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첫사랑 (1)
원스타 엔터테인먼트, 폴라리스 매니저 측에서 온 메일이었다.
며칠 후, 윤지호가 솔로 앨범으로 컴백한다고.
첫 방송에서 꼭 태주가 같이 피처링으로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고.
강성광의 곡이 타이틀곡이 되어 곧 세상에 나온다.
정말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제가 예전에 지호 형 타이틀곡에 피처링을 했었거든요. 나중에 음악방송을 한 번은 같이 나가기로 했었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봐요.”
“내레이션이면 녹음해서 보내주면 돼. 그럼 AR로 깔아서 음방 때 내보내면 되거든.”
“내레이션이 아니라, 후반부에 피처링으로 참여했어요. 한번 들어 보실래요?”
태주는 핸드폰으로 해당 곡 녹음파일을 들려주었다.
경쾌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가 차용석의 마음을 울렸다.
가장 인상적인 건 태주의 노래 실력이었다.
단순히 노래를 괜찮게 하는, 일반인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일전에 봤던 홍대에서 찍힌 버스킹 영상에서도 그랬고.
노래하는 모습이 진솔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노래보다는 얼굴이 돋보이는 그런 수준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잘하게 됐지?
차용석이 동그래진 눈으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너…… 보컬 학원이라도 다녔냐?”
“아니요, 그냥 혼자 연습한 거예요. 그래서 많이 부족해요.”
“아니야, 잘하는데?”
스케줄을 확인하던 차용석이 생각에 잠겼다.
“스케줄이 빠듯하네, 이제 곧 지방 촬영도 다녀야 하고 홍보도 다녀야 하고, 화보도……”
“만약에 녹화방송이라면요?”
태주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방송 출연하는 거,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거는…….”
무슨 말을 하려던 차용석이 입을 다물었다.
열정으로 가득 찬 태주의 얼굴이 제 나이처럼 보였기 때문.
자신의 배우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하고 싶다.
차용석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 * *
그날 오후.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원스타 엔터테인먼트에 방문했다.
익숙한 듯 로비를 통과하는 그를 본 차용석.
“너 여기 자주 왔나 보다.”
“아하하……. 노래 녹음할 때 가끔 왔었죠.”
“가끔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평소에는 윤지호의 개인 작업실로 갔지만, 오늘은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윤지호와 폴라리스 매니저가 앉아 있었다.
백금발로 염색한 윤지호를 태주가 이리저리 훑어봤다.
‘이런 이국적인 스타일을 소화하다니, 역시 아이돌이네.’
그런 태주를 보고 윤지호가 싱긋 웃었다.
“오랜만이네, 태주야. 이번에는 든든한 매니저와 함께 왔네.”
매니저들끼리 명함을 주고받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이번 주 금요일에 솔로 앨범으로 컴백하거든요. 타이틀곡에 태주가 피처링을 해 준 만큼, M 스테이션 첫 방송에 꼭 같이 출연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녹화방송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첫 방이니까 당연히 사전 녹화죠. 일단 일정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해당 스케줄을 본 태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새, 새벽 4시 녹화요?”
“안 그래도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원래 아이돌 사전 녹화는 일찍 시작해.”
태주에 반응에 차용석이 볼을 긁적이며 말한다.
“이건 일찍 정도가 아닌데요.”
‘아니, 새벽 4시에 녹화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야?’
자정에 일어난다 치고, 샵에 1시까지 갔다가, 2시에 나와서 방송국에 3시 도착.
‘피곤해서 제정신일 수는 있나?’
“설마 태주야,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건 아니지?”
윤지호가 태주의 손을 냉큼 잡았다.
옅은 쌍꺼풀 진 큰 눈이 간절하게 반짝였다.
“나랑 약속했잖아. 함께 무대에 서서 성광이 곡 노래하기로. 나는 너랑 꼭 같이 노래하고 싶어.”
태주는 마음을 다잡았다.
“할 거예요. 해야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며칠 후, 밤 11시 45분.
태주가 하품하며 나갈 채비를 했다.
퇴근해서 쉬고 있던 고모는 그를 걱정스러운 듯 배웅했다.
“세상에, 이 시간에 나가다니. 음악방송 사전 녹화라는 거, 이렇게 빨리 나가야 하는 거니? 새벽 4시라면서.”
“샵도 가야 하고 준비할 게 많아서요.”
“배고플 텐데, 고모가 싸준 고구마 먹으면서 해. 파이팅이다, 기 받아!”
고모가 건넨 장난스러운 파이팅에 태주는 씩 웃었다.
“파이팅 접수 완료!”
서둘러 집을 나선 태주는 곧바로 차용석과 함께 샵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런데 왠지 그를 치장하는 메이크업 스탭들의 손길이 평소보다 비장했다.
태주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태주 씨, 오늘 윤지호하고 같이 방송한다면서. 얼굴 천재 윤지호한테 밀리면 안 되지!”
“우리 태주가 잘 꾸미기만 하면 압살이라고?”
“블링블링하되, 고급스러운 멋도 놓치지 말자고.”
“제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니까, 그냥 괜찮은 정도로만 꾸며주셔도…….”
그런 태주의 말에 스탭들이 발끈했다.
“우리 사전에 적당히는 없어요!”
* * *
새벽 1시.
빛 하나 없이 깜깜한 새벽이었지만, Mcom 방송국 앞은 유독 붐볐다.
여기저기 익숙한 현수막들이 보였다.
‘폴라리스 윤지호’, ‘윤지호 솔로 앨범 컴백 축하’ 등등.
대포 카메라를 든 팬들이 목이 빠져라, 입구를 쳐다보았다.
“지호 오빠 언제 와?”
“이제 곧 오지 않을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 두 대가 나란히 입구에 멈춰 섰다.
먼저 내린 이는 백금발의 윤지호.
파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세련된 스타일링에 걸맞지 않게 그는 손에 고구마를 하나 쥐고 우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어머, 지호 오빠 역시 고구마 킬러!”
“저 조그마한 입으로 오물거리는 거 완전 귀여워.”
그런데 그는 앞으로 걸어오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곧 뒤의 차에서 내린 태주.
브이자 네크라인이 파인 하얀 셔츠에 살짝 찢어진 디트로이트 진을 입은 그는, 늘씬한 키가 돋보이는 자태가 꼭 모델 같았다.
곱상한 얼굴에 정성스레 공들인 스타일링이 아이돌처럼 빛났다.
자신을 정신없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태주는 얼굴을 붉혔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았다.
윤지호는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것도 연기연습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나중에 촬영할 때도 사람들 많이 몰릴 거 아냐.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해.”
“독립영화 시사회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은 못 봤어요. 형, 팬들 진짜로 많으시네요.”
“네 팬들도 여기 섞여 있을 거야.”
“에이, 저는 아직 팬 없어요.”
“커뮤에 한태주 갤러리 생긴 거면, 너도 팬들 있는 거 맞아.”
그 둘이 나란히 방송국으로 향하는 순간.
한태주를 빤히 바라보던 윤지호의 팬들이 드디어 눈치챘다.
“홍대 버스킹남 맞지? 한태주?”
“맞네, 맞아. 이선우 아역 한태주. 지호 오빠가 인스타에서 스포한 거 봤어. 이번 타이틀곡에 피처링으로 한태주 썼대.”
“한태주를? 흠…… 무튼 왜 이렇게 멋있어졌어? 홍대 버스킹 때는 얼굴만 잘생겼고 다른 건 평범했는데.”
“본판이 괜찮으니까 조금만 꾸며도 저리 빛나네.”
“오, 윤지호 옆에서 미모가 살아남네, 대박.”
이미 몇몇 사람들은 한태주의 직캠을 마구 찍어댔다.
“한태주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생긴 것도 진짜 잘생겼다.”
“그러니까. 연기파 배우로 밀어서 솔직히 외모는 별로인 줄 알았거든. 근데 진짜 청량하게 잘생겼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누봄, 한태주를 봐서라도 꼭 봐야겠다.”
* * *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은 재빨리 지나갔다.
Mcom 방송국에 마련된 윤지호의 대기실에 수많은 사람이 오갔다.
그에게 인사하러 온 후배들, 댄서들, 스타일리스트 등등.
하지만 태주는 그 혼잡함 속에서도 노래 연습하기에 바빴다.
이미 집에서도 수없이 연습했었던 파트였다.
“왜 이렇게 떨리지?”
그렇지만 음악방송 자체가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다.
예전에 피르마 영화제 시상식에서 동락이 왜 그리 긴장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동락에게 시상식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듯.
그에게 음악방송은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으니까.
계속해서 연습하던 그를 보던 윤지호.
“태주야, 목쉬겠다. 우리 차례 되려면 1시간 정도 남아 있으니까 좀 쉬어.”
[그래. 너 그러다가 목쉬면 무대 하다가 삑사리 날 수도 있다?]윤지호와 이중협의 경고를 동시에 받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결국, 밖으로 나가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밖에는 수많은 아이돌이 있었다.
몇몇은 지나가며 손을 스쳤고, 어떤 이들은 손을 잡고 복도 밖 계단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중협의 눈이 음흉해졌다.
[오호라, 이곳이 말로만 듣던 동물의 천국!]‘형, 어감이 좀 그렇잖아요!’
[알았어, 그럼 사랑의 천국으로 하자. 아무튼, 여기 연애하는 애들 은근히 많은 것 같다. 배우들의 비밀연애만큼 흥미진진한걸? 흐흐.]한편, 태주는 군데군데 피어나는 사랑의 기운에 그저 난감했다.
“혼자서 마음 좀 진정시키려 했는데. 이것 참…….”
태주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곧바로 대기실로 돌아가려 하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불렀다.
“태주 오빠?”
익숙한 목소리에 냉큼 뒤를 돌아보니 설채빈이 서 있었다.
새침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태주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이 따뜻했다.
긴 머리는 컬을 넣어 찰랑거렸고, 하늘색 플리스 스커트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게 매우 예뻤다.
그녀가 태주를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오빠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윤지호 형 솔로곡 피처링으로 왔어.”
“지호 오빠 솔로곡이요?”
그녀가 들고 있던 종이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이 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너는?”
“저, 여기 M 스테이션 엠씨 보고 있어요. 레이븐 승현 오빠랑 같이요. 근데 진짜 신기해요. 오빠를 여기서 만날 줄 몰랐는데.”
“아하, 엠씨가 너였구나. 그럼, 내가 이런 방송이 처음이라 그러는데, 혹시 조심해야 할 점 좀 알려줄 수 있어?”
“마이크하고 인이어 차실 텐데, 그때 피디분들이 지시하시는 거 잘 들으시면 돼요. 그리고…….”
태주에게 설명을 해주던 설채빈은 연신 그를 힐끔거렸다.
적잖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태주도 그녀를 만나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다.
한쪽 복도에 서서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 긴장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다.
설명을 끝까지 들은 태주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미 윤지호한테서 들은 것들이지만, 설채빈과 한 번 더 복기하니 안심이 됐다.
“고마워. 덕분에 안심하고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유심히 살피던 설채빈이 얼굴을 붉혔다.
저번 대본 리딩 때, 태주에게 특별히 고마웠던 그녀였다.
긴장해서 대본에 잘 녹아들지 못했을 때, 태주가 그녀의 감정을 잘 잡아줘서 무사히 연기할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도와줬듯, 이번에는 그녀가 그를 돕고 싶었다.
설채빈이 평소의 도도한 가면을 벗어던졌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오빠. 제가 기 넣어 드릴게요, 얍!”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