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2
외전 32화
프러포즈 대작전 (32)
* * *
동 시각, 루이스 모드 한국 지사.
“백산전자 측에 보낸 역제안에 대한 대답은 아직인가요?”
“네, 지사장님. 오전에 보냈으니 아마 늦어도 내일까지는 답이 올 겁니다.”
“흐음…. 제 생각에는 오늘 중에는 올 것 같네요.”
능글맞은 인상의 지사장이 손을 튕겼다.
“분명 우리와 손잡을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는 간단했다.
백산전자는 핸드폰 X 시리즈의 부활에 사활을 걸었고, 최고의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통해 화제성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최고의 패션 브랜드는, 단연 ‘루이스 모드’였다.
한국 최고의 배우는 한태주였고.
“최고의 브랜드에 최고의 배우라. 이 조합을 거부할 수 있는 광고주는 없을걸요?”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도 통하는 조합임이 확실합니다.”
직원이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0여 년간 한태주가 루이스 모드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좋은 배우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배우로 널리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GX 패션이 이번 백션전자의 패션 콜라보에 일찍이 눈독을 들인 건 알고 계실 겁니다. GX의 민소예 전무가 원도윤 본부장의 약혼녀인 것도요.”
“그래서요?”
“애초에 민소예와 약혼한 건 전략적으로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이번 패션 콜라보도 GX 패션과 협력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요. 원도윤 본부장, 그렇게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는 사람 아닙니다. 이득을 확실하게 따지죠. 그렇다면 분명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해야 더 유리할지 알고 있을 겁니다.”
지잉.
그때, 휴대폰을 울리는 알림 소리에 내용을 확인한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지사장을 바라보았다.
“지…, 지사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직원의 놀란 얼굴에 지사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직원이 건넨 핸드폰에는 백산전자 홍보팀에서 보낸 메일이 담겨 있었다.
루이스 모드와 패션 콜라보를 진행하고 싶다는 내용의.
* * *
얼마 후.
“말도 안 돼.”
민소예가 분노에 찬 커다란 눈동자를 굴렸다.
방금 직원에게서 들은 소식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시 잘 알아봐요. 거짓 뉴스에 낚이지 말고. 애초에 도윤이 오빠…, 아니, 백산전자 측에서 다른 쪽에 손을 내밀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이미 업계에 원도윤 본부장이 루이스 모드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직원은 민소예의 눈치를 보는 듯 목소리를 점점 낮추었다.
“다들 루이스 모드가 한국에서 처음 콜라보 진행하는 게 백산전자라는 소식에 그럴 만하다는 반응이고요.”
“금 팀장! 그래서 벌써 포기할 거예요? 어떻게든 백산전자 쪽 마음을 돌릴 생각을 해야지!”
“하지만 전무님께서….”
직원은 호랑이처럼 싸나운 민소예의 눈빛에 미처 말하지 못했다.
분명 백산전자와의 패션 콜라보 사업에 사활을 건 것도, 성공을 장담한 것도 당신이었다고.
그런 직원의 불만을 눈치챈 듯 민소예가 씩씩거렸다.
“일단 나가 있어요. 나 혼자서 생각 좀 해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직원이 나간 후, 민소예는 짜증 가득한 손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아, 미치겠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원도윤!”
자신의 사활을 건 사업을 원도윤이 완전히 망쳐놓을 줄이야.
백산전자와의 패션 콜라보 사업은 GX 패션 전무로 승진한 이후, 그녀가 맡은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반드시 성공해야 했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었다.
백산전자 본부장인 원도윤이 자신의 약혼자였고, 곧 결혼할 계획이다.
그러니 머지않아 아내가 될 사람의 사업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미친 거야? 도윤이 오빠?”
핸드폰을 들어 원도윤에게 막 전화하려다가 멈칫한 그녀는.
혹시나 하고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화면에 뜬 여러 속보에 그녀는 기절할 듯 놀랐다.
속속들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여러 어뷰징 기사가 마치 그녀의 헛된 희망을 완전히 짓밟았다.
“아씨!”
결국 민소예는 분을 참지 못하고 원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쁘니까 용건만 말해.
“오빠. 미쳤어? 나랑 진행하기로 했잖아, X23 시리즈 말이야.”
-아, 그거.
“나 좀 도와달라고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어떻게 루이스 모드랑 냉큼 손을 잡을 수 있어? 오빠는 날 도와야지, 나랑 결혼할 사이잖아!”
-네가 늘 그랬지. 사업은 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수화기 너머 원도윤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몇 번을 검토해 봐도, 너희보다는 루이스 모드 쪽이 좀 더 승산이 있겠더라.
“오빠!”
-나도 이번 핸드폰 사업에 사활을 걸었어. 그깟 정에 휩쓸려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고를 택했을 뿐이야.
대놓고 루이스 모드가 GX 패션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강조한 말.
냉정하기 짝이 없는 원도윤에게 민소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원했다.
“오빠 진짜 나랑 결혼하려는 사람 맞아? 어쩜 이렇게 냉혹해?”
-말 잘했네. 우리, 좀 더 시간을 갖자. 요즘 네가 나를 대하는 감정이 순수한지, 의심이 생겨서 말이야.
대화의 흐름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자, 민소예는 불안해졌다.
“무슨 소리야, 오빠. 여기서 우리 결혼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네 입으로 그랬잖아. 내가 너랑 결혼할 사람이니까, 널 도와야 한다고. 그런데 잘 생각해 봐, 소예야. 내가 그동안 널 얼마나 도와줬니. 신사업 기획부터 여러 가지로.
“오빠가 나 사랑하니까 그 정도 도움 주는 건 당연한 거잖아.”
-사랑하니까 당연하다라…. 그러는 너는 날 사랑해서 뭘 해줬는데?
“나? 오빠는… 내 도움 따위 필요하지 않았잖아. 늘 혼자서 잘했으니까.”
-흠…….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원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돌변했다.
-역시 시간을 가지고 좀 떨어져 있자.
충격적인 말과 함께 원도윤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자존심에 금이 간 민소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애초에 서로의 이득을 위해 맺어진 관계였다.
그러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깨질 줄은 몰랐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난 민소예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럼 나도 다 생각이 있어.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 * *
한편, 대표실에 나란히 앉아 있던 태주와 차용석.
태주를 보는 차용석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일이 없었다.
야구장 프러포즈 이후 그는 행복만 아는 사나이로 변모했다.
“이게 다 태주 너 덕분이다. 너 없었으면 이렇게 기억에 남는 프러포즈는 하지 못했을 거야.”
“고모가 많이 좋아하셨나 봐요?”
“좋아하는 걸 넘어서 열광했다니까!”
흥분한 차용석이 침을 튀겼다.
“야구장 프러포즈는 자기 인생에서 잊히지 않을 사건이 될 거라면서, 어떻게 이런 좋은 선물을 해줬냐고 아주 기분이 좋아, 흐흐.”
“그래서 고모부 얼굴도 좋아 보이고요.”
그 모습을 보는 태주 역시 흐뭇했다.
사랑하는 고모부의 프러포즈가 성공적으로 끝난 게 뿌듯했다.
“태주 너한테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입 닦고 가만히 있는 건 내 성격에 안 맞지.”
차용석이 태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혹시 수안 씨한테 프러포즈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 말해. 내가 물심양면으로 도우마.”
“흠.”
멋쩍은 표정을 짓던 태주가 이내 옆에 있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것보다도, 형한테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태주가 가방에 넣어온 물건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녹이 슨 자그마한 금속 재질의 상자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달그락댔다.
“어제 쉼터에서 받아온 이복녀 할머님의 유품이에요.”
“아, 중협이 형 어머님이라는 그분? 어제 진혁이랑 둘이 다녀왔다며.”
태주가 꺼낸 상자를 응시하던 차용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진짜 중협이 형 어머님이 맞는 거냐? 난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생전에 형이 가족 이야기하는 걸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데….”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 할머니가 네게 유품을 남긴 것도 참… 신기할 뿐이다. 일단 그거 열어봐.”
상자를 여는 태주의 손길이 조급했다.
여기에 도대체 어떤 물건들이 있길래, 할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줬는지 알고 싶었다.
상자를 쏟다시피 책상에 탈탈 털자, 그곳에서 낡아빠진 종이들이 툭툭 떨어졌다.
“죄다 편지들이네.”
구겨진 종이들을 살피던 차용석이 흥미로운 눈빛을 빛냈다.
“그런데 이거, 중협이 형 글씨인데? 아무래도 둘이 편지를 주고받았나 보네.”
“그럼 이중협 선배님께서 생전에 어머님과 연락을 주고받으셨다는 걸까요?”
“글쎄,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어머니랑 연락하고 지냈으면서 왜 가족이 없다고 말했지?”
여러 편지를 살피던 태주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두 분은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만나기를 두려워했었나 봐요. 내용이 대부분 그래요.”
“중협이 형은 어머니가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비참함이 편지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네.”
“아…. 중협이 형, 염수정 선배님과 결혼하려는 계획도 여기 편지에 쓰셨었네요.”
태주는 괜스레 헛기침했다.
이중협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염수정에게 곧 프러포즈할 거라는 행복한 남자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던 중, 상자를 살피던 태주가 자그마한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 목걸이 아니에요? 꽤 비싸 보이는데?”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는 녹이 슬었지만, 꽤 고급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제일 소중한 내 사랑에게.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