 이건 다시 없을 기회라고.”
더없이 자신감이 넘치는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영이 이름이랑 미스틱이 SNS에 퍼질 때까지 기다려. 어차피 다급한 건 한태주 쪽이야. 그쪽에서 알아서 불을 끌 거라고. 우리는 그냥 떨어지는 콩고물만 받아먹으면 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