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1
외전 31화
프러포즈 대작전 (31)
* * *
ABS 단막극, ‘프러포즈 대작전’ 제작발표회.
5년 만의 단막극 부활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수의 기자가 회장을 채웠다.
태주가 포토월에 서자 그에게 쏟아지는 플래시가 엄청났다.
곧이어 제작발표회가 시작되고, 예상대로 여러 질문이 태주에게 향했다.
“단막극임에도 주말 황금시간대로 편성 받은 건, 역시 한태주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겠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 작품이 워낙에 재밌게 뽑혀서 윗선에서도 거는 기대가 크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다고 확신합니다.”
“이번에 한태주 씨가 이 작품을 택하신 이유가 뭔가요? 차기작으로 단막극은 좀 소소하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쾌한 연기로 저의 새로운 면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이 재밌었습니다.”
진지한 질문이 오가는 가운데, 몇몇 이들이 작품과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소문으로는 이번 작품에 백산전자의 핸드폰 광고가 들어온 게 한태주 씨 인맥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혹시 원도윤 본부장과 실제로 친분이 있으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작품 후반부의 대학 가요제 씬은 거의 핸드폰 PPL이던데요.”
기자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눈을 번득였다.
“PPL로 도배된 드라마를 작품성을 보고 출연했다고 하는 건, 좀 모순 아닙니까?”
“PPL로 도배했다기에는 좀 어폐가 있습니다.”
태주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대학가요제 씬은 작가님께서 시놉 구상하실 때부터 넣으셨던 장면이었습니다. 백산전자 PPL은 추후에 들어온 거였고요.”
“그건 제가 추가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복 감독이 태주의 양해를 구한 뒤 마이크를 잡았다.
“한창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데 백산전자 쪽에서 PPL 제의가 왔습니다. 핸드폰 광고라고 하니 대학가요제 씬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좀 더 좋은 장비로 찍고 싶은 욕심에 PPL을 수락한 건 접니다.”
“PPL을 강행하더라도 좋은 장비로 찍고 싶을 만큼 의미 있는 장면입니까?”
복 감독의 말에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촬영과 관련된 것으로 다시 넘어왔다.
“그건 직접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드라마에서 가장 공들여 촬영한 씬이라는 것입니다.”
“해당 촬영에 폴라리스 멤버가 특별 출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상대적으로 한태주 씨와 송도준 씨의 존재감이 묻히는 것 아닙니까?”
“저도 솔직히 그 점이 염려되었습니다만. 촬영하면서 그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드라마의 큰 수확은 우리 배우들의 재발견, 특히 한태주 씨의 재발견입니다.”
복 감독의 자신만만한 말에 기자들이 바쁘게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제작발표회가 끝난 후.
태주는 후배들을 이끌고 대기실로 향했다.
스태프들은 물론, 배우들도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아까 기자들이 엄청나게 질문하는 거 봤어? 단막극임에도 무진장 주목받고 있다는 거지.”
“우리 편성도 주말 황금시간대라면서요.”
예영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아요. 친구분들한테 자랑도 하시고요.”
잔뜩 들떠서 흥분한 후배들이 귀여웠던 태주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기사 났는지 볼까요?”
“네!”
인터넷을 켠 태주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든 가운데.
연예란에 속속들이 속보로 올라온 여러 기사가 보였다.
“오오, 확실히 화제성 대박인데요?”
“태주 형 이름이 실검 1위에 올랐어요!”
송도준이 태주를 보며 씩 웃었다.
“역시 태주 형 클라스, 어디 안 가네요.”
멋쩍은 태주가 서둘러 핸드폰을 거둬들였다.
그때, 옆에 있던 장진혁이 그에게 무어라 귀엣말했다.
‘시간 다 됐어, 형.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러자 태주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에게 황급히 인사를 했다.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벌써요?”
태주가 황급히 장진혁과 함께 나가자.
뒤에 남은 예영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주 선배님은 어디 가시길래 저렇게 바쁘신 걸까요?”
“아무래도 무척 중요한 곳이겠지.”
송도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한테 말하지 않을 정도로.”
* * *
그날 저녁.
서울의 한 쉼터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그곳에서 내린 태주와 장진혁.
이곳은 생전 이중협의 어머니가 머물렀다는 장소.
장례식이 끝난 후, 이중협의 어머니의 뜻에 따라 태주가 그녀의 유품을 받으러 온 것이다.
태주는 제작발표회에서 입었던 화려한 옷 대신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그런 그에게 장진혁이 캡모자를 내밀었다.
“일단 이건 쓰고 들어가자, 형. 혹시 모르니까.”
“알겠어.”
태주는 장진혁이 건네는 모자를 순순히 받아 썼다.
그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자신을 묵묵히 따라와 준 게 고마웠다.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연락해 두었던 관계자가 태주를 맞이했다.
“지난 며칠간 자기가 죽으면, 한태주 씨가 이걸 찾으러 오실 거라고 하셔서 허풍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태주를 힐끔거렸다.
“진짜 오셨네요, 혹시 이복녀 씨하고 무슨 관계세요? 손자는 아닐 테고.”
“뭐….”
태주가 황급히 도준을 핑계로 댔다.
“제가 아는 동생이 근처에서 도시락 봉사를 하는데, 할머님을 매주 봤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중협 선배님을 아들이라고 하니까, 궁금해서 일전에 찾아뵀다가 알게 됐습니다.”
“아이고, 태주 씨 보기보다 순진하시네요. 그런 거짓말을 진짜 믿은 거예요?”
“그게 거짓말이라고요?”
태주의 질문에 여자가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중협이 진짜 아들이었으면 살아생전에 이복녀 할머니를 모셨겠죠. 이런 쉼터에서 어머니를 놔두지 않고요. 안 그래요?”
그 말에 태주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돈을 벌러 아들을 고아원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비정함.
장애인이 된 후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이복녀 할머니가 스스로 숨긴 삶.
이중협과 이복녀 할머니 사이, 모자 관계의 비틀림을 이 자리에서 말할 수도,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복녀 할머님이 제게 남긴 유품이라는 게 뭡니까?”
“여기요.”
사무실에 도착한 여자가 서랍을 뒤적이더니, 이내 한 보자기를 꺼냈다.
태주가 받아서 들어 보니 꽤 묵직했다.
“큰 기대는 마세요. 이복녀 할머니, 살아 계셨을 적에 그렇게 쓰레기를 모으셨거든요. 그 안에 든 게 별 볼 일 없는 걸 수도 있어요.”
가만히 말을 듣던 장진혁이 살짝 발끈했다.
“아니, 안에 내용물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저희 배우님께 주신다는 겁니까?”
“이봐요. 그럼 치매 걸린 노친네한테 뭘 기대하는 거예요? 그 할머니가 보자기에 쓰레기 싸둔 걸 저희가 치운 게 몇 번인지 알아요?”
말을 잇던 여자는 태주의 진지한 표정을 발견하곤 말을 아꼈다.
“흠흠. 이건 무슨 상자 같던데 암튼 가지고 가서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주는 보따리를 가지고 장진혁과 함께 쉼터를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보던 여자가 팔짱을 끼었다.
“진짜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 이복녀 할머니가 생전에 한태주랑 인연이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옆에 있던 직원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실장님. 이복녀 할머니가 생전에 허언증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네요?”
“뭔 소리야?”
“한태주 씨랑 알고 지냈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중협 씨의 친모라는 것도 진실일 수 있잖아요?”
“에이, 그건 진짜 아니다.”
여자가 강력하게 부정했다.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저 할머니, 생전에 치매였다니까. 그래도 한태주 얼굴 본 건 좋네. 그런데… 저 보따리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볼 걸 그랬나?”
여자의 얼굴에 만족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이 한데 섞였다.
* * *
다음날.
원도윤이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했다.
쓱쓱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모니터에 뜬 여러 기사에는 그가 평소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연예계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그의 시선을 끈 어뷰징 기사.
“확실히 한태주가 파급력이 세기는 하군. 핸드폰 광고 때리는 것보다 제작발표회에서 X23 언급한 게 이렇게 어뷰징이 많이 되다니.”
원도윤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주변은 물론 심지어 내부에서도 그의 선택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번에 백산전자의 사활이 걸린 X23을 큰 작품도 아닌, 그저 단막극에서 처음 공개하는 걸.
가오가 안 산다는 사람도, 도대체 왜 이런 작전을 짰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난 기사 덕분에 그 분위기는 자신 쪽으로 돌아섰다.
다들 부정할 수 없었으리라.
‘프러포즈 대작전’ 제작발표회에서 X23이 언급된 것만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는 걸.
흡족함으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던 원도윤.
그때 그의 귓가에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비서가 들어와 그의 기분을 살피며 서류를 내밀었다.
“이번에 저희 X23과 콜라보하기로 한 여러 패션 회사 있잖습니까. 그중 몇 군데 후보를 추려 봤는데요.”
원도윤이 자세를 바로 하며 서류를 받아 들었다.
꼼꼼히 검토하는 그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새 핸드폰의 출시와 더불어 백산전자는 수많은 패션 회사와 접촉했다.
그들과 함께 한정판을 만들어서 화제를 끌어볼 생각이었다.
그중 GX 그룹의 패션 계열을 이끄는 민소예가 강력하게 협의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여러 제안서를 확인하던 원도윤의 눈이 한 회사에 꽂혔다.
“루이스 모드?”
수락하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회사에서 긍정적인 답을 보내왔다.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붙었다.
X23 시리즈의 광고에서 노출되는 모든 쥬얼리를 루이스 모드 제품으로 하라는 것.
“지금 우리를 오히려 역이용하겠다는 말인가? 오만하게 들리는군.”
비서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쪽에서는 이 제안을 본부장님이 반드시 받아들일 거라 확신하더라고요.”
“무슨 근거로?”
“최고의 광고 모델을 선임했으니, 그에 걸맞은 최고의 브랜드를 매칭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오히려 되묻더군요. 그리고….”
비서가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GX 그룹의 영애 말고 자기들 손을 잡으라고, 루이스 모드의 한국 지사장이 제안했습니다. 파급력은 자기네가 더 클 거라면서요.”
그 말에 원도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메시지였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