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13
멘탈 순
코티지 전용 축가? 오란의 아이디어는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곡을 만들어도 여기저기서 축가로 사용되긴 할까 하는 부분에서 조금 회의적이긴 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난 생일 축하 노래 같은 짧고 단순한 곡 말한 거니까.”
“음, 근데 생일 축하 노래 같은 곡이 생각보다 더 작곡하기 어려워. 단순하면서도 기억에 남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서.”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동요는 단순하고 따라부르기 쉬운 음계로 작곡되어 있으면서도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반복에서 오는 중독성.
상어 노래와 개구리 노래 모두 음과 가사가 반복되는 곡이 외우기도 쉽고, 떠올리기도 쉽다. 그러나 절대로 아무렇게나 나오지 않는다.
“의도는 좋으니까 기억해뒀다가 끄적거려볼게. 코티지 결혼식에 내가 작곡한 곡으로 축가 불러주면 어떤 기분일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그리고 테오라의 팬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지지 않을까?
축가를 부르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일 터다. 누군가의 기쁜 날을 축복해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게 새삼 뿌듯했다.
* * *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이전에 언급했던 맹 감독님으로 확정됐다.
콘티도 나왔는데, 거기 나오는 한 존재에게 눈길을 빼앗겼다. 신의 사자처럼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고양이.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현이의 집사인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결과가 짜잔 하고 나왔다. 잡담이라고 흘려넘겼는데 언제 회사에 전달해서 캐스팅 확정까지 됐는지.
초록 형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굳이 범인을 찾지 않기로 했다. 나도 현이랑 하는 작업이 기대되기는 마찬가지니까.
어느 동물 모델보다도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회사에 나와 익숙한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면 보통 이곳을 회사 내 아지트로 쓰곤 했다.
매번 같은 회의실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테오라 공식 회의실 같은 느낌으로 자리 잡았다.
매니저 형이 테오라 멤버들이 쓰기 편하게 자주 쓰는 개인 물건에 빨간 미니 냉장고까지 비치됐다.
“이번엔 들뜬 표정 연기나 즐거워하는 연기를 중점적으로 연습해야겠는걸.”
배경을 제외하곤 신나는 여름 바캉스를 떠나는 이미지라 표정이 저번 뮤비보다 밝았다. 달리거나 점프하는 장면도 많아서 체력이 중요할 것 같았다.
“입수 장면이 또 있네?”
처음 찍었던 뮤비도 힘들었는데 이번도 만만치 않았다. 허리에 들어간 힘을 풀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저번엔 물에 빠졌다가 나온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물로 뛰어드는 느낌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입수는 입수.
의상이 젖어서 몸의 실루엣이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예쁜 옷태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 돌입했다.
서혼 형에게 과하게 근육 붙이지 말라는 엄포가 떨어지긴 했지만, 서혼 형은 운동을 끊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싱글벙글했다.
박하는 의자째로 뱅글뱅글 돌면서 복사한 콘티북을 넘겼다.
“뮤비에서 이 장면은 꼭 넣으셔야 한대…?”
초록 형답지 않은 약한 소리가 나왔다. 맹 감독님이 우리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실 테니 다이빙 장면을 삽입할 계획을 세우셨겠지.
높은 장소가 쥐약인 초록 형과 지온에게 뛰어내려서 입수까지 하길 바라는 건 가혹하다.
어찌어찌 뛰어내린다 해도 둘의 얼굴이 뮤비에 쓸만한 상태는 아닐 테니까. 결국 수정 요청을 넣어두게 됐다.
“현이가 옷 입고 패션쇼 해줬으면 좋겠다!”
“일단 부탁부터 해봐야지. 싫어하면 강요하진 못할걸. 작정하고 숨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우리 대화만 들으면 주제가 고양이라는 건 전혀 모를 것 같다.
자켓 촬영을 하면서 테오라 포토 카드용으로 쓸 사진도 찍는데, 거기에도 현이를 데려가기로 했다. 일종의 배경이나 소품처럼 사진에 찍히나 했더니, 단독 샷도 있을 거라고 해서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6가지 버전 포토 카드가 들어간 앨범을 골라서 사는 방식이라 현이가 추가되면 코티지는 좋아할걸?”
“앨범 사기 전부터 그 앨범 안에 어떤 포토 카드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다고?”
앨범 겉면에 미리 표시되어 있어서 원하는 것만 구매하면 된단다. 한 세트 안에도 멤버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고, 총 6종의 앨범만 사면 겹치지 않는 포토 카드 세트를 얻을 수 있는 거였다.
장수가 적긴 해도 데뷔 앨범에도 포토 카드가 있었는데, 그땐 포토 카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런 형태로 판매하고 있었구나.
“랜덤으로 하면 원하는 포토 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 사재기하는 경우도 있어! 하눌 엔터는 씨드 선배님들 때부터 상술 전혀 안 썼어!”
몇십 개씩 아이돌 앨범을 사서 포토 카드만 가지고 앨범을 무단투기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아이돌에게 관심 없을 때였는데 꺼림칙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실, 실물 앨범판매량 늘리려면 그게 제일 빠른 방법이긴 하지. 뽑기 같은 확률 게임.”
초록 형은 하눌 엔터가 고수하는 방식이 썩 달갑지 않은 듯했다.
테오라의 앨범판매량이 부진하기라도 하면 초록 형이 뭔가 저지를 것 같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판매량을 높이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 같이 운 없는 같은 사람은 백날 해봐야 원하는 포카 못 뽑겠는데?”
오란이라면 앨범을 열어볼 생각도 안하고 다른 사람이 뽑은 포카를 사겠다고 나설 사람이다.
“아직 팬 미팅 얘긴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도 아마 앨범에 추첨권 넣는 방식으로는 안 할걸?”
“팬 미팅!”
박하가 해주는 설명보다도 ‘팬 미팅’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콘서트에 홀려서 그것만 생각했는데, 팬 미팅이 있었다.
아이돌의 팬 미팅은 콘서트만큼은 아니라도 팬들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 우리 테오라의 무대를 보여줄 수도 있다!
콘서트에 비하면 소규모로 짧은 시간 동안 치르는 행사여도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코티지들이 팬 미팅 얘기는 안 해…?”
“이원아. 속내가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어차피 내 기분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멤버들이랑 같이 사는데. 내가 티를 더 낸다고 뭔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예 내 속내를 ‘알아서 전부 들여다봐라~’하고 사는 쪽이 속 편할지도? 지금에서야 떠오른 생각이지만, 괜찮은 생각 같다.
다른 사람에게도 솔직한데 멤버들에게 더 솔직하지 못할 이유가 어딨을까.
“그래서. 팬 미팅은?”
“팬 미팅 얘기는 꾸준히 나오고 있지. 데뷔 초반부터.”
“그럼…!”
팬들의 요구가 꾸준히 있다면 팬 미팅이 성사되는 건 시간문제다.
“회사에서 날짜 조율하고 있어. 팬 사인회나 팬 미팅 작게 열어볼까 고민하던 중에 우리가 다음 앨범 계획이 잡혀서 전부 꼬였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았다. 어쩌면 미니 1집 발매하고 나서 음방 활동이 끝나면 팬 미팅 일자가 확정될 수도 있겠고.
“설렌다.”
“우리 이원이가 설렌다면 이 몸이 나서서?”
“아니, 괜찮아!”
팔을 걷고 나서려는 초록 형의 모습에서 오한이 일었다.
테오라 멤버들에게는 따뜻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한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줬다는 초록 형의 고백 이후로 또 어떤 엄청난 일을 벌일지 괜히 조마조마하다.
본인 입으로 밝힌 일이라 ‘설마 아니겠지.’ 하는 회피조차 먹히지 않았다.
초록 형에게 적용할만한 죄목이 없는데도 ‘속보! 테오라 남초록 경찰서에 끌려가’하는 기사가 아른거렸다.
내가 간이 이렇게 작았다니….
대담하다 못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멤버가 대부분인지라 내 작은 간이 더 조그매 보인다. 그나마 서혼 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팬 미팅 얘긴 이쯤 해두고, 회의실에 모인 김에 상의할 주제가 있어.”
초록 형이 리더로서 발언할 때는 집중이 필수. 각자 하던 얘기를 멈추고 초록 형에게 집중했다.
“앨범 준비 들어가면서 코티지랑 소통이 뜸해진 거 같아.”
“음, 그렇긴 하겠다. 여수 여행 갔던 영상도 아직 안 올라왔고, 한동안 라방도 쉬었으니까.”
테오라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했지만, 팬들의 관점에서는 갑자기 얼굴이 보기가 힘들어진 셈.
2주 정도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 2년 같이 체감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바쁠 테니까 개인 뉴튜브 영상 풀면 어떨까 하고.”
“그게 있었지! 나는 찬성! 하루라도 빨리 코티지들이 봐줬으면 좋겠어!”
개인 뉴튜브 영상으로 공부 콘텐츠를 고른 박하가 재빨리 의욕을 보였다.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아니면 자기와 함께라면 공부도 재밌어질 거라는 자신감인가?
“괜찮네. 그러면 코티지들에게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영상 더 찍어도 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오란과 자신의 콘텐츠를 만든다는 핑계로 요리하는 취미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지온. 코티지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불편해진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서혼 형.
그리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멤버들이 하고 싶다면 받아주는 편. 특별한 의견이 없는 한 그런 편이었다.
테오라에는 나 같이 유한 사람도 있어야 한다. 다 같이 날카롭고 뾰족하면 부딪칠 일이 잦을 테니까.
모두 긍정 섞인 답변을 내놓자, 초록 형은 본격적으로 업로드 스케줄을 조율했다. 이틀에 한 번 어떤 순서로 멤버의 영상의 업로드할 건지를.
“잔잔한 영상부터 올리는 게 낫지 않아?”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맨 처음 순서는 멘탈 센 멤버였으면 좋겠어.”
“멘탈?”
“테오라가 아니라 멤버 개인에게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면,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업무에 지장을 줄 거 같아서.”
첫 번째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순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테오라 자체 컨텐츠 채널인 에 멤버 개인 이름을 제목에 포함하는 영상이 올라가게 된다고 들었다.
자기 이름이 적힌 영상 아래 달린 댓글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악플로 보기 애매한 댓글이라고 하더라도.
“흐음. 내가 할게. 컨텐츠 자체도 잔잔한 내용이라 빨리하는 편이 나을 거 같고.”
먼저 나선 사람은 오란. 내가 용기 있게 나서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멘탈 센’이라는 조건에서 잘릴 것 같아서 주저하고 있었다.
멘탈은 튼튼하다고 자부하지만, 절대로 납득하지 않을 멤버들을 아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코티지들이 내가 싫다는 댓글을 달면 타격이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 나나 오란이가 첫 번째, 두 번째로 하고 이원이가 마지막으로 하자.”
“마지막?”
설마 멘탈 강한 순서는 아니겠지? 아닐 거다, 그렇고말고. 내가 멘탈이 제일 약할 리는 없으니까.
꼴찌라는 통보를 받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심을 짓눌렀다.
개인 영상 업로드 순서는 금방 정해졌다. 오란, 초록, 지온, 박하, 서혼, 그리고 나. 순서를 다 정하고서 다시 올라오려는 의심을 간신히 억눌렀다.
“참고로 내일 포카 촬영 각오해야 할걸? 특히 이원이.”
한번 해본 일이라 사진작가님의 지시에 잘 따르기만 하면 전보다 익숙하게 해낼 수 있을 텐데? 왜 내가 특히 각오까지 해야…?
“포토 카드 다양한 컨셉으로 찍는다는데 그중에 ‘큐티’가 있거든. 귀여운 척 오란한테 가르쳐달라고 해야 할지도?”
“…아니지? 잘못 들었다고 해줘, 초록 형!”
“왜 그래? 울 애기 함이원은 존재 자체가 귀여움인데?”
오란의 저 작태를 보니 내일이 더 막막하다.
큐티? 귀여운 척? 나랑은 천년만년 떨어져 있는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