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5
외전 35화
프러포즈 대작전 (35)
* * *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던 원도윤.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내 비서를 자리로 불렀다.
“지금쯤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차 준비시키겠습니다.”
자신이 보고하기도 전, 먼저 계획을 세운 이 철저함.
비서는 원도윤의 살짝 상기된 표정을 신기한 듯 응시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촬영장 가시려고요?”
“네. 가겠다고 말도 해뒀으니까요.”
“현장 상황이 궁금하신 거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이번 X23은 광고 시안을 제가 검토했잖습니까. 광고 현장에 직접 가서 어떻게 영상이 나오나 보고 싶네요.”
알겠다는 듯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도윤을 대동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간 그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오늘따라 유독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런가요?”
“제가 본부장님을 보필한 세월이 짧지 않은데,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하하.”
마치 이유를 말해달라는 듯 비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지만, 원도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이유를 말하기가 조금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배우 한태주를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한태주는 활력과 열정이 넘쳐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고 말이다.
미소를 지으며, 원도윤이 차에 올랐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운전석에 올라탄 비서는 이내 차를 부드럽게 출발시켰다.
거울로 힐끗 본 원도윤의 얼굴은 여전히 좋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비서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민소예와 파혼했다며 굳은 얼굴을 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문이었다.
“가는 길에 꽃 좀 사 가죠.”
“네, 꽃집에 들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원도윤의 명령에 비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 * *
한편, XJ 엔터테인먼트 회장실.
그곳엔 전화기를 든 채 차분히 응대하는 한서경 회장이 앉아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민소예의 아버지, GX 그룹 회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고래고래 들려왔다.
-도대체 원도윤 본부장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우리 소예만 혼자 이 관계에 대해서 진지했던 건가요? 어떻게 이렇게 우리 소예를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습니까!
“회장님, 진정하시고….”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우리 딸내미를 한순간에 파혼녀로 만들었는데? 이봐요, 한 회장. 원도윤 본부장보고 당장 우리 소예한테 사과하라고 해요. 찢어진 조각을 원 본부장이 도로 꿰매라고 하라고요.
그 말에 화가 난 한서경의 이마에 핏줄이 와락 솟았다.
“회장님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파혼에 이르게 된 원인은 댁 따님이 제공한 겁니다.”
-뭐라고요? 한 회장, 지금 뭐라고 했어요?
“애초에 이 관계가 끝이 난 건, 민소예 전무의 끝없는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한서경이 그동안 참았던 억울함과 화를 풀어내듯 말을 이었다.
“패션사업을 자기 힘으로 키울 생각은 안 하고. 우리 도윤이 이용해서 이득 보려고 했던 거, 사원들 사이에 다 소문났더군요. 그럼에도 약혼녀 부탁이라 도윤이가 조언도 해 주고,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감 몰아주는 건 문제가 다르죠, 그건 비리입니다.”
-한 회장도 참, 말을 이상하게 하시네요. 우리 소예가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사업 좀 도와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곧 결혼할 사이였는데.
“정당한 입찰과 공정한 경쟁으로 진행하는 게 사업의 원리죠. 솔직히 회장님도 인정하시잖아요. GX 패션이 루이스 모드에 한참 밀리는 거.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는 더욱 그렇고요.”
갑자기 한서경이 입에 올린 이번 백산전자 X23 콜라보 사업건.
그러자 수화기 너머 GX 그룹 회장의 분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지…, 지금 치사하게 그런 걸 가지고 논하자는 거요? 그래요, 솔직히 정을 기대했던 건 사실입니다. 우리 소예가 이번에 패션사업 부문 맡아서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는 한 회장도 잘 알잖아요. 그런데 원 본부장은 약혼녀의 그런 부분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냥 지 꼴리는 대로 일을 진행하더이다. 이렇게 매정한 사위는 나도 사양입니다!
“정 없고 매정한 게 아니라, 사업가의 눈으로 제일 좋은 선택을 한 것뿐이죠. 민 전무 사업 도와주겠다고, 루이스 모드를 거절할 순 없잖습니까. 마치 다이아몬드와 돌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과 비슷한데요.”
-뭐…, 뭐요? 이런 건방진!
“아무튼 회장님, 앞으로 저희 이렇게 전화할 일 없기를 바랍니다. 파혼한 마당에, 피차 이렇게 얼굴 붉힐 필요 없잖아요. 기사는 저희 쪽에서 최대한 간략하게 내겠습니다. 그럼.”
한서경은 애써 냉정한 말투를 유지한 채 전화를 끊었다.
“아, 진이 다 빠지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이 정도 가지고 뭘.”
비서가 가져다준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신 한서경이 한숨 돌렸다.
원도윤이 민소예와 파혼한 이후로, GX 그룹 측에서 매일 같이 이런 전화가 걸려 왔다.
솔직히 이번 파혼에서 손해를 본 건 원도윤이 아닌 민소예였기에,
아버지 입장에서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대신 매달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서경은 내심 이번 파혼이 통쾌하기만 했다.
“맨날 우리 도윤이가 퍼주기만 하고. 에잉, 차라리 잘 됐어. 이번 기회에 다시 마음 다잡고 새로 시작하는 거야.”
“안 그래도 원도윤 본부장님, 요즘 기분이 부쩍 좋아 보이신다고 합니다.”
“걔도 이제야 정신을 차린 거지. 애초에 한 쪽이 손해 보는 관계였잖아. 그런데….”
한서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왜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거야? 아, 루이스 모드랑 콜라보 성사시켜서? 그건 진짜 센세이셔널 하긴 하더라. 오늘 기사 올라온 거 봤어? 조회수며 댓글이 어찌나 많이 달리던지, 아마 전작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것 같던데?”
오늘 스타뉴스에서 보도한 관련 기사는 조회수 1위를 차지했다.
“이번에 내가 듣기로는 X23이 루이스 모드랑 패션 콜라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한태주 덕분이라고 하던데. 맞나?”
“네, 그렇습니다.”
비서가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태주 씨가 루이스 모드 장수 모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X23 메인 모델로 선정되면서, 루이스 모드 측에서 패션 콜라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어이구, 진짜 태주 씨가 복덩이라니까.”
한서경이 만족스러운 듯 손을 비볐다.
“그래서 우리 도윤이도 태주 씨를 그리 좋아하는 건가?”
* * *
한편, X23 광고 촬영장.
본격적으로 광고 촬영이 시작됐다.
오늘 광고 콘티는 대강 이러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취업해 상경한 초보 직장인, 태주.
일에 치여 하루를 바쁘고 피곤하게 보내고 돌아온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으로 부모님께 연락하는 것.
핸드폰은 그와 부모님을 연결하는 수단이었다.
그가 혼자서 뭘 먹고 지내나 걱정하는 부모님을 위해 오늘 먹은 음식을 찍어 보내고.
동료가 찍어준 그의 웃는 사진도 보내고.
오늘 퇴근하는 길에 발견한 민들레꽃도 찍어서 보냈다.
그리고 부모님과의 영상통화.
“엄마, 아빠!”
핸드폰 화면으로 크게 보이는 부모님이 태주를 보려 안달이었다.
-내 새끼, 살이 쪽 빠졌네? 일이 힘든가 봐.
-그래도 잘 버티는 모습이 멋있다. 역시 내 아들이야.
엄마와 아빠의 따뜻하고 든든한 격려에 태주는 환히 웃었다.
“꼭 옆에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좋다.”
“엄마, 아빠도 우리 아들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아.”
부모님의 환한 미소에 태주도 씩 미소를 짓는 그때.
화면에 나오는 문구 하나.
-사랑을 연결하는 힘. X23.
* * *
“이야…. 역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다르다니까.”
홀린 듯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던 광고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선정, 손우현은 물론이고, 한태주도 초보 직장인 연기를 정말 잘하네.”
“힘 들어간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 빼고 자연스러운 연기도 수준급이에요.”
“솔직히 톱스타라서 알게 모르게 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냥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라서 공감되고 좋았어요.”
옆에서 하나둘씩 스태프들이 자기 의견을 덧붙이자, 감독이 열렬히 공감했다.
“그래, 바로 이게 내가 원하던 컨셉이라고.”
그때, 뒤에서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감독에게 속삭였다.
“원도윤 본부장님 오셨습니다.”
“뭐?”
감독이 황급히 등을 돌리자, 촬영장 구석에 원도윤이 비서와 함께 서 있었다.
그는 촬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조용히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그런데 저 양반…. 왜 꽃다발을 들고 있어?”
“이따가 촬영 끝나고 배우들한테 수고했다는 의미로 주려고 사 온 거라고 그러던데요.”
“뭐야…. 저렇게까지 이 광고에 진심이라고?”
감독이 신기한 듯 원도윤을 바라보았다.
이미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된 듯,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 * *
NG는커녕 감독의 큰소리 한번 없이 촬영이 끝났다.
바로 촬영본을 확인한 태주가 김선정과 손우현을 돌아보았다.
“오늘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예전에 함께 작품 했을 때 기억도 나고요.”
“그래, 나도 그때 생각나더라.”
“그런데 저만 오늘 촬영이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독을 보며 의견을 묻는 듯한 태주.
그러자 감독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촬영의 관건은 부모님과 자식의 정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이었는데요. 그 점에서 오늘 세 분의 연기는 합격, 그 이상입니다.”
“맞아요. 연기가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듯했거든요.”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태주는 제게 꽃다발을 건네주는 원도윤을 마주했다.
“본부장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
“저희 기대작 광고라기에 한 번 방문해 봤는데, 상상 이상이네요.”
“감사합니다.”
원도윤이 태주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태주 씨는 표정이 참 다채롭고 좋더라고요. 단순히 배우라서가 아니라,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모습이 참 맑으면서도 보기 좋았습니다. 전 노력해도 잘 안되더라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태주 씨가 좋은 사람이라서 이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뉘앙스의 말.
“태주 씨가 일전에 저한테 해 준 말이죠. 저도 언제가 꼭 되돌려 주고 싶었어요.”
-솔직히 본부장님, 좋은 사람 같았거든요.
태주가 멋쩍은 듯 입술을 말아 올렸다.
원도윤이 자신을 이렇게 높게 평가해 주는 게 고마울 뿐이다.
그때, 현장에 함께 따라왔던 장진혁이 놀란 듯 태주에게 달려왔다.
“태주 형, 이거 봐. 기사가 하나 올라왔는데….”
좋은 분위기 속, 태주는 장진혁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