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최강 아역 3인방 (2)
대본리딩 당일, 오전 7시.
이른 아침인데도 뜨거운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 이때.
태주는 집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드림액터스와 계약을 맺은 이후.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 대본리딩을 가는 오늘이 첫 스케줄이었다.
성인 역과 아역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리딩을 하기에 더욱 책임감이 들었다.
게다가 영화 ‘그림자 무사’ 시사회 이후 이선우를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보는 앞에서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래서 샵에 들렸다가 일찍 방송국에 도착해, 연습하고 싶었다.
“하암.”
아파트 근처 정자에 앉아 대본을 보고 있으니 빵빵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주가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자.
운전석에서 선글라스를 낀 차용석이 유쾌한 목소리를 냈다.
“태주야, 타!”
[뭐야, 야타족이냐? 운전할 때 선글라스 쓰는 버릇은 여전하구만.]이중협이 재밌다는 표정을 가득 지었다.
차에 타자 태주가 제일 좋아하는 프리지아 향이 가득했다.
“방향제 뿌리셨어요?”
“태주, 네가 프리지아 향 좋아한다고 해서 뿌려 봤지. 자, 옆에 물하고 과자, 베개도 있으니 편히 이용하고.”
샵으로 가는 밴 안에서 태주는 대본에만 집중했다.
예전에 붐비는 버스에 서서 대본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게 차에서 대본에만 집중하니 훨씬 좋았다.
[이게 자본의 힘이지.]이중협의 말에 태주도 격렬히 동의했다.
‘돈이 좋기는 하네요.’
“태주야, 샵 들리고 나면 10시쯤 될 텐데. 회사로 갈래? 리딩 전까지 차에서 대본 보면 답답하잖아. 어차피 회사랑 방송국이랑 가까우니까.”
백미러로 보이는 차용석의 시선에 태주가 대답했다.
“아니요, 샵 들렸다가 뭐 좀 먹고, 방송국으로 곧장 가요.”
“응?”
태주가 대본을 흔들었다.
“미리 가서 대본 보면서 연습하고 있으려고요. 완벽할 때까지 노력해야 100%가 나오니까요.”
차용석이 할 말이 많은 입술만 달싹였다.
이제까지 회사에서 많은 연예인을 본 그였다.
리딩 때 혼자서 일찍 가서 연습하는 연예인들은 몇 없다.
차 안에서 연습하는 거면 모를까.
그런데 한태주는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역할 몰입을 위해 촬영지 답사까지 하고 왔다니까, 말 다 했지.’
* * *
오전 11시, QVN 방송국.
7층 대회의실에 여러 스태프가 드나들었다.
커다란 방 안으로 책상과 의자들이 쉴 새 없이 들어갔고.
문에는 라 적힌 종이가 붙여졌다.
“의자, 책상, 다 준비됐어? 다과도 부족하지 않게 다 채워 넣었지?”
“네, 완료했습니다!”
조연출 염수현은 엄격하게 대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방 곳곳에 메이킹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오늘 이곳에는 톱스타들이 총출동한다.
이선우부터 윤수안, 전역 후 이번이 첫 작품인 김결.
그리고 아이돌 하강웅과 설채빈까지.
벌써 방송국 밖에 대기하는 팬들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밤을 새워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염수현이 곱슬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이고, 쟤네 목쉬겠다. 이선우 팬덤하고 하강웅 팬덤은 왜 벌써부터 모인 거야?”
“그러게요. 아직 리딩하려면 1시간이나 남았는데.”
“아무튼, 오늘 드디어 이선우가 드라마로 복귀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구나. 이선우랑 한태주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겠고. 한태주, ‘자유선언’에서 연기 대단했지.”
“잘하긴 했는데, 거기는 손우현이랑 김선정, 한태주 이렇게 쓰리톱 체제였잖아요. 이번에는 홀로 이선우 아역을 오롯이 이끌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요?”
“이선우가 직접 추천한 배우야. 어련히 잘하겠지.”
“걔 준비성은 대단하던데, 하강웅하고 같이 상주 촬영지에 가서 대본 연습하고 왔대. 거기 주민들하고도 친해진 모양이던데?”
“아참, 오늘 기사 났던데. 한태주 드림액터스에 들어갔다고. 진짜야?”
한창 수다를 떨던 염수현과 스태프들 사이로 태주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태주의 인사에 스태프들이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좀 더 정돈된 모습이었다.
톤 다운된 하늘색 셔츠에 하얀 바지, 자연스럽게 이마를 덮은 머리가 청량했다.
샵에서 신경 쓴 꾸안꾸 스타일링의 결과물이었다.
여자 스태프들이 그를 관심 있게 보자 염수현이 그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태주 씨, 벌써 왔어요? 일찍 왔네요.”
“네, 연습 좀 하려고요. 저, 저기서 연습 좀 해도 되나요?”
“네? 아…… 네!”
한쪽 구석에 매니저와 함께 앉은 태주.
차용석더러 대사를 쳐달라고 한 뒤 연습을 시작했다.
주변에 스태프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태프들이 그를 힐끔거렸다.
“한태주 맞지?”
“왜 이렇게 일찍 왔데?”
“대본 연습하는 건가? 옆에는 매니저인가 봐?”
주변이 웅성대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주.
매니저를 상대로 대사를 하는 집중력이 굉장했다.
그를 힐끔거리는 스태프들이 중얼거렸다.
“잘한다, 진짜.”
“리딩 때 얼마나 잘하려고.”
곁에서 들리는 칭찬에 내심 뿌듯하던 차용석이 어깨를 으쓱하던 그때.
주변은 보이지도 않는 듯 대본에 집중하는 태주의 질문이 들렸다.
“형, 이 부분 제가 너무 급하게 들어갔나요? 어때요?”
말간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는 태주가 보였다.
아니, 태주가 아니었다.
대본 속 오강준이 눈앞에 있었다.
* * *
정오가 거의 다 된 시각.
대본 리딩이 진행되는 회의실에 하나둘 배우들이 도착했다.
아역들과 성인 배역들이 모두 모인 오늘.
카메라를 조절하는 메이킹 팀, 제작진까지 겹쳐 혼잡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누가 뭐랄 것 없이 다들 시선을 주는 곳이 있었으니.
“한태주 맞지? 쟤 좀 멋있는 것 같다.”
“뭐래, 예전부터 잘생겼었어. 안 꾸며서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은 좀 더 세련되게 잘생긴 것 같다는 거지. 아무튼, 이제는 제법 배우 포스 난다.”
“벌써 대본 연습하는 거야? 열정 하나는 인정한다.”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이선우 아역인데.”
“둘이 별로 닮지는 않았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겠다. 괜히 이선우가 추천하지는 않았을 거 아냐.”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에 태주가 고개를 들었다.
몇 번이고 넘겼던 대본이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했다.
같이 대본을 보던 차용석이 그에게 말했다.
“이제 웬만큼 된 것 같아?”
“네. 근데 형, 이선우 선배님 오셨어요?”
“아직 안 왔는데. 아, 저기 윤수안 씨는 보인다. 하강웅도. 인사할래?”
태주는 그 즉시 일어나 여러 배우와 인사했다.
먼저 예의 바르게 다가오는 그의 인사를 다들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김선정과의 조우는 정말 반가웠다.
독립영화 시사회 이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오강준의 엄마로 캐스팅되었다.
“이게 얼마 만이니, 태주야. 내가 또다시 네 엄마로 출연하다니, 이건 운명이야.”
“그러게요, 선배님.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얘, 이렇게 잘생긴 아들이라면 뭐든 오케이지.”
김선정과의 인사 후.
낯선 남자와 함께 있는 윤수안과도 인사했다.
윤수안은 유독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와, 이제 같은 식구네요, 태주 씨. 잘해 봐요, 우리.”
“얘가 한태주야? 아니지, 한태주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맞죠? 저보다 6년이나 먼저 데뷔하셨으니까.”
옆에 있던 잘생긴 남자가 짧은 머리를 쓸어 넘기다 태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김결, 이번 드라마에서 서브 남주를 맡은 배우였다.
전역하고 나서 첫 작품이라 그런지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태주가 붙임성 좋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태주입니다. 함께 작품을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호칭은 편하게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말도 편하게 해주시고요.”
먼저 살갑게 나오는 태주에게 김결이 반가운 눈을 크게 떴다.
“어휴, 그래도……. 그럼 태주라고 불러도 될까? 너도 형이라고 불러.”
“네, 형.”
기분 좋게 다들 웃던 순간.
태주가 씩 웃으며 김결에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형.”
“잘 부탁하긴, 뭘. 나도 군대 갔다 와서 처음 맡는 작품이라 감 좀 잡아야 해.”
그가 멋쩍게 웃으며 태주에게 슬쩍 물었다.
“그런데 너, 하강웅하고 같이 현장답사도 갔다 왔다며? 나도 수안이랑 같이 다녀올 걸 그랬나.”
그 말에 윤수안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우리가 거길 같이 왜 가.”
윤수안이 눈을 흘기자 멋쩍어진 김결은 차용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도 오랜만이에요. 2팀에 계속 계시지, 왜 3팀으로 내려가셨어요.”
“나는 신인들하고 일하는 게 좋아. 너는 이미 스타고, 네가 알아서 잘하잖냐.”
“이중협 선배 때문에 팀 옮긴 거 아니고요?”
“야,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차용석이 김결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던 그때.
태주를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주 형!”
뒤를 돌아보니 하강웅과 설채빈이 나란히 서 있다.
하강웅이 팔을 와락 벌린 채 뛰어오는 게 왜 그렇게 반가운지.
그와 인사하니 설채빈의 얼굴이 묘해진다.
“잘 지냈어?”
“형, 저 그동안 대본 보느라 정신없었어요. 채빈이하고도 같이 연습했어요. 얘가 좀 맹하긴 해도 준비성은 철저해……, 아악!”
하강웅의 손등을 꼬집던 설채빈이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태주가 들고 있는 대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한번 봐도 돼요?”
태주가 건네준 대본을 본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자기 대사에 꼼꼼히 표시해둔 메모가 무척 고왔다.
남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몽글몽글한 글씨체.
소유주의 능력을 받은 태주는 자신의 악필 대신 이 글씨체를 쓰고 있었다.
하강웅도 태주의 대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거 진짜 형이 쓴 거 맞아요? 남자 글씨가 왜 이렇게 예뻐요? 채빈아, 네 글씨보다 예쁜 거 같지?”
정신없이 태주의 대본을 보던 설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태주의 글씨가 아닌 그 안의 내용을 보고 있었다.
태주는 자신의 배역뿐만이 아닌 다른 배역들의 감정선까지 분석해 놓았다.
상대가 내뱉는 감정에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대응할지도.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설채빈이 대본을 돌려주었다.
태주는 그들과 좀 더 얘기하다 문 쪽이 시끌시끌한 걸 발견했다.
전영수 감독과 함께 들어온 한 남자.
그의 아우라에 주변이 고요해진 느낌이 들었다.
존재 자체가 빛을 발하는 톱배우, 이선우의 등장이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던 그가 태주와 눈이 마주쳤다.
이선우는 태주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씩 웃었다.
“안녕.”
손을 내밀며 그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잘하자. 아역 따라 성인 역할들이 간다고, 네가 잘해야 내가 편하게 연기하지.”
부담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장난스럽지는 않은 목소리다.
그의 손을 잡은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이 드라마에 추천한 그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
그의 기대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그를 롤모델로 연기를 연습했던 태주로서는, 더없는 욕심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몇 분 후.
배우들이 다들 모인 이때, 전영수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우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여는 그.
“연출을 맡은 전영수입니다. 오늘 대본 리딩으로 저희 드라마의 첫 문을 여는 셈인데요, 다들 최선을 다해 봅시다.”
그의 인사를 시작으로 제작진과 배우들이 인사를 나눴다.
아이돌인 하강웅과 설채빈에게는 뜨거운 시선들이 쏟아졌고.
태주도 그들에 못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런 그를 보고 전영수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하강웅 씨랑 같이 지방 촬영지에 다녀왔다면서요? 어차피 촬영갈 텐데 사전답사를 한 이유가 있나요?”
그를 대견하게 보는 전 감독에게 태주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실제 촬영지를 보고 나면 오강준 역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태주 씨가 잘해야 해요. 그래야 이선우 씨가 마음 놓고 편하게 연기를 하니까요.”
그 말이 이렇게 들리는 건 착각일까.
‘네가 잘해야 이선우 먹칠을 안 하지.’
“자, 그럼 아역들 파트부터 리딩해 봅시다.”
이제는 모두의 앞에서 연기를 증명해야 할 때.
더욱이 성인역을 맡은 배우들이 각자의 아역들을 보고 있다.
태주의 손이 떨리기 시작하자, 이중협이 옆에서 속삭였다.
[긴장되냐?]‘당연하죠. 제 앞에 이선우 선배님, 윤수안 씨, 김결 씨는 물론 감독님과 작가님…… 모두들 계시는데.’
[그들 앞에서 어떤 연기를 선보이고 싶은데?]‘제발 실수만 안 하면 좋겠어요.’
이중협이 콧방귀를 뀌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퍽이나 실수를 안 하겠다. 이렇게 배우가 겁이 많아서 무슨 연기를 한다고.]‘겁이 많다뇨, 내로라하는 선배님들 앞이라 긴장한 것뿐인데.’
[그럼 너, ‘자유 선언’ 오디션 볼 때는 내로라하는 선배님들 앞에서 어떻게 칼 들고 연기할 생각을 했어? 너 그때는 아주 깡이 넘쳐나더만.]‘그건 후회 없는 연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태주의 머릿속이 번쩍거렸다.
이중협의 말뜻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네요. 연기만 생각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너무 잡생각이 많았어요. 지금, 이 순간의 연기에 충실하면 되는 건데요.’
그제야 이중협이 피식 웃었다.
[그래, 이제야 좀 한태주답네.]“자, 그럼 1화부터 차근차근 가 봅시다. 아역분들, 다들 준비됐죠?”
“네!”
하강웅의 떨리는 목소리, 설채빈의 당당한 목소리, 그리고 한태주의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럼 시작합시다!”
그렇게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