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16
선전포고
벌써 세 번째 투표.
처음엔 팬덤 이름을 결정했고, 두 번째는 응원봉과 굿즈를 결정했었다.
테오라의 세 번째 공식 투표가 악플러 대응에 관한 투표가 되다니. 가슴이 아릿하다….
“코티지들도 당사자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어. 회사나 우리 멤버들 뿐 아니라 팬들도 악플러에게 피해를 입는 셈인데.”
“함이원 가끔 허를 찌르더라? 하긴, 원래 신선한 의견은 초짜가 내는 법이지. 편견이랄 게 없으니까.”
칭찬 같기도, 욕 같기도 해서 대꾸하기가 애매했다. 다른 멤버도 아니고 오란 입에서 나온 말이니까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초짜라는 건 인정한다. 아이돌이 되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1년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아무리 현오 형에게 자세한 경험담을 들었고, 열심히 정보를 찾아봤다 해도 한계는 있었다.
초록 형과 서혼 형은 어릴 때부터 연예계를 접했고, 박하는 오랜 시간 아이돌을 동경하며 이 세계를 엿봤다.
오란은 아이돌이 되겠다 결심했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이 분야를 공부했을 인간이다. 지온은 적응력 일인자고.
내 편견 없는 시각이 테오라에게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오란에게 따로 딴지를 걸지 않기로 했다.
“이 투표는 팬카페에 올리도록 할게. 저번 투표들은 SNS에 올렸더니 팬 아닌 일반 이용자분들도 많이 투표했다고 들어서.”
팬덤명이나 굿즈는 대중의 선택을 고려해도 괜찮은 문제지만, 악플러 관련 문제는 다르다. 당사자인 팬들 입장에서 투표해야 했다.
“숫자로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지! 결과 뻔하지만!”
박하가 단언했다. 아이돌이면서 아이돌 팬이기도 해서 결과가 훤히 보이는 모양이다.
나도 대충 결과를 알 듯했다. 이 뻔한 투표는 앞으로 우리가 할 행동을 팬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매니저 형 통해서 회사에 알려서 공지글로 올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투표 결과 나올 때까지 개인 뉴튜브 영상 업로드는 보류할게.”
아무 꼬투리라도 잡아 비난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회사 차원의 문제로 넘어갔다.
눈 가리고 아웅이더라도 우리가 직접 개입한 흔적은 남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초록 형이 덧붙였다. 다른 멤버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연예인은 모름지기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초록 형의 지론이었다. 얼마든지 번거로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아이돌, not easy.”
지온 생각에 동의한다. 아이돌을 쉽게 보지 않았는데도 매번 어려웠다. 멤버들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을지.
“슬슬 연습실 갈 시간이야.”
냐아?
초록 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현이가 앙칼진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박하에게 쓴 선심은 여기까지라는 듯 유유히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귀찮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다음에 또 안겨달라는 애절한 간청에도 흰 양말을 신은 회색 코숏은 도도하게 그루밍을 시작했다.
“어떻게 고양이나 집사나 하는 짓이 똑같지.”
오란의 헛소리가 귀를 간지럽혔지만 무시했다.
* * *
뮤직비디오를 찍기로 한 날이 바짝 다가오면서 연기 연습이 한창이었다.
테오라의 미니 1집 타이틀곡 뮤비를 찍어주시기로 한 맹 감독님은 그 뒤로 종종 우리가 안무 연습하는 모습을 보러 오셨다.
벌써 오늘로 네 번째. 뮤직비디오에 참고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테오라의 안무를 외울 정도로 잘 아는 감독님의 작품이라면 차별성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심 즐거워졌다.
덥수룩하게 올라온 수염이 인상적인 맹 감독님은 어딘가 헐렁한 구석이 있어서 은근히 정이 가는 분이었다. 연습실을 오가는 동안 점점 가까워져서 오늘은 저녁까지 같이 먹게 됐다.
“초록 씨, 그 그룹 컴백한단 소문 들었습니까?”
맹 감독님께 말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려도 한사코 사양하셨다. 앞으로 어린 친구들과 쭉 같이 일하게 될 텐데 존대에 익숙해져야 한다면서.
“그 그룹이요?”
“이쪽 분야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름까진 잘 모르겠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남돌 있잖습니까. 뭐더라, 프?”
“프로젝트K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맞아요. ‘프로젝트K’.”
프로젝트K, 보통은 프케이(P.Kay)라고 부르는 이 그룹은 재작년 하반기에 방영한 에서 배출한 그룹이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한다는 핸디캡이 있지만, 아이돌 팬들은 1군에 포함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진짜 프케이 컴백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음방 카감들한테서 나온 얘기니까 정확도는 높을 거라고 봅니다.”
“…프케이?”
한 달 전부터 컴백 예고를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약 2주 전에 컴백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발표까지는 약 2주 정도가 남았다.
지금 프케이의 컴백 소문이 돌고 있다면 조금 빠르거나 느릴 순 있어도 우리와 활동기간이 겹칠 가능성이 높다는 뜻.
데뷔 앨범은 바닐라진과 겹쳤었는데, 미니 1집은 또 프케이의 영향력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프케이는 강력한 팬덤과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그룹이라서 활동기가 겹치면, 뼈도 못 추린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케이의 지난 활동기에는 컴백일부터 내내 모든 음방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프케이는 너무 센데? 왜 하필이면 우리랑 겹치냐. 골치 아프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1군이랑 활동기가 아예 안 겹칠 순 없지만, 신인 그룹인 테오라에겐 가혹하다. 이번 앨범도 쉽게 갈 수는 없나 보다.
“최대한 활동기간 안 겹치길 바라야지.”
“서혼 형! 약한 소리 하지 마! 우리는 프케이도 이길 수 있어! 아마도!”
아직 컴백 예고를 하지 않았으니 일정을 미룰 수는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이 솟았다.
“피하는 게 전략적인 선택일 순 있어도 언제까지고 피할 순 없잖아. 우리가 그렇게 나약하지도 않고.”
멤버들의 의견을 종합해 초록 형이 결론을 내렸다.
프케이에게 남은 계약 기간은 4개월 남짓. 이번 컴백으로 해체할 예정이라 팬덤의 화력이 어느 때보다도 뜨거울 터다.
“대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지. 프케이를 상대하려면.”
맹 감독님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조용히 관찰하고 계셨다. 이 모습을 눈에 담아두시려는 걸까.
“프케이가 해체하면, 그 팬분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프케이라는 그룹이 사라진다면? 다들 어디로 갈까.
“일부는 타그룹 팬이 되고, 일부는 좋아하던 멤버를 따라가기도 하고, 아예 붕 떠버리기도 하고.”
“아이돌을 좋아해 본 사람은 다시 팬이 되는 경우가 많아! 경험상!”
박하도 여러 그룹을 거쳐왔다면서 손가락을 세면서 여러 그룹의 이름을 나열했다.
둘, 셋, 수가 늘어날수록 더 놀라웠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이돌을 좋아했던 건가 싶어서.
“지금은 코넬 선배님 팬! 나 이모탈 1기!”
어쩐지. 코넬의 팬덤 ‘이모탈’이어서 선배님들 만났을 때 그렇게 허둥지둥했구나.
아이돌 팬이 돌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면, 프케이의 팬들을 끌어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면 그 팬들을 우리 팬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지?”
“…! 물론이지! 가능해! 얼마든지!”
“이원이가 프케이 팬들을 다 코티지로 바꿔놓겠다고 선전포고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흐, 그럴듯한 소리네. 가만 보면 제일 대담해? 함이원.”
“이원이 바라면 도울게. 프케이 발라줘?”
뭘 발라? 프케이와 몸싸움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막 나가려는 지온을 간신히 말릴 수 있었다.
“이원이만 믿으면 되겠다.”
“그, 나 혼자는 무리야. 서혼 형.”
“농담이야. 네가 그러고 싶다고 해도 멤버들이 이원이 너 혼자 애쓰게 놔두지 않을걸?”
그렇다. 현실은 테오라 멤버들에게서 독립하려면 멀었다. 솔로 활동하는 나를 상상해보다가 무서운 그림만 보여서 금세 접고 말았다.
아무래도 아직 솔로 가수는 역부족인 것 같다.
“목표가 정해지니까 의욕이 나는데?”
이번 활동기의 목표는 프케이의 팬들을 야금야금 흡수하는 것. 당장은 안 되더라도 프케이가 활동을 마무리하고 해체했을 때, 우리가 차애 그룹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아, 저희끼리만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프케이 컴백은 테오라에게 비상사태여서요. 정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맹 감독님.”
“아니요. 나도 재밌었어요. 테오라가 어떤 그룹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대책 회의하는 우리 모습이 재밌었을 리가 없는데. 의아했지만, 우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뮤비 퀄리티가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더 보여줄 수 있다.
“뮤비 기대해도 좋습니다. 여러분.”
감독님은 확신에 찬 발언으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했다.
* * *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연습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와서 잠깐 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 바빠서 자주 놀아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현이는 별다른 서운함을 보이지 않아서 내가 다 서운했다.
“심심하면 우리 집에 데려다줄까? 주황이랑 놀래?”
냐냑!
묻는 즉시 불호의 대답이 튀어나와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한다는 건, 다른 말로 고집이 있다는 의미. 현이는 꽤 고집이 센 고양이다.
“알았어. 안 데려갈게.”
처음엔 6명이 살기에 넓지 않은 숙소에 고양이를 키워도 괜찮을까 걱정했다. 근데 실상은 이 숙소 전체가 현이 집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얹혀사는 우리를 걱정해야 하게 생겼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구매한 고양이용품 말고도 이것저것 생겨났다. 현이 발닦개가 된 박하는 물론이고 지온이나 오란까지도 장난감과 간식을 바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캣타워도 하나둘 늘어서 매니저 형이 올 때마다 점점 고양이 집이 되어간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었나?
어쨌거나 현이가 살기에 부족한 환경은 아닌 거 같아서 한결 안심된다.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장난감이라고 믿기지 않는 속도로 돌아다니는 쥐 장난감을 손에 쥐었다. 앞으로의 행동을 예상하고 현이의 눈이 갸름해졌다.
위이잉?
자그마한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현이와 쥐 장난감의 대결이 막을 올렸다.
으냑! 냥! 크륵?
온갖 소리를 내며 사냥놀이를 하는 현이 때문에 차례대로 씻으면서 잘 준비를 하던 멤버들이 거실에 모여들었다.
“우리 현이는 S급 사냥꾼이야!”
박하의 추임새를 배경음으로 한동안 사냥놀이를 즐긴 현이는 너덜너덜해진 쥐 장난감을 물고 내게 돌아왔다.
웬만한 고양이들을 기진맥진하게 하는 장난감이라던 아빠의 추천사가 떠올랐다.
우리 현이는 진짜 S급 사냥꾼이구나!
기특한 현이를 쓰다듬어주다가 엉덩이도 토닥여줬다.
“부럽다….”
현이는 내게만 엉덩이를 허용해준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함현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나냐?”
또 얼굴에 속마음을 대문짝만하게 써놨나 싶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이젠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서서히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참! 나 자랑할 거 있음! 어, 자랑 맞나…? 암튼 나 사실, 프케이 멤버가 될 수도 있었다?”
“…?!”
박하가?
그러고 보니 프케이 멤버가 되지는 못했어도, 하눌 엔터에서도 에 내보낸 연습생이 있다고 들었다.
박하라면 2년 전에도 유망한 연습생이었을 테니 정말로 가능성이 있었다.
“나도 제안받았어. 박하가 거절해서 나한테 온 것 같은데.”
서혼 형까지? 박하는 왜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다른 목소리에 그 궁금함을 바로 잊었다.
“나도. 거절했지만.”
지온도?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지? 섭섭하네?”
“초록이 넌 발목 아프다고 해서 그랬을걸? 근데 지온이는 그때쯤 들어온 거 같은데도 제안받았구나. 떡잎부터 다르긴 했지.”
“기분 나빠야 할 사람은 나뿐이네?”
오란은 동글동글한 귀여운 얼굴로도 썩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몸소 알려줬다.
“나 알아! 왜 오란 형한테는 제안 없었는지!”
멤버들의 눈이 박하의 입술에 꽂혔다.