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69
짙은 꿈.
현실과 몽상의 경계에 걸쳐선 느린 환상이 자신의 머릿속에 펼쳐진다.
흐릿하게 작용하는 시야속에서, 나는 두번째로 마주하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양산을 들고 있는 검은머리의 소녀.
신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소녀는 지난번에 내 꿈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존재였다.
나를 마주한 에스텔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두번째로 만나는구나.”
“그러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골목속에 나와 에스텔 두 사람만이 남아있다.
지난번의 꿈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각몽이라고 한다면, 그때처럼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테이블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와 에스텔의 사이에 상상하던 그대로의 테이블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에스텔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으며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안부를 묻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나는 내 앞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잘 지냈냐고? 그야 뭐 적당히…….”
“그렇구나.”
“그런데 질문을 꺼내려면 게임에서 이겨야하던거 아니었어?”
에스텔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전의 꿈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지난번에는 에스텔의 이름을 듣기 위해 포커 경기를 치뤄야만 했다.
결국에는 내가 패를 조작해 이겼지만 말이다.
내 질문에 에스텔은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리고는 그늘을 만들던 양산을 아래로 내려,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건 가치가 있는 질문에 한해서야.”
“단순히 이름을 묻는 질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나?”
“이름에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음… 그렇게 듣고 보니, 나름 중요한 질문같기도 한데.”
사람의 이름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확실히 그런식의 질문을 받으면 어려운 내용이기는 했다.
이름을 알려주는 것에 무게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름 그 자체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사람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서로의 이름과 역할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름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에스텔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에스텔은 그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듯이, 뒤에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여왔다.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질문이야.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거든.”
에스텔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하기야, 내 꿈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을 어디의 누가 알고 있겠는가.
기껏해야 나만이 아는 내용일 것이다.
그 사실에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단 말이지.”
“응.”
“역시 이번에도 물어보려면 게임을 해야하는 모양이네.”
“물론이야.”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해야한다.
그것이 꿈속의 에스텔이 이야기하는 규칙이었다.
그 규칙에 부합하지 않은 질문은, 에스텔이 나에게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꿈속에서라면 시간도 충분하겠다, 그녀의 부탁에 어울려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에스텔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게임이 하고 싶은데?”
“게임정도는 네가 정하게 해주는게 공정하지 않을까.”
“……이길 자신이 있나봐?”
“나름 게임은 잘하는 편이거든.”
게임에도 자신이 있다라.
에스텔의 말을 듣고 있으면, 왠지 실력이 중요한 게임은 해선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와는 반대로 나는 게임에 그리 능숙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좋아하는 게임이야 시간을 들여서 오래 플레이하고 있을 뿐이다.
에스텔과 눈을 마주하고 있던 내 머릿속에 몇가지 게임이 스쳐지나갔다.
대부분은 운과 관련된 게임이었다.
“좋아. 간단한 게임으로 가자.”
운이 연관된 게임이라면 실력때문에 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운이 없어서 지는거야 어쩔 수 없을테지만 말이다.
내 말을 들은 에스텔이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떤 게임인데?”
“동전 던지기.”
“말 그대로 간단한 게임이네.”
“간단해서 좋지. 이거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허공에 뻗은 손가락에 은색의 동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앞과 뒤에 마킹이 되어있는 동전이었다.
동전을 만들어낸 나는 바닥에 동전을 내려놓으며 에스텔에게 말했다.
“어느쪽으로 할거야?”
그녀에게 앞면이나 뒷면 중 하나를 고르라는 이야기였다.
동전을 주워든 에스텔이 잠시동안 동전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손에 든 동전을 가볍게 던지고 낚아채더니, 이내 그것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뒷면.”
“뒷면으로 하겠다고?”
“응. 뒷면으로 할게.”
“그럼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는거겠네.”
에스텔이 뒷면. 내가 앞면으로 결정되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는 상황이었다.
배팅이 끝났으니 이제 동전을 던져볼 차례였다.
나는 에스텔에게 받아든 동전을 손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동전을 위로 던져, 떨어지는 동전을 손등에 올리고 덮었다.
툭.
덮인 동전을 바라본 에스텔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겼네.”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니까.”
에스텔의 말에 나는 동전을 덮은 손을 살짝 옆으로 치워보였다.
손등의 위에 그림자로 뒤덮힌 동전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치운 자리에 나타난 동전은 에스텔의 말대로 뒷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동전 던지기 단판승부에서 내가 패배한 것이다.
“……진짜였네.”
“내가 이겼지?”
“알았어. 하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봐.”
나는 들고 있던 동전을 손바닥에 움켜쥐고서, 의자에 기대어 누우면서 말했다.
약속대로 질문에 대답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질문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승부에서 패배한 내가 바로 승복하자, 칠흑의 눈동자가 내 모습을 비추었다.
“그럼 질문할게?”
“그래.”
“나쁜 짓은 좋아해?”
승부에서 이긴 에스텔이 꺼낸 질문은 짧고도 간단한 질문이었다.
나쁜 짓은 좋아하느냐.
학창시절 도덕시간에나 들어봤을만한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꿈속이니만큼 대답을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그대로 그녀에게 전했다.
“가끔씩은?”
“가끔씩?”
“그래도 너무 심한짓은 내키지 않는 편이지만 말이야.”
내 인성이야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가끔은 도덕적이고, 가끔은 달관하며, 또 가끔은 악의에 젖어들고는 한다.
누가봐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 내 대답을 들은 에스텔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나쁜 짓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 네 취향이야 그럴 수도 있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의 취향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그녀의 말에 적당히 수긍했다.
눈앞에 있는 에스텔이라면 충분히 그런 농담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하고 있어.”
“……뭐?”
마지막에 들은 한마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의문투성이의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꿈속에서 깨어났다.
창문이 열린 여름의 하늘.
매미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 한낯의 풍경 아래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잠에서 깨어난 내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숨을 몰아쉬던 나는 땀에 젖은 채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현실감이 넘치는 꿈이다.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손바닥만이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 * * * * *
주위를 경계하면서 길을 움직이던 세레나가 용병단을 발견한 것은 해질녘의 일이었다.
힘겨운 비탈길을 벗어난 그녀가 길의 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용병단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길에 주저앉아 육포를 뜯고 있었다.
지팡이를 끌어안은 마법사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노련한 모습의 용병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용병무리의 끝에는 익숙한 얼굴을 가진 남자 하나가 앉아있었다.
길포드 플라우드.
세레나가 계시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용병의 모습이었다.
“당신은…….”
길을 지나가던 세레나는 발을 멈춰세우고 길포드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용병은 세레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그를 찾아 계속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지 않던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아스칼론은 그녀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세레나와 리안이 자리에 멈춰서자, 육포를 먹던 길포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올린 용병의 호쾌한 얼굴이 그의 성격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
세레나와 길포드의 시선이 마주했다.
신전을 피해 도망치던 영웅.
그리고 그런 영웅을 찾아헤매던 성녀.
두 사람의 기묘한 만남이 여기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세레나가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자를 베어먹던 가프가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거기 아가씨! 우리 단장이 좀 인기가 많거든! 조금 더 크고나서 다시 도전하는 편이 좋을거야!”
감자를 든 가프의 이야기에 세레나와 길포드의 시선이 동시에 가프에게로 향했다.
가프의 목소리에 자극을 받은 것은 세레나의 뒤에 서있던 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안은 가프의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망토를 펄럭이며 세레나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매여진 백색의 성검을 붙잡고서 가프를 향해 말했다.
“닥쳐라, 용병. 감히 누구 앞에서 무례하게 구는거지?”
“……지금 뭐라고 했냐?”
“닥치라고 말했을텐데. 너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분이 아니시다.”
리안의 싸늘한 눈빛이 가프를 바라보았다.
리안의 경고를 들은 가프가 근처에 놓여있던 도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는 감자는 순식간에 입안에 전부 우겨넣은 모습이었다.
도끼를 들고 일어난 가프는 손에 든 도끼를 질질끌며 리안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기기기기기긱.
도끼를 끌고 온 가프가 리안의 앞에 서자, 리안과 가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리안의 뒤에 있던 세레나가 한숨을 쉬며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기사처럼 보이는데, 도끼에 맞고도 네놈 머리통이 멀쩡할 것 같아보이냐?”
“말투마저도 천박하군. 용병이라는 직업과 제법 잘 어울리는 모습이야.”
“아무래도 우리 기사님의 머리가 단단히 망가진 것 같은데! 내가 도끼로 직접 고쳐줘야겠어!”
리안과 가프사이에 살벌한 시선이 오고간다.
도끼를 쥔 가프의 팔뚝에는 굵직한 핏줄이 솟아오른 채였다.
기사와 용병.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두 존재가 살의를 가지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성검을 뽑으려고 하는 리안의 모습에 세레나가 걱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적당한 수준에서 해결해.”
“알겠습니다.”
영웅을 데려가려고 찾아온 자리에서, 그의 동료를 죽여서야 문제가 커질 뿐이다.
검을 뽑아든 김에 적당한 수준에서 상황을 유도하라는 이야기였다.
세레나의 경고를 받은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릉.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리안의 허리춤에서 백색의 성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하얀 빛을 띄는 성검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를 마주하던 가프가 먼저 도끼를 휘둘러왔다.
“네놈 머리를 두개로 나누어주마!”
쉬이이이익——!
가프의 묵직한 양날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리안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공성과 함께 쇄도하는 도끼.
리안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도끼를 포착하고서 움직였다.
카가각!
백색의 성검이 앞으로 뻗어나가며 가프의 도끼를 옆으로 흘려내었다.
이상한 궤도로 비틀어진 도끼의 모습에 가프의 눈이 크게 떠졌다.
“……!”
도끼가 흐트러지며 가프가 빈틈을 보인 찰나.
그 틈을 노리고서 리안의 성검이 움직였다.
푸욱.
도끼를 든 가프의 어깨를 백색의 성검이 찔러들어갔다.
성검이 틀어박히며 가프의 얼굴이 당황의 기색으로 물들었다.
“실력도 천박하군.”
어깨에 찌른 성검을 뽑아낸 리안은 곧바로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성검이 뽑혀나온 자리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어깨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가프가 비명을 지르며 상처를 틀어막았다.
투웅!
가프의 손에서 떨어진 묵직한 도끼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아아악……!”
“아가씨의 명예를 더럽힌 책임을 질 각오는 되어있나?”
전투는 순식간에 끝을 맺었다.
일개 용병의 실력으로는 성기사단의 부단장과 대적하기 어려웠다.
리안은 승자의 권리를 취하기 위해, 도끼를 놓친 가프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성검의 모습에 가프는 입술을 깨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명예를 운운하는 기사를 상대로 결투에서 진 대가는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길포드를 흘겨보던 리안은 성검을 움직여 가프의 목을 내려치기 위한 동작을 취했다.
그 모습에 두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길포드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
호탕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사람들의 이목이 이번에는 길포드에게로 향했다.
길포드는 먹고 있던 육포를 내동댕이치고서, 무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선 길포드의 시선이 리안을 응시했다.
길포드의 시선을 받은 리안은 코웃음을 치며 그를 향해 이야기했다.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가프의 무례는 내가 사과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길포드가 세레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리안이 세레나의 명예에 대해 주장한만큼, 당사자인 그녀에게 직접 사과를 전한 것이다.
허나 리안은 그런 길포드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있던 검을 가프의 살갗에 가져다대었다.
검이 닿은 자리에 실선과 함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과? 이 녀석의 목숨은 그것밖에 안되는 모양이군.”
“그럼 대체 뭘 원하는거지?”
“이 녀석을 걸고 결투를 하지.”
“결투……?”
결투.
뜻밖의 이야기였는지 길포드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들의 노림수였다.
일을 크게 만들어 길포드가 가진 선택지를 줄이려는 것이다.
리안은 성검으로 가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길포드를 향해 준비해둔 제안을 꺼냈다.
“나와 결투를 벌여 네가 이긴다면 아무런 조건없이 이 녀석을 살려주겠다.”
“지면 가프를 죽이겠다는 말인가?”
“네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조건이지?”
이기면 가프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지더라도 가프를 살릴 방법이 있다.
너무나도 좋은 제안에 길포드가 의문어린 시선으로 리안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런 길포드를 향해 리안은 자신의 조건을 이야기했다.
“결투에서 지면 얌전히 성지로 돌아와라. 풍요의 영웅, 길포드 플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