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8
외전 38화
프러포즈 대작전 (38)
“널 만나주지 않는다고? 수안 씨가?”
갑작스러운 태주의 고백에 차용석은 내심 당황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태주와 함께 고민해 주었다.
“에이, 수안 씨가 널 일부러 피할 리가 있나.”
“하지만 지난번 스타 뉴스 결혼 발표 인터뷰 때부터 지금까지, 수안이랑 만난 적 없어요.”
“요즘에 수안 씨가 워낙에 바쁘잖아. 차기작 촬영 직전이라 여러모로 복잡할 거야.”
차용석의 말에 태주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이번에 심 작가한테 복수극 장르 제안받아서 캐스팅됐잖아요.”
이제는 어엿한 중견 작가로 자리 잡은 심은설 작가.
로맨스 작품 ‘낭만고양이’의 보조작가로 작가 생활을 시작해, 스릴러인 ‘굿맨’으로 당당히 대박 작가 반열에 들어섰고. 그 이후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내는 다작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 주인공으로 윤수안을 캐스팅하며, 또 다른 대박작이 탄생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견이 많았다.
“프러포즈하려면 드라마 시작하기 전, 지금이 딱이야.”
확신에 찬 차용석이 태주와 눈을 마주쳤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형한테 좀 상담받고 싶었어요. 어떻게 해야 뻔하지 않은 방법으로 프러포즈를 할 수 있을까요?”
“음…. 혹시 뭐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그게…. 원래 하려던 것이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 버려서 다시 구상해야 할 것 같아요.”
태주는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보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고모부의 프러포즈를 준비해 줄 때는 아이디어가 샘솟더니, 막상 자신이 프러포즈할 때가 되니까 이렇게 막히다니.
한편, 옆에서 조력하겠다던 차용석은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듯했다.
“호텔을 통째로 빌리는 건 어떨까? 아니면 놀이공원을 통째로 하루 빌리는 거야. 그럼 너희 둘만 있는 느낌이 나서,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형, 그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윤수안의 취향을 아는 태주가 고개를 저었다.
“수안이는 그렇게 화려한 프러포즈를 원하지 않을 거예요.”
“아니야. 여자들은 화려하고 낭만적인 걸 원할 텐데?”
“고모 보세요. 야구장 프러포즈를 해도 그렇게 좋아하셨잖아요. 화려한 것보다 상대방 취향으로 해주는 게 중요한 거라고요.”
“아, 수안 씨는 수수한 걸 좋아한다고 했지? 레스토랑 데이트보다는 집 데이트를 선호한다며. 그럼 집에서 프러포즈하는 건 어때?”
“그건 너무 뻔하지 않아요?”
계속되는 태주의 거절에 결국 차용석은 두 손을 들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족족 거절이네. 그럼, 도대체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죄송해요. 형 도움은 정말 감사한데,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제가 알아서 해 볼게요.”
태주가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인생의 한 번뿐인 만큼, 자신도 윤수안도 마음에 드는 청혼을 해주고 싶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그러고 보니 아빠가 엄마한테 만족스러운 프러포즈를 해줬다고 했었는데. 그게 뭘까?’
* * *
짬을 낸 태주가 향한 곳은 고모의 집이었다.
“고모, 저 왔어요.”
“어머, 태주야. 들어와, 들어와.”
먹을 것을 내온 고모는 태주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얼굴 살이 쏙 빠졌네, 어머.”
고모는 태주의 얼굴을 이곳저곳 훑어보더니,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수안 씨랑 요즘 아주 행복해 죽겠나 보지?”
“고모!”
때로는 너무 짓궂어서 탈인 고모의 발언에 태주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빨개져 버렸다.
그런 태주를 고모는 마냥 귀엽다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거실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네가 부탁한 거 꺼내 놨어.”
그녀가 가지고 온 건 태주의 부모님의 젊을 적 사진들이 들어 있는 앨범이었다.
“감사합니다. 그것 좀 볼게요.”
천천히 앨범을 넘긴 태주는 곧이어 여러 사진에 푹 빠져들었다.
엄마와 아빠의 젊었을 적 모습이 한가득했다.
둘이 처음 미국에서 만나 데이트할 때의 사진들, 결혼식 사진, 아기인 자신을 안고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한동안 앨범을 보던 태주의 귓가에 궁금해하는 고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앨범을 찾은 거야? 사진 스캔해서 핸드폰에 다 저장되어 있지 않아?”
“혹시 제가 찍지 않은 다른 사진이 있는가 싶어서요.”
“혹시 특별히 찾는 사진이라도 있어?”
“음…. 혹시 그 사진은 없어요?”
태주가 고모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엄마한테 프러포즈하는 사진이요.”
“그건… 없을걸?”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유경이 확신에 찬 듯 덧붙였다.
“그때 너희 아빠가 프러포즈하느라 하도 정신이 없어서,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
“아…, 그렇구나.”
“흐음. 오빠가 새언니한테 어떤 프러포즈를 해 줬는지 알고 거야?”
“네. 혹시 고모는 뭐 아는 거 없어요?”
태주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한유경은 오빠를 졸라 알아낸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듣기론 화려하게는 못했다더라고. 그때 둘 다 돈이 많은 상태는 아니었거든.”
“그래요?”
“그리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에서 했다고 했는데. 미국에 있는 공원에서 프러포즈한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이런 걸 궁금해하는 거니?”
“사실은 제가 아직 수안이한테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못 했거든요. 그래서 참고 좀 하려고 했는데….”
“뭐? 그럼 일전에 기사 난 건 뭐야? 수안 씨랑 너 결혼 발표했잖아.”
“그건, 저를 걸고넘어지는 민소예의 기사를 다른 특종으로 막으려는 수안이의 기지였어요. 뭐, 우리 둘이 결혼할 건 기정사실이니까요.”
자초지종을 들은 고모는 태주에게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태주야, 지금이라도 근사하게 해 줘야 해. 여자한테 평생 남는 건 프러포즈 받은 기억이랑 아이 낳았을 때란 말이야.”
“명심할게요.”
“그리고 근사한 프러포즈라는 건 별것 아니야. 너랑 수안 씨가 그동안 쌓아온 진솔한 감정을 기반으로, 앞으로 네가 수안 씨랑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진짜 멋있는 프러포즈지.”
“그런 것 같네요.”
가만히 듣던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자신이 너무 ‘형식’에만 집착한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의 마음, 내면의 진심에 집중해 그것을 윤수안에게 전해줄 차례다.
그것이 진정한 프러포즈니까.
* * *
노을이 내려앉은 저녁 시간의 한적한 카페 안.
캡모자를 깊게 눌러쓴 윤수안은 카페로 들어서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구석에 있던 태희가 손을 들었다.
“언니!”
윤수안은 반갑다는 듯 그쪽으로 쫑쫑 걸어갔다.
“갑자기 만나자고 했는데도 나와줘서 고마워요, 언니.”
“이 정도 시간은 뺄 수 있지. 우리 귀여운 태희를 만나는 건데. 호호.”
콧소리가 들어간 윤수안의 애교에 태희가 털털하게 웃었다.
“역시 내가 이래서 언니를 좋아한다니까요. 언니, 커피 뭐 드실래요?”
얼마 후, 커피를 가져온 태희가 윤수안에게 따뜻한 라떼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 참. 결혼 축하해요, 언니. 곧 우리 오빠랑 결혼한다면서요?”
“태희야, 왜 그래. 그런 말 들으면 쑥스러워.”
“이제 앞으로 어떻게 불러야 해요? 언니라고 계속 불러도 되죠?”
“물론이지.”
윤수안은 흐뭇한 표정으로 태희를 바라보았다.
태주와 교제하는 10여 년 동안 윤수안은 태희가 커오는 것을 눈앞에서 봐왔다.
태희가 귀여운 소녀에서 싱그러운 대학생으로 자란 지금, 마치 자신의 여동생 같이 느껴졌다.
커피를 홀짝거리던 태희가 윤수안을 힐끗했다.
“그런데 요즘 오빠 피한다면서요. 왜 그런 거예요?”
“아, 그게….”
윤수안이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했다.
“요즘 일이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기도 했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아, 민소예 때문이죠?”
태희가 그 마음 알겠다는 듯 윤수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빠, 그 여자 잊은 지 한참 됐어요. 이상한 기사 때문에 괜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알아. 그래도 그 여자가 자꾸만 질척거리는 게 기분이 나쁘더라고. 이런 못난 모습을 태주한테 보이고 싶지 않았어.”
“이제 다 끝났잖아요. 다 앞으로 잘 될 일만 남았을 거예요.”
그 말에 윤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희는 씩 웃으며 주제를 돌렸다.
“그런데 태주 오빠하고 진짜 결혼할 거예요? 오빠, 은근히 손 많이 가는 타입이잖아요.”
“손이 많이 간다고? 자기가 혼자서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잖아.”
“그게 아니라, 애정을 많이 받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었어요. 아닌 척하지만, 오빠 챙김 받는 거 즐기잖아요. 호호.”
“난 그래서 더 좋은걸? 나, 누구 돌보는 거 잘해.”
“그런데 오빠가 제대로 된 프러포즈는 했어요? 그게 제일 궁금한데.”
그 말에 윤수안이 멈칫거리자, 태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쯧쯧거렸다.
“역시 아직 안 했나 보네요. 바보 오빠.”
풀이 죽은 윤수안의 표정을 본 태희는 그래도 오빠를 위한 변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원래 준비성이 철저하잖아요. 그래서 뭐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요.”
“그렇긴 해.”
“오빠가 지금 몰래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좀만 기다려 봐요, 언니.”
“아니면 내 쪽에서 먼저 할 수도 있지!”
윤수안이 슬쩍 웃었다.
“나는 적극적인 여자니까, 태주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거든.”
“꺄~. 너무 멋있어요, 언니.”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윤수안을 바라보던 태희의 얼굴이 곧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젖어 들었다.
그녀에게 태주는 사촌 오빠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런 태주 오빠가 수안 언니와 결혼한다고 하니, 태희는 좋으면서도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했다.
“태주 오빠, 그동안 우리 가족을 챙기느라 든든하게 기둥 역할만 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언니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아내로 맞이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좋게 봐줘서 고마워, 태희야.”
“언니는 좋은 사람이니까요. 그러니까….”
태희가 윤수안의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저희 오빠, 잘 좀 부탁해요.”
* * *
그날 오후.
태주는 집에 들렀다가 회사로 왔다.
저녁쯤, 미팅이 있기 때문.
시간이 잠시 남아서 태주는 제안 들어온 대본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윤수안에게 어떻게 하면 환상적인 프러포즈를 해줄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중,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으니.
“수안이랑 처음 만난 곳이 촬영장이잖아?”
영화 ‘그림자 무사’에서 각각 주연과 단역으로 만난 두 사람.
그때 태주는 윤수안을 지키는 무사 역할로 출연했었다.
생각을 거듭하던 태주는 종이에 무언가를 급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건 촬영장이니까, 프러포즈도 그와 관련된 극장 안에서 하면 어떨까? 영상을 하나 만들어서 극장에서 재생하는 거야.”
태주는 영상에 넣을 멘트를 생각나는 대로 써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나는 말단 단역으로, 당신은 여주인공으로 만났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나의 여주인공으로, 평생 모시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내 손을 잡아주세요.”
순식간에 종이를 꽉 채운 프러포즈 멘트.
태주는 자기가 봐도 잘 썼다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 좋아, 수안이가 뻑 넘어가겠어.”
그때, 대사를 연습하고 있던 태주의 뒤에서 쓰윽, 누군가 나타났다.
“여기 있었구나? 그런데 뭐해?”
윤수안이 나타남과 동시.
태주는 프러포즈 멘트가 적힌 종이를 쓱, 뒤로 숨겨버렸다.
혹시라도 그녀가 봤을까 전전긍긍한 이때.
흔들리는 눈동자가 윤수안의 곧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