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4
외전 34화
프러포즈 대작전 (34)
* * *
케이크 소동이 끝나고, 곧바로 평화가 찾아왔다.
태주는 윤수안과 함께 단막극 ‘프러포즈 대작전’을 시청했다.
재밌는 것을 보면 말이 없어지는 건 둘의 공통점이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티비를 보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먼저 침묵을 깬 건 윤수안이다.
“도준이랑 나란히 투샷 잡히니까 태주 너, 확실히 원숙한 티가 난다.”
장난기 가득한 윤수안의 말에 태주가 정색했다.
“원숙한 티가 난다니, 지금 나보고 늙었다는 거야? 요즘 관리 나름대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이렇게 사람이 진지하다니까.”
윤수안이 태주의 볼을 슬쩍 간질였다.
“늙었다는 게 아니라, 남자 향기 나서 좋다는 거지. 호호.”
대담한 말을 해놓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윤수안.
용석이 형 말처럼 때로 자신은 너무 진지해서, 윤수안의 이런 농담을 단번에 캐치를 못 하고는 했다.
멋쩍어진 태주가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화면에는 자신과 윤수안의 커플 씬이 나오고 있었다.
램프의 요정과 요정계 여왕으로 분장한 모습은 색달랐다.
특히 현실에서는 거의 싸우지 않는 자신들이 단막극 안에서는 냉랭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수정이 언니한테 문자 왔다.”
그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윤수안이 태주와 눈을 맞췄다.
“드라마 엄청 재밌대. 특히 우리 싸우는 장면, 연인들이 싸우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아서 진짜 재밌다는데?”
“우리가 리얼하게 연기하긴 했지.”
태주도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시청률 나올 타이밍인데…. 왜 감독님한테 아직 문자가 안 오지?”
“감독님한테 문자 부탁했었어?”
“응, 궁금해서 부탁 좀 드렸어. 그런데 아직 안 오는 걸 보니… 결과가 별로인 걸까?”
태주가 궁금한 시선을 티비로 돌렸다.
* * *
동 시각, ABS 조정실.
이곳에는 복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일부가 모여 초조하게 손을 비비고 있었다.
지금 방송되는 ‘프러포즈 대작전’ 시청률을 확인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어휴, 다들 긴장 풀고, 좀 여유를 가지고 보세요. 순간 시청률 나오려면 좀 시간 걸려요.”
“얼마나요?”
“아직 방송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어요. 자꾸 그러니까 저도 덩달아서 긴장되는 것 같잖아요.”
“어떻게 긴장을 안 할 수 있겠어요. 이번 드라마, 꼭 성공해야 하는 작품인데!”
조정실 피디는 제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을 힐끗했다.
복 감독이 이렇게 긴장한 이유를 알았다.
톱스타 한태주를 주연으로 쓴데다가, 주말 황금시간대를 차지한 만큼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긴, 그 조건을 가지고 성공 못 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기는 했다.
“한태주가 주연인데 뭘 그리 걱정하세요. 작품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한태주 보러 모여들 것 같은데.”
“그러니까 더 걱정되는 겁니다.”
복 감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한태주 씨가 택한 작품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기대를 많이 하고 있겠어요.”
“그래서, 자신 없어요? 이 작품에?”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듯한 질문에 복 감독이 단단한 시선을 맞춰왔다.
“제가 여태까지 한 작품 중 제일 열심히 찍었고, 가장 재밌는 작품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스태프가 황급히 외쳤다.
“프러포즈 대작전, 시청률 추이 좋은데요?”
“뭐라고?”
“지금 순간 시청률 10%까지 나왔습니다. 한태주 씨랑 송도준 씨가 만나는 부분, 윤수안 씨 나오는 부분이 유독 시청률이 높네요.”
“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정실에서는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첫 방송 시청률부터 이렇게 잘 나왔으니, 일단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이제 시작이죠.”
복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으로 더 많은 시청자가 볼 수 있도록, 홍보에 총력을 가할 생각입니다. 저희 작품의 재미를 알게 하는 것. 그게 저희 스태프들이 할 일이니까요.”
* * *
다음날, 오전.
일요일인데도 스타뉴스의 사무실에는 몇몇 직원들이 나와 있는 가운데.
사무실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열띤 대화를 펼치는 둘이 있었으니.
“어제 프러포즈 대작전 보셨어요? 진짜 재밌던데요.”
“4부작인 게 너무 아쉽더라. 벌써 25%가 지나간 거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어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어요.”
우성림과 황유나였다.
“무엇보다 단막극치고 시청률이 정말 좋아.”
“첫 방부터 평균 시청률이 7%로 치고 올라가는 건 정말 고무적인 성과였죠. 그것도 단막극이.”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이 그렇게 자신한 이유가 있었어.”
“저는 특히 태주 선배가 램프의 요정으로 분장한 게 재밌었어요. 선배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더라고요.”
큭큭거리던 황유나가 덧붙였다.
“저는 태주 선배가 그렇게 웃긴 연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매사에 진지한데.”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한 걸지도 몰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실제로 잘 해냈고.”
“드라마의 열기만큼이나 드라마 리뷰 기사도 조회수가 제법 높아요. 흐흐.”
황유나는 어젯밤, 드라마를 보고 쓴 리뷰 기사를 회상했다.
정성 들여 쓴 기사는 조휘수 3위 안에 드는 등 확실한 화제성을 입증했다.
“잘했어, 황유나. 이제 어엿한 기자 같네.”
“감사합니다!”
사수의 칭찬을 받은 황유나가 활짝 웃었다.
그런 그녀를 자랑스럽게 보던 우성림이 말을 이었다.
“아 참. 이번에 X23이 루이스 모드랑 콜라보해서 한정판 내놓는 거 알지? 보도자료 받는 대로 기사 잘 준비해서 올려.”
“넵!”
“그거 출시되면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환장할 거야. 당장 나부터 한정판 구매할 거 같거든.”
“루이스 모드 디자인이 웬만큼 예뻐야 말이죠. 더욱이 콧대 높은 브랜드인 만큼 여태껏 다른 전자제품하고 콜라보한 적 없잖아요.”
“태주 씨한테 아주 좋은 일투성이구만. 꽃길만 걷겠어.”
그때, 황유나가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어제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무슨 소문?”
“아니, 그게…. 아웃패치에 제 대학 동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 조금동 기자가 요즘 뭔가 꿍꿍이를 꾸미고 다닌데요.”
“조금동 기자가?”
분명 조금동은 나락으로 추락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하던 우성림이 이내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제아무리 뭔가를 꾸민다 한들, 뭘 할 수 있겠어. 저번에 한태주 씨 관련 오보로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린 기자한테 기사를 맡길 리도 없을 테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역시 그렇겠죠?”
“그래.”
확신을 가진 우성림이 덧붙였다.
“애초에 본사 국장의 신뢰도 잃은 사람이야. 지금은 자기 이름 단 기사를 아예 못 내는 거로 알아. 그런데 그가 무슨 힘을 쓸 수 있겠어.”
* * *
동 시각, 한 카페.
구석에 앉아 있던 조금동은 커피를 홀짝이며 문을 자꾸만 힐끗거렸다.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진짜 오기는 하는 건가? 보이스피싱에 당한 거 아냐?”
그는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한태주 열애설 오보를 낸 그의 존재감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자신을 비웃는 동료들의 눈길은 물론, 마주치기만 해도 대노하는 국장의 불호령까지.
그 모든 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는 병가를 내고 당분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그의 개인번호로 한 여자의 연락이 왔다.
엄청난 특종을 써 달라면서.
딸랑.
문이 열리며 청명한 종소리가 울리고,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점점 그에게 가까워졌다.
그러더니 독한 향수 냄새를 온몸에 감은 젊은 여자가 조금동 앞에 앉았다.
“조금동 기자죠?”
“아, 네.”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를 바라보던 조금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소예 씨인가요?”
“맞아요. 시간이 없으니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요.”
민소예가 조금동 기자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마치 큰 비밀이라도 말하려는 모양새였다.
“나랑 한태주랑 대학생 때 사귄 적 있어요. 그 내용을 기사화해 줘요.”
“네?”
조금동은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이 진짜인지, 귀를 의심했다.
분명 민소예도, 한태주도 이제 곧 결혼할 사람이 있는 몸이었다.
대학생 때 둘이 사귀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걸 기사화하라고?
그 여파를 어떻게 나 혼자서 감당하라고?
조금동이 있는 힘껏 이성을 끌어모아 답했다.
“하지만 민소예 씨. 그 기사로 이득을 얻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예 씨는 물론 한태주 씨도 오히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겁니다. 곧 백산전자 본부장과 결혼하신다고 들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굳이 연예인과 엮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거 같습니다. ”
그 말에 민소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얼마 전, 원도윤이 파혼을 선언한 걸 이 기자는 모르는 것이다.
하긴, 아직 기사화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가.
어쨌든 민소예는 기분이 무척이나 나빠졌다.
“말이 기네요. 지금 당신이 날 걱정할 처지인가요?”
민소예가 날카로운 눈을 깜빡이더니, 가지고 온 가방을 뒤적였다.
고민하는 조금동의 눈앞에 두툼한 돈 봉투가 쓱, 내밀어졌다.
“이걸 보고도 거절할 생각은 아니겠죠?”
“아니, 이건….”
“계약금이에요.”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민소예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기사 기다리겠습니다.”
민소예가 나간 후, 홀로 남은 조금동은 봉투를 뒤적였다.
“이게 다 얼마야….”
그러고는 두툼한 봉투를 품에 챙기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민소예가 왜 이런 논란이 될 기사를 부탁하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자신이 이유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돈 받으면 그만이지. 내가 그 내막까지 알 필요가 있나.”
조금동은 아까 민소예가 말해준 정보를 토대로 기사를 쓸 준비를 했다.
아니, 기사를 가장한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 * *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태주는 오전 일찍부터 강남의 한 광고 촬영장에 나와 있었다.
오늘은 백산전자의 새로운 핸드폰 광고, X23 시리즈 광고를 찍는 날이었다.
직장인으로 분장한 태주는 메이크업을 끝내고 헤어 리터칭을 받고 있었다.
옆에서 스태프들이 신나게 말을 걸었다.
“어제 드라마 잘 봤어요. 재밌더라고요.”
“단막극이라 4부작인 게 너무 아쉬워요.”
“연령대 상관없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서 좋았어요. 진짜 재밌던데요. 특히 태주 씨가 램프의 요정으로 변장한 모습이.”
“태주야, 우리도 드라마 잘 봤다.”
그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태주가 반갑게 고개를 돌렸다.
“선배님! 여기는 어떻게…. 아!”
제게 다가온 김선정, 손우현 부부.
“설마, 저랑 호흡을 맞춘다는 배우분들이 선배님들?”
“모르고 있었어? 여보, 어떻게 된 거야?”
손우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선정에게 물었다.
“저번에 루이스 모드 행사에서 태주한테 말했다고 하지 않았어?”
“곧 또 보자고만 했죠. 오늘 서프라이즈로 놀라게 해 주고 싶었거든요. 호호.”
“하여튼 장난기는.”
김선정은 태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네 부모님이야. 괜찮지?”
“좋고말고요. 오늘 제가 제대로 아들 노릇 해드릴게요.”
“어머, 이런 멋진 아들이면 너무 좋지.”
좋은 분위기 속 대화가 막힘없이 이어지는 이때.
현장 스태프 중 하나가 광고 감독에게 서둘러 달려왔다.
“감독님, 방금 백산전자 측에서 연락 왔는데요. 원도윤 본부장님께서 오늘 현장 방문하실지도 모른답니다. 배우들에게도 알려야 할까요?”
“아니, 그게 무슨….”
잠시 고민하던 광고 감독.
원도윤 본부장이 광고 시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등, 이번 X23에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이는 건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광고 현장까지 찾아오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서둘러 결론을 낸 감독이 스태프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배우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혹시라도 촬영 중에 집중력 깨질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