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69
외전 39화
프러포즈 대작전 (39)
“아무것도 아니야.”
태주는 황급히 종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연습하던 대사를 그녀가 듣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윤수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뭐 하고 있었는데? 왜 말을 못 해?”
점점 다가오며 은근히 태주를 압박하던 그녀가 속삭였다.
“혹시, 나한테 말 못 할 비밀이라도 있는 거야?”
“흠흠.”
태주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그녀를 슬쩍 밀어냈다.
“여기까지는 웬일이야. 오늘은 집에서 쉰다고 하지 않았어?”
“회사에 잠시 볼일 있어서 왔다가, 대표님한테 물어보니까 너 여기 있다고 해서 보러 왔지.”
윤수안이 슬쩍 태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태주의 굳은 모습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태주 너, 나한테 프러포즈를 안 했더라. 우리 결혼 발표는 했으면서 프러포즈는 안 한 게 좀 아이러니하지 않아?”
“아, 그게….”
당황한 태주가 헛기침을 연발했다.
얼굴이 붉어진 태주를 보며 재밌다는 듯 윤수안이 말을 이었다.
“뭐, 괜찮아. 시간이 없으면 굳이 프러포즈를 안 해도 되지. 그런데 좀 아쉽긴 하다. 여자들의 로망 중 하나가 프러포즈거든. 그래서 말인데…….”
윤수안이 장난기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굳이 남자가 프러포즈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하는 건, 어때?”
“안돼!”
그 말에 태주가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건 좀…. 우선 조금만 기다려봐.”
“흐음? 꼭 프러포즈 준비하는 사람처럼 말한다?”
정곡을 찌른 그녀의 말에 태주의 얼굴이 다시금 발개졌다.
눈치 빠른 윤수안이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르는 일.
얼른 일을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동 시각, 대표실.
박인우와 함께 차를 마시던 차용석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수안 씨가 태주를 발견했으려나?”
“휴게실에 있다고 말해줬으니 당연히 만났겠죠.”
박인우가 재밌다는 듯 킬킬거렸다.
“그나저나 그 둘, 참 사이가 좋다니까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데도 또 보고 싶을까요?”
“으이그, 네가 연애 세포가 완전히 멸종됐나 보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서면 보고 싶은 법이라고.”
“그럼 대표님도 사모님께 그런 감정 느끼시는 겁니까? 그래서 퇴근도 막 빨리하시는 거고요?”
“흐흐, 저번에 야구장 프러포즈 이후에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차용석과 박인우가 웃음을 크하하 터뜨렸다.
그러던 중 차용석이 문뜩 생각났는지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태주 스케줄이 어떻게 되더라?”
“단막극 ‘프러포즈 대작전’ 관련 인터뷰 몇 개랑 X23 런칭 행사 참석이 있습니다. 굵직한 것만 남았습니다.”
“백산전자 행사에 태주까지 가야 해?”
“원도윤 본부장 측에서 직접 요청한 내용이라서요. 아무래도 X23 메인모델이 직접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줬으면,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박인우가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더욱이 이번에 출시할 루이스 모드 콜라보 제품들을 태주가 직접 소개해 줬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무래도 태주의 참석 여부에 따라 행사에 쏠릴 관심도가 달라질 테니까요.”
“그렇구만. 그럼 태주가 행사에 참석해야겠네.”
“네, 그 외에도 원도윤 본부장은 행사 내내 태주와 동행할 거라고 뜻을 전해왔습니다.”
“흠…. 그 양반도 참 특이하다니까. 아무리 비즈니스적으로 엮였다고 해도 태주를 가까이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차용석이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보면 태주가 자기 약혼녀랑 사귀었던 전 남친이잖아. 그래서 좀 껄끄러울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아니지,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낌새란 말이야.”
“원 본부장 측에서 태주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언뜻 봐도 태주가 자기한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받았나 봅니다.”
휙.
문이 활짝 열리며 태주가 들어온 건 그 순간이었다.
“인우 형, 나 프러포즈하는 것 좀 도와줘.”
태주가 내민 종이를 읽던 박인우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그곳에는 태주가 생각해 둔 프러포즈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큭큭큭, 역시 너도 남자구나. 왜 이런 걸 신경 안 쓰나 했다.”
“그래서 도와줄 거야, 말 거야. 시간 없어서 형 도움이 꼭 필요하단 말이야.”
“태주야, 나만 믿어라. 내가 누구냐,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미다스의 손 박인우 아니냐.”
그 말에 차용석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얼마나 훌륭한 프러포즈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만.”
* * *
며칠 후, 스타뉴스.
국장실에서 홀로 유유히 커피를 마시고 있던 홍은지.
인터넷 기사를 읽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이야, ‘프러포즈 단막극’이 9%까지 시청률이 올라갔었네. 대단하다, 대단해.”
그러나 홍은지가 무엇보다 흡족하게 보는 기사는 따로 있었으니.
지난 며칠간 연예란에는 그녀와 우성림이 합작해서 쓴 기사가 상위권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었다.
“한태주와 윤수안의 결혼 발표 기사를 보도하다니. 이제야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드네.”
연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홍은지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해. 분명 무언가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우성림이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국장님, 방금 작성한 기사 초안입니다. 컨펌 부탁드리고자 가져왔습니다.”
“그래, 한 번 봐볼게.”
그때, 홍은지는 무언가 깨달은 듯 허벅지를 철썩, 내리쳤다.
“그래, 분명 기사 중에 그 내용이 없었어. 누가 먼저 프러포즈했는지 말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저번에 너하고 나하고 공동 보도했던 한태주, 윤수안 결혼 발표 기사를 잘 생각해 봐. 거기 누가 프러포즈했는지 그런 내용은 없었잖아, 안 그래?”
곰곰이 기사를 되새김질하던 우성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둘 중 누가 먼저 청혼했다고 했더라?”
“애초에 그런 말이 없었어. 나도 참 정신이 없었네, 왜 그 질문을 하지 않았지?”
“설마, 아직 프러포즈 안 한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서로 짠 듯한 침묵이 흐르고, 홍은지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설마. 둘이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공표까지 했는데, 그 중요한 ‘프러포즈’를 안 했겠어?”
“아니, 솔직히 두 분이 결혼 발표를 좀 급하게 한 감이 없지 않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프러포즈를 미처 못 했을 수도 있죠.”
“아니야, 태주 씨가 그럴 리 없어.”
그러나 자신감 넘치던 홍은지는 점점 말투가 흐릿해졌다.
그러더니 우성림을 향해 흔들리는 시선을 던졌다.
“정말 그런 건가? 태주 씨가 설마 아직도 수안 씨한테 프러포즈를 안 했을까?”
“저희 아무래도 인터뷰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보니 댓글에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냐는 의문이 꽤 되네요.”
“당장 후속 보도 준비하자, 성림아. 프러포즈 없는 결혼 발표 기사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잖아.”
“제가 지금 X23 런칭 행사 취재하러 가거든요.”
우성림이 결의에 찬 주먹을 꼭 쥐었다.
“거기서 태주 씨를 인터뷰하고 오겠습니다!”
* * *
그날 오후.
수많은 사람이 몰린 이곳은 백산전자가 새로 내놓는 회심작, X23이 공개되는 행사장이었다.
단상 위에는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원도윤 본부장, 그리고 태주가 서 있었다.
큰 스크린에는 일전에 방송됐던 ‘프러포즈 대작전’의 한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백산전자가 협찬한 X23를 사람들이 들고 있는 대학가요제 씬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X23는 ‘프러포즈 대작전’에서 선공개한 바 있습니다. 전작보다 훨씬 향상된 성능,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카메라 기능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원도윤의 말을 받은 태주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루이스 모드와 콜라보한 특별 한정판.
곧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수군거렸다.
“특히나 이번 X23은 루이스 모드와의 협력을 통해 한정판을 내놓았는데요. 성능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고객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한 제품입니다. 이걸 시작으로 루이스 모드와 협력해 더욱 많은 제품을 생산할 예정입니다.”
원도윤이 자신감 있는 눈을 빛냈다.
“태주 씨는 실제로 드라마 촬영장에서 저희 X23 먼저 써보셨죠? 느낌이 어떻던가요?”
원도윤의 질문에 태주가 대답했다.
“디자인도 예뻤지만, 무엇보다 성능이 굉장했습니다. 저도 X23으로 핸드폰을 바꾸려고요.”
“태주 씨는 공짜로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니, 필요하신 만큼 말씀하세요.”
원도윤이 씩 웃었다.
“자랑스러운 우리 X23의 메인모델이니까요.”
* * *
행사가 끝났지만, 태주는 여러 기자에게 붙잡혀 있었다.
X23의 메인모델이긴 하지만. 행사에 참석해 원도윤 본부장과 함께한 건 제법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메인모델, 그 이상의 위상을 보여주고 계시는데요. 오늘 단상에서 같이 프레젠테이션한 건 원도윤 본부장의 뜻이었습니까?”
“네, 맞습니다.”
태주가 차분히 대답했다.
“일전에 제가 드라마 현장에서 X23을 사용해 보기도 했고, 해당 제품의 메인모델인 만큼 오늘 런칭 행사를 도와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원도윤 본부장과는 불편한 사이 아니신가요?”
한 기자가 다소 무례한 질문을 이어갔다.
“뭐, 파혼했다고는 하지만. 일전에 원도윤 본부장과 약혼 관계였던 민소예 씨와….”
“그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태주의 단호한 말과 동시에, 옆에서 원도윤이 끼어들었다.
“저는 누구보다 한태주 씨를 아끼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요. 그러니까 그런 저속한 질문은 삼가시죠. 다음 행사에서도 기자님을 뵐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의 질문을 계속한다면 앞으로 행사에 초대하지 않겠다는 원도윤의 압박.
기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갔다.
태주가 고맙다는 듯 원도윤에게 눈짓하는 그때.
반가운 우성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태주 씨, 오늘 X23 메인모델로서 매끄럽게 프레젠테이션하시는 모습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윤수안 씨에게 프러포즈를 어떻게 하셨나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기자들이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녹음기를 태주에게 슬쩍 들이댔다.
사실은 다들 궁금해하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원도윤도 궁금한 듯 귀를 쫑긋거리는 그때.
태주가 씩 웃었다.
“그건 비밀입니다.”
* * *
그날 밤.
윤수안은 박인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태주가 박인우에게 그녀를 어떤 장소로 데려와달라고 부탁한 것.
그러나 눈치 빠른 윤수안은 진작에 무언가를 간파한 듯했다.
“인우 씨, 우리 서로 솔직해지죠. 태주가 무슨 이벤트 준비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인우 씨한테 부탁해서 나 거기로 데려가는 거고요.”
“아하하. 수안 씨, 그 날카로운 감은 여전하네요.”
“그래서, 오늘 뭐 하는 건데요?”
“그건 태주한테 직접 물어보시죠. 자, 다 왔습니다.”
박인우가 윤수안을 이끌고 간 곳은 간간이 무료 영화를 방영하는 오래된 한 극장이었다.
“여기서 태주가 무슨 영화라도 보여준대요?”
“일단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윤수안은 박인우의 말대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휴게실에서 만난 태주가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은은한 기대감이 그녀의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이때.
어두컴컴한 공간 속, 스크린에 빛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