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0
약점 극복하기
치킨이 나오고 나서야 나에게 쏟아지던 질문 세례가 멈췄다.
초록 형 말대로 양념 맛이 절묘해서 입맛을 당겼다.
양념이 흠뻑 발려있는데도 튀김옷이 하나도 눅눅하지 않았다.
얇은 튀김옷 안에는 촉촉한 육즙이 가둬져 있다가 씹을 때마다 새어 나와 혀를 적셨다.
여기도 맛집 리스트에 추가해야지.
대식가라던 초록 형은 자기 앞에 커다란 바구니를 두고 그 안에 담긴 치킨을 해치우고 있었다.
아예 초록 형의 몫으로 따로 나온 것 같았다. 단골 인증이네.
입에 들어갔다 나오면 뼈만 발라져 나오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먹느라 바쁜 초록 형 대신 서혼 형에게 물었다.
“서혼 형, 어떻게 이런 조합으로 같이 다니게 됐는지 물어도 돼?”
“우리가 제일 늦게까지 연습하거든. 퇴근하는 시간이 비슷하다 보니 같이 야식 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저절로 친해졌어.”
“이원도 기본 course 끝나면 우리랑 같이 연습해.”
“고독한 천재 이원 형은 5년 차 연습생 선배인 나만 따라오면 돼!”
나이로는 막내인 박하가 5년 차 연습생이구나.
하눌 엔터의 첫 남돌 SEED가 4년 전 데뷔했고, 그때 박하, 박하준의 나이가 13살이니 데뷔하기엔 어린 편이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꿈을 정해서 노력하다니. 대단하게 느껴졌다.
데뷔는 아직 먼 이야기겠지만. 이런 멤버들이라면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 * *
트레이너 선생님들의 과분한 칭찬 속에서 기본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심화 과정엔 댄스, 보컬뿐만이 외국어, 악기, 작사·작곡, 연기 등의 트레이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댄스, 보컬이나 랩은 필수고 나머지는 연습생의 선택에 따라 넣고 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상담을 통해 시간표가 나오고 그대로 연습하는 방식이었다.
영어 회화는 문제없고, 악기는 넘어가고, 연기는 미뤄두기로 했다.
작사·작곡 코스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보컬과 댄스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려놓는 것이 급선무였다.
보컬은 미세한 어긋남만 조절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칭찬을 들었으니 자신 있었다.
내 최우선 과제는 댄스.
구원자는 바로 곁에 있었다.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초록 형은 거의 모든 종류의 춤에 능통하다고 했다. 그리고 박하는 스트릿 댄스가 특기라고.
나를 위해 준비된 선생님들이었다. 자율연습 시간엔 꼬박꼬박 초록형과 박하를 찾아갔다.
“이원아. 넌 유연성, 리듬감이나 균형감각은 타고났어. 운동지능도 높아. 그래서 내 지시대로 바로바로 신체 부위를 조절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운동지능이 높으면 신체를 활용한 감정표현도 쉽게 하는 편인데, 너는 그게 약해. 아마 해본 적이 없어서겠지. 신체가 아니라 악기로 표현해왔기 때문이려나? 어떻게 해야 감정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하나씩 시도해보면서 찾아보자.”
이건 초록 형의 의견이었고.
“뭐랄까, 이원 형은 신체의 기억력이 뛰어난 것 같아. 기본 동작을 배운 지 얼마 안 됐으면서도 정교해. 배웠던 그 각도, 그 속도 그대로 몇 번이고 재현해. 한번 익히면 몸이 기억해뒀다가 재생하는 거지. 다만 경험이 부족해서 응용이 안 돼. 많이 춰보는 수밖에 없겠어.”
박하의 의견은 이랬다.
결국은 모두 ‘경험 부족’이란 소리.
주변의 도움을 받아 미친 듯이 춤을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PT는 그만두고 회사에서 퇴근하는 시간을 늦추기로 했다.
그렇게 강행군을 이어 나간 지 5일. 체력부족을 절절하게 체감했다.
나의 최대 약점은 역시 체력이었다. 생활 패턴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춤 연습을 길게 하면서 학교생활까지 제대로 할 순 없는 걸까?
학교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꾸벅꾸벅 졸았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게 됐고 수면욕이 뇌를 지배했다. 바이올린 연습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체력으론 무리였나?
뒤늦게 연습생이 된 만큼 긴 시간을 연습에 투자하고 싶은데 그러려니 몸이 버티질 못했다. 왜 연습생들이 자퇴하는지 이해가 됐다.
그렇다고 학교를 자퇴할 순 없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퇴로를 없애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기 싫었다.
만에 하나를 고려하지 않는 무모한 행동은 후회를 가져올 수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행동해야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터.
데뷔조였거나 데뷔한 이후였다면 차라리 조퇴하거나 했을 텐데.
하눌 엔터는 학교 정규 수업을 마치고 하교 후에 연습하기를 권장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는 예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데뷔조에 들어가는 정도는 되어야 출석을 인정해준다고 초록 형이 말해줬다.
뭔가 타개책이 없을까.
전부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 아니, 애초부터 마음이 조급해서 잘못 생각했나?
언제 데뷔할지도 가늠할 수 없는데, 레이스의 초반부터 힘을 빼는 걸까?
아직 내 몸이 적응이 안 됐을 뿐일까?
같은 고민을 해봤을 연습생 선배에게 체력 배분에 대해 질문하니 답은 제각각이었다.
초록 형은 대학에 안 갈 예정이라 실기만 신경 쓰고 나머지는 전부 버렸단다.
졸업만큼은 하려고 출석은 꼬박꼬박하고 이론 수업 시간엔 자면서 체력 보충을 한다고 했다.
극단적이다. 그렇게까진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온은 일반고에 다니고 있는데, 자기는 수업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공부는 재미가 없지만 지는 건 싫어서. 체력 회복을 위한 충분한 수면 시간이 나머지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뒤늦게 알았는데, 지온은 빠른 연생이라 3학년이란다. 우리끼리는 그냥 친구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혼 형은, 체력에 모자람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다는 사과 때문에 더 기만당하는 심정이었다.
오랜 연습생 생활을 해온 박하는 자기의 한계가 어딘지 알아본 다음 그 한계 직전까지만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의욕 넘쳐서 막 퍼부으면 결국 탈이 나게 된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여러 조언의 장점을 조합해보니 ‘어디에 중점을 두고 체력을 쓸지 정하고 수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 다음, 그 체력의 상한선이 어디까지인지 인지하고 최대한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결론이 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적절한 시간을 요리해서 간을 잘 맞춰서 맛있게 만들면 된다는 식 아니야.
아무래도 연습 시간 확보를 위해서 약간의 희생이 필요할 것 같았다.
먼저 바이올린 연습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도 부족하다면 오후 수업 시간을 수면 시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오전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바이올린 연습 시간을 빼니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우선은 실천해본 다음 피드백을 하기로 했다.
바뀐 스케줄을 소화한 지 일주일.
바이올린을 잡지 않아도 예상보다 불안하지 않았다.
아마도 진짜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겠지.
손이 녹슨다 싶을 땐 점심을 빨리 먹고 잠깐씩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그만큼 성과가 보여서 노력하는 보람이 있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얻었다.
연습생이 된 지 이제야 한 달.
현오 형이 아이돌 연습생의 생활에 대해 지나치듯 얘기해서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힘들었던 시절이라 생략했던 게 아닐까.
정말 눈 깜짝하는 찰나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루의 흐름을 잊어버릴 만큼 치열하게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하눌 엔터에 들어와서 처음 맞는 월말 평가일.
연습생 생활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고 기본 트레이닝을 받는 단계라 나는 다음 달 월말 평가부터 참여하게 된다고 들었다.
월말 평가를 치르진 않아도 다른 연습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라고 했다.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면서.
회사에서 가장 넓은 대회의실에 연습생들을 모아놓고 각 부서의 팀장급 직원과 대표가 평가자로 참여했다.
여자 연습생들이 먼저 평가를 받고 대회의실에서 나왔는데 침울해져 있거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쩔 줄 모르고 친구를 위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 월말 평가 날은 가차 없이 난도질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날이구나.
나 같은 초보가 끼어들었다가는 순식간에 분해되어버릴 게 뻔했다. 한 달의 유예가 주어져서 다행이었다.
대회의실에 모인 남자 연습생이 벽 쪽에 나란히 놓인 의자에 앉았다.
손중기 대표가 먼저 일어서서 마이크를 들었다.
“매달 돌아오는 평가 날이라도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여전히 중점적으로 평가할 부분은 얼마나 ‘성장’했는가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발전한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저번 평가에서 지적당했던 부분을 개선해 오거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다면 좋겠죠.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긴장 풀고, 시작해봅시다.”
대표가 자리에 앉고 다른 부서의 팀장들이 매처럼 눈을 빛냈다.
랜덤으로 연습생이 호명되었다. 오가다가 자주 인사했던 연습생도 있고 한두 번 정도 마주친 연습생도 있었다.
이름이 불린 연습생은 가운데로 나가 각자의 노력을 뽐냈다.
팀별 댄스를 먼저 본 후에 개인 평가가 들어갔다. 연습생들은 노래나 랩, 댄스 중에 두 가지를 기본으로 개인기를 더 추가해 보여주기도 하고 영화 속 한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다.
트레이너 선생님과 신인 개발 팀장님에게 호되게 혼나는 사람이 속출했다.
“발성에 나쁜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도대체 몇 번이나 지적당했어요? 그동안 뭐 했어요? 아까 보여준 개인기 만드느라 바빴나? 개인기도 경쟁력이죠. 그런데 그것도 별로던데.”
“음정, 박자 흔들렸어. 컨디션 나빠서? 변명하지 마.”
“요즘 연습실에 출석하긴 해요? 잘 안 보이던데. 데뷔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마음이 떠났나? 그러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때요.”
칭찬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보컬 수업 열심히 받더니 이제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왔네요. 다이나믹 조절이 좋아져서 랩할 때도 도움 되겠어요. 싱잉랩 시도해볼 생각은 없어요?”
서혼 형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내가 댄스 연습할 때마다 보컬 연습실에서 살더니 그 성과를 얻었다.
노래가 잘 안된다면서 내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나도 이론적인 부분엔 약했지만 현오 형의 발성 치료 수업을 떠올리며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더라도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 안심했다.
“김지온 연습생은 이제 우리 회사 들어온 지 1년 좀 넘었죠? 이제야 실력이 궤도에 올라온 것 같아요. 랩이야 언제 그렇듯 그루비했고 춤추는 부분에서 큰 단점이 안 보였어요. 그동안 매번 노래랑 춤이 왜 안 느냐고 지적했었는데 미안해요. 마음고생 많았어요.”
예상 못 한 칭찬에 눈가가 뜨거워지는지 지온은 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지온은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집에서 지내며 묵묵히 연습을 이어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 꿈에 대한 열정과 자기 확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반드시 이뤄낼 수 있다는.
“박하준 연습생, 한동안 정체기였죠? 연습생 생활이 길다 보니 정체기를 겪지 않을 순 없죠. 그래도 현명하게 이겨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칭찬해주고 싶어요. 누구나 극복할 수는 없으니까.”
“와. 남초록 연습생. 오늘은 감정이 확 와닿았어요! 댄스야 원래 독보적이었지만 거기서 뭔가 한 꺼풀 벗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드네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어요?”
초록 형이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러더니 입 모양으로 ‘고마워’라고 말하는 듯했다. 뭐가 고맙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연습생들은 대부분 늦게까지 연습하다가 나와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초록 형이나 박하, 지온, 서혼 형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들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생들이 평가를 받고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차에, 대표가 운을 뗐다.
“이번에 평가받지 않은 연습생 있는 걸로 아는데.”
흠칫,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왜 내 이야기를…?
“네, 처음 시작하는 연습생이라 적응 기간을 두고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평가받기로 했습니다.”
대표에게 대답하는 멀쑥한 중년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초록 형이 기획실장님이라고 귓속말했다.
“듣긴 했는데 자기소개하는 자리라고 치고 한 번 실력 볼 수 있겠습니까?”
“대표님,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시죠.”
“함이원 연습생. 준비가 안 됐겠지만, 그 부분은 참작할 테니까 여기서 노래랑 춤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아, 여기서 못 하겠다고 빼면 안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