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Story Club RAW novel - Chapter (129)
막간 – 박강운 형사 (1)
[2019년 5월 5일 일요일, 16:32] [이준 – 2회 차] [괴담 포인트 : 242] [인과율 : 20%]“잠시 집 앞에서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또? 이번에는 늦기 전에 들어와.”
“진짜 잠시 만나고 오는 거예요.”
외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파 트 단지 입구에서 부모님과 헤어졌다.
형사님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향 했다.
‘집 앞 스타벅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 시간대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무슨 일로 날 불러낸 것인지, 내가 했던 어떤 행동이 그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인지.
살짝 긴장하며 카페의 유리문을 열었다.
“어, 여기.”
세련된 스타벅스 매장 안.
도시의 남녀들이 어울릴 법한 그곳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은, 곰 같은 남자가 나를 보며 손을 올린다.
베이직 코트에 스포츠머리, 까칠까 칠한 턱수염.
하드보일드 탐정물에나 나올 법한 중후한 분위기, 나의 조력자인 박강 운 형사님이다.
“안녕하세요.”
“어. 커피 하나 시키고 와.”
“네.”
카운터로 가서 내가 마실 음료를 골라 보았다.
카페라는 곳은 아무래도 여자애들 이 오거나, 아니면 여자 친구가 있는 애들이 오는 공간.
남중 남고 출신에 모태 솔로인 내 게 이런 곳은 생소할 따름이다.
‘종류가 뭐 이렇게 많아.’
[화이트 초콜릿 모카 프라푸치노] 라는 맛있어 보이는 이름의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았다.
다시 자리로 오니 형사님께서는 테 이블 위에 서류들을 올려놓고는 읽고 계셨다.
“잘 지냈냐.”
“뭐, 그럭저럭요.”
“부산에는 잘 갔다 왔고?”
“왜 갔어?”
여전히 시선은 서류를 향한 채 넌 지시 물어보시는 형사님.
나는 잠깐 긴장했지만, 어차피 오 늘 저녁 뉴스에서 속보로 대서특필 될 내용이었기에 순순히 말씀드렸다.
“강서구 마늘밭에서 범죄자가 묻어 놓은 돈다발이 있거든요.”
“잠시 뒤 포크레인 기사가 발견할 건데 제가 미리 가서 좀 챙겨 왔어 요.”
그제야 서류에서 눈을 떼 나를 흘 긋 보시더니 후, 하고 한숨을 뱉으시는 형사님.
“그래, 잘했다.”
“안 들키게 잘 숨겨 놨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앞에서는 왠지 긴장하게 된다.
첫 만남 땐 연습생 실종 사건의 최초 제보•자, 그다음엔 눈앞에서 선 생을 죽였는가 하면.
일을 잘못 해결해 서울역 묻지 마 칼부림을 만들었고, 지금은 범죄자의 돈을 훔쳐 온 입장.
‘대체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 하는 걸까.’
나에게 닥친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 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들이었다고 해도 떳떳하고 자랑할 건 아니다.
‘특히 형사 앞에서는.’
왠지 켕기는 게 많아 움츠러드는 나.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KTX 240번 열차, 거기서 집단 패닉 사건 이 일어났던데. CCTV에 찍힌 승객들 얼굴 중에는 네가 있었고.”
“•••괴담이었어요. 제가 잘 해결했습니다.”
“그랬니?”
서류 뭉치를 내려놓으시고는 나를 살피듯 위아래로 훑어보시는 형사 님.
“별로 잘 해결된 것 같지는 않던 데. 옷 벗고 난동을 부린 승객이 한 두 명이 아니었어. 서로 성추행으로 고소한다느니 뭐니 소란도 많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세요.”
또다시 나를 추궁하려 드는 형사의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그걸 제가 일으킨 것도 아니고, 저도 휘말린 입장에서 해결해 주고 온 것밖에 없어요.”
멈칫하더니 무표정으로 내 눈을 보신다.
‘어쩔 건데.’
나도 짜증이 나서 인상을 팍, 쓰고는 노려봤다.
부원들을 대할 때는 푸근한 아저씨 같은 모습이더니, 유독 나를 대할 때만 항상 추궁하는 모습.
한두 번도 아니고, 나는 세상을 구 하기 위해 내 할 일을 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 매번 수상하다는 듯이 캐물으면 울컥할 수밖에 없다.
비록 회귀했지만 과거에도 졸업은 못 했었기에 나는 아직 학생이다.
부원들한테는 사근사근 잘해 주면서 나한테만 어른 대하듯 추궁하는 건 억울하다.
무표정의 형사, 그리고 할 말 있냐는 듯 노려보는 나.
위잉-
순간 음료가 나왔음을 알리는 진동 벨이 울렸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 터로 음료를 받으러 갔다.
“주문하신 프라푸치노 나왔습니다. 빨대는 앞에서 챙겨 가시면 되세요.”
음료를 가지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 니, 형사님께서는 테이블을 내려다 보고 계셨다.
놓여 있는 서류를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테이블 무늬 어딘가를.
“•••화났냐?”
자리에 앉으며 음료를 탁, 소리 나 게 내려놓고 쳐다보니, 형사님은 의외로 머쓱한 얼굴이었다.
“내 말투가 좀 그랬지.”
“그냥 좀 짜증 나서요.”
“…미안하다, 인마.”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커다란 손을 뻗더니, 내 어깨를 턱턱 두드리시는 형사님.
간단한 제스처인데도 곰 같은 덩치에 밀려 손에 든 음료 잔이 마구 흔들린다.
걸쭉한 프라푸치노가 아닌 일반 커 피였다면 퍽, 하고 넘쳐 튀었을 것 이다.
“직업병이라서 그래. 사과할 테니 네가 이해해라.”
“.•.아, 예.”
엇나가는 내 말투에 형사님이 머리를 한 번 긁적이신다.
“오해는 하지 마라, 나는 널 굉장 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깐.”
그렇게 말하고 아이스커피를 들이 켜시는 형사님.
나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그것 때문에 부른 거예요? 부산 간 거?”
“아니, 원래 만나기로 약속했잖냐. 저번에 서울역 앞에서.”
“아, 맞다.”
김은정 사건이 끝난 후 서울역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
형사님은 쉬는 날 만나서 차근차근 얘기를 나눠 보자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원래 내일 불러내려 했는데, KTX 사건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하루 일 찍 불러냈다. 어차피 안 바쁘지?”
“네, 시간 많아요.”
서로 자세를 고치고 본론으로 들어 갈 준비를 했다.
“그 KTX 집단 패닉. 제가 뭐 엮 일 만한 건 없었죠? 그냥 형사님이 저를 발견하시고 괜히 생각이 닿아서 그러신 거죠?”
“그래. 그냥 플랫폼 CCTV에서 내린 승객들을 쭉 훑어보던 중 너를 발견하고 불러 본 거다. 실제로는 나 말고 너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 승객이 한두 명도 아닌 데다, 네가 앉았던 객실은 소란이 있었던 객실과 몇 칸이나 떨어져 있고, 넌 딱 봐도 학생이니깐.”
“ 역시.”
나는 왠지 해냈다는 쾌감에 손가락을 딱, 부딪쳤다.
이번 돈 가방 사건은 경찰들도 몰 랐을 정도로 완전 범죄를 해낸 것이다.
“형사님은 그런 이상한 종류의 사건에 자주 불려 다니시는가 보네요. 지금 말씀드리는 건데, 사실 형사님은 전생에서도 저를 찾아오셨었어 요.”
“음? 언제?”
“낙성고 300인 머리 폭발 사건 때 요.”
이번 생에서는 내가 괴담의 이야기 구조를 파악하고 움직이지 않았기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허허••••••
남은 커피를 다 넘기시고는 웃으시는 형사님.
“확실히 그런 사건이라면 당연히 내가 출동했겠구먼. 근데 그런 이야 기는 좀 이따 하고, 그래서 얼마나 가져갔는데?”
넌지시 물어보는 말투에 나는 프라 푸치노를 빨며 두리뭉실하게 말씀드 렸다.
“3년 동안 동아리 회비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요. 그래 봐야 마늘밭에 묻힌 금액의 10분의 1도 안 돼요.”
“흠, 한 천만 원쯤 가져갔냐.”
“그건 오늘 저녁 뉴스를 보시면 알 게 될 거예요.”
아마 지금쯤이면 포크레인 기사가 막 밭에 묻힌 항아리들을 발견했을 거다.
그리고 그 금액이 100억 원이 넘는다는 건, 내 눈앞의 산전수전 다 겪은 형사님도 상상조차 못 하실 이 야기고.
‘그래서 한 1억 원이 묻혀 있고 천 만 원쯤 가져갔나 하시는 거군.’
“어쨌든 그 돈은 어차피 국고로 환 수될 돈이에요. 정치인이 쓰는 것보다는 제가 쓰는 게 나아요.”
“당연하단 듯이 얘기하는구나.”
“상식이 있으면 당연한 거죠.” 나는 일부러 형사님께 더 당당하게 나섰다.
“그 돈이 원래 어디 쓰일 돈일지는 몰라도, 결국 세상이 멸망하면 뭐 해요? 다 소용없는 일이잖아요.”
끄응, 하시는 듯한 형사님.
“세상을 지키는 비용으로 쓰려고 제가 가져온 거고, 기차 안의 소란은 갑자기 발생했던 괴담으로 제가 해결한 거니 그 얘기들은 여기서 끝, 딱 매듭짓고 갑시다.”
“•••그럴까.”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는 형사님.
여기서 딱 깔끔하게 매듭짓기로 약 속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오늘 저 녁 뉴스를 본 형사님께서 전화를 하시겠지.
10억이나 가져갔다고, 학생이 위험 한 돈에 너무 크게 손을 댔다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알겠죠?”
“뭐, 알겠다. 네가 세상을 지키는 데 쓰겠다니깐.”
형사님께서 졌다는 듯 두 손을 드신다.
“하지만 돈 생겼다고 이상한 짓 하고 그러면 안 된다. 내가 항상 너 지켜보고 있어.”
형사님이 겁주시려는 듯 고개를 가까이 기울이신다.
“내가 큰돈 손에 넣고 정신 이상해 진 사람 본 게 한둘이 아니거든.”
되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듯이 낮은 음색으로 으름장을 놓으신다.
“로또 당첨되고 흥청망청 지내다 타락한 사람들 얘기 들어 봤지? 없을 때는 착해 보여도 돈 생기면 미쳐 버리는 게 사람 심리다. 조심해.”
“…저 애 아니에요. 로또 당첨되고 망했다는 얘기. 그거 괴담이잖아요.”
로또에 당첨된 대부분이 흥청망청 돈을 쓰다가 몇 년도 안 돼서 다 탕진해 버리고 폐인처럼 지낸다는 괴담.
실제로 인터넷에 그런 류의 기사가 굉장히 많은데, 사실 현실은 정반대다.
기자들이 자극적인 뉴스만 찾다 보니 조용히 잘 사는 사람들의 케이스는 재미가 없어서 기사화 안 되는 것뿐, 대부분은 빚 갚고 집 장만 후 건물주가 되어서 소일거리 하며 평안하게 사는 중이었다.
“•••크흠. 알고 있었구나. 그럼 다른 예시.”
형사님이 머쓱한 듯 괜히 커피잔을 손으로 한 번 쥐었다 놓더니, 다른 얘기를 들려 주신다.
“군대까지 기다려 준 여자 친구를 공무원 합격 후 헤어지자는 남자 놈 얘기 들어 봤냐?”
“네, 그건… 몇 번 들어 본 것 같네요.”
“그런 쪼그마한 성취에도 사람 심리가 휙, 뒤틀리는 게 다반사야. 고생 끝, 행복 시작. 자기 이제 잘났다는 생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지.”
“•••그런가요?”
“20년간 헬스트레이너를 하던 사람 얘기는? 들어 봤어? 보디빌딩 대회에서 상도 탈 정도로 운동에 열정 있던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비만 회원에게 보여 주려고 자기도 살찐 후 같은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해 보기로 결심한 거야. 살 빼는 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다 정신력이 약한 거라고.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알 아?”
형사님이 얼음 몇 개를 씹으시고는 탁 소리 나게 유리잔을 내려놓으신다.
“살찌고 완전히 운동에 흥미를 잃 더니 지금은 요식업 장사하고 있어. 자기야 맨날 근육 펌핑된 운동남 관성 그대로 살아왔다 보니 비만에서 탈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몰랐던 거지. 마약의 금단 증상을 연구하겠다며 직접 자신에게 약을 투여했던 외국의 연구원은 뭐 하고 있는지 알아? 중독자 돼서 약 구하려고 사창가에서 몸 팔면서 생활하고 있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의문이라는 표정으로 형사님을 쳐다보았다.
“결론은 말이다.”
허리를 펴시는 형사님.
“웬만하면 너 하던 관성대로 평범 하게 살아가라는 거다. 만약에 마왕을 무찌르는 법을 어떤 사람이 알고
있다고 치자. 근데 그 정보가 그 사람을 죽여야만 나와. 그럼 너는 그 사람을 죽일 거야?”
“•••필요하다면요.”
내키지는 않지만, 마왕이라는 궁극 적인 목표에 관련된 거라면… 아마 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리면 되니깐.
“나는 지금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쭉 하던 중이었는데••••••
형사님께서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나를 쳐다보신다.
“네가 그렇게 정의감이 강한 성격 이 아닌 건 알아. 외향적인 성향이 전혀 아닌데도 동아리의 부장을 자 처해 가며 죽으며 싸우는 것도, 사실 너 하나 살기 위해 그러는 짓인 지도 잘 알고 있고.”
“•••정확하시네요.”
“그러니깐 하지 말라는 거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그 태도는 좋지만, 그래도 사람은 죽이지 마. 해치 지도 말고. 이번 돈 가방은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이 이상 범죄와 관련된 일에는 일절 손대지 않는 게 좋아. 너를 위해서 하는 조언이다.”
“굳이 남의 돈을 훔치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결말에 도 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 뭣보다 너한테는 시간을 돌리는 그 능력이 있지 않냐. 그거만 잘 쓰면 굳이 잔인한 짓을 하지 않더라 도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글쎄요……
“알겠어? 나쁜 짓은 하지 마라.”
형사님이 두터운 손가락을 내미시며 약속하자는 듯 엄지와 약지를 세 우신다.
“마왕이 부활하는 2022년 2월 졸 업식, 그 이후에도 네 인생은 이어 진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너야.
손에 피를 묻힌 채로 어른이 돼 봤 자 행복하지 않을 거다, 장담하지.”
“알겠지? 나쁜 짓은 하지 마.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 일로 나 자신이 어떻게 변해 버릴지 장담할 수 없으니깐, 이라는 걸까.
약속하자는 듯 손을 내미신 채로 가만히 나를 기다리시는 형사님.
나는 물끄러미 그 두터운 손을 바 라보았다.
‘그런 뜻이구나.’
처음엔 그냥 형사니깐 착하게 살라는 얘기를 하시는 건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나 스스로도 여태껏 어느 정도 고민하고 있던 사실이다.
‘육체가 죽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지만, 만약 내 정신이 죽어 버린다 면?’
정신이 죽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는 것부 터, 트라우마에 빠져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에 시달리게 되는 것까지.
그중 내가 마왕을 무찌른답시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으며 행동하는 건 어떨까?
시간이 돌아간다고 사람 죽이는 걸 우습게 알며, 되는 대로 피를 묻히고, 조금이라도 일이 꼬이면 바로 창문으로 달려가 유리를 깨부수고 몸을 던져 신나게 자살해 가던 내가.
2022년 2월, 졸업식 이후로 제대로 된 어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형사님이 내민 두터운 손에 내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약속할게요. 나쁜 짓은 하지 않기 로.” “그래.” 따뜻하게 엮은 손을 몇 번 흔드시 더니, 이내 여태껏 신경 쓰였던 서류들을 이쪽으로 쭉 미시는 형사님.
“그럼 말해주마. 내가 어떤 사람 인지.”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