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88
88화
낭만 고양이 (6)
“아까 설채빈이 한 소리는 뭐야? 뭐가 싫지 않았다는 거야?”
“모르겠어요.”
태주의 집으로 가는 차 안.
차용석은 태주를 살피며 은근슬쩍 물었다.
“기사 내용은 전부 다 맞아? 배경 화면 설채빈으로 해 놓은 거랑 원스타 비상구 계단에서 밀회한 거?”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된 건데?”
“첫 번째, 배경 화면을 설채빈으로 해 놓은 건, 드라마 찍으면서 오강준의 감정에 몰입하기 위해서였어요. 두 번째, 비상구 계단에서 만났다는 건, 아역 3인방 드라마 OST 무대 연습할 때였어요. 당시에 채빈이가 기분이 상해서 혼자 앉아 있길래 데리러 간 건데, 밀회라니요. 그건 기자가 밀회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거죠.”
“둘이 무슨 딴 얘기는 안 했고?”
“형!”
언성이 높아진 태주에게 차용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해두려고 그래. 너도 알겠지만, 아웃패치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면 이런 기사를 내지 않아.”
“그럼 이번엔 잘못짚은 거겠죠. 게다가 CCTV 영상이랑 제 핸드폰 배경 화면 사진 확보한 것도 수상해요.”
“그러네.”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쪽을 파 봐야겠네.”
* * *
곧 태주의 집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차용석이 태주에게 연신 당부했다.
“내일은 그냥 집에 콕 틀어박혀 있어. 대본이나 시놉은 내가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알겠어요.”
“열애설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든 진화시켜 볼 테니까.”
“하……. 걱정하게 만들어 죄송해요. 핸드폰 배경 화면도 그렇고, 비상구 일도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네 탓이 아니야. 그 사진이나 영상을 몰래 유출한 사람들이 문제지.”
차용석은 듬직한 손을 태주의 손에 얹었다.
“너한테는 내가 있고, 회사가 있어. 회사가 왜 있겠니, 이럴 때 널 보호하려고 있지. 그러니까 오늘은 푹 자.”
그와 헤어진 태주는 터덜거리며 귀가했다.
“다녀왔습니다.”
“태주야!”
“오빠!”
거실에서 눈을 말똥거리며 앉아 있던 고모가 그에게 다가왔다.
“너, 설채빈하고 사귄다는 기사, 어떻게 된 거니?”
“고모는 그 말, 믿어요?”
“아니.”
태주의 시선에 고모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너 연애하는 건 개코 아니냐. 그런데 지난 몇 달간 너한테서 연애 냄새가 안 풍겼거든.”
“그럼 됐어요.”
피곤한 듯한 조카에게 고모는 더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태주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전, 다른 주제의 말을 꺼냈다.
“내일 오후에 엘사 데리고 와야 하는데, 혹시 시간 되니? 아, 아니다. 너 내일은 집에 콕 박혀 있어야겠다.”
“집에서 10분 거리니까 괜찮을 거예요. 제가 데려올게요.”
내일 스케줄이 없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태주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발랑 누웠다.
이중협이 그런 태주를 안쓰럽게 지켜보았다.
[으이그. 첫 번째 열애설이라고 여기저기 시달리는구만.]“형도 열애설 난 적 있어요?”
그때, 이중협이 염수정과 사귄 적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형, 염수정 선배님하고 사귀었다면서요. 염수정 선배님 같은 톱스타면 열애설 숨기기 어려웠을 거 같은데…….”
[수정이가 백시영하고 나기는 했었지.]“네……, 네?”
[그만큼 우리가 연애에 철저했다는 소리야.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사귀는 티 안 냈어. 오히려 내가 선배랍시고 걔한테 많이 잔소리했었지. 그래서 수정이가 많이 토라졌었지.]“왜요? 설마, 염수정 선배님이 먼저 그렇게 제안한 거예요?”
[아니, 내가 그렇게 하자고 했어.]기억을 더듬는 듯한 이중협이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후광이나 이름값 덕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배우 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다고. 뭐, 그거 때문에 수정이하고 많이 싸우긴 했지만.]그때, 옆에서 어미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태주에게 몸을 비볐다.
“아, 맞다. 내일 오후면 새끼 볼 수 있다고 좀 말해주세요.”
태주의 말을 이중협이 그대로 옮겼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미 고양이의 꼬리가 바짝 올라가 기역자로 꺾였다.
그리고 태주에게 또다시 비비는 시늉하며 그르릉, 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최고로 행복할 때 내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다 보니 온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하……. 모든 일이 다 잘 풀렸으면 좋겠다.”
[야-옹!]당연히 그럴 거라는 듯 어미 고양이가 크게 야옹거렸다.
확신에 찬 눈동자를 연신 반짝거리면서.
* * *
그날 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두 회사가 있었으니.
원스타 엔터테인먼트와 드림액터스다.
원스타에서는 설채빈이 매니저와 면담을 가지는 중이었다.
데뷔 2년 차. 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할 이 시기에, 특히 제 일에 열정적인 설채빈이 연애를 할 리 없다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확신이 깨져 버렸다.
아웃패치 측에서 푼 영상 때문이다.
비상구 계단에서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이에 원스타 측에서는 즉시 CCTV 영상을 확보해 정확한 진실을 판독하려 했으나, 불행히도 그 영상은 지워져 있었다.
아웃패치에 유출된 영상이 지금은 지워져 있다는 건, 회사의 누군가가 이 영상을 돈을 받고 판 게 분명했다.
매니저도, 설채빈도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누가 그 영상을 유출시켰을까?
회사 직원? 스태프? 로드 매니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구만.”
드라마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에서 설채빈은 윤수안 아역, 보다는 배우 설채빈으로서의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오늘 아닌 밤중에 난 열애설로 인해, 설채빈은 ‘한태주의 그녀’가 되어 버렸다.
걸그룹 블루밍의 매니저, 강 팀장은 설채빈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채빈이 네가 어떻게 이러냐. 응? 다른 애들이 몰래 사귈 때, 너만큼은 네 활동, 노래 연습에 집중한다면서 연애에 눈도 돌리지 않았었잖아.”
“그래서, 제가 잘못했다는 거예요?”
“잘한 건 아니지. 데뷔 2년 차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열애설이 나는 사람이 어딨어. 네가 한태주 얘기하며 얼굴 밝아질 때부터 의심해야 했는데. 솔직하게 말해 봐. 회사 비상구 계단에서 한태주하고 뭐 했어.”
설채빈이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찬 젖은 눈빛을 와락 들었다.
“태주 오빠가 저 위로해 줬어요. 제가 힘들었던 부분들, 다 위로해 줬다고요.”
그 말에 강 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힘든데? 그리고 그런 거 있으면 나한테 말했어야지. 내가 네 매니저잖아.”
“제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요. 서우가 죽었다고,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매번 저한테 그러셨죠. 왜 죽은 애 가지고 그렇게 힘들어하냐, 멘탈 관리 잘해라.”
“서우가 누군데?”
“네? 서우가 누구냐고요? 저희 그룹 데뷔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져 퇴출당했다가 교통사고로……”
“아, 신서우!”
그제야 생각난 듯 강 팀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너도 어지간하다. 네가 걔랑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왜 아직까지 걜 생각해. 쓸데없는 짓 할 시간에 자기 계발을 더……”
“늘 이런 식이잖아요, 항상.”
눈시울이 붉어진 설채빈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곧았다.
“이러니까 제가 태주 오빠한테 기댔던 거예요. 제가 힘들어하는 걸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이니까.”
* * *
다음날.
태주가 캡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무장하고는 이중협에게 컨펌을 받았다.
“형, 얼굴 완전히 가려졌죠?”
[야, 퍼펙트야. 목소리만 안 내면 되겠어.]태주는 고양이 캐리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곁에서 어미 고양이가 제 새끼를 본다는 기쁨에 살랑거렸다.
그 감정이 오롯이 태주에게 전해져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누군가 길가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지나가던 아기 엄마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여기 한태주 살죠? 보통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
“모르겠는데요. 누구세요?”
“현우 엄마,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여자들이 애들을 데리고 재빨리 차로 이동했다.
아쉬움이 가득한 기자가 입맛을 다셨다.
“분명 여기에 산다고 했는데…….”
[저 남자, 누군지 내가 보고 올게.]그쪽으로 훌쩍 날아갔다 온 이중협이 말했다.
[야, 조삼식이야. 아웃패치 조삼식. 저 인간 이제 집까지 찾아온 거야?]‘하……. 도대체 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러게. 저 정도면 기자가 아니라 스토커지.]태주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미 고양이가 따라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어미 고양이는 조삼식의 몸을 잔뜩 킁킁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중협에게 와서는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고양이의 말을 듣던 이중협이 화들짝 놀라며 태주에게 말했다.
[저 사람한테서 설채빈 매니저 냄새가 난다는데? 나도 혼의 냄새를 맡긴 했는데, 워낙 옅어 긴가민가했거든. 역시 고양이 후각이 나보다 낫다니까.]‘누구요?’
[드라마 종방연에서 설채빈 데려간 로드 매니저. 조삼식한테서 그 사람 냄새가 난다는 건, 둘이 접촉을 했다는 거지.]태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삼식한테서 설채빈 매니저 냄새가 난다고요? 방금 인터뷰라도 따고 왔나?’
[그건 아닌 것 같아. 아직 회사 간에 정해진 게 없는데, 만났을 리가 없지.]이중협이 냉철하게 이 상황을 분석했다.
‘그런데 잠깐만요. 고양이가 맡았다는 냄새,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착각한 걸 수도 있잖아요.’
태주는 옆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어미 고양이를 가리켰다.
이중협이 고양이의 머리를 신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양이는 특히나 영험한 동물이지. 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깊은 곳까지 보고, 이 코로는 사람이 맡을 수 없는 냄새까지 맡는. 아무튼, 믿어도 좋아.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거냐?]‘일단 좀 숨고요.’
주변을 샅샅이 살피는 기자를 피해 태주가 덤불 뒤로 숨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저만 당할 수는 없죠. 증거를 남겨야겠어요. 그러니까 형이 주위 좀 끌어 주세요.’
[그래! 대장 귀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 볼게!]이중협이 즐거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뭘 해 줄까……. 그래, 이게 좋겠군.]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이중협이 나무 위로 냉큼 올라갔다.
얼마 후, 조삼식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씨, 웬 송충이야! 씨발, 씨발, 씨발!”
히스테릭하게 머리를 털던 그는 패닉에 빠진 듯했다.
잎이 무성한 덤불에 숨어있던 태주.
그 틈을 타 핸드폰으로 조삼식을 몰래 찍었다.
얼굴을 확대해서 최대한 잘 나오게.
그리고는 홍은지에게 사진을 첨부해 메시지를 보냈다.
-조삼식이 저희 아파트까지 와서 절 스토킹해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